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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 사자산 법흥사
2026년 08월 09일(일요일)
강원특별자치도 영월군 무릉도원면의 사자산 자락에 위치한 사찰이며, 대한불교 조계종 제4교구 본사 월정사의 말사(末寺)입니다.
사자산 법흥사는 신라의 고승 자장율사가 나라의 흥륭(興隆)과 백성의 편안함을 도모하기 위해 643년 신라 선덕여왕 12년에 사자산 연화봉에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하고 흥녕사(興寧寺)로 창건했습니다.
중국 선종의 중흥조인 마조도일 선사로부터 선(禪)을 전수받았던 신라의 선승 도윤칠감국사의 제자 징효절중(澄曉折中)이 886년 이곳에 선문을 여니 이것이 바로 나말여초 구산선문 중 하나였던 사자산문(獅子山門)입니다. 1163년 고려 의종 때 다시 중창하였으며, 1730년 조선 영조 6년, 1778년 조선 정조 2년, 1845년 조선 헌종 11년까지 역사의 부침 속에서도 소실과 중창을 반복하며 그 맥을 이어왔습니다. 그 후 폐사지에 가까웠던 흥녕사가 1902년 대원각 스님에 의해 법흥사로 개칭되고 재건되었습니다.
1912년 또다시 화재로 소실되었던 것을 1933년 지금의 터로 적멸보궁을 이전 중수하였습니다.
현재 법흥사의 유적으로는 옛 흥녕 선원의 위세를 짐작하게 하는 3개의 석탑과 1개의 수호 석불좌상, 자장율사가 수도하던 토굴, 적멸보궁, 사리탑(강원도 유형 문화재 73호), 흥녕사 징효대사 보인탑(보물 612호), 징효대사 부도(강원도 유형문화재 72호), 흥녕선원지(강원도 지정 기념물 6호)가 있고 종이가 없던 시절 인도 영라수 잎에 범어로 기록한 패엽경 등의 소중한 삼보종재가 남아있습니다.
법흥사(法興寺) 일주문(一柱門)
다른 사찰의 일주문과 다르게 우측의 주초석은 등에 연꽃좌대를 짊어지고 있는 코끼리상과 좌측은 거북몸통에 구름을 메고 용머리를 하고 있는 거북상을 조성해 놓았는데, 영원한 진리의 가름침으로 중생을 제도하기를 발원하며 사자산문을 일으키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이 일주문은 불기 2549년(2005) 乙酉年 10월 12일에 주지 도완(度完) 스님과 신도 일동이 힘을 모아 건립하였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사자산 법흥사(獅子山 法興寺) 편액
유림산방주인(霧林山房主人) 무림(霧林) 관지가 있습니다.
부여 출신의 서예가로 한국서도협회 회장을 역임한 무림(霧林) 김영기(金榮基) 선생의 글씨입니다.
법흥사 일주문 뒷편
사자산문흥녕선원(獅子山門興寧禪院) 편액
편액은 전서(篆書)로 되어 있어 읽기도 쉽지 않습니다. 서예가 곧 예술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아름다운 글씨입니다. 무림(霧林) 김영기(金榮基) 선생의 글씨입니다.
법흥사 일주문 기둥에 용의 머리를 한 거북이상(좌측)과 코끼리상(우측)이 세워져 있습니다.
양쪽 기둥은 엄청나게 굵은 배흘림기둥인데 오른쪽은 보현보살(普賢菩薩)을 의미하는 흰 코끼리가 받치고 있고 왼쪽은 문수보살(文殊菩薩)을 의미하는 사자(獅子)가 받치고 있는 모습입니다.
주초석 하단부는 석탑 기단처럼 되어 있는데 사방으로 12지신상이 새겨져 있습니다.
