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병과 미사주
제병(祭屛, Hostia)
성체를 이루는 두 가지 재료 중의 하나로서, 성사적인 축성의 말씀에 의해서 그리스도의 몸으로 변화된다. 제병의 원료는 밀가루인데, 이 재료를 선택하신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비유해서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라고 하셨다(요한 12,24).
제병은 성체성사의 효과를 표현하기에 적합하다. 피렌체 공의회(1438 - 1445)는 "물질적인 음식과 음료가 육신을 지탱하고, 활력을 주고, 건강을 회복시키며, 즐거움을 주듯이, 성체는 영혼에게 똑같은 효과를 준다."고 하였다. 교회법 924조에 의하면, 제병으로 사용하는 "빵은 순수한 밀을 재료로 하여, 부패의 위험이 없도록 최근에 제조된 것이어야 한다."라고 규정되어 있다. 동방교회에서는 대개 발효시킨 빵을 사용하고, 서방교회는 11세기 이래 발효시키지 않은 빵을 사용해 왔다(교회법 926조). 또 이 제병은 현재, 대제병과 소제병으로 구분된다. 대제병은 주례 사제용이고, 소제병은 신자용이다. 대제병은 성반 위에, 소제병은 성합 안에 넣어진다. 제병 색상은 원래 흰색이나 제병에 있는 문양을 표현하는 기법으로 사진촬영하다 보니 약간의 색상이 가미되기도 한다.
제병의 역사
최후의 만찬에서 사용된 빵은 그 시대 누구나 먹었던 가장 흔한 음식이었으며, 이후로도 미사에서 사용되던 빵은 신자들이 가정에서 음식으로 먹는 빵의 일부를 가져와 미사 때 예물로 바쳤던 것을 사용하였으므로 성체 축성용 빵(제병)도 가정 음식용 빵과 같은 형태였다. 미사 예물이 빵 이외의 것으로 바뀌자 제병은 적당한 두께의 원형을 취하게 되었다. 지금과 같은 형태의 제병은 8, 9세기경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미사예물이 빵 이외의 것으로 바뀌자 가정용 일반 빵은 없어지고 그 대신 동전크기의 작은 성찬용 빵이 나타나게 됐다. 이는 또 미사에 참례해 성체를 영하는 신자들의 수가 많아짐에 따라 편의상 이미 나누어진 작은 빵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던 사실에도 기인한다.
교회법(제924조 2항)에 제병으로 사용하는 빵은 "순수한 밀가루로 빚고 새로 구워 부패의 위험이 전혀 없어야 한다."고 명시돼 있는 것처럼 제병은 누룩이나 다른 불순물이 섞이지 않은 순수한 밀로 만드는 것이 교회의 오랜 전통이다. 동방교회는 대개 발효시킨 빵을 사용하고 서방교회는 11세기 이래 발효시키지 않은 빵을 사용해왔는데, 서방교회가 누룩 섞이지 않은 빵을 사용하는 이유는 최후의 만찬에서 누룩 없는 빵이 쓰였던 전통에 따른 것이며, 교회법 (제926조)에도 "사제는 성찬 거행 때에 어디서 봉헌하든지 라틴 교회의 옛 전통에 따라 누룩 없는 빵을 사용하여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현재 한국교회에서 사용하고 있는 제병은 갈멜 수도회를 비롯한 각 수도회에서 생산하고 있으며 일체의 방부제와 불순물을 사용하지 못해 유통기간이 최대 한 달 정도임에 따라 각 교구 단위로 공급되는 것이 보통이다. 1990년대 초 교회의 대대적인 우리 밀 살리기 운동에 동참하는 목적으로 이후 대부분의 수도회는 생산비 증가와 생산 과정상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순 우리 밀을 제병의 원료로 사용하고 있다.
