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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한시감상
황준량/ 청량산 안중사에서 송재 이우의 시에 차운하다
[淸涼山安中寺次李松齋 堣 韻 丙午秋九月]
천년토록 돌 틈에서 맑은 샘물 솟아나니 / 千年石竇湧深淸
우둔한 이 한 번 씻으면 총명하게 된다네 / 一洗昏愚變作明
이 몸도 마음 씻어 큰 변화 보려는데 / 我欲澡心觀大易
안연처럼 총명하고 지혜로울 수 있을까 / 可能聰睿似顔生
총명수(聰明水)이다.
넝쿨 잡고 드높이 반공으로 걸어가니 / 捫蘿行盡半天高
산이 좋아 발 아파도 노고가 싫지 않네 / 病脚耽山不厭勞
백운사에 와서 누워 구름과 짝이 되어 / 來臥白雲雲作伴
꿈속에서 세속 생각 이미 모두 버렸네 / 夢中糞土已全抛
백운사(白雲寺)이다.
구름 속의 가파른 산 의지할 곳 없는데 / 入雲巉骨依無地
대부분의 이름난 절 바위 뒤에 숨어있네 / 十九名藍隱石縫
청량한 기운은 은세계를 열었고 / 淸氣創開銀世界
신묘한 풍광은 연꽃처럼 서있네 / 神光削立玉芙蓉
맑은 강 한 줄기는 밝은 달 독점하고 / 江澄一派專明月
잎이 진 많은 산은 먼 하늘에 닿았네 / 木落千峯盡遠空
한밤중에 선경에서 길손이 꿈을 꾸니 / 三夜仙都投客夢
몸 가벼워 서늘한 바람을 탄 듯하네 / 身輕恰似馭泠風
탁립봉(卓立峯)이다.
[주C-001]안중사(安中寺) : 청량산에 있던 사찰이다. 청량산에는 안중사를 포함하여 치원암(致遠庵), 극일암(克一庵), 상청량암(上淸凉庵), 하청량암(下淸凉庵) 등의 절이 있었다고 한다.
[주C-002]이우(李堣) : 1469~1517. 본관은 진성(眞城), 자는 명중(明仲), 호는 송재(松齋)이다. 진사 이계양(李繼陽)의 아들이며, 퇴계 이황의 숙부이다. 1492년(성종23) 생원시에 합격했고, 1498년(연산군4) 문과에 급제하였다. 사간원 정언, 이조 좌랑, 병조 정랑, 진주 목사, 호조 참판, 강원도 관찰사, 김해 부사 등의 관직을 지냈고, 안동부사로 부임하여 선정을 베풀었다.
황준량/김생암
〔金生菴〕
빼어난 문화산은 듣던 대로 흡족한데 / 奇絶文華愜舊聞
산을 감싼 맑은 물은 속세와 다르네 / 籠山淸水隔塵氛
좁은 길의 국화는 서리 맞아 늦게 피고 / 寒花夾徑霜猶晩
숲에 기댄 노을에 해가 이미 지려 하네 / 亂靄依林日已曛
세상의 성쇠를 낙엽처럼 보고는 / 世上榮枯看落葉
세상의 득실을 부운처럼 비웃네 / 人間得喪笑浮雲
치원대와 김생암은 이름만 전하는데 / 崔臺金寺名空在
푸른 눈의 스님이 한 줌 향을 사르네 / 眼碧胡僧一炷熏
[주D-001]문화산(文華山) : 현재까지 일반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으나 옛날에 청량산(淸凉山)의 이명으로 불렸던 것으로 추정된다.
[주D-002]치원대(致遠臺) : 오늘날에는 고운대(孤雲臺)로 칭한다. 원문의 ‘최대(崔臺)’는 최치원의 누대라는 뜻이다.
