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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에 핀 하얀 꽃
어느 글에서 읽었습니다. 격렬하게 전투가 벌어진 전장에서 탱크 한 대가 적지를 향해서 진군했습니다. 최전선 병사들을 지원하기 위해서 최고 속력으로 질주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탱크가 갑자기 멈춰 섰습니다. 이유는 탱크 바로 앞에 하얀 꽃 하나가 피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탱크 운전병은 그 하얀 꽃 앞에서 잠시 멈췄다가 그 꽃을 피해 우회해서 다시 진군했습니다. 전장에 핀 하얀 꽃을 짓밟지 않고 돌아갔던 그 탱크 운전병의 이야기가 저에게 큰 감동이었습니다.
지금 미얀마는 전쟁 중입니다. 며칠 전에 리안전도사로부터 선교 보고가 있었습니다. “미얀마의 상황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양곤으로 가는 길에는 여전히 군인들의 검문소들이 많고 그곳을 통과할 때마다 군인들에게 돈이나 귀중품들을 빼앗깁니다. 오토바이 키는 압수를 당하고 돈을 내지 않으면 그 키를 돌려받지 못합니다. 좋은 오토바이는 아예 빼앗깁니다. 그런 일이 1년 내내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선교비를 수령하기 위해서 양곤으로 갈 때는 메얀청에서 차를 렌트해서 낮에 총알처럼 갔다가 옵니다. 6개월 전에 40 kg짜리 쌀 한 포대가 40,000 잣트였는데 지금은 90,000 잣트가 되었습니다. 모든 물가가 두 배로 폭등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한 긴급한 상황 속에서 기쁜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리안의 선교 보고를 받았을 때, 제 머릿속에 제일 먼저 떠올랐던 모습이 바로 그 “전장에 핀 하얀 꽃”이었습니다. 오늘은 메얀청에도 핀 그 아름다운 꽃 이야기를 전해 드리려고 합니다.
메얀청 선교 역사
메얀청은 한센 마을입니다. 한센인 약 400명과 그들의 가족까지 합하면 약 3,000명이 거주하는 한센 마을입니다. 그 메얀청에서 처음 한센선교를 시작했던 때는 지금으로부터 11년 전인 2012년 5월이었습니다. 미얀마 군부가 한센인들을 외딴곳에 격리하기 위해서 조성한 강제수용소와 같은 곳이었습니다. 마을 초입에는 한센 환자들을 격리한 시설이 있었는데, 남자와 여자 숙소 두 동이 있었습니다. 60년이 훨씬 넘은 낡은 판잣집이었는데, 발로 살짝만 건들어도 힘없이 무너질 것 같은 허접한 시설이었습니다. 그곳에 약 120명의 한센 환자들이 신음하며 고통스럽게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곳의 관리책임자는 몹시 불쾌한 표정으로 저를 경계했습니다. 왜 왔느냐? 뭘 보려고 왔느냐? 여기서 뭘 하려고 하느냐? 등등. 거친 질문들이 속사포처럼 쏟아졌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메얀청 거주자는 99%가 버마족 한센인들이었고, 99%가 불교 신자들이었습니다. 선교가 쉽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때부터 1년에 3, 4번 메얀청을 찾아갔습니다. 갈 때마다 막대한(?) 선교비를 가지고 갔습니다. 한센센타에 거액의 기부금을 냈습니다. 쌀을 구매해서 가마니로 기증하기도 했습니다. 돼지를 사서 한센인 가정들에게 기증도 했습니다. 그러자 마을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그 허락된 거리는 고작 200미터였습니다. 한센센타에서 약 200미터 더 안으로 들어가니 한센인 자녀들이 다니는 공립학교가 있었습니다. 약 500명의 학생이 있는 초등학교, 고등학교였습니다. 학교 건물도 곧 쓰러질 것처럼 위태해 보였습니다. 그 학교에 컴퓨터와 복사기를 기증했습니다. 그리고 몇 개월 후에, 다시 메얀청을 방문했을 때, 그들은 학교로부터 다시 마을 안으로 200미터 더 들어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학교 뒤편에는 보건소가 있었습니다. 정부에서 파견한 의사가 있었지만, 의료기구와 약품은 없었습니다. 의사의 임무는 진찰하고 큰 마을 병원으로 갈 수 있도록 환자들에게 의사소견서를 써주는 일이 전부였습니다. 보건소에는 전기가 없었습니다. 당시 여자 의사는 저에게 응급 상황 시에 응급 처치를 할 수 있도록 전기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면서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보건소에 전기를 설비할 수 있는 경비를 후원했습니다. 그러자 다음 해에 그들은 저에게 메얀청 어디든지 방문할 수 있는 자유를 주었습니다. 메얀청 구석구석을 돌아볼 때 우물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 건기 때는 2시간 이상 걸어가서 냇가에서 물을 길어 다가 먹었습니다. 도저히 마실 수 없는 더러운 물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물 파주기 후원을 시작했습니다. 그 사이에 제 발걸음은 이미 메얀청 끝점인 정글 가까이 까지 침투해 들어가 있었습니다. 가는 곳마다 마을 사람들이 저를 환영해 주었습니다.
