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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 독도 탐방기(上.下)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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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수필 춘추> 등단
전 의성군 행정공무원
한국문인협회 회원
달구벌수필문학회 회원
대경 상록아카데미 수필 창작교실 회원
가는 빗방울이 선창(船窓)을 두드리며 이별의 눈물인 양 소리 없이 흘러내린다. 섬을 지키는 독도경비대원들의 거수경례에 팔이 아프도록 손을 흔들며 아쉬움을 달래본다.
아득히 멀어지는 대한민국의 영토 독도를 바라보며 마지막 인사를 고했다. 언제 다시 볼 수 있을까? 아름답고 늠름한 너의 모습을, 안녕! 잘 있거라 독도여! 처음 만나 잠깐의 머무름인데 정든 고향 집에 잠시 들렀다 떠나는 여린 마음같이 울컥해 옮은 무슨 까닭일까?
지난 6월 29일 난생처음 울릉도와 독도 탐방 길에 나셨다. 장마전선이 북상한다는 기상정보와 함께 어저께부터 세찬 비가 쏟아진다. 어렵게 준비한 모처럼 나들이길,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배편에 차질은 생기지 않을까? 날짜를 미루거나 취소할 수는 없을까? 걱정 어린 친구의 전화가 어쩌면 내 마음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내일로 다가온 일정이니, 하늘에 맡기고 기다려 볼 수밖에 없다. “걱정해서 걱정이 없어진다면 걱정할 일이 없겠네!” 티베트의 속담을 상기하며 너무 염려하지 말고 기다려 보자는 설익은 말로 전화를 끊었다.
우산은 기본 우의까지 챙겨 넣고 완전 군장으로 집은 나섰다. 잔뜩 찌푸린 하늘이지만 우선 웃비가 오지 않으니 다행이다. 오늘 정상적으로 배가 출항한다는 여행사의 연락을 받고 안도하며 포항 여객선 터미널로 갔다. 많은 사람의 틈에 밀리듯 배에 올라 자리를 잡고 앉았다. 자리를 꽉 매운 사람들에 운김인가 모든 근심이 한순간 살아진다. 간간이 부딪치는 선창(船窓)의 빗방울, 저 멀리 검푸른 수평선 위로 거센 물결이 끊임없이 밀려온다. 거대한 여객선도 일엽편주 같이 흔들린다.
3시간 30분의 긴 항해 끝에 울릉도 도동항에 도착했다. 서둘러 내렸다. 말로만 듣던 울릉도, 생애 처음 첫발을 내딛는 순간 감회가 새롭다. 예상외로 맑게 갠 하늘 아래 아름다운 도동항이 눈부신 모습으로 다가온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모든 걱정이 기우가 된 순간이다. 현지 가이드의 안내를 받으며 뱃길에 시달린 허기진 배를 채우고 소형 버스로 섬 일주 탐방에 나셨다.
해안선을 따라 좁고 꼬불꼬불한 길의 연속이다. 도로 양쪽으로 펼쳐지는 기암괴석과 탁 트인 바다, 우거진 녹음 사이로 우뚝우뚝 머리를 내민 기이한 모습의 바위들, 대구 도심에서 느낄 수 없는 맑고 시원한 바닷바람 출렁이는 파도 소리, 바위에 부서지는 하얀 물거품, 파도 위에 춤추는 갈매기의 노랫소리, 심신은 한결 가벼워지고 머리통은 유리알 같이 투명해지는 것 같다.
곳곳에 일주도로 공사가 진행 중이라 섬을 한 바퀴 제대로 돌아보려면 올 년 말쯤이나 가능할 것 같다는 운전기사 겸 해설사의 설명이다. 해안선을 따라 이어지는 길은 비교적 좁고 가파르며 곡선의 연속이다. 차창 밖으로 해안에 펼쳐지는 기암괴석들 저마다 전설을 간직한 채 육지에서 온 나그네 마음을 설레게 한다. 울릉도 비경 중 제1경으로 손꼽히는 삼선암(三仙巖), 주변 경치가 얼마나 아름다웠으면 지상에 내려와 목욕하던 세 선녀가 돌아가지 아니하고 머물렀다 한다. 내려간 선녀가 걱정된 옥황상제께서 용감한 장수를 날쌘 용마에 태워 내려보냈는데 막내 선녀가 그만 장수와 눈이 맞아 정을 통하고 말았다. 옥황상제가 진노하여 세 선녀를 모두 돌로 만들어 버렸다는 이야기다.