미사주
일반적인 포도주와는 다른 방법으로 숙성시킨 이 포도주는 성(聖)변화 때에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변하는데, 오직 미사에만 사용하기 때문에 ‘미사주’라고 부른다. 일반적으로 포도는 그리스도인들이 믿고 따르는 참된 포도나무인 예수 그리스도와의 일치를 상징한다. 과월절 축제의 저녁 식사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엄격한 순서에 따라 누룩 없는 빵과 쓴 나물을 먹으며 포도주를 마셨는데 당시에 포도주는 가난한 집에서도 일반적으로 마시던 보통 음료수였다. 이때 포도주를 잔에 가득 채워 기도를 드린 후 4번에 걸쳐 온 가족이 돌아가며 마셨다. 이는 탈출기에 나오는 것처럼 이집트에서의 해방을 네 단계로 여겼기 때문에 이를 기념하기 위해 네 번에 걸쳐 포도주를 마셨다. 이 가운데 세 번째 잔이 가장 중요한데 이는 세 번째 잔을 채우면서 창조하고 구원해 준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자비와 축복을 비는 긴 기도를 바치기 때문이고 또한 예수가 최후의 만찬에서 이 세 번째 잔을 들고 축복의 기도를 하였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성찬 전례에서의 포도주는 미사 중에 거행되는 성체성사를 통해 새로운 계약을 맺기 위하여 흘리는 그리스도의 피에 대한 성사적 표지(標識)일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랑에 참여하고 그 안에 머무르게 하는 요소이다. 최후 만찬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포도주 잔을 들고 “이 잔은 내 피로 맺는 새로운 계약, 여러분을 위하여 쏟는 것입니다.”라고 말씀하였듯이 그리스도인들은 미사 때마다 이 그리스도의 피를 나누어 마심으로써 그와 일치를 이루고 그의 죽음과 부활에 동참하게 되는 것이다. 성찬 전례 중에 포도주에 소량의 물을 섞는 것은 원래 유대인이나 로마, 그리스인들이 포도주의 농도를 조절하여 맛이 더 나도록 하기 위함이었으나, 교회의 전례에 이 관습이 도입되면서 여러 가지 상징적 의미를 띠게 되었다. 즉 이것은 인간과 예수 그리스도와의 일치라는 해석이 덧붙여지면서 그리스도 안에서 신성과 인성의 일치뿐만 아니라 인간이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함을 뜻하기도 하고 십자가상에서 나온 피와 물의 의미라는 해석도 있다.
교회 전례 규정에 따르면 미사에 사용되는 포도주는 포도 열매로 생산된, 아무것도 섞이지 않은 순 자연 술이어야 하고 보존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시거나 부패하지 않도록 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포도주의 색깔에 대한 언급은 없으나 그리스도의 피에 대한 성사적 표지이므로 붉은색을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나, 16세기부터 하얀 성작 수건이 보편화되자 수건에 물들지 않은 백포도주를 선호하게 되었다.
미사주와 마주앙
현재 한국 천주교회가 사용하는 미사주는 동양맥주주식회사에서 1977년부터 공급하고 있는데 이는 한국 주교 회의가 1975년부터 추진해 온 미사주 국산화 노력의 결실이다. 순수한 포도액 만으로 제조된 이 미사주는 ‘마주앙’ 상표에 한국 천주교회가 인정한 미사주라는 단서가 명시되어 있다.
한국 천주교가 마주앙을 미사주로 시용하게 된 배경에는 자타가 공인하는 ‘와인박사’이며 국내 와인(wine·포도주) 개발의 원조인 이순주(66·테오도로)씨가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4대째 내려오는 뿌리 깊은 천주교 집안에서 태어나 독일 가이젠하임 대학에서 와인 제조법을 공부하였는데, 공부를 마치고 돌아와 그리스도의 성혈(聖血)을 상징하는 미사주만큼은 우리 땅에서 생산된 포도로 빚어 봉헌하고 싶은 마음에서 미사주의 국산화에 앞장서게 되었다.
서양 속담에 ‘포도주 없는 식탁은 태양 없는 세상과 같다.’라는 말이 있듯이, 서양인들의 식탁에서 빠지지 않는 게 포도주지만 1970년대까지 국내에서는 포도주는 ‘서양 술’로만 여겨지던 시절이었다. 당시 수원교구장 윤공희(현 광주대교구장) 대주교에게 미사주 개발을 건의했지만 교회 역시 가난했던 시절이라 여의치 않아 맥주회사에 의뢰하여 포도주를 개발하게 된 것이다.
그가 포도 생산지로 정한 곳은 강우량이 적고 겨울이 비교적 따뜻한 경북 경산이었으며, 개발에 착수한 지 꼭 3년 만인 75년에 우리 땅에서 생산된 포도로 술을 빚어 미사주를 납품하는 개가를 올렸다. 그때 그가 미사주 납품 계약을 맺으면서 교회와 한 약속은 미사주로 절대 이익을 남기지 않겠다는 것이었는데, 그가 93년 두산그룹 전무를 끝으로 퇴직했지만 그 약속은 지금까지 그대로 지켜지고 있다. 따라서 미사주용 마주앙(연간 2만5000상자)은 최고급 품질이면서도 가격은 시중 제품보다 훨씬 저렴하다.
지금도 포도 수확 철이 돌아오면 미사주에 쓰일 포도를 축복하는 가톨릭 예식이 경북 경산에서 해마다 거행된다. 특히 미사주는 순수해야 하기 때문에 품종 선정에서부터 재배, 수확, 발효, 숙성, 여과 등에 이르는 전 과정이 엄격하게 통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