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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사의 기도 / 왕하 2:1-14
여러분, 반갑다. 홈커밍데이에 온 형제 자매님들게 먼저 인사를 드린다. 저는 전북대 75년도 입학생이다. 저희때는 학번이란 말이 없어서 이렇게 표현했다. 옛날에 친정에 오면 어머니들이 한보따리를 싸주던 풍습이 있었다. 오늘 온 여러분들도 민족복음화와 세계선교의 꿈을 한보따리씩 가슴에 가득 담고 가길 바란다. 김정은간사에게서 전화를 받았는데 설교는 30분만 하라고 하더라고요. 저는 말이 좀 어눌해서 30분이나 할 수 있을까 고민이네요. 또 말하다보면 사투리가 튀어나오기도 한다. 그냥 웃어넘기면 좋겠다. 또 하나는 열매에 대한 설교면 좋겠다고 하더라고요. 여러분, 어떤 열매면 좋겠나? 오늘 이 자리에 온 여러분들 모두가 이야기 열매를 한보따리씩 풀어놓고 가고, 갈 때 성령의 열매를 한아름 가슴에 담아가지고 가기 바란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위대한 선지자 엘리야 시대가 마감되는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아무리 위대한 엘리야일지라도 물러나야 할 때가 왔다. 인간은 영원하지 않다. 영원하다면 자녀를 낳을 필요도 없고, 그렇게 정성스럽게 키울 필요도 없다. 우리가 그토록 정성을 다하여 자녀를 양육하는 이유가 무엇이겠나? 인간은 영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언젠가 끝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역사는 멈추지 않는다. 영원하다. 그 영원하신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축복의 미래를 계속해서 이어가야 한다. 그러므로 그 뒤를 이을 사람이 훈련되어지고, 준비되어지고, 길러져야 한다. 하나님의 영광을 계승해야 한다. 하나님의 축복을 이어가야 한다. 기독교 단체도 마찬가지이다. 사람을 키워야 한다. 말씀과 기도의 훈련으로 그리스도의 제자들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계속 이어질 미래가 희망이 있다. 제대로 된 인격과 신앙을 갖춘 사람을 만들어야 기독교의 미래가 열리기 시작한다. 성서의 역사를 살펴보면 사람을 길러낸 시대와 그렇지 못한 시대가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 모세는 여호수아를 길러냄으로 출애굽과 가나안 정복의 기치를 온전하게 이룰 수 있었다. 그러나 여호수아 이후에 하나님의 영광을 계승할 지도자가 준비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은 약 400년간 사사시대의 암흑기를 보내야만 했다.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왕이요 지도자였덤 다윗은 그의 아들 솔로몬을 준비하여 성전의 영광을 이스라엘에게 이어주었다. 그러나 솔로몬은 다음 세대를 이어갈 후계자를 준비하지 못하여 나라가 둘로 나누어지는 불행을 자초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어느 시대나 가장 중요한 일은 바로 사람을 길러내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순장은 순원을 잘 길러내야 한다. 엘리사는 본래 농사를 짓던 시골 청년이었다. 어느 날 소 열두겨리로 쟁기질을 하고 있었는데 엘리야가 지나가다가 그에게 겉옷을 벗어 던졌다. 이것은 당시에 제자를 부르는 행동이었다. 그는 즉시 쟁기질하던 소 두 마리를 잡고 쟁기질하던 기구를 불살라 하나님께 제단을 쌓고 엘리야의 뒤를 따라 그의 제자가 되었다. 그리고 그는 제자가 되자마자 엘리야가 승천할 때까지 끈질기게 뒤를 따랐다. 엘리야가 아무리 따라오지 말라 하여도 그는 막무가내였다. 하는 수 없이 ‘엘리야는 하나님이 나를 취하기 전에는 내가 너에게 어떻게 해주기를 청하라’라고 했다. 그러자 엘리사는 ‘당신의 영감이 내게 갑절이나 있기를 원하나이다’라고 했다. 그 기도대로 엘리사는 엘리야의 갑절의 영감을 받았다. 이 시간에는 엘리사가 구한 기도에 대해 말씀드리겠다.
1. 갑절을 소원했다.
