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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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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강 알아주지 않음을 걱정치 말라
1. 계절과 문화
지난 시간에는 백낙천의 ‘비파행’을 보았다. 백난천의 대표적인 서사시로 ‘장한가’가 있고, 서정시로서 ‘비파행’이 있다. 언젠가 시간이 되면, 장한가도 여러분께 꼭 강의를 해 드리고 싶다.
열심히 백거이의 시를 보다가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하여튼 요즘 날씨가 지독하게 춥다. 오랜만의 한파인데, 사실 우리 어려서 클 때는 추운 기억이 많다. 요즘은 이런 추위를 느낄 기회가 없었다. 여러분들 안 그런가? 여름이 되면 겨울이 그립다고 하고, 겨울이 되면 역시 여름이 좋다고 한다. 서민들에게는 여름이 생활하기에 낫다.
이렇게 추위를 경험하면서 제가 느끼는 것이 있다. 우리가 강의하고 있는 유교는 기본적으로 사계절 문화에서 싹튼 것이다. 공자 같은 사람이 왜 열대 아프리카에선 나오지 않았을까? 이렇게 생각해보면, 우리가 추운 겨울도 경험할 수 있고, 여름의 엄청난 더위도 한 자리에서 경험할 수 있다는 게, 한국 사람들의 다양한 감각과 섬세하고 예술적인 감각을 만들어 주는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어, 하나의 계절 속에서만 사는 사람들을 보면, 그림이 별 볼일 없다. 역시 사계절 문화에서 크는 사람들의 그림이 좋다. 그래서 예술적 감수성이나 이해의 폭이 크고, 한 군데로 치우지지 않는 거 같다.
위대한 종교문화는 대개 상업문명에서 나온다. 한 계절 스타일이다. 어떤 생각이 한 군데로 치우친다. 4계절 문화는 그렇지 않은 거 같다. 유교의 합리적 기반도 이런 풍토와 관련해서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하여튼 너무 추우니깐, 여러분들도 조심하시고, 이제 추위가 풀려나가는 거 같다.
2. 학이편 13장
오늘은 학이(學而)편 제13장을 강의하겠다.
有子曰 : 信近於義 言可復也, 恭近於禮, 遠恥辱也, 因不失其親, 亦可宗也.
이 장의 말도 유자의 말로 되어 있다. 공자의 말은 아니다.
유약(有若)
공자의 말년 제자. 노나라 사람. 무인출신. 36세 연하(가어), 43세 연하(열전). 공자사후 공자학단을 리드
여기도 신(信)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오늘로 이 학이편을 끝내려 한다. 학이편에서 계속 이야기했지만, 신(信)이라는 글자가 계속 나왔다. 신(信)이라고 하는 것은 믿음이 아니라 인간의 말과 관련된 것이라고 했다. 근(謹)이라든가, 신(信)이라든가, 이런 글씨가 계속 나오고 있다.
謹而信, 汎愛重而親仁. 학이 6
학이편을 편집한 사람은 굉장히 인간의 말이라는 것에 대한 섬세한 감각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인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학이’편의 강한 모티브 중의 하나는 인간이 사회생활에서 말을 조심해야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信이라는 글자로 표현되고 있다.
信近於義 言可復也,
‘信近於義, 言可復也’라고 되어 있는데, 신(信)은 말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약속이라고 번역한다. 약속은 믿음을 주는 말들이다. 내가 언제 어떻게 꼭 이 말을 지키겠다는 뜻이다. 그런데 약속이라고 해서, 다 약속이 아니고, 그 약속은 반드시 의로움에 가까워야 그 말이 실천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해석을 한다.
두 가지 스타일의 해석이 있는데, 인간의 약속이라는 것이 약속을 해도 다 약속이 아니고, 인간의 어떤 의로움에 가까워야, 그 말이 실천될 수 있다.
恭近於禮, 遠恥辱也,
‘공손함이 예에 가까워야 비로소 치욕을 멀리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공손하다고 해서, 그냥 공손하기만 해선 의미가 없다는 이야기다. 공손함이라는 게 반드시 예에 가까워야 치욕을 멀리할 수 있다.
因不失其親, 亦可宗也.
