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가 영감을 얻고, 책 이름으로까지 내세운 대중음악이 있다. 비틀즈의〈Norwegian Wood>다. 하루키 소설 중에서 가장 많이 팔렸다는 『상실의 시대』의 원제목이 ‘노르웨이의 숲(ノルウエイノ森)’이다. 이 소설에서 숲은 물론이고, 노르웨이라는 단어는 등장하지 않는다. 주제나 글 흐름으로 볼 때, 우리나라 출판사에서 정한 제목 ‘상실의 시대’가 오히려 적합하다.
존 레넌이 작사하고 폴 매카트니가 곡을 썼다는 이 노래, <노르웨이의 숲>이라는 고상한 번역 타이틀 뒤에는 좀 추잡한 내용이 있다. 그러나 소개하지는 않는다. 아, 물론 음악평론가들이 곱게 포장한 문구처럼, ‘청춘들의 원색적인 욕망과 상실감’이 은유적으로 표현된 노래일 수도 있다. 아무튼, 노래에서 언급된 ‘Norwegian Wood’는, 당시 존 레넌이 살았던 영국에서 팔리던 ‘노르웨이산 싸구려 송판’이란 뜻이다.
노르웨이는 핀란드, 스웨덴과 함께 목재 수출국으로도 유명하다. 한때 영국 등 서구사회에서는 노르웨이 산 목재를 싸구려로 취급했다. 하긴, 저가低價 다이(DIY) 목재가구로 유명한 IKEA도 같은 스칸디나비안 국가인 스웨덴 태생이 아닌가? 고로, 애당초 비틀즈의 〈Norwegian Wood>는 ‘노르웨이의 숲’이라고 번역될 계제가 아니었다.
뭐 그렇다고 치고, 노르웨이의 숲에는 과연 어떤 나무들이 자생하고 있을까? 우리는 대체로 달력에서 보여주는 곧고 높은 침엽수림만 연상한다. 하지만, 노르웨이는 활엽수인 자작나무숲으로도 유명하다. 노르웨이라는 지명이 힌트가 되겠지만, 본디 자작나무는 추운 지방에서 서식하는 나무다. 스칸디나반도는 물론, 북유럽과 시베리아 지방, 그리고 우리나라의 백두산 일대, 강원도, 경기북부, 남부 고산지대인 지리산에도 자생하고 있다.
그래서 자작나무는 겨울나무로 통한다. 사실, 겨울이 되면, 그 진가가 드러난다. 자작나무 가지는 은백색銀白色이다. 그래서 검은 빛을 띠는 여느 나무와는 달리, 무언가 품위가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인가? 〈Norwegian Wood>가 노르웨이의 숲이 아니듯, 자작나무 이름에 대한 유래 또한 잘못 확산되고 있다. 은백색으로 품위가 있어서 자작나무라는 이름을 얻었다는 주장이 그러하다.
우리나라 역사에는 없는(아, 있었다. 일제강점기 때 매국노들에게 작위를 내린 적이 있었다) , 중국 주나라 때 확립된 귀족의 품계인 공작, 후작, 백작, 남작, 자작 중의 하나인 ‘자작子爵’에서 비롯되었다는 허황한 말이 돌고 있다.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수작이다.
자작나무 껍질은 불에 잘 탄다. 불에 탈 때, ‘자작자작.’ 소리를 낸다. 그래서 자작나무라는 이름을 얻었다는 것이 정설이니 속지마라. 『세종실록』에도, 함길도(지금의 함경도)에 파견된 한 공무원이, 자작나무 껍질에 불이 붙는 바람에 화재가 더 심각해졌다고 조정에 보고한 내용도 나온다.
자작나무의 특징은 나무껍질에 있다. 은백색의 매끄러운 껍질이 가로로 넓고 길게, 저절로 벗겨진다. 종이가 없던 시절에는 거기에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경주 천마총에서 나온 천마도의 재료도 자작나무 껍질이다.
백두산에 많이 자생하다보니, 환웅桓雄이 하늘에서 내려와 앉았다는 신단수神檀樹가 자작나무였다고 주장하는 사이비 재야학자들도 있다. 환웅이 어디 실존인물인가? 귀족나무니, 신단수니 하는 허튼소리는, 자작나무의 잘난 자태에서 나왔다고 여기면 된다.
내가 사는 일산 호수공원에도 자작나무가 백여 그루 이상 자라고 있다. 첩첩산중도 아닌 평야지대에 웬 자작나무? 뿐 아니다. 전라북도 순창 등 남부지방 여러 곳에서도 자작나무 농장이 여럿 있다고 한다. 알고 보니, 과학의 손을 빌어 정원수로 개량된 것들이란다. 도시 공원에서도 우리가 자작나무를 쉽게 볼 수 있는 까닭이다.