엘리사의 스승이었던 엘리야는 영감의 사람이다. 하늘문을 닫기도 하고 열기도 하는 능력의 소유자이다. 약 5:17-18절에 보면 야고보서가 증거하고 있다.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아니하고, 다시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맺었느니라.’ 그가 기도할 때 하늘에서 불을 내리는 응답이 나타남으로 우상 선지자 850명과 겨루어 이겼던 선지자이다. 그리고 죽음을 맛보지 않고 하늘로 승천한 영감있는 사람이다. 엘리야는 자기를 뒤쫓고 있는 앨리사의 열망을 읽었다. 요단강을 가르고 건넌 후 엘리야는 엘리사에게 물었다. ‘네 소원이 무엇이냐? 내게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 엘리사는 기다렸다는듯이 대답한다. 준비된 대답이었다. ‘선생님, 당신의 영감이 갑절이나 제게 있기를 원합니다.’ 갑절이라는 단어는 유산분배와 관련이 있다. 이스라엘 가정에서 아버지의 유산을 자녀들에게 분배할 때 장자에게는 다른 자녀들이 받는 유산의 두배가 할당되었다. 그러므로 갑절의 영감을 달라는 요청은 영적으로 장자가 되는 축복을 달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선생님의 영성을 그대로 닮고 싶다는 의미이다.(수제자)
여기서 갑절이란 숫자적으로 두배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만일 그렇다면 엘리사는 갑절의 영감을 받지 못했다. 왜냐면 엘리사의 생애를 보면 자기 스승인 엘리야보다 모든 면에서 갑절의 삶을 살았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엘리사가 산 생의 길이나 나타낸 기적의 숫자의 양을 볼 때 엘리야보다 두배라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갑절의 영감이란 말은 숫자적으로 두배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엘리야의 합법적인 계승자로서의 영감을 말한다. 당시 엘리야에게는 양육하고 있는 많은 선지 생도들이 있었다. 엘리사가 갑절의 영감을 달라고 말한 것은 많은 선지 생도들 중에서 자신을 합법적인 후계자가 되게 해달라는 요청이었다. 그것을 보변 엘리사는 대단한 배짱을 가진 사람이다. 믿음의 배짱말이다. 믿음의 환상이 있었다. 오늘날 신앙인들에게 믿음의 배짱과 환상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믿음과 배짱을 뒷받침할만한 열심을 엘리야는 가졌다. 시 81:10절하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영적인 그릇을 키워야 한다. 또한 엘리사가 엘리야의 갑절의 영감을 얻겠다고 덤벼드는 것은 흔히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엘리야 선생님은 100점짜리였으나 나는 200점짜리가 되어야겠다는 교만한 표현이 아니다. 만일 그런식으로 교만했더라면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으셨다. 이 말씀은 다른 분들은 어떻게 해석하는지 모르지만, 저는 엘리야가 이스라엘을 이끌어 가는데 하나님께서 주신 100의 능력으로 일했다면, 엘리사 자신은 엘리야와 같은 일을 하려면 하나님께서 200의 능력을 주시지 않으면 할 수 없다는 겸손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엘리야가 하나라면 자신은 그 반밖에 안되는 것으로 부족한 사람임을 분명히 깨달았기에 스승의 갑절의 능력을 구하고 있다. 경건의 훈련이 된 사람이다. 이것이 곧 그리스도의 군사들인 우리 신앙인들이 가져야 할 훈련되어진 모습이다. 또한 갑절의 능력을 달라고 한 것은 ‘내게는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일이 가장 중요합니다’라는 고백이다. 엘리야가 수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목숨을 아끼지 아니하고 하나님께서 맡겨준 사명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며 수행해 왔다. 이제 주님의 제자인 나도 그렇게 하기를 원한다. 그러므로 냐게 필요한 것은 부귀도 명에도 세상 재물도 아닌 내가 받은 성령의 능력이다.
지금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가장 귀하게 여기고 있나? 목숨을 내어놓을만큼 주께서 맡겨주신 사명에 충성을 다할 자신이 있나? 성령의 능력을 구하라. 갑절의 능력을 받아도 남들만큼 할 수 없는데, 관심이 세상적인 쾌락과 부귀와 명예와 재물에 있고, 그것을 구하기 위해 온 힘을 다 쏟아버리면 어떻게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겠나? 행 1:8절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내 힘으로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하나? 성령께서 능력주실 때에 가능하다. 영국이 낳은 유명한 산과의사 제임스 영 심프슨 경은 1947년 11월 클로르포름이라는 마취제를 발견하여 세상을 놀라게 했다. 몇 년 후 심프신이 모교인 에딘버러대학에서 강연을 하게 되었다. 이때 한 학생으로부터 ‘박사님의 생애에 있어서 가장 위대한 발견은 무엇이었습니까?’라는 질문을 받았다. 그런데 클로르포름이라는 대답일 것이라는 학생들의 예상을 깨고 ‘내 생애에 있어서 가장 귀중하고 위대한 발견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나를 구원하신 구주이시기 때문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우리의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열망하고 구해야 할 기도의 제목, 애타게 부르짖고 갈구해야 할 가장 큰 제목이 어떤 것인가를 밝히 알아야 한다. 우리의 생애에 있어서 가장 귀중하고 위대한 발견 역시 예수 그리스도라고 담대하게 고백해야 한다. 그러면 우리의 간절한 기도는 명예도, 돈도, 성공도, 행복도 아닌 갑절의 영감을 구해야 한다.
