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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이상국전집 제1권
●고부(古賦) 6수(首)
○외부(畏賦)
어떤 독관 처사(獨觀處士)란 분이 집에만 들어앉아 사는데 늘 무슨 두려움이 있는 듯이 자기
모습을 돌아보고 두려워하며, 그림자를 돌아보고 두려워하고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 모조리
두려워한다. 충묵 선생(沖黙先生)이 그에게 찾아가 그런 이유를 물었다. 처사(處士)는 대답하기를,
“이 넓은 천지에서 무슨 동물인들 두려움이 없겠느냐? 뿔 달린 놈, 이 [齒] 가진 놈, 날짐승,
길짐승, 굼틀거리기도 하고 법석대기도 하는 온갖 동물들이 한없이 많은데 모두 제 생명을 아껴
자기 유(類)가 아닌 것을 보면 다들 두려워한다. 새는 하늘에서 매를, 물고기는 물에서 물개를,
토끼는 사냥개를, 이리는 물소를, 사슴은 담비를, 뱀은 돼지를 두려워하고 가장 사나운 호랑이와
표범도 사자를 만나면 피해 도망친다. 왜 이런 따위가 그토록 많은지 이루 다 적을 수 없다.
미물은 본래 그렇다 하더라도 사람 역시 두려움이 있기 마련이다.
제일 높은 자가 임금이건만 그도 오히려 하늘을 두려워하며 공경한 모습과 엄숙한 마음을 갖고
밤낮으로 조심한다. 그러나 또 임금과 신하의 사이란 마치 마루와 섬돌 같지만 섬돌에서 땅까지
가려면 높낮이가 아주 동떨어지게 멀다. 낮은 이는 높은 자를, 뒤떨어진 자는 앞선 이를 두려워
하기 마련인데 한 자 한 치쯤 되는 정도일지라도 꼭 서로 따지게 되므로 두렵게 여기지 않는
이가 없다.
왜 세상 길이 이토록 험난한지 온갖 실마리가 거꾸로 뒤집혀서 머리에 쓸 갓이 신발 밑에 들어가
있고 깨진 항아리가 좋은 솥 앞에 놓이고, 절뚝거리는 당나귀가 재빠른 백의(白蟻 주 목왕(周穆
王)의 팔준마(八駿馬)의 하나)와 함께 수레를 끌고, 못생긴 주미(犨糜 진(陳) 나라 추남(醜男))
는 보잘것도 없건만 자도(子都 정(鄭) 나라 미남(美男))와 더불어 자리를 같이한다.
아랫사람은 방자하여 윗사람을 업신여기고, 아첨하는 무리는 가까이 붙어 어진이를 멀리하며,
찬피(鑽皮) 한다는 비방이 날로 성해지고, 석영(射影) 한다는 해독이 널리 번진다.
하물며 나같이 하잘것없는 자질로서 뭇사람이 사는 세상에 태어났음에랴? 저들은 교묘하고 나는
졸렬하며, 나는 겨우 한 가지를 해내는데 저들은 천 가지를 해내므로 가는 곳마다 어려움이 생겨
모두 외도(畏途)가 이루어진다. 아무리 막 달리면서 두려워하지 않으려 해도 열 걸음에 아홉
번은 넘어지게 되니 무서운 생각이 절로 드는데, 두렵지 않을 것인가? 나는 혼자 우뚝 높이 서서
세속의 무리를 벗어나 저 넓은 곳에 가서 나대로 놀고 싶다. 자네는 이것을 어떻게 여기는가?”
하니, 충묵 선생은 거만한 모습으로 의자에 기대앉아 웃으면서 이르기를,
“나의 생각은 이와 다르다. 하늘의 위엄도 나는 두렵지 않고 제왕(帝王)의 귀함도 나는 두렵지
않으며 포악한 자객(刺客)이 큰소리 치는 것도 나는 두렵지 않고 사나운 호랑이가 으르렁거림도
나는 두렵지 않다.”하였는데, 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처사는 깜짝 놀라 일어나며,
“자네는 너무도 자신을 헤아릴 줄 모르는군. 왜 말을 그리 쉽게 하는가. 저 밝고 큰 상제(上帝)는
사람의 선악(善惡)을 굽어 살피신다. 혹 진노(震怒)하면 우뢰와 번개가 갑자기 일어나고 거센 바람
을 휘몰아치므로 모래가 날리고 돌이 달아나며, 바다는 장님이 되고 산은 귀가 먹으며, 벼락을
때리기도 하고 또 번쩍이기도 한다. 칼날 같은 번개가 뻗칠 때는 하늘이 쫙 찢어지는 듯하고 땅이
쩍쩍 갈라지는 것 같다.
몰아치는 육정(六丁)이 위엄을 더한다면 아무리 주 성왕(周成王)일지라도 넋을 잃게 될 것이며
모두 숟가락을 떨어뜨리며 어쩔 줄을 모를 텐데 누가 능히 기둥에 기대서서 꿋꿋이 버틸 건가?
