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의 비유 경(M22) 2 Alagaddūpama Sutta
- 대림스님옮김 『맛지마니까야』 제1권 533-568쪽
여섯 가지 견해의 토대
15. "비구들이여, 여섯 가지 견해의 토대(diṭṭhi-tthāna) (*1)가 있다. 무엇이 그 여섯 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배우지 못한 범부는 성자들을 친견하지 못하고 성스러운 법에 능숙하지 못하고
성스러운 법에 인도되지 못하고, 바른 사람들을 친견하지 못하고 바른 사람들의 법에 능숙하지 못하고
바른 사람들의 법에 인도되지 못하여
① 물질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여긴다.(*2)
② 느낌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여긴다.
③ 인식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여긴다.
④ 심리현상들[行]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여긴다.
⑤ 보고, 듣고, 생각하고, 알고, 얻고, 탐구하고, 마음으로 고찰한 것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여긴다.
⑥ '이것이 세계요, 이것이 자아다.
나는 죽은 뒤에도 항상할 것이고 견고하고 영원하고 변하지 아니하여 영원토록 여여하게 머물 것이다.'라는
견해가 있어 그것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여긴다."
16. "비구들이여,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성자들을 친견하고 성스러운 법에 능숙하고
성스러운 법에 인도되고, 바른 사람들을 친견하고 바른 사람들의 법에 능숙하고
바른 사람들의 법에 인도되어서
①물질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여긴다. (*3)
②느낌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여긴다.
③인식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여긴다.
④심리현상들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여긴다.
⑤보고, 듣고, 생각하고, 알고, 얻고, 탐구하고, 마음으로 고찰한 것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여긴다.
⑥'이것이 세계요, 이것이 자아다. 나는 죽은 뒤에도 항상할 것이고 견고하고 영원하고 변하지 아니하며
영원토록 여여하게 머물 것이다.'라는 견해가 있어 그것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여긴다."
17. "그와 같이 관찰하기 때문에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 번민하지 않는다." (*4)
(*1) “‘견해의 토대(diṭṭhi-tthāna)라고 하셨다.
여기서 견해(diṭṭhi)도 견해의 토대이고, 견해의 대상(diṭṭhiyā ārammaṇa)도 견해의 토대이고,
견해의 조건(diṭṭhiyā paccaya)도 견해의 토대이다.”(MA.ⅱ.110)
(*2) “물질에 대해 ‘이것은 내 것이다(etaṃ mama).’라는 것은 갈애에 의한 움켜쥠(taṇhā-ggāha)이고,
‘이것은 나다(eso’hamasmi).’라는 것은 자만에 의한 움켜쥠(māna-ggāha)이고,
‘이것은 나의 자아다(eso me atta).’라는 것은 견해에 의한 움켜쥠(diṭṭhi-ggāha)이다.
이와 같이 물질의 대상들(rūp-ārammaṇa)에 대해 갈애와 자만과 견해를 설하셨다.
느낌 등에 대해서도 같은 방법이 적용된다.”(MA.ⅱ.110)
물론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는 이러한 관념은
허황된 생각[空想, maññanā]과 사량분별(papañca)의 뒤에 엄청나게 똬리를 틀고 있는
윤회의 동력임이 분명하다.
(*3) “밝은 쪽(sukka-pakkha)에 물질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n’etaṃ mama)’라는 것은
물질에 대해 갈애와 자만과 견해에 의한 움켜쥠을 버린 것(paṭikkhittā)이다.
‘여긴다(samanupassati)’는 것은 본다, 관찰한다는 뜻으로 갈애에 기인한 것, 자만에 기인한 것,
사견에 기인 한 것, 지혜(ñāṇa)에 기인 한 것의 네 가지가 있다.
이 네 가지 중에 앞의 세 가지는 어두운 쪽(kaṇha-pakkha)에 있고,
지혜에 기인한 것은 밝은 쪽에 있다고 알아야 한다.”(MA.ⅱ.111)
(*4)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 번민하지 않는다(asati na paritassati).’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 두려움에 의한 번민(bhaya-paritassanā)이나
혹은 갈애에 의한 번민으로 번민하지 않는 다는 말이다.”(MA.ⅱ.111)
번민
18. 이와 같이 설하셨을 때 어떤 비구가 세존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밖으로(bahiddhā)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5) 번민하는 경우도 있습니까?"
"그러하다, 비구여."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비구여, 여기 어떤 자에게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오, 내게 그것이 있었는데, 더 이상 내게 없다. 내가 그것을 가지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나는 얻지 못하는구나!'라고. 그는 근심하고 상심하고 슬퍼하고 가슴을 치고 울부짖고 광란한다.
