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Corinthians 13:4~10 Charity suffereth long, and is kind; charity envieth not; charity vaunteth not itself, is not puffed up, Doth not behave itself unseemly, seeketh not her own, is not easily provoked, thinketh no evil; Rejoiceth not in iniquity, but rejoiceth in the truth; Beareth all things, believeth all things, hopeth all things, endureth all things. Charity never faileth: but whether there be prophecies, they shall fail; whether there be tongues, they shall cease; whether there be knowledge, it shall vanish away. For we know in part, and we prophesy in part. But when that which is perfect is come, then that which is in part shall be done away.사랑은 오래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견디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딘다. 언젠가 예언도 지식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겠지만 사랑은 영원하다. 왜냐하면 우리가 부분적으로 알고 예언하지만 완전한 것이 올때는 부분적인 것은 사라지기 때문이다. 모로코에 온지 5년째 된날 주님이 주신 말씀은 사랑에 관한 말씀이다. 사랑은 무엇인가?를 묵상해 본다. 먼저 사랑은 love 가 아닌 Charity다. 어감이 다르다. 왠지 Love는 남녀간의 사랑이 연상되고 Charity는 자선, 곧 나눠주는 것이 연상된다. 뭔가를 주지 않고 사랑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시간을 주고, 돈을 주고, 재능을 주고, 지식을 주고, 노력을 주고 무언가를 주는 것이 사랑이다. 그러나 단순히 주는 것이 사랑일까? 아니다. 구제하고 심지어 자기 몸을 불사르게 내어줄 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다고 바울은 말한다. 그렇다면 사랑은 주는 것 그 이상의 무엇인가를 의미한다. 그것이 무엇일까? 둘째, 사랑은 위에서 설명한 그대로 오래참음, 온유, 시기하지 않음, 자랑하지 않음, 교만하지 않음, 무례히 행치않음,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않음, 성내지 않음,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음, 불의에 분노하고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고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는 모든 것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그것이 무엇일까? 우리는 지나간 과거의 지식을 부분적으로 알고 앞에 되어질 미래의 일을 부분적으로 예언한다. 그러나 완전한 것이 오면 그 부분적으로 하던 것들이 사라지게 된다. 우리는 동 거울로 보는 것처럼 희미하게 보지만 실물을 보고 듣고 만질 때에는 그 거울이 필요 없어진다. 어리석은 사람은 부분적인 것을 가지고 자신이 모든 것을 아는 것처럼 타인을 가르치려는 우를 범한다. 저 사람은 성낸다고로 거룩하지 않다고 당신을 그렇게 살지 말라고 하나 실상은 그 비난하는 사람이 불의에 대해 분노하는 것인데 이를 모르고 자기가 생각하는 사랑에는 사랑은 무례히 행치 않는 것만 가지고 있는 것이다. 무엇을 말하는가? 사랑은 아낌 없이 물과 피를 다 쏟아 생명까지 주신 예수 그리스도시다. 그분이 오시면 우리가 부분적으로 알고 있고 예언하던 모든 것이 폐하고 그것을 지탱하게 하는 방언도 그치게 된다. 주님은 존재에게 부분적인 사랑이 아니라 온전한 사랑을 하시길 원하신다. 주님은 사랑이시다. 주님을 본받아 온전한 사랑으로 아낌없이 주라 말씀하신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