저마다 기이한 자태와 전설을 간직한 기암괴석들 그 이름도 다양하다. 투구봉이며 사자바위, 촛대바위 코끼리바위 거북바위 등등...오늘의 마지막 탐방 장소인 나리 분지를 향해 구절양장 꼬불꼬불 가파른 산길을 버스는 다람쥐처럼 기어오른다. 차창에 스치는 원시림 가볍게 내려앉은 구름 사이로 간간이 내리쬐는 햇살아래 하늘 높이 쭉쭉 뻗은 나무들의 투명한 이파리가 초록빛 보석같이 반짝인다. 온몸이 피톤치드로 채워지는 느낌에 몸과 마음이 산뜻하다. 괴이한 모습의 향나무에 너도밤나무 우산고로쇠 마가목 등 울창한 숲이 가져다주는 편안함, 모든 근심 걱정을 한순간에 날려 보낸다. 제주도가 삼다(三多:여자, 돌, 바람)의 섬이라면 울릉도엔 삼무(三無:도둑. 공해. 뱀)의 섬이라 한다. 한동안 가쁜 숨을 내쉬며 달려온 차창 아래로 거대한 평원이 펼쳐진다. 울릉도에 유일한 평지 나리분지다.
울릉도 최고봉 성인봉(聖人峰:984m) 북쪽의 칼데라(솥 모양) 화구(火口)가 함몰하여 형성된 화구원으로 화산재가 만든 평원이라 한다. 화산 분화구에 사람이 사는 곳은 전 세계 세 곳 중 하나라 한다. 넓게 펼쳐진 녹색 평원이 TV 화면에서 본 이국의 넓은 목초지 같이 아름답고 정겹다.
차에서 내렸다. 예쁜 꽃들이 어우러진 울릉도 특유의 너와집 형태의 식당으로 안내한다. 나리분지의 별미를 맛보기 위해서다.
울릉도에는 육지에서 보기 드문 나물들이 많다고 했다. 그중 울릉도 특산물인 눈개승마라는 나물이다. 일명 삼나물 이라 불리는 이 나물은 세 가지 맛이( 두릅, 인삼. 쇠고기) 난다고 하여 삼나물 이란 별칭이 주어졌다 한다.
우리 민족의 전통술 하면 막걸리다. 지역과 담그는 재료에 따라 저마다 색다른 이름의 막걸리가 있다. 제주도의 대표 막걸리가 조 껍데기 술이라면 울릉도의 대표 막걸리는 씨 껍데기 술이라 한다. 마가목 천궁 더덕 등, 씨앗의 껍질로 담근 술이라는 뜻이다.
가뭄에 타던 목구멍에 시원한 막걸리 한잔을 부으니 온 전신이 샤워한 듯 개운해 온다. 삼나물 회를 듬뿍 집어 맛을 음미하며 천천히 혀를 구른다. 향긋하고 알싸한 두릅 맛인가 싶더니 쌉쌀한 인삼의 향이 느껴진다. 씹을수록 요들 짤깃한 싸리버섯 같기도 하고 마지막 목구멍으로 넘어가기 직전 쫄깃하고 고소함이 영락없는 부드러운 소고기 맛이다. 맛깔스러운 산나물 비빔밥에 절인 명이나물이며 더덕구이에 푹 빠져본 근래 최상의 오찬이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내일의 독도 탐방을 위해 저동항 펜션에 여장을 풀었다. 찌푸린 하늘 아래 저동항은 너무나 조용하다. 울릉도의 대표적인 어업의 전진기지, 길가에 늘어선 위판장은 개점휴업 상태다. 날이 저문 탓일까?