황준량/치원대에서 장난삼아 짓다
〔致遠臺戲占〕
천 섬 되는 총명수가 연적봉에서 쏟아져 / 千斛聰明瀉硯滴
탁필봉 휘둘러 동석봉에 글씨 쓰네 / 手揮卓筆書動石
만월대 앞에서 옥소봉을 연주하면 / 滿月臺前弄玉簫
정녕코 최선께서 달밤에 오시리라 / 應有崔仙來夜月
연적, 탁필, 동석, 옥소는 모두 봉우리 이름이다.
신선 산의 유람은 가을과 겨울이 좋은데 / 仙山遊賞秋冬好
고금의 유람객들 쉬이 겸하지 못하였네 / 今古遊人未易兼
단풍잎이 채 안 져서 참 모습 드러나나 / 錦葉未殘眞骨露
한 눈에 들어와도 취해서는 안 되네 / 全收一眼恐傷廉
뾰족산은 김생의 붓과 빼어남을 다투고 / 峯尖競秀金生筆
석간수는 최치원의 명성과 다투며 흘러가네 / 石澗爭流致遠聲
연하 끼어 속세에 물들지 아니하니 / 共結煙霞塵不染
높은 이름은 우뚝한 이 산과 딱 맞네 / 高名端合此崢嶸
[주D-001]최선(崔仙) : 최치원을 말한다.
[주D-002]고금의 …… 못하였네 : 고금의 청량산 유람객 중에서 가을과 겨울 두 계절에 이곳을 유상한 이가 적었음을 말한 것이다.
[주D-003]취해서는 안 되네 : 《맹자》 〈이루 하(離婁下)〉에 “얼핏 보면 취할 만하고 자세히 보면 취하지 말아야 할 경우에 취하면 청렴을 상하게 한다.〔可以取, 可以無取, 取, 傷廉.〕” 한 데에서 나온 말이다. 왕일(王逸)의 《초사주(楚辭注)》에 “받지 않는 것을 염이라 한다.〔不受曰廉〕”라고 하였다.
황준량/가야산에서 김모재의 시에 차운하다 병오년(1546, 명종1) 가을 8월
〔伽倻山次金慕齋韻 丙午秋八月〕
소나무에 바람 불어 소리가 맑은데 / 吟風松檜響簫簫
아홉 겹 바위 위에 단풍이 섞여 있네 / 九疊屛中錦樹交
소매 속의 청사검이 기이한 기운 발하여 / 袖裏靑蛇奇氣發
소리 높여 읊조리며 날듯이 무릉교 지나네 / 高吟飛過武陵橋
무릉교(武陵橋)이다.
바위 위의 폭포가 백룡처럼 내닫더니 / 石上飛泉走玉虹
다시 맑게 흘러서 단풍잎이 비치네 / 更流淸淺蘸崖楓
정녕코 바람과 안개에게 약속하나니 / 丁寧留與風煙約
봄 산의 짙붉은 철쭉을 다시 보리라 / 要看春山躑躅紅
홍류동(紅流洞)이다.
벼랑의 성난 폭포 소리 우레 같은데 / 怒瀑懸崖響轉雷
그림 같은 산에는 단풍이 쌓여 있네 / 山顔如畫錦成堆
무쇠 피리 비껴 부니 푸른 바위 부서져서 / 橫吹鐵笛蒼巖裂
다시금 산도 불러 술을 사서 오게 하리 / 更喚山都沽酒來
취적봉(吹笛峯)이다.
긴 무지개가 푸른 바위 갈라 열어 / 長虹截破翠巖開
산들산들 온풍이 얼굴에 불어오네 / 習習光風拂面來
위쪽의 적성산은 노을이 표지 되니 / 上有赤城霞建標
비로소 해동에 천태산 있음을 알겠네 / 始知東海有天台
광풍뢰(光風瀨)이다.
차디찬 샘물은 바위에서 솟아나고 / 寒泉冽冽穿巖眼
아름다운 국화는 땅에 가득한 돈 / 金菊英英滿地錢
단조에는 사람 없고 불씨만 남았으니 / 丹竈無人留宿火
약초를 캐다가 구름 곁에서 잠자리라 / 唯應採藥傍雲眠
백운대(白雲臺)이다.
