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노레일을 탄 후 우리는 추사 김정희 고택으로 향했다. 추사 김정희선생은 서예가이면서 금석학의 대가로 알려져 있다. 그는 충남 예산에서 태어났기에 그곳에서 자란 집이 있었다. 그런데 1973년 사진을 보니 그때는 허름해서 다 쓰러져가는 집이었는데 보수해서 이렇게 관람객에게 보여주는 모양이다. 옛날 양반집처럼 여러 형태의 집이 있어서 둘러보니 고풍스러웠다. 하긴 김정희고택을 들린 후 우리는 백송을 보러 갔다. 처음에 천연기념물 백송을 찾으러 다녔지만 찾지 못하여 먼저 고택을 들은 다음 기념관엘 갔다. 거기에는 김정희의 행적을 엿볼 수 있었다. 특히 북한산진흥왕순수비를 탁본한 사본을 볼 수 있었다. 많은 업적을 남긴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는 지금도 국보로 보존할 만큼 문학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김정희선생의 업적은 정말 대단한가보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더니 추사 김정희 선생이 바로 그런 인물로 평가되었기에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고택과 기념관을 찾게 될 것이다. 그런다음 우리는 물어서 백송을 기어히 찾았다. 백송은 표피가 하헀다. 정말 특이했다. 그런데 그 백송을 김정희선생이 청나라에서 다녀오면서 백송의 씨앗을 가지고 와서 심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오래되어서인지 다른 가지는 병들어서 베어버렸나보다. 그 씨앗으로 주변에 많이 퍼뜨려 백송공원도 만들었다. 백송공원은 백송이 군락을 이루고 있었던 것이다. 추사 김정희와 백송. 어쩌면 추사의 성품을 닮은 소나무가 백송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