비구여, 이와 같이 밖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 번민한다."
19. "세존이시여, 밖으로(bahiddhā)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 번민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까?"
"그러하다, 비구여."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비구여, 여기 어떤 자에게는 이런 생각이 들지 않을 것이다.
'오, 내게 그것이 있었는데, 더 이상 내게 없다. 내가 그것을 가지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나는 얻지 못하는구나!'라고. 그는 근심하지 않고 상심하지 않고 슬퍼하지 않고
가슴을 치지 않고 울부짖지 않고 광란하지 않는다.
비구여, 이와 같이 밖으로(bahiddhā)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 안달복달하지 않는다."
20. "세존이시여, 안으로(ajjhattaṃ)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 번민하는 경우가 있습니까?"
"그러하다, 비구여."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비구여, 여기 어떤 자에게 '이것이 세계요, 이것이 자아다. 나는 죽은 뒤에도 항상할 것이고
견고하고 영원하고 변하지 아니하며 영원토록 여여하게 머물 것이다.'라는 견해가 있다.
그는 여래나 여래의 제자가 모든 견해들의 토대, 결심, 편견, 고집, 잠재성향들을 근절시키고,
모든 형성된 것들[行]을 가라앉히고, 모든 재생의 근거를 놓아버리고[放棄], 갈애를 멸진하고,
탐욕을 빛바래고[離慾], 소멸하고[滅], 열반을 증득하기 위해 법을 설하는 것을 듣는다.
그러면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든다. '나는 단멸해버리겠구나. 참으로 나는 파멸해버리겠구나.
참으로 나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겠구나.'라고. 그는 근심하고 상심하고 슬퍼하고
가슴을 치고 울부짖고 광란한다.
비구여, 이와 같이 안으로(ajjhattaṃ)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 번민한다."
21. "세존이시여, 안으로(ajjhattaṃ)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 번민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까?"
"그러하다, 비구여."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비구여, 여기 어떤 자에게 '이것이 세계요, 이것이 자아다. 나는 죽은 뒤에도 항상할 것이고
견고하고 영원하고 변하지 아니하며 영원토록 여여하게 머물 것이다.'라는 견해가 없다.
그는 여래나 여래의 제자가 모든 견해의 토대, 결심, 편견, 고집, 잠재성향들을 근절시키고,
모든 형성된 것들을 가라앉히고,(*6) 모든 재생의 근거를 놓아 버리고, 갈애를 멸진하고,
탐욕을 빛바래고, 소멸인 열반을 위해 법을 설하는 것을 듣는다.
그러나 그에게 '나는 단멸해버리겠구나. 참으로 나는 파멸해버리겠구나.
참으로 나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는 근심하지 않고 상심하지 않고 슬퍼하지 않고 가슴을 치지 않고 울부짖지 않고 광란하지 않는다.
비구여, 이와 같이 안으로(ajjhattaṃ)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 번민하지 않는다.“
(*5) 주석서는 ‘밖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bahiddhā asati)’이란
밖의 필수품(parikkhāra)이 왕이나 도둑이나 물이나 불에 의해
파괴되는 것(vināsa)을 뜻한다고 설명하고 있다.(MA.ⅱ.111)
(*6) “‘모든 형성된 것들[有爲]을 가라앉히고(sabba-saṅkhāra-samathāya)’라고 하셨다.
열반을 얻으면 모든 형성된 것들[有爲]의 흔들림(iñjitāni), 모든 형성된 것들의 동요(calanāni),
모든 형성된 것들의 움직임(vipphanditāni)이 가라앉고(sammanti) 고요해진다(vūpasammanti).
그러므로 열반은 모든 형성된 것들[有爲]이 가라앉은 것 [즉 무위(無爲)]라 한다.
그 열반을 얻으면 무더기라는 재생의 근거(khandh-ūpadhi),
오염원이라는 재생의 근거(kiles-ūpadhi),
업 형성력이라는 재생의 근거(abhisaṅkhār-ūpadhi),
다섯 가지 얽어매는 감각적 욕망이라는 재생의 근거(pañca-kāmaguṇ-ūpadhi) 등
이러한 재생의 근거들이 내버려지고, 갈애가 소멸되고, 탐욕이 빛바래고, 소멸한다.
그래서 ‘모든 형성된 것들을 가라앉히고, 모든 재생의 근거를 놓아버리고,
갈애를 멸진하고, 탐욕을 빛바래고, 소멸함
(sabb-ūpadhi-paṭinissagga taṇhā-kkhayo virāgo nirodho).’이라고 하셨다.”(MA.ⅱ.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