이는 바로 하늘의 위엄이 아주 무섭다는 것이다. 자네가 두렵게 여기지 않는다는 것은 무슨 이유
인가?”
하니, 선생은 이르기를,
“정도(正道)를 지키고 남을 속이지 않으면 하늘도 나에게 위엄을 부리지 않을 것인데 내가 왜
이것을 두렵게 여기겠는가?”하였다. 처사는 이르기를,
“금상(金床)이 번쩍이고 악좌(幄座)가 삼엄한데, 야경군(夜警軍)은 요도(徼道 순경(巡警) 도는
사잇길)에서 순을 돌고 우림위(羽林衛 임금을 호위하는 군사)는 쌍봉궐(雙鳳闕)에 벌여서서 삼성
(參星)의 깃발 정성(井星)의 도끼를 메고 서 있다가 출입에 경필(警蹕)한다. 왼쪽의 헌대(憲臺)
는 철관(鐵冠)을 쓰고 오른편 집법관(執法官)은 단필(丹筆 죄상을 붉은 색깔로 기록 한 데서 나온
말)을 잡았는데 엄숙한 모습으로 꼬치꼬치 물을 때면 온갖 벼슬아치 차례로 달려온다.
이렇게 되면 서릿발 같은 호령이 느닷없이 내려지고 천둥 같은 꾸지람이 잇달아 이르므로 한 가지
의 일이라도 삼가지 않을 경우에는 온 집안이 멸망하는 화가 닥친다. 이는 천자(天子)의 위엄이
아주 무섭다는 것인데, 자네는 또 이것도 두렵게 여기지 않는가?”
하니, 선생은 이르기를,
“대개 임금은 높고 신하는 낮아 그 형세가 마치 갓과 신처럼 떨어져 있다. 밑에 있으면서 위를
섬길 때는 법도에 꼭 맞게 행동을 하여 만나면 꿇어앉고 절할 때는 고개를 숙여야 한다.
무슨 명령을 들으면 몸을 더욱 구부려 맡은 일을 잘 지켜 나가야 한다. 이와 같이 하면 임금이
어찌 위엄이 되겠으며 신하가 어찌 두려움이 있겠는가?”
하였다. 처사는 이르기를,
“만약 분육(賁育 옛날 역사(力士)인 맹분(孟賁)과 하육(夏育)) 같은 무리가 성을 내고 이리처럼
덤비며 한 번 외치는 고함 소리에 바람이 부딪치고 구름이 휘날리는 듯하다. 대낮에 사람을 찔러
죽이고 온 저자에 피가 흘러도 남은 위엄이 그치지 않아서 날아 솟을 듯이 제멋대로 날뛰면서
찢어질 듯이 부릅뜬 눈은 별처럼 반짝이고 바짝 세운 머리칼은 가시처럼 뻣뻣하다. 발로 호랑이를
짓밟고 가죽을 벗기기도 하며 맨손으로 곰을 잡아 다리를 찢기도 하는데 항장(項莊)의 칼춤도
하찮게 여기고 인생(藺生)이 기둥을 흘김도 가소롭게 여긴다. 이는 자객(刺客)의 사나운 짓인데
자네는 또 이것도 두렵게 여기지 않는가?”
하니, 선생은 이르기를,
“얼굴에 침을 뱉으면 저절로 마르기를 기다리고, 다리를 벌리고서 그 밑으로 나가라면 엉금엉금
기어나갔다는 것처럼 마음을 텅 비워 한 세상을 살아가면서 내가 남을 거스르지 않으면 저들이
왜 나에게 성낼 리가 있겠는가? 이도 족히 두려울 것이 없다.”
하였다. 처사는 이르기를,
“젖 먹이던 범이 굴 밖에 나와 고깃덩이를 혀로 핥으면서 어금니를 갈고 발톱을 짝 벌리며 입
에서 내는 울음소리는 한없이 사납다. 한마디 ‘으흥’ 소리에 바람이 절로 일어나고 껌벅이는
눈초리에 번개가 번쩍인다. 날개가 없어도 나는 듯이 만리 길을 순식간에 달려가니 아무리 범 잘
잡는 풍부(馮婦)일지라도 정신을 잃고 기가 꺾일 것이다. 이는 사나운 호랑이가 으르렁거린다는
것인데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니, 선생은 이르기를,
“자부심도 있고 대비도 충분하니 이것도 족히 놀랄 것이 없다.”
하였다. 처사는 이르기를,
“그러면 자네가 두려워하는 것은 과연 무엇이며, 있다는 것인가 없다는 것인가?”
하니, 선생은 이르기를,
“난들 어찌 두려움이 없을 수 있겠는가? 내가 두렵게 여기는 것은 남에게 있지 않고 바로 내게
있다네. 턱 위 코 아래에 안에는 이가 있고 겉에는 입술이 있는데 닫혔다 열렸다 하는 것이 마치
문과 흡사하다. 먹는 음식도 여기를 통하여 들어가고, 지껄이는 말도 여기로부터 나오게 되니
없어서는 안 될 것이지만 또한 두렵게 여기지 않을 수 없는 자리이다. 옛날 금함구(金緘口)란 명
(銘)을 거울삼을 만하고 또 원속이(垣屬耳)란 시(詩)도 눈여겨 봐야 할 것이다.
