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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이 지나갈 때마다 환해졌다
-이잠 시집 ‘늦게 오는 사람’
김연종
눈 깜짝할 사이 벚꽃이 졌어, 연진아.
우리의 봄을 몽땅 훔쳐 가버린 '더 글로리' 말이야. 드라마는 좀체 보지 않는 편이지만 나도 별수 없었어. 벚꽃이 만개할 때 꽃 구경 대신 드라마에 빠져 주말 내내 허우적거렸거든.
그런데 제목이 왜 글로리일까, 하필 영광이고 영예일까 곰곰 생각해봤어. 그러다가 화면에 자주 등장하는 문동은의 상처를 보았어. 유식한 말로 트라우마 어쩌고 하는 것이 결국 마음에 새겨진 상처 아니겠니. 상처들이 짓무르고 많은 세월이 더해져 무늬가 되고, 그 무늬는 결국 영광의 상처가 되겠지. 더, 글로리는 그, 영광의 상처에서 상처를 생략한 것이 아닐까. 그때 난 우연찮게 시집을 보고 있었거든. 학창 시절 네가 읽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말야. 조금 늦었지만 너한테 꼭 보여주고 싶은 시집이 있어, 연진아.
"느린 거로는 챔피언 먹을 자신 있어요! 17년 만에 첫 시집 냈고요, 10년 만에 두 번째 시집을 냈습니다.
스무 살부터 주춤거리며 망설이며 되새김질하며 느릿느릿 걸어온 시의 길 놓지 않고 여기까지 걸어왔네요. 느려서 그렇지, 끝까지 가긴 가요. 제 우묵한 시들이 미발표작으로 묻히지 않고, 시집 『늦게 오는 사람』으로 묶여 세상에 나오게 되어 기쁩니다."
시집을 내고 페북에 밝힌 시인의 심정이다.
보통 3, 4년 주기로 시집을 내고 시집 한 권에 육십여 편의 시들을 욱여넣는 게 요즘의 세태인데, 삼십여 년의 시력을 가진 그녀의 시집은 고작 사십여 편에 백 쪽이 되지 않는다. 게다가 미발표작이 대부분이라니 시에 들인 공력은 가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세상의 척도로 시집의 무게를 재기는 간단치 않을 터. 묵직한 가편들이라 곱씹을수록 진액이 우러나는 칡넝쿨 같은 시집이다.
내가 물이라면 너는 떼지어 쫓아오는 물뱀으로 내가 물의 퉁퉁 불은 젖통이라면 너는 내 심장에 빨판을 붙이고 찌르르 채혈하는 거머리로 내가 달아나는 암사슴이라면 내 허벅지를 물어뜯는 불곰의 얼음 이빨로
-「환상 계통」, 부분
환상은 과거의 트라우마를 무의식적 욕망에 따라 현재에 소환하고 재구성하여 시각적으로 무대화하는 것이고(프로이트), 고통스러운 쾌락인 주이상스로부터 자기 자신을 방어하는 주체만의 특정한 방식이라면(라캉) 이잠의 환상 이미지는 대단히 원초적이며 근본적이다. 그 상처의 몸통은 어디일까. 그것은 "떼지어 달려드는 물뱀이고, 피를 빨아대는 거머리이고, 내 허벅지를 물어뜯는 불곰의 얼음 이빨"이다. 나를 철저히 짓밟은 상처의 뿌리를 찾아 계통수처럼 상처의 본류를 따라가는 여정이 시 읽는 기쁨이고 고통이다.
아주 오래전 사산한 아이처럼 나무 판자에 각인된 캄캄한 어둠을
찬찬히 따라 잡는 선, 선들
옹이의 암흑 처음에서 끝까지 연해 있는 나이테를 세어 보았다
하나, 둘, 셋, 넷.....
참나무 한 그루가 제 상처를 끌어안고 아무는 데에
스물다섯 해가 걸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상처들이 무늬가 되기까지 전 생애가 걸리겠지
-「옹이의 끝」, 부분
옹이는 아문 상처를 말한다. 트라우마는 아문 상처가 아니라, 덮어 놓은 상처이다. 깊게 잠들어 있다가 깨우면 언제든지 나를 공격할 수 있는 무거운 억압이다. 인간은 기억으로, 그 기억의 반복으로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참나무 한 그루가 아무는 데 스물다섯 해가 걸리지만 시인의 상처와 슬픔은, 무늬가 되기까지 전 생애가 걸린다. 그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통증과 고통의 시간마저 끌어안는다. 상처의 근원을 조금 더 파해져 본다.