코끼리상
원음루(圓音樓)
2층 누각으로 조성된 이곳은 부처님의 법을 전하는 사물인 법고(가죽 걸친 짐승), 운판(날 짐승과 허공을 떠도는 영혼), 목어(물속에 사는 생명)가 있습니다. 예불 시간에 이 소리들을 법계에 울리는 뜻은 모든 중생들이 고통을 여의고 깨달음의 진리와 함께 하기를 기원한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원음루(圓音樓) 편액
임오대서(壬午大暑) 서봉(瑞鳳) 관지가 있습니다.
임오대서(壬午大暑)라 했으니 불기 2546년(2002) 7월 23일에 썼음을 알 수 있습니다.
금강문(金剛門) 편액
임오대서(壬午大暑) 서봉(瑞鳳)
임오(2002년) 대서는 소서와 입추 사이에 있는 24절기의 하나로 양력 7월 23일 무렵 서봉이 쓴 글씨입니다.
서봉(瑞鳳)이라는 관지가 있어서 2002년 여름에 '서봉'이라는 분이 쓴 글씨인데, 정작 서봉이 누구인지는 확인할 수가 없습니다.
원음루(圓音樓) 뒷편
포대화상
관음상
법흥사에서 적멸보궁을 가려면, 10여분 걸어올라가야 합니다.
수각
적멸보궁으로 가는 계단길
적멸보궁
적멸보궁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불기 2535년(1991)년 17평 규모로 재건축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신라 선덕여왕 5년(636)년, 중국 당나라로 건너가신 자장율사(慈藏律師)께서 중국의 청량산(淸凉山)에서 기도 끝에 문수보살(文殊菩薩)을 친견하시고 받은 부처님 진신사리(眞身舍利)와 가사(袈裟) 등을 가지고 신라(新羅) 선덕여왕(善德女王) 12년(643)에 귀국하신 후, 다섯 군데의 명당 길지(明堂吉地)를 찾아 보궁을 세우고 진신사리를 모셨으니 오대산 상원사(上院寺), 태백산 정암사(淨岩寺), 영축산 통도사(通度寺), 설악산 봉정암(鳳頂庵), 사자산 법흥사(法興寺)입니다. 법흥사 창건 다시 이름은 흥녕사(興寧寺)라 하였습니다.
적멸보궁(寂滅寶宮) 편액
적멸보궁엔 불상이 없고 불좌(佛座)인 보좌(寶座)만 모셔져 있습니다.
적멸보궁(寂滅寶宮)이란 온갖 번뇌망상이 적멸한 보배로운 궁 이란 뜻이며 석가모니 부처님의 진신사리(眞身舍利)를 모신 전각을 말합니다. 법당엔 사리탑(舍利塔)에 부처님의 진신사리(眞身舍利)가 모셔져 있어 상징적으로 보좌(寶座)만 있을 뿐 불상을 모시지 않습니다.
적멸(寂滅)이란 미혹(迷惑)한 세계를 영원히 떠난 경계로 열반(涅槃 Nirvāna)을 말합니다. 열반의 경계는 무상(無上)의 즐거움이 있어 적멸위락(寂滅爲樂)이라 합니다. 또한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으신 장소이며, 특히 이곳에서《화엄경(華嚴經)》이 설해져 를 보리도량(菩提道場) 혹은 적멸도량(寂滅道場)이라고도 합니다. 이 적멸도량은 인도 마가다국 가야성 남쪽 니련선하(尼連禪河) 근처의 보리수하(菩提樹下)를 적멸도량이라 합니다.
적멸보궁은 부처님께서 항상 그곳에서 적멸의 법을 법계에 설하고 있음을 상징하는 곳입니다. 진신사리는 곧 부처님과 동일체로, 가장 진지하고 경건한 예배대상입니다.
신중목각탱
적멸보궁 뒤에 있는 부도
영월 법흥사 부도(寧越 法興寺 浮屠,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73호)
'부도(浮屠)'란 스님의 유골이나 사리를 모신 일종의 묘탑입니다.