2. 영감을 원했다.(영적능력)
어느날 세베대의 아내 곧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가 주님께 와서 절했다. 주님께서는 여인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라고 물으셨다. 그러자 여인은 자신의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달라고 청하였다. 그때 주님은 마 20:22절에 보면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라고 하셨다.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한다.’ 이 말은 너희가 구할 것을 구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무엇을 원하느냐고 물으셨지만 주님은 그들이 무엇에 관심있느냐를 알고 싶으셨다. 그들은 주님이 원하시는 것을 구하지 않았다. 구하는 것도 아버지의 뜻대로 구하여야 한다. 그렇다면 성도들이 이 세상에 살면서 하나님 아버지께 우선적으로 구하여야 할 것이 무엇인가?
지금 이 나라, 이 사회의 향방 잃은 암울한 삶을 보여주는 우스개 이야기이다. 왕복기차표를 사서 기차에 오른 한 시골여인이 아무나 붙잡고 물었다. ‘이 중 어느것이 되돌아오는 표인가요?’ 승객 한 사람이 되돌아오는 표를 가르쳐주자 그녀는 대뜸 그것을 찢어서 창밖으로 단져버렸다. ‘아니 어째서 그걸 버리십니끼?’ 하고 승객이 당혹스러워 하며 물었다. ‘난 돌아오지 않을 거거든요.’ ‘그렇다면 왜 왕복표를 사셨습니까?’ 그녀가 대답한다. ‘그게 더 싸다고들 해서요.’ 요즘 사는 것이 이렇게 제 정신들이 아니다. 이럴 때 제 정신을 올바로 가진 사람이 있다면 그는 그리스도인이어야 한다. 그리고 혼란에 빠진 저 세상 사람들에게 참 소망을 주려면 성도가 지금보다는 더 큰 은혜, 곧 성령의 갑절의 영감을 받아야 한다. 여러분,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라고 말씀하시고 운명하시는 그 암흑의 와중에서도 정신차려 그분을 보고 ‘의인이요, 하나님의 아들’로 알아본 사람이 누구인줄 아나? 로마의 군인 백부장이었다. 우연이겠나? 아니다. 그는 십자가에 가장 가까이에 있었기 때문이다. 모든 제자들이 다 도망가거나, 멀찍이 서서 쳐다볼 때에도 그만은 십자가 바로 아래에 있었다. 이사야의 표현으로 아무도 사람이 눈으로는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메시야인줄 알아볼 수 없을만큼 흠모할 만한 모습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분을 십자가 밑에서 바라보며 하나님의 아들로, 메시야로 알어보는 사람을 성서는 그리스도인이라고 칭한다.
여러분, 그리스도인인가? 그렇다면 본문에서 엘리사가 구한 것처럼 하나님의 영감을 구해야 한다. 영감은 성령의 감동 곧 성령의 충만으로 주어진다. 성령의 감동을 받을 수 있는 신앙생활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구하여야 할 것은 성령의 충만이고 영적인 것을 먼저 구해야 한다. 영감이란 성령의 감동을 의미한다. 이 시대에 성령의 감동을 받는 믿음이 필요하다. 목회자도 성령의 감동있는 목회를 해야 한다. 시업가도 성령의 감동을 받고 영감있는 사업을 해야 한다. 교사도 성령의 감동으로 학생들을 가르쳐야 한다. 학생들도 성령의 감동을 받고 학업에 열중해야 한다. 세베대의 아들들은 먼저 영혼 잘되기를 구한 것이 아니라 육신적인 출세만 생각하여 구하였다. 그랬기에 주님은 너희가 구할 것을 알지 못한다고 하셨다.