한마디 말, 한순간 침묵이 영예와 수치의 원인이 된다. 이기(食其)가 이 때문에 삶겨서 죽었고,
오피(俉被 한 고조(漢高祖) 때의 변사)도 이 때문에 사형을 당했으며, 미형(彌衡)도 이 때문에
몸을 망쳤고, 관부(灌夫)도 이 때문에 기시(棄示)의 형벌을 당하였다. 그러므로 성인(聖人)은
남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직 자기의 입을 두렵게 여겼다. 진실로 이 입만 삼가면 한 세상을 살아
가는 데에 뭐 어려움이 있겠는가.
지금 처사는 혀를 놀려 하는 말이 칼날처럼 날카롭고 가루처럼 쏟아져 세상길이 험난하다느니
평탄하다느니, 남의 말이 옳으니 그르니 잘도 비평하니 참으로 말을 잘한다고 할 수 있고 또한
재주도 특이하다 하겠다. 그러나 대개 입이란 몸을 망치므로 말을 잘못하면 화가 따른다. 자네가
이러고도 한 세상에 화를 면하려고 함은 마치 도망쳐 숨은 자를 북을 치면서 찾는 것과 똑같은
셈이다. 아무리 빨리 달려가 찾고자 한들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그런데 지금 처사는 겉으로는
두렵다 말하나 실은 두려움이 없으며 화를 싫어하면서도 화를 스스로 불러들이고 있으니 나는
적이 가소롭게 여긴다.”
하니, 처사는 이 말을 듣고 앉은 자리를 조금 물러나 한참 머뭇거리다가 정신을 가다듬고 낯빛을
고치고 말하기를,
“내가 불초하긴 해도 지금 선생의 가르침을 들으니 환히 깨닫는 마음이 마치 멀었던 눈을 뜨고
밝은 햇빛을 본 것과 같다.”하였다.
[주D-001]찬피(鑽皮) : 지나치게 사랑한다는 비유. 《당서(唐書)》위징전(魏徵傳)에 “지금 형벌
과 상이 공정치 못하여 좋아하는 자에게는 가죽을 뚫고 속털이라도 내어 줄 듯이 아껴
주고, 미워하는 자에게는 때를 씻고 흉터를 찾아내듯이 너무 가혹하게 한다.” 하였다.
[주D-002]석영(射影) : 물여우의 별칭으로 남모르게 사람을 해친다는 비유이다. 《시경(詩經)》
소아(小雅) 하인사(何人斯)편에 “저 사람은 도깨비도 되었다가 또 물여우도 되었구나.”
하는 주에 “이 물여우는 입에 모래를 머금고 사람의 그림자에 뿜으면 그 사람에게 바로
피부병이 생긴다.” 하였다.
[주D-003]외도(畏途) : 세상 인심이 험난한 길처럼 두렵다는 비유. 《관자(管子)》계편(戒篇)에
“군자라야 무거운 짐을 지고 외도를 넘어 끝까지 가는 일을 해낼 수 있다.” 하였다.
[주D-004]육정(六丁) : 둔갑술(遁甲術)을 부릴 때 부른다는 신장(神將)의 이름.
[주D-005]주 성왕(周成王)……것이며 : 주 성왕 때에 큰 바람이 불고 폭우(暴雨)가 쏟아지고 우레
가 쳐서 큰 나무가 뿌리째 뽑히고 들의 벼가 모두 쓰러지니 성왕이 놀라 쫓겨 나가 있던
주공(周公)을 도로 맞아들였다 한다.
[주D-006]숟가락을 떨어뜨리며 : 유비(劉備)가 조조(曹操)와 술을 마시며 천하의 영웅을 논하다가
“지금 천하 영웅은 그대와 나뿐.”이란 조조의 말에 놀라 손에 들었던 숟가락을 저도
모르게 떨어뜨렸는데, 마침 우레 소리가 요란하였으므로 “천둥소리에 혼이 났군.” 하고
핑계했다. 《三國志演義》
[주D-007]기둥에……버틸 건가 : 진(晉) 나라 하후현(夏侯玄)이 기둥에 기대어 글을 짓는데, 벼락
이 기둥을 때려 옷에 불이 붙었는데도 안색을 변하지 않고서 글짓기를 그치지 않았다한다.
[주D-008]쌍봉궐(雙鳳闕) : 지붕 위에 황금으로 봉황의 장식을 한 두 궁궐. 《한서(漢書)》동방
삭전(東方朔傳)에 “폐하께서 성 안이 좁다 하여 왼편에는 봉궐, 오른편에는 신명전(神明
殿)을 짓도록 하고 천문만호(千門萬戶)라 했다.” 하였다.