그때 시작했던 것이 ‘선한목자 선교센타’ 건축이었습니다. 몇몇 불교 신자들의 반대 시위가 있었지만, 저를 좋아하게 된 많은 사람들의 마음까지 그들이 돌려놓지는 못했습니다. 시간은 걸렸지만, 저의 선교 전략은 적중했고, 결국 저희는 불교의 땅 메얀청에 기독교 선교 센타 건축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가장 어려웠던 일은 메얀청 선교를 맡아줄 현지인 목회자를 찾는 일이었습니다. 여러 사람의 소개로 전도사들을 소개받았지만 모두 실망스런 사람들뿐이었습니다. 헌신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외국인 선교사에게 돈을 뜯을 기회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한 사람, 한 사람씩 그만두게 했습니다.
그때 지금의 리안전도사를 소개받았습니다. 그를 소개한 미얀마 목사의 설명은 이러했습니다. “리안은 아주 신실한 전도사입니다. 그런데 그는 지금 말레이시아에서 에어컨 수리공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결혼해서 아내와 함께 그곳으로 갔는데 그의 아내가 갑자기 아팠습니다. 동네 시장에서 중국산 한약을 먹었는데 그것이 잘못되어 몇 달째 하혈을 했고, 병원으로 갔더니 잘못된 한약 복용으로 아기를 영원히 가질 수 없는 불임 여성이 되었다는 판정을 받았습니다. 리안은 신학대학을 졸업한 후에 목회를 했어야만 했는데, 돈을 벌기 위해서 말레이시아로 간 것이 너무 후회스럽다고 자책하고 있습니다. 미얀마로 돌아오고 싶은데, 병원비를 갚지 않고는 출국할 수 없고, 비행기 표마저 구매할 수 없어서 말레이시아에 묶여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 병원비와 두 사람의 항공료를 말레이시아로 송금했습니다. 지금도 리안전도사는 저를 포로수용소(?)에서 자신을 구출해준 은인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미얀마에 도착하고 그 다음 날, 리안 부부를 메얀청으로 보냈습니다. 두 사람은 열심히 메얀청 선교를 담당했습니다. 다시 메얀청을 방문했을 때, 그의 아내 머리 위에 손을 얹고 임신할 수 있도록 특별 기도를 해주었습니다. 그런데 몇 개월 후에 리안이 그의 아내가 임신했다는 기적의 소식을 보내왔습니다. 그래서 두 부부는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런데 2년 전, 미얀마에 코로나가 급습했을 때, 리안의 아내가 고향 탄들랑으로 가서 있다가 코로나가 진정되면 다시 메얀청으로 돌아오겠다고 하고 아들을 데리고 메얀청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1년 후, 그 아내는 그곳에서 다른 남자와 결혼하고 살림을 차렸습니다. 충격에 빠진 리안은 그 곳으로 가서 아들을 찾아서 메얀청으로 데리고 왔습니다. 양곤대학 출신인 여동생 듀듀자매가 그 소식을 듣고 메얀청으로 들어가 현재까지 조카를 키워주고 있고, 선교센타 아이들의 학습을 지도해주고 있습니다. 리안에게 많은 일이 일어났지만, 그는 흔들림 없이 메얀청 선교를 담대히 이끌어 오고 있습니다. 이제 그가 전해준 [전장에서 핀 하얀 꽃]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메얀청 새생명교회에서 있었던 세례식
지난 5월에 사이클론 모카(Mocha)가 메얀청을 강타했습니다. 많은 집들이 처참하게 망가졌습니다. 리안전도사가 피해 지역을 돌아보면서 도움의 손길을 베풀었습니다. 무너진 집들 중에서 우토토(U Toe Toe)의 집이 있었습니다. 우토토(49세)에게는 아내와 4명의 자녀가 있었습니다. 우토토는 한센인이고, 그의 아내도 한센인입니다. 그의 집은 지붕도, 벽도 없이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리안은 그의 집을 보수해 줄 수 있도록 선교 본부에서 후원해 줄 수 있느냐고 문의해 왔습니다. 그가 한센인이라면 보수하라고 말하고 특별 후원비를 송금해 주었습니다. 그의 집은 깨끗하게 보수되었습니다. 그것이 우토토에게 감동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보수하는 기간 동안 불교 신자였던 그는 매일 리안으로부터 예수의 복음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보수 공사를 마친 후에 그는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그는 주일 예배에 출석했고, 그 자리에서 크리스천이 되기 위해서 세례를 받고 싶다고 고백했습니다. 리안은 그에게 양선교사가 올 때까지 세례를 기다려 달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즉시 리안에게 세례를 베풀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습니다. 세례 주는 일을 지체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지난 주일 7월 2일, 주일 예배 후에 세례식이 있었습니다. 세례는 우토토와 지난 달에 고등학교 졸업 시험에 합격했던 시투웡이 받았습니다.
