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눈팅만 하다 첫 글 올리려니 긴장되네요^^;
삼호어묵님 글 덕분에 이 카페를 알게 됐고 그 뒤로 새 글 나올 때마다 눈팅만 했어요.
아직도 부동산 문제니 무슨 세금이니 어쩌고 하면 외계어 홍수에 정신줄 놓을까봐 바짝 긴장합니다.
삼호어묵님 덕분에 용기 얻고 자판 두드립니다.
평범한 40대 중반의 직장인입니다.
지방 출신이구요, 공부하는 재주 하나 있어서
운좋게 서울로 대학 진학해
결혼하고 애낳고 일하며 세금 꼬박꼬박 내며 살고 있습니다.
아내나 저나 둘 다 이른바 '개천에서 용'난 개룡이들입니다.
하긴 그 '용'이라는 것도 기준이 많다보니
그 시절 국민학교, 중학교 간신히 나온 양가 부모님들에게나
서울서 대학 나온 자식들이 잘나고 잘난 용이지,
천룡인들한테야 어디 명함도 못 내밉니다.
서울 올라와선 학교 기숙사에 들어갔구요.
이후엔 학교 앞 월 30만원짜리 단칸방 공동화장실 자취 월세 살았습니다.
친구 1명과 같이 살면서 월 15만원씩 반띵했네요.
한 1년 살다 혼자 살고 싶어서 월 20만원짜리 좀 더 좁은 단칸방으로 옮겼고 알바비로 월세 냈어요.
제대해선 학교 앞 높은 달동네에 전세 단칸방 들어갔습니다.
물론 화장실은 공동화장실이었구요.
전세 700만원짜리였는데, 부모님이 힘들게 마련해 구해주셨죠.
등록금이며 생활비며 장학금 받고 알바해서 혼자 대학생활 꾸려왔는데
700만원 전세자금, 부모님께 의지하는 게 죄송해 죽겠더군요.
졸업하고 취업했습니다.
직장이 생겼으니 제 이름으로 전세 자금 대출받고 700만원 전세금은 바로 부모님께로~
3000만원짜리 반지하 단칸방이었습니다.
영화 기생충처럼 화장실은 방보다 높았지만
공동화장실이 아니라 제 방에 딸린 화장실이 있다는 게 너무 기쁘고 행복했어요.
그땐 왜 화장실이 방보다 높은지도 모르고 살았네요 ㅋㅋㅋㅋ
몇 년 흐르고 결혼을 했습니다.
남들처럼 번듯하게 아파트 전세를 얻을까 생각도 했지만,
4대문 안 직장 가까운 곳 아파트 전세금은 도저히 제 경제력 밖이더군요.
그렇다고 뭉터기로 빚내자니 심장이 떨려서 도저히;;;;
결국 서울역 인근 다세대 주택가에 전세 6000만원짜리 집을 구했습니다.
5층짜리 다세대 주택에 반지하까지 열 몇 세대가 와글와글 사는 집이고,
서울역 노숙자들까지 왔다갔다 하는 동네였어요.
집 바로 앞에선 주말마다 노숙자 급식도 하더라구요.
그래도 지방 근무하는 아내와는 어차피 주말부부 신세고,
전세가에 비해 방도 3개나 되고(1개는 창고 수준이었지만요 ㅋㅋ)
무엇보다 2층이라 반지하 벗어나서 햇볕 볼 수 있다는 게 너무 행복했습니다.
1년 좀 넘게 살았는데, 첫째가 태어났습니다.
저희집 출입구가 다세대 주택 외부로 난 좁은 시멘트 계단이다보니
유모차가 올라올 수 없었어요^^;
게다가 이따금 집 앞에서 노숙자들이 술 먹고 싸우고 하는 통에 경찰 출동하고
도저히 애를 키울 환경이 아니었어요.
자식이 태어나니 모든 생각과 기준이 달라지더군요.
아내와 의논해서 큰 맘 먹고 그동안 저축해둔 거 털어서
전세 1억5000만원짜리 20평짜리 아파트로 이사갔습니다.
기찻길 옆이라 KTX부터 새마을, 무궁화, 지하철까지 밤낮없이 우르르쾅쾅이었지만,
노숙자 난동 걱정없이 퇴근길 아파트 공동현관에 비밀번호 꾹꾹 누르고 들어가
잠든 내 새끼 얼굴 보는 거 너무 행복했습니다.
또 몇년 잘 살았습니다. 둘째도 태어났구요.
전세 갱신하려는데 이거 전세 오르는 게 영 심상치 않더군요.
전세 살며 그래도 몇년 돈 모은 게 있으니
이번엔 집을 사야 하나 심각한 고민에 빠졌습니다.
사실 총각 때부터 주택청약저축을 계속 부어왔습니다.
매달 10만원씩 십년 넘게 부어왔는데
계속 전세 살며 청약 노리는 게 맞지 않나 싶기도 했죠.
그런데 이래저래 가점 따져보니 도저히 안되겠다 싶더라구요.
결국 전세금에 그동안 모은 저축에, 청약, 보험 다 깨고, 대출 내고 해서
6억 좀 안되게 주고 33평짜리 방 세 칸, 화장실 2개 아파트를 샀습니다.
아내와 함께 이름 오른 등기장 받는데 정말 눈물나더군요.
서울 올라온지 20년만에 서울 땅에 제 이름 박힌 집이 생겼으니까요.
그날 밤 조그마한 케익 하나 사놓고 아내와 두 아이와 자축하는데
그동안 살아온 여러 생각들이 나서 잠이 쉬 들지 않았습니다.