그 다음의 말이 ‘因不失其親, 亦可宗也.’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 말은 앞에서 말한 것과 연결 지어서 생각해야 한다. 앞에 신(信), 공(恭)이 나왔다. 앞의 두 문장을 받아서, 그런 믿음과 공손함으로 인(因)해서 기친(其親)을 잃지 아니한다면, 역시 종(宗)할만 하다는 것이다. 기친(其親)는 나에게서 가까운 사람들을 말한다. 그리고 종(宗)이라고 하는 것은 쉽게 이야기하면. 존경해줄 만하다, 받들 만하다는 뜻이다.
종(宗) : 여기서는 동사로, “받들어 모시다”의 뜻이다.
이 장을 생각할 적에 가슴에 와 닿는 이야기가 있다. 저는 크면서 아무래도 평범하진 않았던 거 같다. 저의 어머니 말씀에는 혼자서 궁리를 잘하고, 지나가다가도 궁금한 게 있으면 하루 종일 그걸 들여다보고 앉아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클 때는 평범하게 컸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공부도 잘 못했다. 대학 은 처음엔 생물과를 들어갔다가, 그 다음에 신학대를 들어갔다가, 고려대 철학과를 들어갔다. 거기에 들어가서부터는 공부를 정말 지독하게 했다. 그때는 이미 인생에 공부밖에 재미난 게 없었다. 그렇게 공부만 열심히 하면서, 내 본분 에 충실하고, 공부하는 것 외에는 다른 할 일도 없었다. 도서관에서 공부만 하니깐, 그때 느끼는 게 뭐냐면, 내가 내 생활에 충실하니깐, 주변에 있는 가까운 사람들이 나를 인정해 주었다.
동양 사상은 기본적으로 항상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신임을 얻고, 가까운 사람을 잃지 않는 것이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다. 남들한테 대접을 받는 건 쉬울지 몰라도, 매일 보는 어머니로부터 정말 훌륭한 아이라는 이야기를 듣는 게 제일 어려운 것이다. 예를 들면, 자기 누이동생이나 자기 친구 등 가까운 사람한테서 ‘그 사람은 정말 훌륭해.’라는 소리를 듣기가 어렵다. 그게 어렵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신(信)과 공(恭)이라고 하는 것은 가까운 사람들에게서 존경을 받을 수 있게 하는 이유다. 가장 가까운 사람을 잃지 않으면, 그 사람은 사회의 지도자로서 본받을 만하다.
일상적으로 가까운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 사람이래야 우리 사회의 지도자가 될 수 있다.
여기서 종(宗)이라고 하는 것은 마루 종(宗)자니깐, 그렇게 떠받을만하다는 이야기다. 그러니깐 항상 그 인간을 평할 적에, 그 인간의 기발함이나 이런 것으로 평하는 게 아니라,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얼마나 존경을 받느냐? 이것이 기준이 되어야 할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예를 들면, 궁예 같은 사람이 결국 실각을 하는 것도 그런 이유였다. 모든 지도자라고 하는 사람은 항상 그 가까운 사람을 잃지 않는 자이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의 지도자로서 삼을 만 한 것이다.
오늘 설날을 앞두고, 귀성길에 오른 분들이 많을 것이다. 고향에 가셔서 부모님을 만나든, 누굴 만나든지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존경받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자기 고향에 갔을 적에 고향에서 배척받는 사람이 아니라, 항상 존경받고 가깝게 느껴지는 사람이 되도록 하자. 이것이 공자 유교의 본질이라는 것을 여러분들에게 말씀 드리고 싶다.
3. 학이편 14장
그 다음 장으로 넘어간다.
學而 第14章
子曰 : 君子食無求飽, 居無求安, 敏於事而愼於言, 就有道而正焉, 可謂好學也已
14장은 여러분들이 대개 다 아시는 구절이다. 나 어려서 이런 구절은 우리나라에서 못 외는 사람이 없었던 거 같다. 이 논어 구절은 우리 생활에서 항상 암송되었던 말이다.
지금 어린 학생들은 이런 게 낯설지 몰라도, 이건 공자의 말로서 어렸을 때, 굉장히 자주 인용되던 말이다.
여기다가 율곡 선생의 언해를 써놓았다.
샤 군 식에포호 구티말며
거호매 안호 구티말며
에 민고 언에 신고
유도에 취야 정면
가히 을 호다 니디니라
- 율곡선생의 사서율곡언해
이런 옛날 말이 있지만, 이런 말들은 우리 생활에서 항상 암송이 되었던 말이다.