엘리사가 엘리야의 뒤를 끝까지 좇은 데는 이유가 있었다. 선생님이 떠나기 전에 선생님으로부터 전수받고 싶은 것이 있었다. 그것은 선생님의 영감이었다. 엘리사는 자신의 모습으로는 선지자의 막중한 사명을 감당할 수 없음을 잘 알았다. 엘리사에게 절실하게 필요했던 것은 엘리야 선생님이 가지고 있었던 영적 능력이었다. 그 영적 능력은 요단강을 가르는 능력이었다. 홀로 아합왕과 왕후 이세벨 그리고 우상을 섬기던 어용 종교인들과 대항하여 싸웠던 능력이었다. 하나님과 막힘없이 교통했던 깊은 영성이었다. 바로 그와 같은 능력이 엘리사에게 절실했다. 그래서 선생님이 떠나시기 전에 그 능력을 전수받기 위해 필사적으로 엘리야 선생님을 뒤쫓았다. 엘리사는 외쳤다. ‘선생님! 떠나시기 전에 제게 당신의 영감을 물려주고 가옵소서. 이 시대가 얼마나 영적으로 암울합니까? 하나님을 대항하는 무리들이 난무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문제는 제게 있습니다. 지금 제 모습 이대로는 선지자의 직분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간구하오니 제게 당신의 영성과 능력을 주옵소서.’ 엘리야를 향한 엘리사의 마지막 소원은 분명했다. ‘당신을 꼭 닮은 능렧있는 하나님의 일꾼이 되고 싶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성령충만)에 사로잡힌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래야 이 시대를 위해 일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야 당신의 백성을 살리고 영적으로 어두운 이 땅을 변화시킬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 담대한 청원을 들은 엘리야는 심정이 후련해 졌다. 하나님께서 지금 열어 젖히시는 새로운 시대를 보았다. 이제 자신은 사라져야 할 때가 되었음을 알았다. 자기보다 더 나은 하나님의 일꾼이 준비되었기 때문이다. 이 한사람 엘리사에게 모든일을 맡기고 자신은 가벼운 마음으로 하나님 존전으로 갈 준비가 되었다.
지금 여러분의 열망은 무엇인가? 엘리사처럼 거침없이 청원할 소원이 있는가? 지금 이 시간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한가지 소원을 말하라고 하신다. 그 소원에 응답하시겠다고 하신다. 여러분의 소원이 무엇인가? 여기 엘리사처럼 거침없이 내놓을 거룩한 소원을 가지고 있는가? ‘하나님, 당신의 능력있는 일꾼이 되고 싶습니다. 하오니 당신의 영감을 주옵소서.’ 엘리야의 생도들이 많았다. 그들은 엘리야 선생님의 사라짐을 앞에 두고 우왕좌왕했다. 영적인 감각이 없었다. 그 속에는 거룩한 열망이 없었다. 시대적 사명감이 없었다. 그때에 무엇을 간구해야 할지 몰랐다. 그러나 엘리사는 달랐다. 엘리사는 그때가 가장 중요한 때임을 알았다. 그래서 선생님의 뒤를 좇았다. 길갈에서 벧엘로, 여리고로, 그리고 요단강 건너까지 엘리야를 좇았다. 그의 소원은 분명했다. 강렬했다. 시대적 소명에 사로잡혔기 때문이다.오늘도 주님은 이런 사람을 찾고 계신다. 다음으로 그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능력을 구해야 한다. ‘주님, 오늘 이 시대를 위해 당신의 일꾼들을 세워 주옵소서. 저도 그 중의 한사람이 되겠습니다. 저를 써 주옵소서. 하오나 능력이 없사오니 제게 깊은 영성을 주옵소서. 당신의 영으로, 당신의 능력으로 충만하게 하옵소서.’ 엘리사는 농사짓는 눙사꾼이었는데 왜 세상적이고 육신적인 것을 구할 것이 없었겠나? 그러나 그는 이제 선지자로 부름을 받았기에 성령에 붙들리지 않으면 안되는줄 알았기에 성령의 감동 곧 영감을 구하였다. 이제 여러분의 삶에도 성령의 감동이 있는 삶이 되기를 바란다. 끊임없이 하나님의 영감으로 충만하게 채워달라고 기도하라. 성령의 영감이 있기를 구하는 신앙인이 되기를 바란다.