[주D-009]출입에 경필(警蹕) : 천자(天子)가 나갈 때에는 경(警)이라 외치고, 들어올 때에는 필(蹕)
이라 외쳐서 진을 트고 행인(行人)을 금하는 것을 말한다.
[주D-010]항장(項莊)의 칼춤 : 항장은 초(楚) 나라 항우(項羽)의 종제로 홍문연(鴻門宴) 때 칼춤
을 추면서 한 패공(漢沛公)을 습격하려 했으나 항백(項伯)에게 저지당하였다.
[주D-011]인생(藺生)이 기둥을 흘김 : 전국(戰國) 때 조(趙) 나라 인상여(藺相如)가 왕명(王命)
으로 화씨벽(和氏璧)을 가지고 진(秦)의 15성(城)과 바꾸려 진(秦) 나라에 가서 구슬을
소왕(昭王)에게 바쳤더니 왕이 받고 성을 줄 뜻이 없으므로, 속임수를 써 상여가 구슬을
도로 받아들고 이내 몇 걸음 물러나 돌기둥을 흘겨보며, “억지로 이 구슬을 빼앗으려면
이 구슬이 신(臣)의 머리와 함께 기둥에 부딪쳐 부서지리이다.” 하였다.
《史記 藺相如傳》
[주D-012]얼굴에……기다리고 : 당(唐) 나라 누사덕(婁師德)은 성질이 너그러웠는데, 그 아우가
대주(代州) 원으로 나갈 때, 아우에게 묻기를 “처신(處身)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였더니 대답하기를 “다른 사람이 낯에 침을 뱉더라도 손으로 닦고 대항하지 않겠습니다.”
하였더니, 누사덕은 “그것은 안 될 말이다. 닦으면 그 사람이 노할 것이니 그대로 말려야
한다.” 하였다. 《新唐書 婁師德傳》
[주D-013]다리를……기어나갔다 : 한신(韓信)이 불우하던 시절 함양(咸陽)을 지날 때 시정배(市井輩)
들이 위협하며 “죽든지 내 바짓가랑이 밑으로 기어 나가든지 하라.” 하니, 그들의 바짓
가랑이 밑으로 기어 나갔다 하였다. 《史記 淮陰侯傳》
[주D-014]풍부(馮婦) : 전국 시대 진(晉) 나라의 사람으로 범을 맨손으로 잡을 정도로 기운이 세고
만용(蠻勇)이 있었으나 뒤에 얌전한 선비가 되었다. 뒷날 풍부가 들에 나가니 뭇사람들이
범을 쫓는데 범이 바위를 등지고 있어 감히 잡을 사람이 없었다. 이때 풍부가 팔을 내두
르며 수레에서 내려왔다. 뭇사람들이 다 기뻐했으나 선비들은 웃었다. 《孟子 盡心下》
[주D-015]금함구(金緘口) : 함부로 말하지 않는다는 비유. 《공자가어(孔子家語)》관주(觀周)에
“후직(后稷)의 사당 앞에 금으로 만든 인형이 있는데 입을 세 군데나 꿰매었고 그 등에
새겨진 명(銘)이 있는데 ‘옛날 말을 삼간 사람이다.’ 했다.” 하였다.
[주D-016]원속이(垣屬耳) : 남의 말을 엿듣는다는 비유.《시경(詩經)》 소아(小雅) 소반(小弁)에
“군자(君子)는 말을 경솔히 하지 말라. 저 담에도 귀가 있다.” 하였다.
[주D-017]이기(食其) : 한 고조(漢高祖) 때 변사(辯士) 역이기(酈食其). 제(齊)를 달래어 70여 성
(城)을 항복하게 했는데, 한신(韓信)이 제 나라를 치자 제왕은 역이기가 자기를 속였다
하여 끓는 물에 삶아죽였다.