천 층의 산 이내는 흰 비단을 펼친 듯하고 / 千層嵐翠抹輕紈
아홉 구비 찬 시내는 물소리가 세차네 / 九曲溪寒響急湍
산들산들 신선바람 소매에 불어오니 / 灑灑仙風吹袂擧
맹호연처럼 시 읊으며 으쓱해도 괜찮네 / 不妨吟聳浩然山
금화대(金華臺)이다.
평평한 흰 바위는 글쓰기가 종이보다 좋고 / 盤平白石書勝紙
먹 다해도 맑은 시내 벼루는 마르지 않네 / 墨盡淸溪硯未乾
채색 붓을 휘두르면 용이 뛰어나올 듯하니 / 彩筆揮來龍躍出
신선산은 비바람도 깎아내지 못하리라 / 仙山風雨未應刓
체필암(泚筆巖)이다.
소나무는 비파 타고 새들 와서 노래하고 / 松鳴寶瑟鳥來歌
비단 단풍잎은 잔잔한 맑은 물에 비치네 / 楓錦增光水鏡磨
산신령께 감사하나니 내 마음 위로하려 / 寄謝山靈勤慰我
시인 맞이하여 구름노을 변화시켰네 / 爲邀騷客幻雲霞
장난삼아 돌 위에 적다.
은거하던 좋은 곳 집으로 삼아 / 雲林佳處盡爲家
문장으로 높은 이름 지금까지 남아 있네 / 華藻高名此不磨
소매로 이끼 쓸고 옛 바위에 쓰지만 / 袖拂荒苔題舊石
선유의 풍치를 따를 수 있으랴 / 仙遊風致可追麼
시석(詩石)에 제하다.
[주C-001]김모재(金慕齋) : 모재는 김안국(金安國)의 호이다. 조광조(趙光祖)와 함께 김굉필(金宏弼)의 문인으로 사림파(士林派)를 영도하였는데, 기묘사화 때에 간신히 화를 면하고 파직되었다가 다시 등용되어 대제학(大提學)으로 재직 중에 죽었다. 김안국의 문집에는 가야산 구곡시(九曲詩)가 실려 있지 않다.
[주D-001]청사검(靑蛇劍) : 한 고조(漢高祖)의 보검으로, 그는 이 검으로 백사(白蛇), 곧 진 시황을 멸하였다.
[주D-002]백룡(白龍) : 옥홍(玉虹)은 폭포(瀑布)나 유수(流水)를 비유하는데, 여기서는 흰 용처럼 포말을 뿌리며 아래로 떨어지는 폭포를 가리킨다. 소식(蘇軾)의 〈울고대(鬱孤臺)〉 시에 “산은 푸른 물결이 되어 솟아올랐고, 물은 옥홍이 되어 흐르는구나.〔山爲翠浪湧, 水作玉虹流.〕” 하였다.
[주D-003]홍류동(紅流洞) : 홍류동천(紅流洞天)이라고도 하는데, 가야산 입구에서 해인사까지 이르는 10리의 계곡을 말한다. 가을이 되면 붉게 물든 단풍이 맑은 계곡물에 비춰 흐른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주D-004]산도(山都) : 사람을 닮은 원숭이의 일종으로 얼굴이 길고 입술이 검으며 사람을 보면 웃는다고 한다.
[주D-005]긴 무지개 : 폭포수를 시적으로 칭한 말이다.
[주D-006]적성산(赤城山) : 중국 절강성 천태현(天台縣) 북쪽에 있으며, 천태산의 남문이다. 손작(孫綽)의 〈유천태산부(遊天台山賦)〉에 “적성산은 노을을 들어서 표지를 세웠다.(赤城霞擧而建標)”라고 하였다.