君子食無求飽
그런데 여기 주어(主語)가 군자로 시작한다. 군자는 먹되 배부름을 구하지 아니하며,
居無求安
거처함에 편안함을 구하지 아니하며,
敏於事而愼於言,
행동을 하는데 있어서는 민첩해야 하고, 말하는 데 있어서는 삼갈 줄 알아야 한다. 계속 말(言)이 나오고 있다.
공자님 말씀에, 군자는 말을 떠듬거리고, 말을 어눌하게 하고, 말을 빨리하면 안 된다고 한다. 우리가 어눌(語訥)하다는 말을 쓴다.
君子欲訥於言而敏於行 - 이인 24
군자는 말에는 어눌하고 행동에는 민첩해야 한다.
원래 동양 사람들은 말이 빠르지 않는다. 요새는 아나운서들이 길거리 지나가다가 마이크를 대면 말을 잘하는데, 우리 어려서는 그런 것을 대면, 모든 사람이 질색을 했다. 서양 사람들은 그렇게 말을 잘하는데, 우리 문화 자체에는 버벌 컬쳐(verbal culture)가 없다. 이게 전부 유교 사상이다.
verbal culture(말중심 문화)
언어로 표현되는 것에 더 큰 가치를 두는 문화
말이라고 하는 것은 될 수 있는 대로 떠듬거리고 어눌해야 한다. 말은 그렇게 민첩하게 하면 안 된다. 그런데 행동에 있어서는 민첩하게 하라고 한다. 이게 공자 사상의 일관된 말씀이다.
우리가 학이편 처음에서 巧言令色, 鮮矣仁이라고 했다. 마찬가지 사상이다. 공자는 말을 잘 꾸미고, 말을 잘하는 사람은 뭔가 진실성이 없다는 생각이 있다.
巧言令色, 鮮矣仁! -학이 3
노자도 ‘도가도 비상도(道可道, 非常道)’라고 했다. 도를 도라고 말하면 그것은 항상 그러한 참다운 도가 아니다. 도를 도라고 말하는 것 자체에 대한 거부감이 있다.
道可道, 非常道(도가도, 비상도) :
도를 도라고 말하면 그것은 참다운 도가 아니다 -노자-
동양문화는 언어에 담아지는 세계의 진실성을 회의하는 깊은 전통을 가지고 있다.
동양 사람들은 유가 사상이든, 도가 사상이든, 일관된 사상이 말을 잘한다고 하는 것에 대해, 인간의 언어라고 하는 것에 대해 굉장한 불신이 있다.
언어에 대한 불신이 심화되면, 수학적 연역적 사유까지 나아가는 것을 방해한다. 과학사적으로 보면 연역적 사고의 저해까지 가져왔다. 그래서 희랍사상과 중국사상이 나누어지는 것이다. 동양사상은 巧言令色, 鮮矣仁이라고 한다.
언어에 대한 회의가 이성과 논리(Reason and logic)마저 거부하는 불행한 결과를 초래할 때도 있다. 이것은 동양과학사의 한 비극이다.
-조세프 나 이담-
4. 식색
그런데 동물은 사실 과한 게 없다. 우리가 동물을 아주 우습게 안다. 개 같은 새끼들이라는 등 나쁘게 표현한다. 하지만 사실 인간이 개만도 못할 때가 많다.
예를 들어, 같이 생활하던 개를 팔아서 없어지면 상사병에 걸려서 고민을 하겠나? 감정의 과함이 없다. 동물의 세계는 그렇다. 먹을 수 있는데도 본능적으로 과하게는 안 간다. 어떠한 것을 충족은 하지만 절대 과식을 하지 않는다. 아무리 많은 음식을 가져다주어도 개들은 자기 양만 먹으면 안 먹는다. 호랑이가 배가 부르면, 토끼가 앞에서 놀아도 가만히 둔다. 호랑이라고 해서 아무 때나 먹는 게 아니다.
동물의 자연 상태는 오히려 욕망이 절제되어 있다. 인간의 과도한 욕망은 인간의 동물적 본능이 아니라 문화적 경쟁의 산물이다.
과, 불급이라고 하는 게 항상 지나치거나 모자라는 것이다. 이런 과함이나 부족함은 인간의 문화현상이다. 인간의 자연현상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은 인간의 자연현상을 굉장히 투쟁적으로 본다. 홉스는 자연 상태를 만인과 만인의 투쟁이라고 본다. 이리떼들이 서로 싸우는 것이다. 이게 홉스의 가설이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사회계약서를 만들기 위해서 그런 생각을 한 것이다.