[주D-018]미형(彌衡) : 동한(東漢) 평원인(平原人)으로 글재주가 있었으나 성격이 강하고 오만
하였다. 공융(孔融)이 그를 조조(曹操)에게 천거했는데 조조가 그를 보고자 하였을 때
병을 핑계하여 나아가지 않았다. 그 뒤 재주를 믿고 방자하여 조조를 모욕하고 쫓겨나
황조(黃祖)에게 의지하여 앵무부(鸚鵡賦)를 지어 칭찬도 받았으나 끝내 황조의 비위에
거슬려 피살(被殺)되었다.《後漢書 彌衡傳》
[주D-019]관부(灌夫) : 한대(漢代)의 무장(武將)으로 무제(武帝) 때 아버지 관맹(灌孟)을 따라
오(吳) 나라를 쳐 용맹을 떨쳤으나 뒤에 실세(失勢)한 두영(竇嬰)과 날마다 교유했으며,
사람됨이 호협하고 강직하며 술주정을 잘했다. 뒤에 승상 전분(田蚡)의 좌석에서 주정을
부려 좌중을 욕보이자 전분이 노하여 그의 전 가족을 처형하였다. 《前漢書 灌孟傳》
畏賦 001_293a
有獨觀處士。杜門端居。常若有畏。顧形而畏。顧影而畏。擧手動足。無一不畏。冲默先生造焉。
問其所以。處士曰。堪輿之內。物孰無畏。戴角揷牙。翼翍足趡。蠕蠕蠢蠢。厥種繁熾。慳生嗇命。
各讋非類。鳥畏鷹於天。魚畏獺於水。兔畏獹。狼畏兕。鹿脅于。蛇愯于豕。猛莫猛兮虎豹。遇狻猊而
奔避。何玆類之孔多兮。羌難覼縷而備記。物固然矣。人亦有焉。莫尊者君。猶畏上天。祇栗齊肅。
夙夜以虔。惟君惟臣。若堂陛然。由陛及地。窊崇亦懸。卑者畏高。後者畏先。揆尺計寸。莫不畏旃。
胡世路之嶮嶬兮。紛理緖之倒顚。冠苴履兮在底。甈先鼎兮居前。甈音五列反 跛驢踸踔兮將白蟻共軛。
犨麋兮與子都同筵。下慢而凌上。佞近而踈賢。鑽皮之謗日熾。射影之毒遐羶。矧予瑣屑之微質兮。
跡有衆之攸寰。彼巧我拙。我一彼千。踏地生梗。皆成畏途。苟縱驅而不懼兮。殆十步而九擠。懍乎乎。
能不畏乎。吾將介立高蹈。背耦離徒。遊乎壙埌之墟。子以爲何如。冲默先生傲然憑几而笑曰。僕則異
於是。上天之威。吾不畏矣。萬乘之貴。吾不畏矣。暴客攘臂。吾不畏矣。猛虎切齒。吾不畏矣。言未
旣。處士愕然起曰。過矣。子之不自揆也。何談之容易哉。於皇上帝降監善惡。設或震怒。雷霆暴作。
烈風間之。飛沙走石。盲海聾山。激薄忽霍。電刃所掣。遺光儵爚。劃若天裂。剨似地拆。擊六丁以
增威。雖周成猶褫魄。皆失匕以罔圖。孰倚柱而自若。是上天之威赫赫也。子言無畏。何也。先生曰。
守正不欺。則天不吾威。吾何畏于玆。處士曰。金床晃晃。幄座密勿。嚴更巡于徼道。羽林列於雙闕。
參旗井鉞。出警入蹕。左憲臺兮凜鐵冠。右執法兮秉丹筆。肅肅詻詻。百辟咸秩。於是振雪霜於威怒。
馳風雷於咄叱。一有不恪。族赤禍溢。是天子之威栗栗也。子亦無畏耶。先生曰。夫君尊臣卑。勢若
冠屨。居下事上。趨蹌中矩。望則跽脚。拜則頓首。聞命益僂。當局善守。若此則君何威爲。臣何畏
有。處士曰。若夫賁育之輩。怒而狼顧。一啑一㖃。風激雲騖。白日刺人。血流市路。餘威未渫。
飛揚跋扈。目欲裂兮星逬。髮直衝兮棘竪。足踏虎兮截皮。手拉熊兮裂股。小項莊之劒舞。卑藺生之
睨柱。此刺客之強暴也。子亦無畏耶。先生曰。唾面待乾。出胯俛就。虛心而行乎世。我不彼忤。彼何
自怒哉。此亦無足畏也。處士曰。乳虎出穴。擇肉䑛血。淬牙磨爪。其聲鎗䶪。一嘯兮風生。一䂄兮電
瞥。不翼而飛。萬里一輟。雖馮婦之善搏。亦神喪而氣奪。此猛虎之咆勃也。子其何如。先生曰。有挾
有設。此不足愕也。處士曰。然則子之所畏。果何物乎。有乎無乎。先生曰。僕亦安得而無乎。僕之所
畏。不在諸物。特關於己。俯頷戴鼻。中齟外哆。一闔一闢。維門之似。物入由是。聲出由是。誠不可
不有。而亦不可不畏之地也。銘可鑑兮金緘口。詩可觀兮垣屬耳。一語一默。榮辱所自。食其以之而烹。
伍被以之而死。禰衡以之而敗身。灌夫以之而棄市。是以。聖人不畏於人。唯畏於口。苟愼其口。於行
世乎何有。今處士騁舌吐辭。鋒攢屑霏。談世路之嶮易。議人間之是非。誠辯則辯矣。奇而又奇。然口
能覆身。言出禍隨。子以此求免於時。亦猶擊鼓而求亡者也。其何益於迅馳哉。僕竊笑處士聲其畏而實
無有也。惡其禍而祇自招之。處士聞之。避席逡巡。聳然作貌曰。小子不肖。今聞先生之敎。曉然若披
肓而見大曜也。
○몽비부(夢悲賦)
저 예쁘게 생긴 왕손(王孫 귀공자(貴公子)의 칭호)은 훌륭한 집안에 태어났지. 뛰어난 풍류(風流)
도 사랑스럽고 윤택한 얼굴도 옥과 같은데, 나갈 땐 높은 수레, 들어올 땐 화려한 집, 여의주
(如意珠)를 들어 산호(珊瑚)를 부수고도 마음속에 조금도 거리낌이 없네. 뒷방에 고운 여자
비취잠(翡翠簪) 꽂고 가죽 신 끌면서 나와 찬란한 차림으로 번갈아가면서 모실 때 쨍그랑 울리는
패옥(佩玉) 서로 부딪친다.
