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가 없으십니까? 괜찮습니다. 양심을 따라 살면 됩니다!”
-현 교황 프란치스코-
가끔 사람들은 사는 것이 매일 작은 전쟁을 치르는 것과 같다고 푸념을 한다. 왜 그럴까? 정치인들, 회사 사람들, 정부 단체 사람들, 민간 기관의 사람들, 학생회나 써클 사람들, 연인들, 부부들 등 인간이 무리를 지어 살아가는 곳에서는 “갈등” “다툼” “싸움”이 발생한다. 그런데 싸움은 왜 할까? 아마도 가장 일반적인 이유는 사람들이 “공적인 선이나 목적”을 위해서가 아니가 각자 “사적인 목적이나 이익”을 위해서 대화나 회의나 토론을 하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 말해 각자 자기이익을 구하기 때문에 ‘이기주의’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견해가 다르다고 해도 목적이 같다면, 크게 싸울 일은 없을 것이다. 나의 이익과 직접적으로 관계된 일이 아니라고 한다면, 굳이 얼굴을 붉혀가며 나의 견해를 관철시켜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만일 사람들이 항상 개인적인 이익보다는 ‘공익’을 먼저 추구한다면, 크게 싸울 일은 없을 것이며, 쉽게 합의나 일치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무엇이 ‘공익’ 혹은 ‘공동의 선’인가 하는 것은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에게는 이성과 양심이란 것이 있기 때문이다. 이성은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는 힘이고, 양심은 ‘정의’ ‘올바름’ ‘선’을 추구하도록 명하는 내적 힘이기 때문이다. 무엇이 공동의 선인지 알 수 없다고 하는 것, 그 자체가 ‘이기주의’에 깊이 습관화되어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마음을 비운다는 것’은 공동의 일에서 일체의 개인적인 사적 감정이나 이익을 버린다는 뜻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누구나 무엇이 ‘전체’를 ‘다수를’ ‘공익’을 위한 것인지를 알 수가 있을 것이다. 이 경우 침묵을 지킨다는 것, 역시 일종의 소극적 이기주의가 될 것이다.
이는 종교적인 영역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신앙인들은 무엇보다 먼저 신의 뜻을 따르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인간이 어떻게 매 순간 신의 뜻이 무엇인지 알 수가 있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이 경우도 이성과 양심을 따르면 되는 것이다. “종교가 없으십니까, 괜찮습니다. 양심을 따라 살면됩니다!”라고 한 현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은 참으로 공감이 가는 말이다. 종교인들 뿐 아니라 일반인들도 깊이 공감할 수 있는 말인 것 같다. 학자적 양심, 정치적 양심, 공무적 양심, 학생으로서의 양심, 종교인으로서의 양심, 상인으로서의 양심, 은행원으로서의 양심, 의사로서의 양심, 군인으로서의 양심 등의 말들이 많이 통용 되었으면 좋으련만! 그렇다면 한국사회가 싸움이 줄고 보다 살기좋은 사회가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