[주D-007]단조(丹竈) : 선약(仙藥)을 만들 때 사용하는 화덕이다. 송나라 요관(姚寬)의 《서계총어(西溪叢語)》에 “왕보(王甫)가 어느 도인을 만나서 어느 곳으로 따라갔는데, 소나무 밑을 지나자 오래된 단조가 하나 있었다.”라고 하였다.
[주D-008]시석(詩石) : 최치원은 가야산 독서당에서 〈가야산 독서당에서 짓다〔題伽倻山讀書堂〕〉라는 시를 지었는데, 이를 홍류동 계곡의 바위에 새겼다. 시는 “바위 골짝 치닫는 물 첩첩산중 울려서, 사람 말을 지척에도 분간하기 어렵네. 세속의 시비 소리 귀에 들까 두려워서, 일부러 유수로 산을 모두 에워쌌네.〔狂奔疊石吼重巒, 人語難分咫尺間. 常恐是非聲到耳, 故敎流水盡籠山.〕”이다.
황준량/소백산 욱금 길을 가다가 회암의 시에 차운하다
〔小白山郁錦路中次晦菴韻〕
불이 난 비탈 밭은 돌밭이나 다름없고 / 阪田經火偏和石
바위 옆의 초가엔 구름 반쯤 덮였네 / 茅店依巖半帶雲
황량한 작은 동네 살아갈 길 막막하니 / 小洞荒涼生事窄
백성들이 어찌 즐겨 경작할 수 있으랴 / 居民何得樂耕耘
옅고 연한 녹음은 비단처럼 고우며 / 輕陰軟綠細如紗
이슬 젖은 꽃향기는 노을에 어울리네 / 裛露花香襯紫霞
납극과 봄 적삼으로 마음대로 가노라니 / 蠟屐春衫隨意去
나도 몰래 하가타암으로 발길 들어섰네 / 不知行入下伽陀
하가타암(下伽陀庵)으로 가는 도중에
연하에 이끌려서 지팡이를 짚고 가니 / 觸撥煙霞倚短筇
비온 뒤 푸른 기운 앞산에 떨어지네 / 雨餘寒翠落前峯
석 잔 술에 취하여 호기가 생겨나니 / 三杯醉後生豪氣
남악에서 풍류 즐기던 회옹을 이어볼까 / 南岳風流續晦翁
온 숲엔 붉고 푸른 꽃과 잎이 즐비하여 / 千林紅綠影離離
지팡이 짚고 앞길을 더디게 오르려네 / 倚杖前頭欲上遲
높은 바위에서 휘파람 부니 호기가 생겨나고 / 吐嘯危巖生浩氣
맑은 시내에서 갓끈 씻으니 세속 생각 사라지네 / 濯纓淸澗洗塵思
날리는 구름은 모습이 다양하고 / 悠揚雲葉飛多態
우뚝한 산들은 꼼짝도 하지 않네 / 偃蹇山容立不移
만물 이치 살펴보니 모두가 자득하여 / 物理觀來皆自得
동지들과 어울려 먼 곳까지 따라가네 / 更携同志遠相隨
퇴계의 시에 차운하다.
부슬부슬 안개가 수풀에 가득하여 / 霏微煙靄滿林端
벼랑과 숲속을 어지럽게 밟았네 / 亂踏懸崖紫翠間
원숭이를 따라가니 중의 다리 튼튼하고 / 步趁飛猿僧脚健
대지팡이 짚고 가니 길손 마음 고달프네 / 力扶枯竹客心酸
환해라는 봉우리엔 신선이 이르고 / 峯名懽海仙蹤至
구주라는 산새는 세속 수레 돌아가라 하네 / 鳥號鉤輈俗駕還
조물주의 큰 솜씨에 무척 감사하나니 / 多謝化翁施鉅手
규각처럼 깎아내어 장관을 만들었네 / 鐫鑱圭角作奇觀
환해봉(懽海峯)으로 가는 길에 무릉(武陵)의 시에 차운하다.
