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월, 삼강주막에 일행이 가다
2012년 11월, 지금부터 11년 7개월 전 우리들 부부 일행 12명이 삼강주막에 들렸다. 그날은 같이 갔던 일행의 한 사람이 상주 고향에도 들릴겸 해서 삼강주막을 찾게 되었다. 하필 새벽부터 비가 내려 삼강주막은 한산하였고 관광객은 많지 않아 최초 삼강주막과 주위를 골고루 둘러보았고 뚝에 올라 삼강교와 안내문 등도 상세하게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당시 신축한 주막집에서 막걸리도 쉽게 맛볼 수 있었고, 한시간 가량 잘 보고 왔다. 그 때 촬영했던 사진을 소개한다. 그때 더 많은 사진을 남겼더라면 하고 아쉬움이 남는다. 감사합니다.
낙동강 700리에 마지막 남은 주막인 삼강주막은 1900년경에 지어진 주막으로 규모는 작지만 그 기능에 충실한 집약적 평면구성의 특징을 가져 건축역사 자료(경상북도 민속자료)로서 희소가치가 크다. 또, 주막의 부엌에는 글자를 모르는 주모 할머니가 막걸리 주전자의 숫자를 벽면에 칼끝으로 금을 그어 표시한 외상 장부가 눈에 띈다.(출처 : 예천군)
삼강주막 오래된 옛사진(인터넷 사진 캡처)
이 삼강주막을 거쳐간 수많은 우리 조상들은 당시 서민들의 애환을 피부로 느끼면서 많은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큰나무 밑에서 땀을 씻으며 쉬면서 피로를 풀었을 것이고,
과거 보러가는 선비는 얼마나 많은 심적 고통을 견디면서 막걸리에 목을 추기며 마음을 달랬을 것이다.
지금도 가까운 거리에 정착하는 사람들은 좋은 쉼터가 되고, 관광객들은 좋은 추억의 장소로 인기가 대단하다고 한다.
그런데, 그런데 쓰러져가는 스레트 지붕의 가난한 오두막집, 그 집이야말로 70, 80대가 살아온 우리들의 자화상이 아니겠는가. 그 작은 골방에서 우리들의 부모님들은 주린 배를 참아가면서 집집마다 최소 5남매에서 8남매. 10남매까지 키워냈다. 이제 그분들은 한 마디 말이 없으시고, 우리는 행여 큰소리치며 그분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지나 않는지? 달이 밝을 때 이곳 같은 곳에서 물으시면 답을 생각해보아야겠다.
감사합니다.
첫댓글 ○예천 <삼강주막>은 우리나라 근대사의 길목이며 당시 서민들의 애환과
비사와 자화상을 간직한 전설로 남겨지게 되었습니다. 영원히 남겨질
소중한 역사와 문화재입니다. 공유하여 주시고 설명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