눈에 드는 아리따운 태도와 귀에 익은 거문고와 피리 소리에 겨울철 찬 바람에도 추운 줄 모르고
여름철 찌는 듯한 날씨에도 더운 줄 모르니 이 세상 인생살이에 온갖 곤궁과 걱정과 슬픔이 있
다는 것을 어찌 알랴? 봄 날씨가 이미 따뜻해지면 꽃다운 향기에 마음이 감동되어 여러 손님과
친구를 좋은 집에 초청하면 옥으로 만든 잠(簪)을 꽂고 진주로 만든 신을 끌면서, 금으로 만든
술잔으로 좋은 술 부어 마시고 모두들 정신이 없도록 취한다오.
해가 저물면 녹계(綠桂 향(香)의 일종으로 불을 밝히는 데 씀)를 태우면서 흩어질 줄 모르고
끝없이 놀고 있네. 갑자기 봄밤이 늦어지자 넘어가는 달빛이 창을 정답게 엿보는데 문득 몸이
나른하고 정신이 피곤하여 앉은 자리에서 그대로 잠이 들었네. 훈훈한 박산 화로는 향냄새 내뿜
는데 휘장이 드리워진 채 비단 이불 덮고 있다. 아침해가 벌써 떠올랐어도 우레처럼 코를 골면서
잠만 자다가 갑자기 또 잠결에 꿈을 꾼다.
저 허허벌판 무인지경(無人之境)에 날아들어가 사방을 돌아보아도 언덕도 마을도 보이지 않는데
깊은 강은 물결이 절로 일어나고, 관목(灌木) 떨기가 서로 우거졌는데 풀빛은 모두 시들어지고
높은 바위는 금방 떨어질 듯하다. 침침한 해가 지려 하는데 깜깜한 연기는 자욱하고 원숭이가
마주 울며 서로를 슬퍼하며, 뭇새도 지저귐을 그칠 줄 모른다. 쓸쓸한 마음에 집 생각이 나
빨리 돌아가려고 해도 앞길이 어딘지 모르겠다.
생각하노니 빈어(嬪御 잉첩(媵妾))들 모두 어디에 있는지. 푸른 소매 가리고 눈물만 닦으면서,
높은 언덕 올라가 멀리 바라보아도 온갖 봉우리만 이리저리 얽혀져 있다. 더부룩한 숲 헤치면서
험악한 길로 올라가니 맹수(猛獸)가 뛰어나와 덮칠까 무섭구나. 그만 되돌아서서 언덕을 향해
가니 옛무덤만 다닥다닥 연달아 있는데, 위에는 뛰는 여우와 숨은 토끼들이 끼리끼리 모여서
날뛴다.
넘어진 비석(碑石)을 내려다보니, 옛날에 잘살던 귀공자(貴公子)들이다. 노래하고 춤추던 집들
누구에게 물려주고 이 산기슭의 한 무덤이 되었을까? 부귀(富貴)도 뜬구름과 같아 옥 같던 얼굴
찾을 곳이 없도다. 이 사람 슬퍼하면서 방황하노라니 눈물이 절로 나고 코끝이 시큰해진다.
발바닥이 부르트도록 돌아갈 곳이 없자, 배고픔과 목마름이 번갈아 찾아오는구나.
갑자기 기지개 켜다가 꿈을 깨니 밝은 창문이 눈앞에 환히 보인다. 의자에 제대로 누워 있는데
어떻게 한바탕 먼 놀이를 했었을까? 잠깐 동안 꿈을 꾸어 영욕(榮辱)이 서로 교차됨을 깨달았네.
왕손(王孫)이여! 이것을 꼭 마음에 새겨서 빈천(貧賤)하여 떠다니는 사람들의 시름을 길이길이
잊지 마시오.
[주D-001]여의주(如意珠)를……부수고도 : 진(晉) 나라 부호(富豪) 석숭(石崇)이 왕개(王愷)와
서로 호화를 다투어 자랑하는데, 왕개는 무제(武帝)의 외삼촌이므로 무제가 왕개를
자주 도와 주었다. 한번은 무제가 왕개에게 한 자가 넘는 산호수를 내려주었다.