파헤쳐진 무덤 안에서 죽은 이의 삭은 무릎뼈에서 경첩이 나왔다 살아생전 그의 무릎에 쇠붙이를 박은 내력을 아는 이가 가족 중 아무도 없었다 아내는 그와 같이 산 시간보다 떨어져 지낸 시간이 많았고 자식들은 아비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었다 어미를 내친 푸악스런 사내였다는 것밖에 녹슨 경첩을 두고 다른 이의 무덤을 판 게 아니냐고 했다가 관이 뒤바뀐 게 아니냐고 했다가 우왕좌왕했다
그러다가 누군가 울음을 쏟았다 생전에 그가 한쪽 다리를 뻗고 방바닥에 앉아 생활했던 것이 떠올랐고 약봉지든 뭐든 죄다 손 뻗어 닿을 거리에 놓이지 않으면 불같이 성냈던 것도 떠올랐고 마실 물 떠나르기서부터 어미가 있었으면 감당 안 해도 될 온갖 잔심부름을 해내느라 종종거렸던 어린 날들도 떠올랐다 그런 아비에게 저주를 퍼부으며 집을 떠나 살아온 예순의 딸이었다
- 「파묘」, 부분
"詩作은 머리로 하는 것도 아니고, 심장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몸으로 하는 것이다.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 온몸으로 온몸을 동시에 밀고 나가는 것이다." 김수영이 말한 온몸의 시학처럼 시를 쓴다는 것은 때론 근원의 깊은 고통까지 파헤치는 것이다. 이장을 위해 파묘를 하면서 가족사의 불편한 진실과 맞닥뜨린다. 무릎에 쇠붙이를 박고 살았던 아비의 고통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평생 함께 살면서도 내밀한 고통은 혼자 간직하며 살아간 것이다. 살이 썩고 덩그러니 남아 있는 쇠붙이를 보고서야 다리가 불편했던 아비의 모습을 떠올린다. 돌아가신 부모만큼 생의 고통에 짓눌렸을 예순의 딸. 무덤 안에서 혹은 무덤 밖에서 아무도 모르게 견뎌야 했던 무딘 시간들. 누구나 인생에는 고통이 있지만, 그 고통은 철저하게 자신만의 것일 수밖에 없다.
나도 엄마 주머니 속에 살았던 적이 있었는데
늙은 엄마는 팬티 주머니 안에
눈 못 뜬 캥거루 새끼라도 거두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면 행상 다니며 생선 비린내 묻은 지전을
차곡차곡 쟁여 넣으며
사내고 뭐고 믿을 건 돈밖에 없다고
일곱이나 되는 새끼들 잘 키워야 한다고 이를 앙다물다가도
뭔가 힘들 때마다 주머니에 손을 넣는 버릇이 생겼을까
여든일곱 친정엄마가 내민 작은 종이 상자
관을 열듯 뚜껑을 열면 밀라노 21 패션 프리 사이즈
주머니 팬티 석 장
-「주머니, 밀라노21」,부분
여든일곱 친정엄마가 내민 조그만 상자를 받아든 심정이 어땠을까. 관을 열듯 조심스럽게 뚜껑을 열고 그 속에 보물처럼 간직해 온 프리 사이즈 팬티 석 장을 보고 주머니의 용도가 무엇인지 따져 물었는지, 아니면 두고두고 가보로 물려주기 위해 시집처럼 서랍장에 고이 모셔 놓았는지 궁금하다.
태아처럼 자궁 속에서 몸을 웅크리고 지냈던 시절이나 캥거루처럼 주머니 속에서 몸을 의지하고 살았던 시절은 따뜻하고 아픈 기억이다. 상처란 과거의 아픔과 부담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더욱 강력한 자신을 만들어 삶의 방향성을 바꾸기도 한다. 그것은 상처가 무늬가 되는 과정과 유사하다. 첫 시집의 표제작인 '해변의 개'를 따라가 본다.