영월 법흥사 부도는 적멸보궁 뒤 자장율사 토굴 옆에 위치해 있으며 일명 '사리탑(舍利塔)'이라고 하는 이 부도는 누구의 부도인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고 합니다.
측면의 전, 후면에는 장방형 곽 안에 자물통 문양(법장쇠)이 양각되었는데, 이는 사리를 봉안한 것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나머지 6면에 인왕상과 사천왕상이 입상 조각되어 있는데 이는 불법을 옹호하는 신장들이라고 합니다.
자장율사 석분과 부도
자장율사 석분(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09호)
적멸보궁 뒤에는 사리를 봉안한 것을 상징하는 자물통 문양이 새겨진 사리탑이 있고, 자장율사가 진신사리를 봉안하고 수도했다고 전하는 토굴이 남아있습니다. 가로 160cm, 길이 150cm, 높이 190cm정도의 토굴 안에서 주변에 가시덤불을 두르고 정진했다고 합니다. 토굴의 겉모습은 흙을 봉긋하게 덮어 무덤처럼 보이며, 입구는 네모꼴로 만들어졌고, 통로를 통해 내부로 들어가보면 바닥은 평평하고 벽면은 둥그럼하다고 합니다.
산신각
산신각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건물입니다.
극락전 편액 글씨는 법흥사 주지스님이었던 삼보스님(三寶 1950~2026)의 글씨입니다.
산신각 안에는 세 분의 산신이 모셔져 있습니다.
법흥사는 사자산(獅子山. 1167m)을 주산(主山)으로 하고 백덕산(白德山. 1350m)을 좌청룡(左靑龍), 구봉대산(九峰臺山. 870m)을 우백호(右白虎) 삼아 창건되었기에 세 산의 산신을 모시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산신은 '산의 신'이라고 하여 명산에는 그 산을 지키는 산신님들이 계십니다. 보통 호랑이를 타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합니다.
본래 산신은 불교가 전래되기 이전부터 믿던 민속신앙으로 생명을 악귀로부터 보호해 주시고, 그 산 주변을 삿된 기운으로부터 보호해 주시는 수호신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법흥사는 타 사찰과 다르게 사자산, 구봉대산, 백덕산의 세 분의 산신님을 모시고 있는데, 특히 백덕산 산신님은 여 산신님으로서 아주 영험하십니다.
사자산 산신님
백덕산 산신님
구봉산 산신님
약사전
약사여래불
중대
이름 모를 석종형(石鐘形) 부도 한 기(基)
징효국사 부도(澄曉國師 浮屠)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72호)
'부도'란 스님의 유골이나 사리를 모신 일종의 묘탑(墓塔)입니다. 이 부도는 네 개의 네모난 돌을 바닥에 깔고 팔각의 아래 받침돌을 놓았는데 , 각 면에는 안상(眼象. 靈氣窓. 부도 면석에 팔면의 오금곡선으로 안쪽을 파낸 모양]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 위에 연꽃무늬가 새겨진 받침돌이 놓여 있습니다.
가운데 받침돌은 하나의 돌로 이루어져 있으며 팔각으로 된 각 면에는 모서리기둥이 새겨져 있습니다. 위 받침돌의 윗면은 둥근 모양으로 되어 있으며, 아래쪽에는 팔각의 괴엄이 있고 그 위로 옆면에는 위로 향한 연꽃무늬[仰蓮]를 두 겹으로 돋을 새김하였습니다.
몸돌은 팔각형의 북 모양인데, 앞, 뒤 양면에는 자물쇠가 달린 문틀에 감실(龕室)이 새겨져 있습니다.
지붕돌은 팔각으로 지붕 끝 내림 마루에 귀꽃[부도 지붕돌의 추녀마루 끝에 꽃무늬를 새긴 장식]이 장식되어 있고, 물매는 완만한 편입니다. 지붕돌의 정상 부분은 팔각의 받침돌을 놓고 보개(寶蓋. 부도 상륜의 보륜(寶輪)과 수연(水煙) 사이의 지붕 모양의 장식)를 받게 하였으며, 보개는 지붕돌과 거의 같은 모습입니다.