왕개가 석숭에게 자랑하였더니 석숭은 여의주로 그 산호를 때려 부쉈다. 왕개가 깜짝
놀라니 석숭이 자기 집에 있는 석 자가 넘는 수십 개의 산호수를 가져다 보여 왕개를
더욱 놀라게 하였다. 《晉書 石崇傳》
[주D-002]옥으로……만든 신 : 구슬로 장식한 신을 말하는데, 춘신군(春申君)의 객(客)이 3천여
명인데, 그 상객(上客)은 다 구슬신을 신었다 한다. 《史記 春申君傳》
夢悲賦 001_294c
有美王孫。蟬聯茂族。邈風流之可愛兮。顔又澤腴兮如玉。出擁高盖。入處華屋。舞如意兮碎珊瑚。
曾何蔕兮心曲。後房蛾眉簪翠曳縠爛盈盈兮。更侍琤然珠佩之相觸。目倦乎華靡。耳慣乎絲竹。冬而至
於凉。不知其凝嚴。夏而至於溫。不知其暑溽。又安知人生有羈窮困躓憂愁哀怨之屬哉。當春陽之旣舒
兮。感芳華之蕩意。召賓友於華堂兮。玉爲簪兮珠爲履。酌芳醑兮行金鍾。莫不濡首而霑醉。焚綠桂
兮繼頽光。尙歡樂之未已。倐春宵之易闌兮。落月窺窓兮嫵媚。忽體倦以神疲。遂頽然兮就寐。博山熏
兮噴香炷。斗帳垂兮掩綺被。赤羽奮迅登扶桑兮。尙雷鳴而酣睡。於是怳然惚然夢遊乎廣漠之墟無人之
地。四顧茫茫不見阡里。深江自波。灌木叢倚。野草少色。危石如墜。日掩掩兮沈紅。煙冥冥兮疊翠。
猿哀哭兮相吊。衆鳥啾啾兮不止。慘然思家欲亟還兮。迷不知路何自。念嬪御兮安在。
掩翠衫而拭淚。登崇阿以延佇兮。鬱千峯之邐迤。披
蒙茸兮尋崎嶇。慮髬髵之攸庇。
拂頽碑以俯窺兮。伊昔綺紈之公子。歌堂舞館屬何人兮。爲此一丘兮山之趾。富貴兮如浮。瓊華兮易悴。
吊斯人以彷徨兮。益凄切以酸鼻。足累繭兮無攸歸。飢與渴兮交至。俄欠伸以忽寤兮。喜窓櫳之猶是。
顧尙臥於一床。夫何爲此遐遊。以須臾之一夢。悟榮辱之相酬。王孫兮可以銘肌。永不忘貧賤羇離者之憂。
○방선부(放蟬賦)
저 교활한 거미는 그 종류가 아주 많구나. 누가 너에게 교활한 재주 길러 주어 그물 만들 실로
둥근 배를 채웠는가. 어떤 매미가 거미줄에 걸려 처량한 소리를 지르길래 내가 차마 듣다 못하여
놓아 주어 날아가도록 했더니 옆에 서 있던 어떤 자가 나를 나무라면서,
“오직 이 두 미물(微物)은 다 같이 하찮은 벌레들인데 거미가 자네에게 무슨 손해가 있으며
매미는 자네에게 무슨 유익이 있기에 오직 매미만 살리고 거미는 그만 굶겨 죽이려 하느냐?
이 매미는 자네를 고맙게 여길지라도 저 거미는 반드시 억울하게 생각할 것이다.
매미를 놓아 보낸 것에 대해서 누구든 자네를 지혜롭다 하겠는가?”
하였다.
나는 이 말을 듣고 처음에는 이마를 찡그리고 대답조차 하지 않다가 얼마 후에 한마디의 말로써
그의 의아심을 풀어주되,
“거미란 놈은 성질이 욕심을 내고, 매미란 놈은 자질이 깨끗하다. 배부르기만 구하는 거미의 욕심
은 채우기가 어렵지만은 이슬만 마시는 매미의 창자에서 무엇을 더 구하겠는가? 저 탐오(貪汚)한
거미가 이 깨끗한 매미를 위협하는 것을 내가 차마 볼 수 없기 때문이었다.”
하였다.
왜 매우 가는 실은 입으로 토해 내어 그물을 만들어 내는지 아무리 이루(離婁) 같은 밝은 눈으로도
알아보기 어려운데, 하물며 이 지혜롭지 못한 매미로서 어떻게 자세히 엿볼 수 있겠는가? 어디로
날아가려고 하던 차에 갑자기 그 그물에 걸려서 날개를 쳐도 더욱더 얽히기만 하였다.
제 이익만 구하려는 청승(靑蠅)들은 온갖 냄새를 따라 비린내만 생각하고 나비도 향기를 탐내어
마치 미친 듯이 바람을 따라 오르내림을 멈추지 않는다. 그러다가 그물에 걸릴지라도 누구를 원망
하랴. 본래 그 허물이 너무 탐내고 구하려는 욕심 때문인데, 너는 오직 남과 더불어 아무 다투는
일이 없었는데 어떻게 이 악독한 그물에 걸렸을까? 너의 몸에 뒤얽힌 거미줄을 풀어놓고 너에게
다음과 같은 간곡한 말로 부탁하노라.