저동항의 성벽 방파제를 거닐어 본다. 고 박정희 대통령의 특명으로 조성되었다는 거대한 성벽 같은 방파제와 접해 우뚝 솟은 거대한 바위 앞에 섰다.마치 거대한 촛대를 세워놓은 것 같은 형상이라 하여 촛대바위라 부른다. 이 바위는 일명 효녀 바위라 불리기도 하는데 고기 잡으려 바다에 나간 홀아비를 하염없이 기다리던 어린 딸이 바위로 변해 버렸다는 애달픈 전설이 깃든 바위이기도 하다.
얼마나 많은 뱃사람들이 가족을 위해 뱃길에 나섰다가 불귀의 객이 되었으면 우리나라 해변 곳곳에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그리도 많이 전해질까?
측은한 마음에 바위를 올려 다 본다. 저 높이 바위틈 사이에 흐릿하게 새 한 마리가 웅크리고 앉아 조는 듯 자는 듯 옴짝달싹하지 않는다.
문뜩 소녀의 영혼이 새가 되어 오늘도 외로이 돌아오지 않은 아비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모습 같아 공연히 안쓰럽고 울적해진다. 애초 섬이었던 바위가 방파제를 만들면서 육지와 연결되었다. 저 멀리 일출이 연상되는 화려한 불빛이 보인다. 오징어잡이 어선에서 뿜어내는 불빛이란다. 소녀의 눈물일까? 이따금 빗방울이 떨어진다. 서둘러 숙소로 발길을 돌렸다.
울릉도 독도 탐방기(下)
쁘라삐룬 이란 괴상한 이름의 태풍이 북상 중이라는 심상찮은 기상 정보다.
두 번 다시 오기 힘든 독도 탐방이 물거품이 되지는 않을까? 잠이 오질 않는다. 동료들이 고는 가는 코골이 때문일까? 낯선 환경에 쉬 잠들지 못하는 민감한 성격 탓일까? 자는 둥 마는 둥 이리 뒤 적 저리 뒤 적 어느새 창문이 밝아온다. 자는 동료들이 깰까 봐 가만가만 일어나 도둑같이 밖으로 나왔다.
먼저 하늘을 쳐다본다. 어렴풋이 먼동이 트는 하늘, 옅은 회색 구름 사이로 아침노을인 듯 연분홍빛이 감돈다. 아! 다행이다. 나름의 판단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른 새벽 인적 끊긴 저동항은 너무나 고요하다.
해안선을 따라 늘어선 위판장은 어젯밤과 다름없다. 성어기가 아닌 탓일까? 육지에서 온 무지렁이의 기우일까? 지난날 울릉도에 근무한 경험이 있다며 함께 거닐던 친구의 말이 생각난다. 옛날 항구의 새벽 위판장은 거간꾼의 구성진 외침 소리와 경매 상들로 왁자지껄했고 주변 길가에 오징어 배를 가르는 아낙네들로 항구의 새벽은 장터 같았다고 한다. 어획량이 줄면서 오징어 하면 울릉도, 울릉도 하면 오징어란 명성도 옛말이 된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다.
시간이 갈수록 짙어만 가는 잿빛 하늘 해양경찰 지구대에 게양된 태극기가 바람에 심하게 요동친다. 은근히 걱정이 된다.
배낭을 걸머메고 지정된 식당에 나갔다. 오늘 독도 탐방은 무난할 것 같다는 여행사 직원의 격려에 안도하며 부두로 발길을 옮긴다. 태극기를 파는 장사꾼들의 아우성에 온통 태극기만 잔뜩 그려진 프티스카프를 한 장 사서 목에 두르고 기다리는 여객선에 올랐다.
간간이 선창에 부딪히는 빗물과 갈수록 거세지는 물결을 헤치고 독도를 향해 곡예를 하듯 달려간다. 많은 사람이 독도를 방문하지만, 실시간 변화무쌍한 독도 주변의 날씨로 인해 배가 부두에 접안할 수 없어 독도에 발자국을 남기지 못하고 주변을 맴돌다 돌아가는 안타까운 일이 다반사라 한다. 갑자기 선내 안내방송이다. 물결이 심해 독도에 접안하지 못할 수도 있으니, 양해 바란다는 예고 방송이다. 어쩌라 독도 너만 믿는다.