보개의 정상은 하나의 돌로 된 연꽃 봉우리의 보주(寶珠. 부도 상륜부에 놓인 둥근 모양의 구슬)를 얹어 놓았습니다.
부도의 위치로 보아 탑비(塔碑)와 같은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영월 흥녕사지 징효대사탑비(寧越 興寧寺址 澄曉大師塔碑) (보물 제612호)
「이 비석은 징효대사(澄曉大師)의 탑비(塔碑)로 고려 혜종(惠宗) 1년인 944년에 세운 것입니다. 징효대사(澄曉大師)는 신라 말 구산선문(九山禪門)의 하나인 사자산문파(獅子山門派)를 연 철감선사(澈鑑禪師) 도윤(道允)의 제자로, 흥녕사(興寧寺. 법흥사의 옛이름)에서 선종(禪宗)의 법문(法門)을 크게 일으켰던 승려입니다.
비석의 글은 최언위(崔彦撝)가 짓고, 최윤(崔潤)이 썼으며, 최환규(崔奐規)가 새겼습니다.
비석의 내용은 징효대사가 평생동안 한 일과 신라 효공왕(孝恭王)이 징효대사라는 시호(諡號)와 보인(寶印)이라는 탑명(塔名)을 내린 것으로 적고 있습니다.
이 비석은 신라 말 고려 초에 나타나는 탑비(塔碑)로, 비 받침은 거북모양이며, 비몸 받침 위에 비석을 세우고 그 위에 용을 새긴 머릿돌을 얹었습니다.
비 받침의 거북머리는 용머리를 본떴는데 부릅 뜬 눈에 입에는 여의주(如意珠)를 물고 있습니다. 비 머릿돌에는 네 마리 용과 "징효대사(澄曉大師)"라는 전서체(篆書體) 글씨가 새겨져 있으며, 비 머릿돌 위에는 장식물인 보륜(寶輪. 탑비의 꼭대기에 있는 장식), 보주(寶珠. 탑비의 상륜부에 놓인 둥근 모양의 구슬)을 얹어 놓았습니다.
영월 흥녕사지 징효대사탑비(寧越 興寧寺址 澄曉大師塔碑) (보물 제612호)
징효대사 절중 스님(826~900)은 신라말 구산선문 중 사자산파를 창시한 철감도윤 스님의 제자로 흥녕사(법흥사의 옛이름)에서 선문을 크게 중흥시킨 인물로, 보인탑비는 절중 스님의 행장과 신라 효공왕이 내린 ‘징효대사’라는 시호와 ‘보인’이라는 탑명을 내린 것 등을 적고 있습니다. 부도에는 징효대사 스님의 사리가 봉안되어 있습니다. 이 비석은 신라말 고려초에 나타나는 전형적인 탑비로 비 받침은 거북모양이며, 비몸 받침 위에 비석을 세우고 그 위에 용을 새긴 비 머릿돌을 얹고 있습니다. 비 받침의 거북머리는 용머리를 본떴는데 부릅 뜬 눈에 입에는 여의주를 물고 있습니다.
징효국사 보인탑비의 귀부
지대석과 귀부는 하나의 돌이며, 거북이는 턱을 앞으로 쑥 내밀고 두 눈을 부릅 뜬 것이 영 사나워 보입니다.
등에는 겹으로 조각된 육각의 귀갑문이 있으며, 귀갑문 안에 꽃무늬가 있습니다.
사납게 보이는 얼굴에 비해 거북이의 발가락은 보들보들하게 조각한 것 같습니다.
징효국사 보인탑비의 귀두
대사의 입적한지 44년 후인 고려 혜종 원년(944)에 세원진 비입니다. 거북모양의 귀부의 등에는 귀갑문이 뚜렷하며, 입에는 큼직한 여의주를 물고 있습니다.