석 잔 술을 마시자 흥이 일어 / 擬趁三杯興
만리의 바람을 타보려 하네 / 將乘萬里風
먹구름은 하늘이 내린 재앙이라 / 頑陰天作祟
짙은 안개 대낮에도 허공에 끼었네 / 昏霧晝漫空
구름이 형산처럼 어둑하다면 / 雲與衡山暗
그 누가 이부와 함께 하랴 / 人誰吏部同
내일 아침 정상에 올라서 / 明朝登最上
붉은 해가 동에서 뜨는 것 보리라 / 紅日望昇東
위의 시는 무릉의 시에 차운한 것이다
항아리엔 곡식 없고 빈 바랑만 걸렸는데 / 甁無粟粒挂空囊
가사와 염주만이 불상을 마주했네 / 荷裓懸珠對佛牀
메마른 나무는 쓸모가 없지만 / 槁木縱然無實用
은거함이 속세에서 얽매임보다 낫네 / 巢雲還勝絆塵韁
온 산에 비 내리자 먼 곳까지 깨끗하여 / 雨送千峯洗遠天
하늘 밖에서 가슴 펴고 속세 인연 씻었네 / 開襟空外盪塵緣
이제부터 거처가 기질 바꾼다는 말 믿겠거니 / 從今尤信居移氣
노나라의 산천이 눈앞에 아득하네 / 東魯山川渺眼前
청도의 호표가 지키는 관문에서 꿈이 깨어 / 夢斷淸都虎豹關
천성대로 구름 낀 산에서 늙어가려네 / 野情眞欲老雲山
백사에 동참함은 내 일이 아니지만 / 同參白社非吾事
뜻 있으면 금수의 물가로 찾아오라 / 有意來尋錦水干
위의 절구 3수는 퇴계의 시에 차운하여 섬 상인(暹上人)에게 준 것이다.
한줄기 찬 샘물이 구름 씻어내는데 / 涵氷泉脈漱雲根
가사 입은 여윈 중은 원숭이와 비슷 / 荷衲臞僧貌似猿
숲속에는 은자 없다 웃으며 말하지만 / 笑說林間無隱逸
소산의 계수나무 벌써 새싹 돋았네 / 小山叢桂已生孫
바위틈에 솟는 샘물 술동이에 가득하고 / 泉生巖竇滿汙樽
무성한 넝쿨풀은 석문을 가렸네 / 得意藤蘿掩石門
결하하러 고승이 석장 날려 떠나서 / 結夏高僧飛錫去
부질없이 탑 그림자 소나무 밑에 드리웠네 / 空留㙮影臥松根
위의 절구 2수는 명경사(明鏡寺)에서 근 상인에게 준 것이다.
며칠 동안 세상에서 담소하며 놀았는데 / 笑口人間幾日開
벼슬살이 얽매여 억지로 돌아감이 부끄럽네 / 郤慙羈宦强遲徊
그 누가 가을에 조롱 속의 학을 풀어 주랴 / 誰敎籠鶴乘秋放
고맙게도 원숭이들이 나의 회로 배웅하네 / 聊謝林猿待我回
바람이 동천에 불어 티끌 쓸어가기에 / 風灑洞天塵拂去
지팡이로 혜초 길을 찾자 달이 마중 나왔네 / 筇尋蕙路月迎來
병든 이 몸이 운천의 주인 되었으니 / 病夫已作雲泉主
맨발로 이끼 밟는 것도 꺼리지 않네 / 白足休嫌惹屐苔
석륜사(石崙寺)로 가는 길에 무릉(武陵)의 시에 차운하다.