갈수록 높아지는 파고에 배가 심하게 흔들린다. 다시 한번 같은 안내 방송의 반복이다. 누군가 이야기했다. 독도에 발자국을 남기려면 삼대가 공덕을 쌓아야 한다고, 몇 년 전 백두산 탐방 길에 들었던 천지(天池) 이야기와 비슷하다. 공덕이 없는 나로선 남들의 공덕에 은근히 기대며 마음을 졸인다.
일단 배에 탔으니 그래도 먼발치나마 독도를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비우고 눈을 감았다. 잠결인가 꿈결인가 누군가 갈매기가 보인다. 소리친다. 잔뜩 찌푸린 하늘 검푸른 바다, 짚 동 같은 파도만 밀려오는 망망대해 갈매기가 보인다는 것은 섬(獨島)이 가까워졌다는 느낌으로 다가온다.
다시 안내 방송이 흘러나온다. 승객 여러분! 잠시 후 독도에 배를 접안 하려고 합니다. 파고가 심해 위험하오니, 모두 자리에 앉아 움직이지 마시기 바랍니다. 와! 하는 함성이 일제히 터져 나왔다. 선창으로 눈을 돌렸다.
안개인가 는개인가 선창을 가린 뿌연 해무 너머로 시야에 성큼 다가서는 거대한 바윗덩어리 많이 보아온 낯익은 모습이다. 아! 독도, 멋진 제복을 입고 부두에 일정한 간격으로 늘어서서 부동자세에 거수경례로 탐방객을 맞이하는 독도 수비대의 멋있고 늠름한 모습이 너무나 자랑스럽고 든든하다.
독도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 뭉클한 감동에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한 줄기 바람이 해무를 걷어 간다. 저 멀리 높이 걸린 게양대에 대한민국 태극기가 자랑스럽다. 씻은 듯 말쑥하고 늠름한 독도의 모습, 감동 그 자체다. 손에 손에 태극기를 든 사람들의 아우성과 태극기를 흔드는 바람 소리 바위틈을 하얗게 수놓은 갈매기 울음소리 파도에 부서지는 새하얀 물결 분수, 첼로 4중주의 우렁찬 하모니에 독도는 이제 더는 외로운 섬이 아니다. 태극기로 뒤덮인 독도 앞마당, 모두 하나 되는 애국심의 잔치마당 같다.
감동의 순간을 간직하고자 너도나도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독도 이사부길 1 ~69라는 주소 표지판 앞에 섰다. 신라 장군 이사부의 용맹을 떠올리며 그의 발자취를 따라 셀 카 인증 샷으로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배에 올랐다.
이별을 고하는 긴 고동 소리와 함께 배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갈매기 한 마리가 선창 가까이 날아와 끼룩끼룩 잘 가요 인사를 고하고 돌아간다. 아득히 멀어지는 독도, 동해를 지키는 보루가 아닌 태평양을 아우르는 동해의 수호신 같다.
나의 머리는 비록 작아 보이지만 나의 몸통은 바다 밑 수만 리에 걸쳐있고 그 뿌리는 태평양까지 뻗어 있다고 한다. 6800여 개로 온통 섬뿐인 일본이 작은 나를 탐하는 것은 해적의 노략질과 탐욕적 침략 근성도 근성이지만 알고 보면 나의 엉덩이 아래 무한의 가스자원을 도둑질하겠다는 속셈이란다. 하지만 일본 열도 역시 모두가 나의 발아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 같다. 역시 외로운 섬 독도(獨島)가 아닌 독불장군(獨不將軍) 독도이다.
저동항 날씨는 예상외로 맑다. 버스를 타고 포항행 여객선이 기다리는 도동항으로 갔다. 시간이 조금 이르다. 항구와 연접한 해안 산책로를 찾았다. 용암과 화산재가 뒤엉켜 굳어버린 검붉은 바위들 억만년의 세월이 갉아버린 파도가 만든 천혜의 풍광이다. 해식동굴과 절벽 사이를 아슬아슬 이어 놓은 벼룻길이다. 푸른 잉크를 쏟아부은 듯 사파이어 빛 맑은 물속에 속살을 드러낸 바다, 형형색색의 바위와 해초가 어우러져 오색무지개 빛으로 일렁인다.
