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태시인의음악사랑이야기(95)
《'외로운 양치기(Der einsame Hirte, The Lonely Shepherd)', 두 개의 숨결》
바람이 부는 곳에서 태어난 악기가 있다. 팬플루트다. 대나무 관을 나란히 엮어 만든 이 악기는 인류가 가장 오래전부터 불어온 소리 중 하나다. 카르파티아 산맥의 양치기들이 홀로 양떼를 지키며 불었다는 그 소리는, 20세기 후반 게오르게 잠피르라는 한 연주자를 통해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곡의 이름은 "외로운 양치기(The Lonely Shepherd)"이다.
그는 팬플루트의 거장' 또는 '팬플루트의 왕'으로 불리는 루마니아 출신의 세계적인 연주자이다.
팬플루트는 여러 개의 관을 묶어 만든 악기로, 입김을 관에 불어넣어 소리를 낸다. 그런데 그 음색에는 묘한 공간감이 있다. 바이올린처럼 현의 울림이 직접적으로 다가오는 것도 아니고, 피아노처럼 정확하게 건반을 두드리는 느낌도 아니다. 마치 공기 자체가 소리로 변하는 듯하다.
잠피르는 바로 그 악기의 특성을 극대화했다.
그의 연주를 듣고 있으면 음악이 스피커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먼 곳에서 불어오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외로운 양치기'라는 제목과 팬플루트의 음색은 절묘하게 결합
한다.
짐 팬디 자멜(원곡자는 벨기에의 제임스 라스트 악단과 인연이 있는 작곡가 조르지 자멜)이 쓴 이 선율은, 잠피르의 숨을 통과하며 하나의 전설이 되었다.
팬플루트의 소리는 바람 그 자체와 닮았다. 관을 스치는 숨이 만들어내는 음은 어딘가 흔들리고, 떨리고, 완전히 다스려지지 않는 듯한 여백을 품고 있다.
팬플루트 연주의 핵심은 채움이 아니라 여백에 있다. 관을 통과하는 숨은 완전히 통제되지 않는 흔들림을 지니며, 그 불완전함이 오히려 곡의 정서를 완성한다.
그래서 '외로운 양치기'를 팬플루트로 들으면, 마치 넓은 초원 위에 홀로 선 사람의 뒷모습을 보는 듯하다. 음과 음 사이에 바람이 지나가고, 그 바람이 곡의 일부가 된다.
반면 하모니카로 이 곡을 연주하면 전혀 다른 얼굴이 드러난다. 하모니카는 리드가 진동하며 소리를 내는 악기이기에, 음 하나하나가 더 뭉근하고 습기를 머금은 듯 들린다. 팬플루트가 초원의 바람이라면, 하모니카는 저녁 무렵 낮게 깔리는 안개 같다. 벤딩 주법으로 음을 살짝 휘어 올리거나 내릴 때, 곡의 고독은 더 이상 광활한 풍경 속의 고독이 아니라 한 사람의 가슴속에 웅크린 고독으로 바뀐다.
하모니카는 미국의 블루스와 포크 음악을 거치며 인간의 설움과 그리움을 담아온 악기다. 그 위에 '외로운 양치기'를 얹으면, 유럽 산악지대의 목가적 고독이 아메리카 대륙을 떠돌던 이민자와 노동자의 고독으로 옷을 갈아입는다. 같은 선율인데 다른 대륙의, 다른 시간의 눈물이 흐른다.
이는 하모니카가 인간의 호흡과 아주 가까운 악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들이마시는 숨과 내쉬는 숨이 곧 소리가 된다. 연주자의 호흡이 음악 속에 그대로 들어간다.
하모니카로 부는 '외로운 양치기'와 팬플루트로 부는 '외로운 양치기'는 같은 선율이라도 정서가 상당히 다르다. 팬플루트는 공기와 자연, 먼 산을 연상시키고, 하모니카는 사람의 숨결과 입김이 직접 느껴져서 훨씬 인간적인 고독과 향수를 만들어낸다.
음악적 구조 측면에서 ‘외로운 양치기’는 과도한 기교나 복잡한 화성을 배제하고 있다. 지극히 단순하고 순박한 멜로디가 반복되고 확장되는 구조를 취한다. 그러나 이 ‘단순함’이야말로 이 곡이 지닌 위대한 힘이다.
복잡한 오케스트레이션이나 화려한 변주 없이, 오직 멜로디의 선율과 연주자의 숨결만으로 인간의 깊은 내면을 자극한다. 슬픔을 노래하지만 절망에 함몰되지 않고, 고독을 말하지만 찬바람 속에 따스한 온기를 남긴다. 양치기는 자신의 외로움을 악기 소리로 승화시켜 침묵하는 자연과 교감하듯, 이 곡은 듣는 이로 하여금 스스로의 외로움을 직면하고 다독이게 만드는 치유의 힘을 발휘
한다.
이 곡이 미국에서 폭발적으로 사랑받은 계기는 흥미롭게도 영화 때문이었다.
2003년에는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 '킬 빌'에 잠피르의 연주를 삽입하면서
클래식이나 월드뮤직 애호가들의 전유물이던 이 곡이 대중문화 한복판으로 걸어나왔다.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Once Upon a Time in America)의 ost이기도 하다.
이렇게 단순한 선율 하나가, 언어도 국적도 다른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속 같은 자리를 건드릴 수 있다니 경이롭기만 하다. 음악에는 국경이 없다는 말이 상투적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이 곡의 여정을 보면 그 말이 얼마나 사실인지 알게 된다. 루마니아 산골에서 태어나, 벨기에 작곡가의 손을 거치고, 프랑스에서 편곡되고, 미국 영화관에서 재발견된 선율. 그 자체로 이미 하나의 이민의 역사라고
할 수있다.
'외로운 양치기'라는 이름은 얼핏 쓸쓸함만을 말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 반대에 가깝다. 양치기는 혼자이면서도 무리를 책임진다. 그의 고독은 선택된 고독이며, 그 안에는 지켜야 할 것에 대한 사랑이 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초원에서, 혹은 각자의 저녁 안개 속에서 무언가를 지키며 살아간다. 팬플루트의 바람이든 하모니카의 안개이든, 결국 이 곡이 전하는 것은,
외로움은 고적감만이 아니라. 자존감을 호소하며 따뜻한 온기를 갈구하고 있는 사람들의 보편적인 웅크림이며,
고독은 텅 빈 상태가 아니라, 누군가의 텅빈 충만을 지향하는 자연스런 뒷태가 아닐까?
그러고 보니
''우리 모두는 외로운 양치기!''
/문화칼럼니스트 최진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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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com/watch?v=7ZBipuCA8ZE&si=j2LEGySYgqwguqS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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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모니카 연주]외로운 양치기/The Lonely Shepe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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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ré Rieu ft. Gheorghe Zamfir - The Lonely Shepherd
https://youtube.com/watch?v=orL-w2QBiN8&si=IhaOoeKXYgbvkrk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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