하긴, 어디 자작나무뿐이랴. 도시에서 자라는 나무들 대부분은 목적에 알맞게 개량된 것들이다. 개량된 나무에 대하여 크게 불만은 없다. 아쉽기는 하지만, 이미 수많은 나무들이 그렇게 우리 곁에 다가와 있으니 시비할 일이 못된다. 호수공원 같은 인공 공원에 자라고 있는 나무들 역시 대부분 개량종들이다. 길가의 가로수 또한 그러하다.
다만 아쉬운 것이 있다. 자작나무 수액을 뽑는 대규모 농장들이 너무 많아졌다. 산행 중, 고로쇠나무에 비닐 관을 꽂아 수액을 뽑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마치 웅담을 얻기 위해 살아있는 곰 쓸개에 관을 꽂아놓은 모습이 연상되어 산행 내내 기분이 '꿀꿀했다.'
이미 잘 알려진 고로쇠 수액이야 그렇다 하더라도, 굳이 자작나무에게까지 또 관을 꽂아야 하는가? 장사꾼들의 말에 의하면, 자작나무 수액은 신경통, 관절염, 소화불량, 간질환에도 효과가 있다고 한다. 가히 만병통치약이지만, 의학적으로 증명된 것은 아니다. ‘자연산’에 환장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이용한 상술에 불과하다.
여러 질환에 좋은 약들은 너무 많이 개발되어 시중에 넘쳐난다. 효과도 다 증명되었다. 가격 또한 수액보다 저렴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나무에 관을 박아댄다. 잘못 알고 있거나, 거짓 때문에 벌어지는 일들이다.
비틀즈의 〈Norwegian Wood>는 ‘노르웨이의 숲’이 아니다. 귀족 같다고 해서 자작나무라는 이름을 얻은 게 아니다. 자작나무 수액은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모르는 것은 죄가 아니다. 잘못 아는 것도 큰 죄는 아니다. 다만, 거짓이나 잘못된 정보를 진실인 양 확산시키는 것은 분명 죄악이다. 망어妄語요, 기어綺語다. 지금 횡행하고 있는 가짜뉴스 또한 그렇다.
https://youtu.be/_Rxrx6VuC48
첫댓글 우리 문중에서 가장(?) 글 잘 쓰는 표 아우가 돌아왔네...
종손아재 회고록 연재가 끝나니 카페가 좀 썰렁해 졌는데 새해에는 좀 활약을 해주게...
건강도 잘 챙기고 좋은 일 많이 생기기를 바라네.
위의 비틀즈 음악이 좋던데, 아래 거 긁어서 본문 맨 아래에 붙여넣기 해주게. (잘 알겠지만 '수정'누르고 'html' 누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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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새해에도 건강하십시오.
종손아재께서 글을 쓰라고 힘을 주시어 노력해봅니다.
권 표 !!
자네는 나한테 연락 하번 하게.
전화올리겠습니다.
표 형님,
반갑습니다.
역시 형님 글이 여기에 얹혀지니 우리 카페의 품격이 올라간 듯해 뿌듯한 마음입니다.
가족이란 게 그렇듯이 여러 가지 지난 일들 다 잊고 일가로서의 따뜻함만이 있는 모습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예전에 안 좋았던 건강은 많이 회복되었는지요?
아무쪼록 2021년은 건강을 완전히 회복하고, 뜻하는 모든 일이 성취되는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그리고 혹시 문중 달력이 필요하시면 저한테 연락주세요.
며칠 전 포항에 있는 태호 아제 동생 분한테 3부를 보내드리고도 아직 몇 부 남았으니, 대한민국에서 제일 멋진 우리 고향의 정취가 듬뿍 담긴 카렌다를 전해드리겠습니다.
잊었을지 모르니 제 번호는
010-6326-1509 입니다.
고맙습니다.새해에 좋은 일 많기를 바랍니다.
오랫만에 우리 카페에 들어와보니 반가운 글이 올라와있네! 이른 아침에 경쾌하고 산뜻한 표의 글을 읽으니 내 마음이 상쾌해지는구나. 비틀스 노래도 좋았고. 그런데 자작나무 즙을 플라스틱 튜브로 뽑는다니 놀랍구나. 오래전 중국에서 곰 쓸개즙을 뽑는 농장을 구경했는데 참 잔인하다고 생각했다. 요즘은 social media를 톻해 너무 무책임한 정보가 범람하니 자작나무 가지같이 말끔하게 벋어나가는 삶이 아쉽구나.
표야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가꾸어 좋은 글을 많이 쓰길 바란다.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