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의 골짜기를 지나
온 누리에 추위를 떨치면서 기세가 등등한 동장군(冬將軍)에게 일방적으로 선전포고하듯이 봄을 선언하는 입춘(立春) 그다음 날(2월 5일) 평창지방 실행부회의가 봉평 무이리(武夷里)의 나지막한 산허리에 자리한 교회(산돌)에서 열렸다. 마치 봄의 반란을 제압하려는 듯이 동장군은 전군에 비상령을 발동하여 북극의 추위를 용병으로 불러들이고 설산에 보관 중이던 눈 폭탄을 터트리자 언제나 살벌한 추위의 격전지 강원도 산골은 다시 그놈의 세상이 되었다. 이른 저녁이라고 해도 검은 구름이 하늘을 가렸고 땅은 전방 분간이 불가능할 정도로 퍼붓는 흰 눈에 시야가 확보되지 못한 상태였다. 별거 아니겠거니 하는 안일한 생각으로 속속들이 실행부위원들은 산 중턱 그 교회로 모였다. 지방회를 앞두고 열린 회의이다 보니 예산안 등 다루어야 할 민감한 의제들이 많아서 회의가 길어졌다. 하늘에 떠있는 달빛이 유일한 조명인 산골의 밤은 어느새 향방을 알 수 없는 칠흑의 골짜기가 되었고 그 사이 그 누구도 거동을 허락할 수 없도록 쌓인 눈 더미는 회의 후 귀갓길에 오른 사람들을 공포의 쇠창살에 가두어 놓았다. 그래도 조심스럽게 내려온다면 별일이야 있을까 싶은 생각은 안일의 통로를 타고 마음에 움을 틀었다. 자동차 엔진에 시동 거는 소리가 요란하다. 저마다 작은 산길을 타고 하산을 시도한다. 그 험악한 눈길을 헤집고 내려오는 하산 길목은 자칫하면 사고의 위험이 처처에 도사리고 있는 위험천만한 상황이었다. 모두는 이 위험한 길을 인도하실 하나님을 의지하며 자동차 헤드를 산 아래로 돌렸다. 눈보라 치는 길은 자동차 불빛에 반사되어 겨우 분간할 수 있었고 영점 아래로 떨어진 산골 기온은 그 길마저 빙판으로 만들었으니 그 위를 지나는 사람은 누구든지 추락의 위험을 협박받는다. 게다가 길은 너무 좁았고 바로 옆은 약간의 고도가 있는 실개천이었으니 한 번의 실수로 황천길이 될 수 있었다. 행여 그런 사고라도 발생된다면 당사자의 피해는 물론이지만 그 뒤에 하산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은 발이 묶이고 기약 없이 산골에 갇혀있어야 할 상황이다. 어찌 되었든 그 누구라도 사고는 절대 금물이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하필 그날은 승합차를 가지고 간 터라 더욱 운전에 조심 플러스알파의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했다. 산골 구석에 처박아 놓은 듯이 주차된 차를 뺄 때부터 여러 차례 헛발질이 있었다. 몇 사람들이 밀어준 덕분에 간신히 빠져나와 조심스럽게 빙판길로 변해버린 좁은 길을 내려왔다. 천천히 내려오다가 커브길이 나왔다. 본능적으로 약간의 브레이크를 밟았다. 그런데 왼쪽으로 방향을 전환한 바퀴는 여전히 미끄럼을 타고 오른쪽 실개천으로 나가는 것이 아닌가? 이러다가 빙판길이 황천길이 되는 것은 아닐까? 그냥 실개천 낭간으로 밀려가는 차를 제동 할 장치는 없었다. 본능적으로 하나님을 불렀다. 어디쯤까지 미끄러지던 차는 갑자기 멈춰 서 주어 다행히 추락의 위험을 면할 수 있었다. 휴~~~. 안도의 깊은 한숨이 감사의 탄성과 함께 터져 나왔다. 놀란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조심스럽게 방향을 틀고 움직였다. 내 사정을 절대로 봐주지 않고 하염없이 쏟아지는 눈은 더욱 하산 길을 불안과 초조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어느 지점에 왔을까? 다시 커브길이 나왔다. 역시 방향을 틀었지만 이미 차는 주인의 마음을 떠나 눈 덮인 길 사정에 성실하게 순응하고 있었다. 이렇게 하다가 전복 사고가 발생하나 싶었다. 차창 밖에서는 위험을 직감하고 조심하라는 소리가 들렸지만 이미 차가 빙판길에 미끄러져 실개천으로 처박히는 순간 또 하나님을 불렀다. 절박한 그 부르짖음에 즉시 응답처럼 신기하게 차는 다시 멈췄다. 무엇인가 바퀴에 걸리는 느낌이 전달되었다. 바퀴가 빙판길에 돌출된 어떤 장애물에 걸린 게 분명했다. 하나님은 브레이크 장치를 그 빙판길에 장착시켜 놓으신 것 같았다. 다시 차를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위험한 실개천 쪽으로 가지 않으려고 왼쪽으로 치우쳐 운전하다가 이번엔 밭에 빠지고 말았다. 실개천으로의 추락보다야 이게 훨씬 나은 상황이었기에 그것도 감사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눈 늪에 빠진 신세가 되어 그 밭을 빠져나와야 하는 차는 한동안 제자리에서 헛돌고 있었다. 액셀(accelerator)을 계속 밟는 것만이 유일한 탈출 방법이었기에 조심하면서도 강하게 액셀과 씨름했더니 마침내 차는 주인의 뜻대로 그 지뢰 눈밭을 빠져나오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나자 희미하게 평지 길이 보였다. 이제 됐다는 안도감이 온몸에 퍼지고 핸들 잡은 손목에 힘이 풀렸다. 10여 분 동안의 하산 길이었지만 사망이 급습한 자리이다 보니 무척 길어 보였다. 전능자의 도움이 없이는 그 누구라도 통과할 수 없는 음침한 골짜기였다. 언제나 함께하실 것을 약속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그렇게 힘이 될 줄은 평범한 일상에서는 체감할 수 없었던 순간이었다. 물과 불 가운데 지나도 함께하겠다는 하나님은 그것만이 아니라 눈보라가 휘날리는 산길을 지나도 마찬가지였음을 깨닫는다.
우리의 인생길은 눈보라보다 더 한 것도 불어오는 삶의 현장이다. 죽음의 화살은 격한 소리를 내고 귓가를 스칠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오장육부(五臟六腑)가 쪼그라들고 사지백체(四肢百體)를 오그라들게 하는 사망의 계곡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런 길을 당당하게 갈 수 있는 간 큰 행동은 언제나 내 길을 안위하시는 내 목자의 부드러운 손길 때문이다. 나의 목자라고 하나님을 부르는 진정한 양(羊)만이 누리는 하늘의 은혜가 아닐까 싶다. 사망의 골짜기에서의 짧은 사투는 진짜 양으로 살고 있는지를 돌아보는 기회였다. “내가 사망의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시편 23:4).
첫댓글 하나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