해변의 개와 나 말없이 손등을 핥는다
개는 나에게 열려 있고 나는 바다로 열려 있다
어떤 말도 이해할 수 있고 이해받을 수 있을 거 같은
개와 내가 다르지 않다는 생각에 이르렀을 때
그리고 일곱 번째 파도가 밀려왔다
바람 같은 이별
모래 위에 흰 눈이 내리다
-「해변의 개」, 부분
이잠 시의 출발은 통증이 아니었을까. 통증은 괴로움이기도 하지만 감각의 절정이기도 하다. 이 처연한 감각은 역설적이게도 나와 대상의 경계가 사라진 물아일체의 경지까지 오른다. 열려 있음으로 이해를 주고받을 수도 있고 그러므로 마침내 "개와 내가 다르지 않다는 생각에 이르렀을 때" 아무렇지 않은 듯 파도가 밀려온다. 어떤 말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개나 나나' 동일한 물아일치의 경지는 이번 시집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짖는것도 아닌 이상한 소리'로 '신음을 물고 살아가는' 개(저수지와 개)와, 개 밥그릇을 만지작거리며 라면 끓여 먹으면 딱 좋겠다는 나(개나 나나)가 그렇다. 과연 시는 존재론적 자기 성찰이자 상처를 어루만지는 자기 고백임에 틀림없다.
떨리는 가지 끝으로 번지는 가장 환한 그늘
아득히 먼 곳으로부터 차곡차곡 걸어 나와 고요히 일렁이는 그림자 나무 그림자 위에 그림자 포개지고 덧대어도 바람벽을 가리지 않듯 밤이 조그만 불빛을 지우지 않으며 어둠을 광대무변으로 넓히듯 슬픔도 겹쳐질수록 긁힌 자국 하나 없이 그윽함을 더해 가리라
-「그림자 나무」, 전문
이잠의 시엔 나무들이 많이 등장한다. 나무 의사인지 나무 박사인지 숲 해설가인지는 분명치 않지만, 그가 나무와 관련된 공부를 한다고 들은 적이 있다. 나무를 사랑하되 화려한 꽃이나 풍성한 열매보다 나무의 그림자를 더 소중히 여긴다. 그 그림자는 더는 어둠이나 상처가 아니다. "긁힌 자국 하나 없이 그윽함을 더해가는" 희망이자, "떨리는 가지 끝으로 번지는 가장 환한 그늘"이다.
오 촉짜리 전구 같은 사람을 만나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사랑을 하고 싶다
말없이 마주 앉아 쪽파를 다듬다 허리 펴고 일어나
절여 놓은 배추 뒤집으러 갔다 오는 사랑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순한 사람을 만나
모양도 뿌리도 없이 물드는 사랑을 하고 싶다
어디 있다 이제 왔냐고 손목 잡아끌어
부평초 흐르는 몸 주저앉히는 이별 없는 사랑
(중략)
오 촉짜리 전구 같은 사람을 만나
뜨거워서 데일 일 없는 사랑을 하고 싶다
살아온 날들 하도 추워서 눈물로 쏟으려 할 때
더듬더듬 온기로 뎁혀 주는 사랑
-「늦게 오는 사람 」, 부분
사실 문학을 포함한 예술은 우리가 그토록 두려워하고 피하려 하는 고통을 한 번도 외면한 적이 없다. 시인도 마찬가지다. '길보다 낮은' 고통의 독방에 갇혀 살면서 시의 편편마다 줄기차게 고통에 대한 폭로를 이어가면서도 '몸의 후미진 귀퉁이가 허물어지며 뜨끈한 것이 왈칵 쏟아졌'을 때 통증 못지않은 희열도 느꼈으리라.
"늦게 오는 사람이 있다/ 느려서 그렇지 오기는 온다/ 가장 환한 얼굴로 나의 사랑, 나의 삶" 시인의 말에서 말한 것처럼 눈물의 얼룩이 사라진 얼굴로 맞이하는 것은 사람이며 사랑이다. 시집의 결론이자 내심인 표제작을 맨 뒤에 배치한 것은 문학에 관한 한 은근과 끈기와 고집과 투지를 모두 갖추었다는 자부심일 것이다.
푸른 기차 타고 평원을 달려, 달려 볼 테야 해저터널을 지나 바다 건너 백만 번도 더 사랑했던 너의 마음을 지나, 지나
눈물이 마르는 데 얼마나 걸리나
- 「윈드러너」, 부분
시인은 바람을 가르며 외친다. 이제 할 말은 다 했노라고. ,모든 상처들이 무늬가 되었노라고, 슬픔이 지나갈 때마다 환해졌노라고.
순식간에 사월이 지나갔어 연진아.
만화방창의 봄꽃도 순식간에 사라지고 어느새 새순이 돋아났어. 새순이 돋으면 아픈 상처는 깨끗이 사라질까. 상처가 무늬가 되면 아문 자리는 기억에서 지워질까. 시집을 다 읽고 난 심정은 어때, 연진아. 너에게 작별을 고하기도 전에 넷플릭스는 밝고 투명한 영광의 상처를 위해 또 다른 예고편을 선보이고 있더라.
첫댓글 다시 읽어도 뭉클하네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