영국의 유물론자 철학자 홉스(Thomas Hobbes, 1588 ~ 1679)는 인간의 자연상태(the state of nature)를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bellum omnium contra omnes)로 규정하였다.
그러나 우리 동양사상에서 볼 적에, 인간이라고 하는 것은 평소에 분명히 과불급이 없어야 한다. 자기 본능적인 것만 채우면 안 된다.
섹스도 마찬가지다. 원래 동물의 섹스라는 것은, 발정기라고 해서 암컷한테 에스트로겐 호르몬이 분비되는 시기인 에스트루스에만 숫컷이 동해서 성교를 하게 되어 있다.
에스트루스(estrus) : 에스트로겐 홀몬이 폭발적으로 분비된 직후, 기초체온이 확 떨어지는 배란의 시기. 이 시기가 곧 여성의 수정가능시기이다.
인간에게도 월경과 월경 사이의 중간 시기에 에스트로겐 폭발 시기라는 게 있는데, 옛날에는 그런 성징이 있었다. 고대 인간에게는 그런 성징이 있었다. 그래서 그때가 되면, 여자한테 이상한 암내가 났다.
개 같은 것도 보면, 암캐가 어떤 독특한 물질을 내어서 암내를 풍기면 사방에서 숫캐들이 몰려든다. 우리집에서도 옛날에 개를 키웠는데, 10리 밖에서 개들이 왔었다.
암내 : 암컷은 수정가능시기에 수컷을 유인하기 위하여 페로몬(pheromone)이라는 화학물질의 강력한 냄새를 발생시킨다. 이것이 암내라는 현상이다.
그런데 여자가 그러한 성징을 갖고 있으면 오히려 문제가 생긴다. 예를 들어 여러분들이 전차에 탔는데, 여자가 암내를 피워서, 숫캐가 모이듯이 모여든다고 하면, 사회생활이 곤란해진다.
쏘시오바이올로지(Sociobiology) : 하바드의 곤충학자 윌슨(Edward O.Wilson)에 의하여 시작된 학문. 생물학적 진화가 사회적 진화에 의하여 영향을 받는다는 새로운 가설.
암컷에게서 암내가 나면 수컷들의 공격본능이나 적의(hostility)가 강화된다. 인간의 에스트루스 성징의 퇴화는 남자의 공격본능(male aggression)을 약화시킴으로서 인간의 사회생활을 원활케 만들었다. - 윌슨
쏘시오바이올로지라는 윌슨의 가설에 의하면, 남자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방향에서 진화가 된 것이다. male competition이 너무 과도하면 사회가 무너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에스트로겐 성분이 점점 없어졌다.
지금 여자들은 에스트로겐 폭발 시기에도 특별한 성징이 나타나지 않는다. 한 몇 만 년 전까지는 인간이라는 동물에게 그런 성징이 뚜렷하게 나타났던 거 같다. 그렇게 되니깐 인간이란 동물만이 유일하게 아무 때나 성교를 할 수 있는 동물로 진화를 해 버린 것이다. 시기에 무관하게 성교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깐 항상 인간의 문제는 식색이다. 맹자와 고자라는 사람의 싸움도 항상 이 食色之情을 가지고 싸웠다.
告子는 식색(食色)이라고 하는 것이 곧 성(性)이라고 한다. 식색 그대로가 성(性)이라고 한다.
告子曰 : 食色, 性也. -맹자 고자 上
그러나 맹자는 식색이라고 하는 것 자체가 인간의 문화에 의해서 조작된 것이라는 것이다.
인간의 성(性)은 식색(食色)이 아니라 인간의 본연에 내재하는 인의(仁義)이다. - 맹자
우리가 자연 상태라고 믿는 식색의 본질을 파고 들어가면, 우리는 그렇게 관능적이고, 욕망적인 것만이 식색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러니깐 食無求飽, 먹되 배부름을 구하지 말라는 이야기는 배고프게 살라는 이야기가 아니고, 우리가 과도하게 욕망을 충족시키려는 행위나 집착에서 벗어나는 것이 오히려 인간의 본연의 자세라는 이야기다.
노자는 상당히 무위적 세계를 지향하는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그 사람이 이상국가론을 말할 때 보면, 감기식(甘其食)이라고 했다.