우토토(U Toe Toe)
우토토는 이제 우리의 가족이 되었습니다. 리안에게 제가 품고 있던 비전을 다시 전달했습니다. 2015년 7월, 사부탕에 약 1만 평 농장을 매입했을 때 저의 꿈은 그곳에 한센인 정착촌을 건립하는 것이었습니다. 지금은 사부탕 현지인들에게 그 땅을 임시로 내어주고 소작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리안에게 지시를 내렸습니다. 11월까지 비만 내리는 우기이기 때문에 건기가 시작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우토토 가족을 사부탕으로 보내 [제1호 한센인]으로 정착해서 농장을 일굴 수 있도록 하라고 했습니다. 앞으로 남은 6개월 동안 말씀으로 그를 특별히 양육하라고 지시도 했습니다. 리안은 그렇게 하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주셨던 꿈들이 하나하나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세례 교인이 된 우리 한센 가족이 드디어 사부탕에 정착하게 됩니다. 가슴이 뜁니다. 하나님께 모든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시투웡
지난 6월에 졸업 시험에 합격하고 대학 진학을 위한 자격을 획득했던 시투웡이 세례를 받았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저희가 키운 인재입니다. 그 시투웡을 캐나다 몬트리올로 보낼 계획입니다. 현재 여권을 신청 중인데 9월 경에 발급되면 곧바로 이영배장로님과 조용숙권사님(몬트리올연합교회) 초청으로 듀듀자매와 함께 시투웡을 캐나다로 이주시킬 생각입니다. 제가 시투웡에게는 요셉(Joseph)이란 이름을 선물해 주었습니다. 캐나다로 가서 성공한 후에는 선한목자 선교센타에 있는 동생들을 캐나다로 데리고 가는 제2의 요셉이 되어달라고 당부했습니다. 시투웡은 반드시 성공해서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의 여권이 속히 발급될 수 있도록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사무총장 송재선장로, 간사 김영석전도사 필리핀 방문
본 선교회 사무총장 송재선장로와 간사 김영석전도사가 7월 27일부터 30일까지 필리핀을 방문합니다. 저희와 MOU(선교동역)를 맺은 글로벌메디컬 팀이 내년 초에 필리핀에서 첫번째 의료봉사를 갖게 되는데 그 프로젝트를 위한 사전 답사를 하기 위함입니다. 의료봉사를 하게 될 장소들을 미리 방문하고 점검합니다. 필리핀 제1호 한센정착촌인 콜리온 섬을 방문합니다. 콜리온은 한국의 소록도와 같습니다. 마닐라에서 경비행기를 타고 부수앙가로 가서, 다시 배를 타고 콜리온 섬으로 들어가는 길고, 힘든 여정이 될 것입니다. 마닐라에서는 빈민촌 톤도(Tondo)를 방문하고, 마지막 날에는 딸라교회와 엘림교회에서 주일 예배를 드리고 서울로 귀국합니다.
애양원교회 필리핀 단기 선교
여수 애양원교회 단기선교팀(9명)이 딸라교회에서 8월 1일부터 8일까지 단기선교 활동을 합니다. 매일 다양한 선교 프로그램을 가지고 딸라교회 팀과 동역하게 됩니다. 선교 기간 동안 모두 건강하고, 매일 매일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는 선교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어느 글에서 읽었습니다. 격렬하게 전투가 벌어진 전장에서 탱크 한 대가 적지를 향해서 진군했습니다. 최전선 병사들을 지원하기 위해서 최고 속력으로 질주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탱크가 갑자기 멈춰 섰습니다. 이유는 탱크 바로 앞에 하얀 꽃 하나가 피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탱크 운전병은 그 하얀 꽃 앞에서 잠시 멈췄다가 그 꽃을 피해 우회해서 다시 진군했습니다. 전장에 핀 하얀 꽃을 짓밟지 않고 돌아갔던 그 탱크 운전병의 이야기가 저에게 큰 감동이었습니다.
지금 미얀마는 전쟁 중입니다. 며칠 전에 리안전도사로부터 선교 보고가 있었습니다. “미얀마의 상황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양곤으로 가는 길에는 여전히 군인들의 검문소들이 많고 그곳을 통과할 때마다 군인들에게 돈이나 귀중품들을 빼앗깁니다. 오토바이 키는 압수를 당하고 돈을 내지 않으면 그 키를 돌려받지 못합니다. 좋은 오토바이는 아예 빼앗깁니다. 그런 일이 1년 내내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선교비를 수령하기 위해서 양곤으로 갈 때는 메얀청에서 차를 렌트해서 낮에 총알처럼 갔다가 옵니다. 6개월 전에 40 kg짜리 쌀 한 포대가 40,000 잣트였는데 지금은 90,000 잣트가 되었습니다. 모든 물가가 두 배로 폭등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한 긴급한 상황 속에서 기쁜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리안의 선교 보고를 받았을 때, 제 머릿속에 제일 먼저 떠올랐던 모습이 바로 그 “전장에 핀 하얀 꽃”이었습니다. 오늘은 메얀청에도 핀 그 아름다운 꽃 이야기를 전해 드리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