대학 입학식 마친 후 저 혼자 서울 남겨두고
영등포역 통일호 타러가며 계속 눈물 흘리시던 부모님 생각도 나고,
직장 신입 시절 화장실 가서 문고리 잡고 울던 생각도 나고,
신혼집 앞에서 밤새 들려오던 노숙자들 술 취한 고함소리도 생각나고,
반지하 살 때 물 넘어와서 이불이며 방바닥 말리고 치우던 생각도 나구요...
그렇게 내 집 마련하고 또 몇년째 이렇게 살아오고 있습니다.
집값요? 네... 많이 올랐습니다. 나라에 깊이 감사합니다만,
그때 집 안 샀으면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을지 다시 생각해도 아찔아찔합니다.
제가 집 살 때도 인구 비율 변화가 어떠니, 주택 공급이 어떠니, 집값이 폭락하니,
오만 이야기들이 많았습니다. 그때 악마의 속삭임에 빠지지 않아서 정말 지금 햄 볶습니다.
세금요? 네... 솔찮게 냅니다. 1주택자 실거주자인데 이번에 재산세 25% 올랐더군요.
돈 많은 분들 보면 우스울 액수일지 몰라도,
마트 가서 케찹 1병을 사도 100그램 당 10원이라도 더 싼 거 고르는 제겐
이게 내 집인지, 나라에 월세 사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저요, 부동산 문제
솔직히 잘 모릅니다.
솔직히 부동산에 큰 관심도 없습니다.
내 당대에 무슨 큰 재산 일구겠다는 야심도 없습니다.
지금껏 사회 생활하며 돈 많은 분들 많이 접해봤지만
그분들 삶도 다 행복한 것만은 아니더군요.
그냥 열심히 일하고,
남한테 나쁜 짓 안하고 돈 벌고,
세금 꼬박꼬박 내고,
남한테 아쉬운 소리 안하고, 손 안 벌리고,
배 안 곯고 살면서
남한테 민폐 안 끼치고,
한 사람 몫 해낼 수 있게 애들 키워내면
더 바랄 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세상이 참 희한하게 돌아가네요.
요 몇달 간 부동산 문제로 세상 돌아가는 거 보면서,
그 높은 곳에 계신 분들이,
오래 전이라 집 사고 팔면서 얼마였는지 기억 안 난다, 아내가 다 알아 했다,
어쩌고 저쩌고 하는 거 들으며 정말 기가 막히더군요.
전 대학 시절 자취 월세방 매달 얼마 냈는지,
그때 물세는 얼마 냈는지까지 다 기억나는데,
어떻게 몇 억, 몇 십억 돈 왔다갔다 한 걸 모를 수 있죠?
저 같은 개천 출신 가붕개와
날 때부터 천룡인들은 DNA 자체가 다른가 봅니다.
그리고 절 더 분노하게 하는 건,
없는 사람들을 위한다는 이 정부가
정말 저 같은 사람이 힘들게 한걸음 한걸음 올라온
사다리들을 전부 다 걷어차고 잘라내고 있다는 겁니다.
삼호어묵님 글에서 제가 가장 깊이 공감하고 함께 분노하는 포인트도 이겁니다.
저를 포함해 이 땅의 수많은 삼호어묵들도 아마 같은 생각일 겁니다.
왜 다 용이 되려고 하냐구요?
개천을 따뜻하고 살기 좋게 만들면 되지 않냐구요?
개소리 왈왈.
이미 역사적으로 검증 다 끝난 이야기를
고장난 레코드판마냥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돌려대고 있는지....
하다못해 꼬꼬마 제 아들이 푹 빠진 핸드폰 게임에서도
서로 렙업하고 더 좋은 아이템 갖겠다고
피튀기며 싸우고 레이싱하고 경쟁합니다.
캐릭터들이 경쟁하며 '성장'하지 않는 게임은
아무도 즐기지 않습니다. 모두가 외면합니다.
지금 정부가 만들겠다는 게 그런 게임입니다.
왜 치열하게 경쟁하며 누군가는 잘 나가고 누군가는 뒤처져야 하니?
우리가 다 기본적으로 살 수 있게 해줄께.....
"빠빰~~~!!! 저희가 신작 RPG 게임을 내놓았습니다.
이 게임에선 치열하게 렙업하며 사냥하고 아이템 찾고 강화할 필요가 없습니다.
HP, MP, 아이템,스탯, 스킬, 집 다 풍성하게 평등하게 고르게 저희가 쏘겠습니다.
아름답고 평화롭게 판타지 라이프를 즐겨보세요~~~"
네... 이런 게임은 출시되자마자 바로 망합니다............
왜냐구요? 더 성장하고 싶은 인간의 본능을 거스르니까요.
약자를 위한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하는 것과
사회 전체를 하향평준화하겠다는 건 완전히 다른 이야기입니다.
이 정부의 길은 전자가 아니라 후자입니다.
어쩌겠습니까?
무적의 180석은 4년동안 건재할테고
무적의 40% 지지율은 쉽사리 깨어지지 않을텐데요.
그렇지만
삼호어묵님 글을 읽고 용기를 냈습니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삼호어묵입니다.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건 이렇게 목소리를 내고
우리 모두 힘을 내자고 하는 것 정도입니다만,
삼호어묵님도 힘내시고 우리 모두 힘냅시다.
밟으면 최소한 꿈틀한다는 것은 보여줍시다.
전 다른 건 몰라도
내 새끼들이 나라에서 챙겨주는 돈이며 집이며 바라보고
넋놓고 헤벨레 살게 될까봐 소름이 쫙쫙 끼칩니다.
지금도 니들은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경제적 지원 다 끊고 집에서 쫓아낼테니
알아서 미리미리 공부를 하든 기술을 배우든
준비하고 살라고 협박하는데,
"알았어. 암것도 안해도 나라에서 다 챙겨주는데 뭐"
자식새끼들이 이러고 나올까봐 정말 무섭습니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