백성들이 그 먹는 것을 달콤하게 해주고, 그 입는 것을 아름답게 해주고, 사는 것을 편하게 해주고, 풍속을 즐겁게 해주라고 했다.
甘其食, 美其服, 安其居, 樂其俗 - 노자 80장-
동양사상은 그런 의미에서 절제주의라고 해서 무조건 금욕주의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노자의 무위(無爲)는 문명의 거부가 아니라 기본적 삶의 충족이다. 노자든지 공자든지 금욕주의(asceticism)를 말하지 않는다. 절제와 중용을 말 할 뿐이다.
우리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떻게 중용의 삶을 지키느냐 하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 동양사상의 가장 중요한 테마이다.
그래서 食無求飽, 居無求安, 敏於事而愼於言이라는 3가지 테제가 나오고, 그 다음에 말하길 就有道而正焉이라고 했다.
여기서 취(就)라는 것은 그에게 나아간다, 그에게 달려붙는다는 뜻이다. 즉 就有道는 ‘도가 있는 자에게 나아간다’는 뜻이다.
就有道而正焉
就(취) 나아간다, 달려붙는다.
有道(유도) 도가 있는 사람
有道라고 하는 것은 추상적으로 도가 있다고 하는 게 아니라, 有道者 즉 도가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就有道而正焉는 ‘도가 있는 사람에게 나아가서 자기를 바르게 한다.’는 뜻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정언(正焉)을 수동형태로 해석을 한다. 내 생각에 이것은 수동형으로 해석하면 안 된다. ‘유도자(有道者)에게 나아가서, 자기가 스스로 자기를 바르게 한다.’고 해석해야 한다.
수동적으로 ‘그에 의해서 내가 바르게 된다.’는 식으로 해석하지 말고, 어디까지나 내가 능동적으로 유도자에게 나아가서 나 스스로를 내가 바르게 한다고 해석하라는 말이다. 그러니깐 항상 나보다 ‘도가 있는 사람들에게 나아가서 배우면서, 자기가 자기 자신을 바르게 한다’로 해석한다.
可謂好學也已
여기서 호학이라고 하는 것은 공자의 전통적인 테마다. 공자 사상에 가장 중요한 것은 호학이다. 항상 자기를 열고 배운다는 것이다.
그럼 여기 나오는 호학(好學)이 뭐냐? 이에 대한 많은 주석가들은 食無求飽하고, 居無求安하고, 敏於事而愼於言하고, 就有道而正焉이라는 4개의 명제가 곧 학(學)의 내용이냐? 학(學)이라고 하는 것은 공부도 하는 것이고, 문자도 배우는 건데, 너무 이것만 이야기한다면, 너무 일상적인 것이 아니냐고 한다.
그런데 공자의 사상은 주석가들이 말하는 것처럼 그렇게 분리가 될 수 없다. 공자가 말하는 학(學)이라는 것은 벌써 유도자(有道者)에게 나아가서 자기를 바르게 한다는 테마가 들어가 있기 때문에 이미 공부한다는 의미가 다 들어가 있다.
그러니깐 호학(好學)이라고 하는 것의 의미는 결국 이렇게 일상적인 데 있는 것이다. 공자사상은 이렇게 食無求飽하고, 居無求安하고, 敏於事而愼於言하는, 이런 일상적인 것이 곧 호학의 내용이라는 것이다.
공자가 말하는 학문(好學)은 우리 삶의 일상성(Taglichkeit)과 분리될 수 없다. 먹고, 거처하고, 행동하고, 사귐이 곧 배움(學)의 내용이다.
그러니깐 공자가 말한 인간은 결국 호학의 인간이다. 공자가 규정하는 인간상은 항상 호학(好學)이라는 테제를 벗어나지 않는다.
호학이라는 것을 좁은 의미에서 독서로만 생각하기 쉬운데, 우리가 역사를 통해서 지식인이라고 하면 독서인이라고 생각한다. 학(學)의 내용을 좁은 의미에서 독서로 생각하기 쉬운데, 공자가 말한 학(學)이라고 하는 것은 항상 이러한 일상적인 데서 찾아야 된다는 것을 말씀 드린다.
뚜수르언(讀書人) : 중국에서 "지식인" "선비"를 지칭하는 일반명사
5. 학이편 16장
제일 마지막에 있는 16장을 보겠다.
子曰: 不患人之不己知, 患不知人也.