한동안 걸으니 바닷가 작은 정원이다. 기화요초가 만발한 무릉도원 같은 정원을 지나니, 하늘에 사다리를 걸쳐 놓은 듯 좁고 가파른 계단이다. 안간힘으로 오르니 동해가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대다. 배 한 척 보이지 않는 바다 저 멀리, 회색빛 아득한 수평선 위로 거센 파도가 끊임없이 밀려와 새하얀 폭죽이 되어 발밑에서 부서진다. 천상의 신선한 공기를 가슴 깊이 빨아들여 대청소를 했다. 한결 가벼워진 발길로 배가 기다리는 부두로 돌아왔다. 선창 밖으로 멀어져 가는 섬을 바라보니 서운함이 밀려온다. 잘 있거라, 울릉도여! 2022년경 하늘길이 열리면 다시 한 번 너를 찾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하며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2018. 6. 30
망각(忘却)의 세월(歲月)
바야흐로 인간 백세 시대에 살고 있다. 인간칠십고래희(人間七十古來稀)란 옛말이 된 것일까?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고 싶은 것이 인류 최대 소원이라면 고령화에 따른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삶의 질을 송두리째 앗아가는 각종 성인병, 특히 노인들의 삶을 한순간 망가뜨리는 노망(老妄)이라 부르는 노인성 치매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들의 열 명 중 한 명꼴로 찾아온다고 하니, 안타까움을 넘어 강 건너 불이 아닌 발등의 불같은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찜통더위가 연일 이어진다. 밤낮이 없는 도가니탕 같은 폭염에 짜증이 절로 난다. “샬-롬 ~ 오! 마이 프랜드 (shalom ~ oh my friend) ............... ”
한 시간여의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샬-롬 기억학교 문을 나서는 마음이 무겁다. 어린애같이 순수하고 천진난만한 그들의 모습이 눈에 아리다. 문을 열고나오니 한낮의 열기가 천국 문을 나와 지옥불로 들어서는 기분이다.
공무원연금공단 대경 상록자원봉사단 수필창작반에서 글쓰기 봉사활동에 참여했다. 경증치매와 경도인지장애 노인들을 위한 봉사활동이다. 대구광역시 지정 치매 노인 종합지원시설인 대구시 서구 상리동 82번지 소재 샬-롬 기억학교를 찾아 갔다. 출입문이 잠겨있다. 아마도 정신이 미약한 분들을 보호하려는 조치인 것 같다. 초인종을 누르니, 예쁜 여직원이 나와 우리를 반갑게 맞아준다. 시원한 수박 한 조각을 놓고 오늘 수업 방향에 대한 짧은 의견 교환을 하고 교실로 들어갔다.
30명에 가까운 남녀 노인들이 커다란 책상을 중심으로 삼삼오오 둘러앉아 박수로 우리를 반긴다. 대부분 할머님 들이고 할아버지는 4명이다.
예상외 건강하신 모습에 안도하며 궁금증에 나이를 알아봤다. 60대에서 80대까지 다양하시다는 귀 띔이다. 모두가 형제요 친구 같아 마음이 착잡하다.
간단히 우리를 소개하고 각자 맡은 책상으로 돌아가 소꿉놀이 같은 수업의 시작이다. 오늘 나와 같이 글쓰기 공부할 할머니는 모두 다섯 분이다.
할머님들이 앉으신 책상 위에 각자 명찰이 붙어 있다. 먼저 A4 용지에 컴퓨터 그래픽스로 작성된 그림에 색칠하는 공부다. 그림 속에는 남자아이 2명과 여자아이 3명이 그려져 있다. 옛적 친구를 떠올리며 생각나는 친구 이름을 불러 보라 했다. 금희, 숙자 한두 분 이름을 기억하는 분도 계시고 전혀 생각나지 않으신 듯 도리질을 하신다. 생각나는 남자 친구 이름을 물으니. 모른다고 손사래로 입을 가리며 수줍어 웃는 모습이 꼭 소녀 같다.