3. 어려운 것을 구했다.(10)
갑절의 영감을 구할 때 엘이야는 어렵다는 반응을 보인다. 왕하 2:10절에 보면 ‘네가 여러운 일을 구하는도다’라고 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어렵다고 했지 안된다고 하지 않았다. 부모가 재산을 자식에게 물려준다는 것은 쉬울 수 있다. 스승이 제자에게 지식이나 학문을 물려주기는 쉬울 수 있다. 그러나 영감을 물려준다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어렵다는 것은 두가지 의미가 있다. 먼저 엘리야의 힘으로는 안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의식을 통해서 후계로 세울 수는 있을지 몰라도 선지자로서의 영감은 엘리야가 주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주셔야 한다. 그러기에 어렵다고 하였다. 다음은 본인의 노력도 필요한 것이기에 어렵다고 했다. 10절하에 보면 ‘나를 네게서 데려가시는 것을 네가 보면 그 일이 네게 이루어지려니와, 그렇지 아니하면 이루어지지 아니하리라.’라고 하였는데 이것이 무슨 의미인가? 갑절의 영감을 얻기 위해서는 원하는 사람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말씀이다. 곧 가만히 앉아서 주시려면 주고 말려면 말라는 식으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그렇다. 성령의 충만은 힘쓰고 애쓰는 자에게 임한다. 구원의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택함받은 자가 말씀을 들을 때 성령의 은사로 마음과 영혼이 열려서 아무 공로 없어도 받게 된다. 그러나 갑절의 영감, 은사와 성령의 충만은 힘쓰고 애쓰고 노력할 때 주어진다.
엘리사는 어러운 것을 구했지만 그는 그것을 받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했다. 엘리사는 엘리야가 말한대로 하나님이 엘리야를 취하시는 것을 보기 위해 그의 곁을 바짝 좇았다. 엘리야가 그를 자신에게서 떨어지게 하려고 했지만 그는 끝까지 따랐다. 왕하 2:2절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와께서 나를 벧엘로 보내시느니라 하니, 엘리사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과 당신의 영혼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하는지라. 이에 두 사람이 벧엘로 내려가니’ 벧엘로 갔을 때에 선지자의 생도들이 말했다. ‘아무리 따라다녀도 하나님이 선생님을 데려가시면 끝날텐데 무엇 때문에 결사적으로 따라다니느냐?’라고 말했다. 그래도 자기 동료들에게 ‘잠잠하라’ 하면서 스승을 따라다녔다. 이같은 반복된 상황이 세 번씩 벌어질 때까지 그는 엘리야를 따라다녔다. 우리가 영력을 얻고 영혼의 복을 받으려면 앞서간 선지자들의 뒤를 따라야 한다. 예수님의 기도와 예수님의 생애를 본받아야 한다.(믿음의 선배)
여러분, 엘리사처럼 영감을 구하자. 그리고 갑절의 영감을 구하자. 어려운 것이라도 구하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구하면 하나님이 여러분들에게 허락하신다. 이쯤되면 우리가 왜 어째서 갑절의 영감을 구하야하는 이유를 깨닫게 된다. 우리가 구할 갑절의 영감이 있다. 지금의 수준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갑절이 된다면 어떻게 되겠나? 내가 지금보다 갑절의 영감을 받아 갑절이 된다면 어떻게 되겠으며 어떤 일이 일어나겠나?
나의 믿음이 갑절이 된다면, 나의 소망이 갑절이 된다면,
나의 사랑이 갑절이 된다면, 나의 기도가 갑절이 된다면,
나의 찬송이 갑절이 된다면, 나의 전도가 갑절이 된다면,
나의 예배가 갑절이 된다면, 나의 나눔과 베품이 갑절이 된다면,
나의 헌금이 갑절이 된다면, 나의 비전이 갑절이 된다면,
나의 믿음이 이상이 된다면, 나의 순원이 갑절이 된다면,
나의 꿈음이 갑절이 된다면, 어떤 내가 되겠나?
갑절로 행함이 그렇게 어렵겠나? 갑절을 향한 엘리사와 같은 열정과 간절함과 끈질김이 있을 때 가능하다. 지금보다 갑절이 됨으로 나타날 결과와 열매는 내게 엄청난 것으로 돌아오게 된다. 갑절의 영감을 구하자. 그리고 갑절로 행하자. 갑저절의 영감을 구하여 받았을 때 우리는 지금보다 감절로 풍성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수 있다. 우리는 엘리야보다 연약한 엘리사일 수 있다. 힘없는 사람일 수도 있다. 건강이 남들보다 못할지도 모른다. 남들보다 지혜가 모자랄지도 모른다. 남들보다 많은 순원(재사)을 갖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내 속에 함께 있으면, 우리는 갑절의 영감을 받은 엘리사로서 엘리야의 후계자로 자리에 설 수 있게 되는 것을 믿으라. 하나님으로부터 갑절의 영감을 받으면 위대한 일을 할 수 있다. 성령충만하면 우리가 큰 역사를 이룰 수 있다. 갑절의 영감을 구하여, 갑절로 충성한 하나님의 자녀로, 복음의 일꾼으로 살아가기를 바란다. (전주CCC 홈커밍데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