이 앞에 있는 ‘절차탁마’장은 다음 주에 하겠다. 그건 시경과 관련되어 있어서 굉장히 내용이 복잡하다. 15장은 시경(詩經)이라는 것을 인용해서 공자와 자공 사이에서 일어나는 대화 형태로 되어 있기 때문에 복잡하다.
제15장은 ‘절차탁마’라는 ‘시경’의 구절을 둘러싸고 공자와 그의 애제자 자공(子貢)이 대화하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
‘절차탁마’에 관한 논의는 시경(詩經)이라고 하는 텍스트를 이해해야 한다. 시경은 고대의 가요집인데, 그걸 놓고 우리가 전체적으로 이해해야 되는 복잡한 문제가 걸쳐있다. 그래서 그건 다음 주에 따로 소개를 드리기로 하고, 오늘은 학이편 마지막 16장을 여러분들과 공부함으로서, 이 학이편을 마무리 짓겠다.
우리가 이 학이편을 시작할 때, 어떤 내용이 있었나?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有朋 自遠方來 不亦樂乎.
人不知而不溫 不亦君子乎.
이 학이편의 구도를 보면, 시작과 끝에 동일한 주제를 담고 있다.
학이편 시작의 마지막에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 하더라도, 내가 부끄럽지 아니하니 또한 군자가 아니겠는가?’하는 말로 되어 있다. 공자는 자기 삶에 있어서, 어떤 정치적 지향점을 갖고 살았지만, 결국 정치적으로 실패한 자기 인생이라는 것을 고백하면서도, 남이 나를 알아주지 못했지만 오히려 나는 떳떳한 군자의 모습으로 이렇게 부끄럽지 않은 모습으로 살고 있다는 하나의 프라이드로 첫 말씀을 끝내고 있다.
학이편의 마지막도 결국은 ‘人不知而不溫 不亦君子乎’라고 하는 테마와 연결을 지어서 끝나고 있다.
학이 편은 첫 장과 마지막 장이 동일한 주제를 담고 있다. 이것은 학이가 본시 독립된 편으로 의도적으로 편집된 것임을 방증할 수도 있다.
그러면서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不患人之不己知라고 한다.
不患人之不己知,
여기서 환(患)이라고 하는 것은 걱정하다는 뜻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지 못하는 것을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여기서 인(人)이라고 하는 것은 항상 타인(他人)이라고 했다. 인(人)과 상대적인 게 기(己)라고 했다. 不患人之不己知, 이게 도치가 되었는데,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지 못하는 것을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그리고 역습을 한다.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지 못하는 것을 걱정하는 순간에 거꾸로 患不知人也라고 한다. ‘내가 타인들을 알아주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고 걱정하라고 한다.
患不知人也
남이 나를 알아주지 못한다. 김용옥을 이 사회가 인정해 주지 않는다면, 그런 것을 걱정할 게 아니라, 내가 이 순간에, 여기 젊은 학생들은 앞으로 훌륭하게 커나갈 동량들인데, 이 사람들을 내가 인정하지 못하고, 이 사람들을 핍박하고, 이 사람들을 음해하고, 이 사람들을 억누르고 있다면 그게 더 큰 문제다.
항상 남이 나를 알아주지 못한다고 걱정하지 말고, 그 순간에 ‘나는 정말 남을 알아보고 있는 사람인가?’하는 것을 걱정하라는 것이다. 이게 공자 사상의 역습이다.
6. 患不知也
그런데 어떤 텍스트를 보면, 人이 빠져 있는 텍스트가 있다. 患不人知也가 아니라 患不知也로 되어 있다.
患不人知也. ---> 患不知也.
그럼 여기에 어떤 문제가 생긴다. ‘不患人之不己知, 患不知也.’라고 인(人)이라는 목적어가 빠지면, ‘사람들이 나를 알지 못하는 것을 걱정할 것이 아니라, 내가 진정으로 알려질 만한 사람인가 하는 것을 걱정하라’는 뜻이 된다.
이것도 된다. 이것도 굉장히 의미가 깊다. 남들이 나를 ‘알아준다. 안 알아준다’하는 것은 내가 결정되는 게 아니라, 정말 내가 남들에게 알려질 만한 실력을 쌓은 사람인가? 하는 내성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내 존재의 절대적 가치에 대한 믿음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런 해석도 굉장히 설득력이 있다.
이인 14장에선 ‘남이 나를 알지 못하는 것을 걱정하지 말고, 내가 참으로 알려질 수 있기를 구하라.’ 이런 말이 있다.