그 누가 단혈산의 봉황을 / 誰將丹穴鳥
자하대 꼭대기에 가뒀는가 / 牢鎖紫霞顚
천 길 봉이 하늘을 찔러서 / 千仞凌霄志
긴 세월에 굳센 돌로 변했네 / 多年化石堅
느릅나무 오가는 메추라기에게 배척받고 / 搶楡飛斥鷃
가시나무에 깃들어 무성한 안개 속에 늙어가네 / 棲棘老荒煙
언제쯤 바람타고 날아올라 / 何日生風翮
선명한 오색 털로 춤을 출까 / 來儀五彩鮮
위는 봉두암(鳳頭巖)에서 무릉의 시를 차운한 것이다.
푸른 이내와 아지랑이 길손 옷을 물들이고 / 翠靄靑嵐染客裾
빠른 여울과 험한 산이 승방을 지키네 / 奔湍危峭護僧居
처마 사이 옛 글씨는 날 아는가 모르는가 / 楣間古墨知余否
손꼽으니 노닌 지 이십여 년 지났네 / 屈指曾遊廿載餘
석륜사(石崙寺) 시에 차운하다.
[주C-001]욱금(郁錦) : 황준량이 살았던, 경북 영주시 풍기읍 욱금리를 말한다. 지금도 그가 머물던 욱양정사(郁陽精舍)가 남아 있다.
[주D-001]납극(蠟屐) : 밀랍을 칠하여 광택이 나게 한 나막신. 동진(東晉) 때 조약(祖約)은 재물을 좋아하고, 완부(阮孚)는 신〔屐〕을 좋아하여 둘 다 누(累)가 되는 일이긴 하나 누가 좋고 나쁜 일인지 알 수 없었다. 어떤 이가 조약의 집에 가 보니 조약은 마침 돈을 세고 있다가 손님이 이르자 세던 돈을 농 뒤로 치우고 몸을 기울여 가리면서 매우 부자연스러운 표정이었고, 완부의 집에 가 보니 그는 마침 나막신에 밀랍을 칠하다가 스스로 탄식하기를 “내 일생에 이 신을 얼마나 더 신을는지 모르겠다.” 하며 기색이 자약하였으므로, 여기에서 비로소 승부가 판가름이 났다고 한 데서 온 말이다. 《晉書 卷49 阮孚列傳》
[주D-002]하가타암(下伽陀庵) : 소백산에 있던 암자이다. 소백산에는 상가타암(上伽陀庵), 중가타암(中伽陀庵)도 있었다.
[주D-003]남악(南岳)에서 …… 이어볼까 : 남악은 형산(衡山)을 가리킨다. 일찍이 주희(朱熹)가 친구인 남헌(南軒) 장식(張栻)과 함께 이 산을 유람하였다. 이때 지은 시가 《주자대전(朱子大全)》 권5에 실려 있다.
[주D-004]구주(鉤輈) : 자고새의 울음소리로, 중국 남방 방언의 의성어이다.
[주D-005]규각(圭角) : 규는 옛날 벼슬아치들의 신분을 나타내는 신표인데 규각은 네모진 아랫부분을 가리키는 말이다.
[주D-006]무릉(武陵) : 주세붕(周世鵬)의 호이다.
[주D-007]이부(吏部) : 이부는 이부시랑(吏部侍郞)을 지낸 한유(韓愈)를 가리킨다. 한유가 형악(衡嶽)에 올랐으나 구름이 짙게 끼고 비가 내려 유람을 할 수 없었는데, 정성껏 기도하자 날이 개었다고 한다. 이때 지은 시가 〈알형악묘수숙악사제문루(謁衡嶽廟遂宿嶽寺題門樓)〉이다. 2구는 한유가 처음 형악에 올랐을 때처럼 구름이 끼고 비가 내린다면 그와 함께 유람하지 않을 것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주D-008]거처가 기질 바꾼다 : 맹자가 제(齊)나라 왕자의 의젓한 풍채를 멀리서 바라보고는, “거하는 곳〔지위〕이 기상을 바꾸고 생활이 체질을 바꾼다.〔居移氣, 養移體.〕”라고 한 말이 《맹자》 〈진심 상(盡心上)〉에 보인다.