징효대사 보인탑비 이수의 제액에는 고징효대사비(故澄曉大師碑)
이수는 볼록한 보주가 흔희 보는 여느 사리탑비의 이수보다는 독특한 모양새며 네 모서리에 각각 한 마리씩, 용 네마리가 조각되어 있습니다.
이수의 정면 가운데 부분 사각형 제액에는 고징효대사비(故澄曉大師碑)라 새겨져 있습니다.
탑비의 귀부 후면
귀갑문 안에는 화려한 화문이 조각되었으며, 꼬리를 뜽에 붙혀 갈고리처럼 오른쪽으로 구부렸습니다.
탑비의 귀부 후면
사자산법흥사중건비(獅子山法興寺重建碑)
사자산법흥사중건비(獅子山法興寺重建碑)
소화팔년 중추(昭和八年仲秋) 강원도지사 이범익 찬(江原道知事李範益譔)이라 했으니, 소화 8년은 일제 강점기인 단기 4266년 불기로는 2477년인 1933년 음력 8월에 강원도지사 이범익 선생이 비문을 지은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극락전(極樂殿)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인 이 전각은 징효대사 부도 앞에 건립되었는데, 최근에 중건하여 단청까지 마친 듯 산뜻해 보입니다.
극락전 편액 글씨는 주지스님이었던 삼보스님(三寶 1950~2026)의 글씨입니다.
아미타삼존불
중앙에 아미타불과 좌우에 관세음보살, 지장보살이 협시하고 있습니다.
극락의 주불인 아미타불은 자기의 이상을 실현한 극락정토에서 늘 중생을 위하여 설법하고 있는데, 이를 상징하는 극락전을 아미타전 또는 무량수전이라고도 합니다. 이곳은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이 협시보살로서 봉안되어 있습니다.
관세음보살은 지혜로 중생의 음성을 관하여 그들을 번뇌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며, 지장보살은 지혜의 광명으로 모든 중생을 비추어 끝없는 힘을 얻게 하는 보살입니다.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지장보살
신중탱화
범종각(梵鐘閣)
범종각(梵鐘閣) 편액은 무곡(茂谷) 최석화( 崔錫和) 선생 글씨입니다.
홍익범종
사자산 법흥사 적멸보궁
조사전(祖師殿)
조사전은 극락전 우측에 건립되어 있는데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건물입니다.
조사전(祖師殿) 편액은 무림 김영기(霧林 金榮基) 선생 글씨입니다.
법흥사의 조사전 내부에는 자장율사와 징효대사를 모셔놓았습니다.
제사신라국사자장율사지진(帝師新羅國師慈藏律師之眞)
사자산개산조 징효절중국사지진영(獅子山開山祖 澄曉折中國師之眞影)
삼성각(三聖閣)
삼성각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건물로 최근에 건립된 듯합니다. 보통 삼성각이라면 치성광여래(熾盛光如來)를 중심으로 한 칠원성군(七元星君)과 독성 나반존자(那畔尊者) 그리고 산신(山神)을 모시고 있는데, 법흥사는 산신각이 적멸보궁 앞에 별도로 건립되었기에 여기서는 산신 대신 용왕대신(龍王大神)을 모시고 있습니다.
내부에는 칠성과 독성, 용왕대신의 탱화가 모셔져 있습니다.
삼성각(三聖閣) 편액은 송은 최성순(松隱 崔星淳 1962~ ) 글씨입니다.
칠성탱화
독성탱화
용왕탱화
흥녕원(興寧院)
불기 2552년(2008년) 10월 낙성한 흥녕원(興寧院)은 신라시대 흥녕사(興寧寺)로 창건되었기에 법흥사의 개산정신을 잇기 위해 개원 되었다고 합니다.
이 흥녕원은, 참 나를 깨닫고 발전시키기 위한 수련시설로, 1층는 공양간, 2층은 템플스테이와 불교공부를 위한 강당으로 사용되는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