不患莫己知, 求爲可知也.
- 이인 14
그리고 비슷한 말이 헌문 32장에 또 있다.
不患人之不己知, 患其不能也.
- 헌문 32
‘남이 나를 알지 못하는 것을 걱정치 말라. 자신의 능하지 못함만을 걱정하라.’고 한다. 모두 같은 테마다.
그 다음에 위령공 18장에서는 ‘군자는 자신의 무능함만을 병으로 여겨야 한다. 남이 자기를 알지 못함을 병으로 여기지 않는다.’고 한다.
君子病無能焉, 不病人之不己知也.
- 위령공 18장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자기 존재를 절대적으로 단절시켜 볼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저는 겨우 50살이 넘어서야 TV에서 강의를 하는데, 저는 36세정도까지 이 사회에서 글 한 번을 써본 사람이 아니다. 전혀 나는 알려진 사람이 아니었다. 제가 고려대 교수로 부임할 때까지 저는 완전히 혼자서 공부했다. 20대, 30대에 이름을 날린다고 하는 것은 불행한 것이다. 공부할 시간이 없다. 나도 여기 와서 강의를 하니깐, 요새 공부할 시간이 없어졌다. 이게 불행한 것이다.
나는 35-6세가 되니깐 거의 미칠 거 같았다. 내가 산에 가서 발가벗고 찬물에 들어간 이야기도 했지만 미칠 거 같았다. 내가 얼마나 공부했는지도 모르겠고, 비교가 안 되고, 맥락도 없으니깐 미칠 거 같았다.
그러나 그렇게 자신을 절대적으로 놓고, 남의 평가로 자신을 결정하지 말고, 정말로 공부에 천착(穿鑿)하면 결국 나중에 그것이 알려진다.
남이 단절된 나의 절대적 반성이 오히려 인간세의 보편적 지평을 확보할 수도 있다.
- 도올 -
7. 유교의 양면
그러니깐 공자의 이 마지막 말씀의 첫 번째 해석은 ‘남이 나를 알아주지 못한다고 걱정하지 말고, 내가 진정 남을 알고 있는가를 걱정하라.’는 역습을 하는 해석도 좋다. 그러나 첫 번째 해석은 너무도 사회적 관계에 치우친 해석이다.
두 번째 해석은 인(人)이 빠진 텍스트를 가지고 하는데, ‘남이 나를 알아주지 못한다는 것을 걱정하지 말고, 진정으로 내가 남들이 알아줄만한 사람인지 자신의 내면적 충실함을 걱정하라.’는 해석이다.
그렇게 본다면 우리의 유교사상이라고 하는 것은 양측면의 사상을 가지고 있다.
인간과의 관계에서 덕성을 함양해야 한다고 하는 측면이 있는가 하면, 오히려 그런 관계를 단절시키고 자기 내면을 깊게 함양하고 응축함으로서 이 사회에서 가치를 펼쳐가는 인간이 되라고 하는 측면도 있다.
첫 번째의 관계론적 메시지와 두 번째의 절대론적 메시지라는 양면이 유교사상에는 반드시 같이 있다.
유교사상은 나의 실존의 상대적 관계성과 절대적 독립성을 동시에 존중한다.
그것이 중용의 신독(愼獨) 사상이라고 하는 것인데, 이것은 다음 주에 강의하려고 한다. 이렇게 해서 절차탁마장을 빼고 학이편이 끝났는데, 절차탁마장은 다음 주에 따로 강의해 드리겠다.
8. 아리랑
그런데 설날도 다가오고 그래서 제가 여러분들을 위해서 초라한 선물 하나를 드리려 한다. 귀성길에 들으시라고, 우리 민족의 노래인 아리랑을 해금이라는 우리 악기로 연주해 보겠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박수치실만한 게 못된다. 제가 해금은 배운지 1달밖에 안 되었다. 저는 국악기도 자꾸 배워보려고 한다. 왜냐하면 공자도 예술가였다. 아티스트였다.
내가 지금 예술가가 될 수는 없다. 그러나 국악기라도 하나 배우면, 국악기의 세계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그래서 저는 이런 것을 자꾸 배워보려고 노력한다. 최근에 이 해금을 배웠는데, 소리가 아주 앙증맞다. 현 2개를 가지고 소리를 낸다. 크지 않고 간단하다. 피아노처럼 큰 악기가 아니라, 어디 가서든 연주하기 좋을 거 같아서 조금 해보려고 하는데 상당히 어렵다.
