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이
지난 금요일 폭설 속에서 겨우 방학에 들어갔다. 이번주는 집에 있다. 교감샘과 주마다 번갈아 근무한다. 월요일 치과에 가서 어금니 뺀 자리에 임플란트 수술을 했다. 해본 적이 있기 때문에 미리 여러 준비를 했으나 역시 떨리고 입옆 찢어지고 드르륵 전동 기계 소리 후유증이 뒤따르는 것은 여전하다. 3일째 마지막 약봉투만 남으니 조금씩 마음이 편해진다.
이빠진 곳에 뭔가 이물질이 박혀 삼일 동안 온 정신을 빼앗기다 겨우 정신을 차릴 즈음, 왜 덜덜덜 팽이, 끝까지 살아남기 위해 애쓰던 팽이가 이른 새벽부터 떠올랐는지 모르겠다.
어릴 적 팽이치기는 딱지, 구슬과 더불어 가장 즐겼던 놀이다. 팽이 윗꼭지에서 시작되어 내려온 줄을 팽이 못에 걸어 팽팽하게 돌려 걸 때 그 떨림과 설레임은 동글동글 한 바퀴씩 돌아 감겨 올라갈 때마다 더해진다. 내 차례에 맞게 팽이를 들어올려 던졌다가 어느 순간 줄을 잡아당길 때 뾰족하면서도 부드러운 감을 놓치지 말아야 팽이는 땅바닥에 강하면서도 부드럽게 내려앉는다. 이 두 단계가 잘 마무리 되었을 때 팽이는 빠르고 강한 모습을 보여준다. 개구리처럼 뛰어올라 다른 팽이 쪽으로 가까이 가고, 서로 세게 부딪혀 박치기도 하다 보면 어느새 두 세개 팽이만 살아남는다.
이제부터는 강하게 꺾어 줄을 휘어 감거나, 던졌다가 부드럽게 잡아 당길 때처럼 세 번째 떨릴 때다. 최대한 부드럽게 줄을 돌고 있는 팽이에 감아 사르르르 당겨준다. 줄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다. 그저 내가 아닌 팽이가 도는 속도, 점점 힘이 빠져 넘어질 수 밖에 없는 팽이의 마지막과 함께 난 있다. 팽이가 된다. 설사 옆에 있던 다른 팽이가 더 오래 살아남는다 해도 서운하지 않다. 팽이가 되었던 그 순간이 나에게 남이 있고, 이미 그 마음을 담아서 다시 팽이줄을 감고 있으니까.
그 땐 그 팽이판이 내 삶의 전부였다. 문득 교육 실험을 할 수 있는 교육판은 왜 없을까 그려본다. 없어지는 학교도 많은데 가겠다는 교사, 교장, 행정실장 신청 받아서 순환보직제도 해보고, 먼거리수업과 캠퍼스형 협력학교도 해보고, 유초중연계교육과정도 운영해보고, 기초교육과정외 선택형 교육과정도 해보고, 학생온배움학교도 해보고, 도시형 학교 안 학교도 해보고 해볼 판을 확 열어줄 수는 없는 것인가. 기초기본만 필수로 준다면 할 일이 참 많을 텐데. 뭐 하나 있으면 자꾸 일반화 한다고 전체에 강요하지 말고 저마다 시도할 판을 열어주면 할 사람들은 다 한다. 그래야 학생도 교사도 팽이 줄을 강하게 감아쥘 때와 부드럽게 풀 때를 깨우치게 된다. 어찌보면 이 깨우침 체험이 배움이 아닐까.
어디서 우린 아니 난 다시 줄을 감아야 할까.
내가 있던 판을 돌아보며 정리할 판, 펼칠 판부터 잘 살펴야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