[주D-009]노나라 : 원문의 동로(東魯)는 중국 춘추 시대 노나라를 가리킨다. 공자는 노나라 동산에 올라 노나라를 작게 여긴 적이 있었다. 여기서는 공자가 주공(周公)의 봉토인 노나라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성인이 될 수 있었음을 말한 것으로 공자와 노나라에 대한 동경을 담은 표현이다.
[주D-010]청도(淸都)의 …… 관문 : 청도는 옥황상제가 산다는 천상의 궁전이다. 호표관(虎豹關)은 《초사(楚辭)》 〈초혼(招魂)〉에 “호랑이와 표범이 아홉 겹의 하늘 관문을 지키고 있으면서, 아래에서 올라오려고 하는 자들을 잡아 죽인다.〔虎豹九關, 啄害下人些.〕”라는 말이 나온다. 여기서는 선계(仙界)에 연연하지 않고 자연 속에 은거하여 여생을 마치고자함을 표현한 것이다.
[주D-011]백사(白社) : 백련사(白蓮社)의 약칭으로, 동진(東晉) 때 여산(廬山) 동림사(東林寺)의 고승(高僧) 혜원법사(慧遠法師)가 당시의 명사였던 도잠(陶潛), 육수정(陸修靜) 등을 초청하여 승속(僧俗)이 함께 염불 수행을 할 목적으로 백련사를 결성하고 서로 왕래하며 친밀하게 지냈다. 시의 내용으로 보아 섬 상인(暹上人)이 황준량에게 백사와 유사한 모임에 동참하기를 요청하고, 황준량이 이를 거절했던 것으로 보인다.
[주D-012]금수(錦水) : 여기서는 황준량의 고향인 영주시 풍기읍 욱금(郁錦)을 가리킨다.
[주D-013]섬 상인(暹上人) : 법명에 섬(暹) 자가 들어가는 스님이지만 자세한 것은 알 수 없다.
[주D-014]소산의 계수나무 : 한(漢)나라 회남소산(淮南小山), 곧 회남왕(淮南王) 유안(劉安)의 〈초은사(招隱士)〉에 “계수나무는 그윽한 산속에 총생하네.〔桂樹叢生兮山之幽〕”라는 구절이 나온다.
[주D-015]결하(結夏) : 하안거(夏安居)라고도 한다. 음력 4월 보름 다음 날부터 7월 보름까지 3개월 동안 한곳에 머물면서 좌선과 수행에 전념하는 것을 이른다.
[주D-016]명경사(明鏡寺) : 소백산 철암(哲庵) 위 석륜암(石崙庵) 아래에 있던 암자로, 지금은 없어졌다고 한다. 《梓鄕誌》
[주D-017]단혈산(丹穴山)의 봉황 : 원문의 단혈조(丹穴鳥)는 봉황을 가리킨다. 《산해경(山海經)》에 의하면, 단혈산에는 모양이 마치 닭과 같고 오채(五采)의 무늬가 선명한 새가 있어 봉황이라 일컫는다고 하였다.
[주D-018]자하대(紫霞臺) : 환희봉(懽喜峯) 서쪽에 있다. 돌로 된 봉우리가 우뚝하게 솟아 있는데, 위에 수십 명이 앉을 수 있으며, 산 경치를 이곳에서 다 바라볼 수 있다. 옛날 이름은 산대암(山臺菴)이었으나 퇴계가 지금의 이름으로 고쳤다. 《梓鄕誌》
[주D-019]느릅나무 …… 배척받고 : 대붕이 하늘 높이 떠올라 남명(南溟)을 향해 날아갈 적에, 매미와 쓰르라미가 이를 비웃으며, “우리는 기껏 날아 봤자 느릅나무와 방나무까지가 고작인데, 저 새가 어찌하여 구만 리를 날아 남쪽으로 간단 말인가?〔我決起而飛, 搶楡枋, 奚以之九萬里而南爲.〕”라고 한 고사에서 유래한 말이다. 《莊子 逍遙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