이 아리랑이라고 하는 노래는 물론 강원도에 정선아리랑이 있고, 경상도에는 밀양아리랑이 있고, 호남 쪽에 진도아리랑이 있다. 이게 아리랑의 3대 산맥이다.
사실 오늘날 서울아리랑이라고 하는 것은 경기 신민요 아리랑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흔히 아는 아리랑은 일제시대 때 나운규씨가 아리랑이라고 하는 영화에서 쓰인 것이다. 그 영화 속 노래가 보편화된 것이다.
나운규(羅雲奎, 1902 ~ 1937) : 민족항일시기의 선구적인 영화인. 호는 춘사(春史). 나운규가 직접 주연하고 감독한 『아리랑』(1926)은 신화적 열풍을 일으키며 민족정서를 고취시켰다.
여러분들도 그 영화를 아실 것이다. 주인공이 삼일운동을 하다가 투옥되어서, 일본놈 앞잡이 한 놈을 죽이고 싶은데, 어떻게 각본을 써야할지 고민했다고 한다. 결국 나운규는 일본의 검열을 통과해야 되니깐, 주인공을 미친 사람으로 만드는 아이디어를 술집에서 얻었다고 한다.
주인공이 삼일운동을 하다가 투옥되어서 미친 사람이 된다. 이 사람이 고향에 돌아왔는데, 자기 여동생을 지주의 밑에 있으면서 일본 순경의 앞잡이를 하고 있는 머슴이 겁탈하려고 한다. 그때 이 사람의 서울에서 온 친구가 말리는데, 미친 주인공은 그냥 쳐다보다가 갑자기 아라비아 사막에서 목이 말라하는 장면이 나오다가, 그 순간에 정신이 들어서 낫으로 머슴을 쳐 죽인다. 그리고 동네 사람들과 순경이 다 왔는데, 주인공은 일장연설을 하고 끌려가면서 아리랑 고개를 넘어갈 때 이 노래가 나왔다. 일제 시대때 나온 이 영화 아리랑의 원본은 사라졌다.
여러분, 울지 마십시오. 이 몸이 삼천리 강산에 태어났기에 미쳤고 사람을 죽였습니다. 지금 이 곳을 떠나는, 떠나려는 이 영진은 죽음의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갱생의 길을 가는 것이오니...
그리고 아리랑의 유래에 대해 전혀 다른 이야기가 있다. 닌 웨일즈라고 에드가 스노우의 부인이었던 사람이 연안에 갔다가, 김산이라는 우리나라의 대단한 독립 운동가를 만났다. 그 사람과의 대화를 적은 책이 있다. ‘송 오브 아리랑’이라고 영어로 쓰여진 책인데 우리말로도 번역이 되어 있다.
김산 씨가 말하길, 서울 근교에 아리랑 고개가 있었는데 거기에 큰 소나무가 있었다고 한다. 그것이 사람들을 목메는 형장이었다고 한다.
Near Seoul is a hill called the Hill of Ariran.
그곳이 어딘지 몰라도, 내가 돈암동에 살았는데, 돈암동에서 정릉으로 넘어가는 고개를 아리랑 고개라고 했다. 그곳을 넘어가다 보면 큰 소나무가 하나 있었는데 그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여튼 거기다 목을 매는 사형수들은 민중에 대한 핍박에 한이 맺힌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모두 조선조의 체제에 항쟁하던 사람들이었다.
그러다 어떤 사람이 아리랑이라는 노래를 지어서 불렀는데, 그것이 아주 엄청나게 유행하게 되었고, 사형을 받으러 가는 사람들에게 이 아리랑 노래만은 허용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김산 씨 이야기로 이 노래는 사형을 받으러 가는 사람들에게 죽음의 노래였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 민족에게 죽음의 노래가 아니라, 죽음을 통해서 삶의 의지를 나타낸, 아주 강렬한 아이러니가 있는 위대한 노래라고 말하고 있다.
It is a song of death and not of life.
But death is not defeat. Out of many deaths, Victory may be born.
Song of Ariran으로부터
그 당시 우리나라의 훌륭한 독립운동가였던 김산은 닐 웨일즈한테 연안에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물론 김산이라는 이름은 가명이었고 나중에 실명이 밝혀졌다. 하여튼 아리랑에 대한 이분의 이런 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