친구들에게 예쁜 옷을 입혀보라며 크레용을 드렸다. 어떤 색을 칠할까? 망설이신다. 옆 사람에 곁눈질이다. 아무래도 좋으니, 마음대로 해보시라 했다. 손이 떨리고 서툰 솜씨지만 모두 열심이다. 꼭 선생님의 말씀에 고분고분 천진난만한 유치원생 같다. 얼굴에 검은색을 칠하시는 분, 분홍색으로 예쁘게 단장하시는 분 모두 만점이다. 검은 얼굴은 흑인, 분홍은 황인종 그냥 두면 백인이다. 잘하셨다는 칭찬에 모두가 어린애같이 좋아하신다. 그림 공부가 끝나고 각자 갖고 계신 일기장에 보고 싶은 친구에게 편지를 써 보라 했다.
잃어버린 세월 탓인가 망각이란 늪 속에서 헤매는 것일까? 연필을 쥔 손이 움직이질 않는다. 움켜쥐었던 모든 걸 놓아버린 빈손, 이젠 더는 할 말도 추억도 그리움도 없어진 것일까? 고매한 지식도 높은 지위도, 돈도 명예도 이젠 무용지물이다. 어쩌면 자신까지도 모두가 문맹자요, 빈 털털이 무소유의 선승(禪僧)이다. 멍에 벗은 망아지요, 백치의 전신(前身)이다.
어느 한순간 삶이란 무거운 멍에를 벗고 망각이라는 피안(彼岸)의 세계를 꿈꾸고 있다. 모든 근심과 걱정이 없는 무욕(無慾)의 경지, 어쩌면 보살의 화신이요 부처의 경지가 아닐까? 일기(日記)의 기본인 날짜와 요일은 아예 모른다. 글씨를 전혀 알지 못하시는 분, 글은 알아도 쓸 말이 없다는 분, 내가 부르는 데로 개발새발 받아쓰시는 분, 애석하고 답답한 마음을 송두리째 쏟다 보니 어느새 마칠 시간이다. 그린 그림을 일기장 뒷면에 붙이고 몇 분이 앞에 나와 쓴 편지를 발표 형식으로 낭독하고 오늘 수업을 마무리했다.
인간은 생각과 지각(知覺), 기억(記憶)과 망각(忘却)의 동물이다. 망각이란 전에 경험 또는 학습한 기억이 일시적 또는 영속적으로 감퇴 또는 상실되는 현상을 말한다.
조물주는 기억이란 칠판과 망각이란 지우개를 함께 내리신 것 같다. 망각 없는 삶은 하루에도 몇 번씩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난장판 같은 삶이 될 수도 있다. 망각이란 지우개가 없다면 인간이 태어나 지나온 모든 일을 하나 하나 빠짐없이 소프트웨어에 저장되면 창이 열릴 때마다. 떠오르는 회상(回想)에 울다가 웃다가 이를 갈며 미워하거나 사랑과 그리움 증오와 반목 때문에 갈팡질팡 미쳐 버리거나 요지경 같은 세상이 연출 될지도 모른다. 삶의 묘미란 망각의 세월 속에 소진되어 가기도 하고 새로운 에너지의 충전으로 재생 또는 유지되는 것이 아닐까?
퇴근하는 아들을 보고 “오라버니 오셔요!” 하며 맨발로 뛰쳐나가신다는 노망든 어느 할머니의 기막힌 사연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그에겐 망아(忘我)의 도원경이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눈도 귀도 마음 까지도 앗아버린 인고의 세월, 이를 관찰 보호해야 하는 가족들의 고충과 안타까움, 그들은 알지 못한다. 이에 따른 사회적 비용과 손실, 그 책임 또한 막막하다. 이 모두가 후대를 위한 희생의 대가라면 남의 일이 아니라는 기우(杞憂)에 우리 모두의 몫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문득 황창연 신부님의 강연이 떠오른다. “자식들에 이것저것 물려줄 생각 마시고 건강을 챙기세요. 여러분이 자식에게 물려줄 가장 큰 선물은 소천(召天)하는 그 날까지 내 손으로 밥 떠먹고 내 발로 화장실 갈 수 있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무상무념(無想無念)의 경지에서 몸이라도 샬-롬(평강과 평안) 하시며 소천 하시는 그 날 까지 건강을 기원 드린다. 2018.8.1
첫댓글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최상순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