“높은 숲을 찾아 잘 가서 아름다운 그늘의 깨끗한 곳을 가려서는 자주 옮기지 말지어다.
이런 거미들이 엿보고 있다. 한 곳에만 오래 있지 말라. 당랑(螳螂)이 뒤에서 노리고 있다.
너의 거취(去就)를 조심한 다음이라야 허물없이 지낼 수 있다.”
[주D-001]이루(離婁)……눈 : 황제(黃帝) 때 눈이 밝기로 유명했다는 사람. 《맹자(孟子)》이루
상(離婁上) 주에 “1백보 밖에 있는 가는 털도 분간했다.” 하였다.
[주D-002]청승(靑蠅) : 쉬파리로 소인에게 비유하는 말. 《시경(詩經)》소아(小雅) 청승에“앵앵
하는 쉬파리 울타리에 앉아 있네. 깨끗한 군자(君子)들은 간사한 말 믿지 마오.”하였다.
[주D-003]당랑(螳螂)이……있다 : 당랑은 버마재비인데, 눈앞에 보이는 이익만 생각하고 뒤에
닥치는 재해는 깨닫지 못한다는 비유. 《설원(說苑)》정간(正諫)에 “매미는 버마재비가
보는 것을 모르고 울기만 하고, 버마재비는 매미를 덮치려고만 하면서 새가 자신을
엿보는 것은 모른다.” 하였다.
放蟬賦 001_295b
彼黠者蛛。厥類繁滋。孰賦爾以機巧。養丸腹於網絲。有蟬見絓。其聲最悲。我不忍聞。放之使飛。
傍有人兮誰氏子。仍詰予以致辭。惟兹二物。等蟲之微。跦於子何損。蟬於子何裨。惟蟬之活。乃蛛之飢。
此雖德君。彼必冤之。孰謂子智。胡放此爲。予初矉額而不答。俄吐一言以釋疑。蛛之性貪。蟬之質淸。䂓
飽之意難盈。吸露之腸何營。以貪汚而逼淸。所不忍於吾情。何吐緖之至纖。雖離婁猶不容晴。矧兹蟲之
不慧。豈覘視之能精。將飛過而忽罥。翅拍拍以愈嬰。彼營營之靑蠅。紛逐臭而慕腥。蝶貪芳以輕狂。
隨風上下而不停。雖見罹而何尤。原厥咎本乎有求。汝獨與物而無競。胡爲遭此拘囚。解爾之纏縛。囑汝
以綢繆。遡喬林而好去。擇美蔭之淸幽。移不可屢兮。有此網蟲之窺窬。居不可久兮。螗蜋在後。以爾謀
愼爾去就。然後無尤。
○조강부(祖江賦) 병서(幷序)
정우(貞祐 금 선종(金宣宗)의 연호) 7년(정우는 4년뿐이니 흥정(興定) 3년인 1219년까지 친 것
이다) 4월에 내가 좌보궐(左補闕)에서 탄핵을 받고 얼마 후에 계양(桂陽 지금의 경기도 부평
(富平)) 원으로 부임하는 길에 조강(祖江 한강(漢江)과 임진강(臨津江)이 합류하는 곳)을 건너
려고 하였다. 이 조강은 본래 물결이 빠르고 세찬데다 마침 폭풍을 만나 온갖 곤란을 겪은 후에
건너게 되었다. 그래서 이 부(賦)를 지어 신세를 슬퍼하고 끝내 마음을 스스로 달래었다.
넓고 큰 이 조강물은 흐린 것이 마치 경수(涇水)와 같아, 칠처럼 검은 빛이 출렁이므로 겁이 나
내려다보기 어렵구나. 여울이 또 거세고도 빠르게 솟구쳐 흐르니 어찌 구당(瞿塘)에 비할 뿐이겠
으랴. 온갖 냇물이 한 곳으로 모여들어 마치 솥에 물이 끓어 솟아오르는 듯하다.
이무기와 악어가 서로 입을 벌리고 침을 흘리며 또 악독한 용이 숨어서 엿보지 않는 줄 어찌
알겠느냐?
여울로 거슬러 올라가 빨리 건너려고 하니, 배가 가는 듯하다가 그만 제자리에 멈추어 있다.
저녁이 아닌데도 사방이 캄캄하고 바람도 불지 않는데, 거센 물결이 일어나 눈 같은 파도가 쾅쾅
바위에 부딪치는 모양은 마치 진(秦)과 진(晉)이 팽아(彭衙 문공(文公) 2년 진후(晉侯)와 진사
(秦師)가 싸운 곳)에서 싸움을 하는 듯하다. 뱃사공은 영서(靈胥)도 업신여기건만, 굽이쳐 흐르는
웅덩이는 오히려 두려워하네. 잠시면 건널 수 있는 곳을 험난하여 이렇게 오랜 시간을 끌게
되었네.
내가 이미 귀양을 가게 되어 이렇게 험한 강물을 만났구나. 외로운 배 물결에 뜨기도 하고 잠기
기도 하는데 장차 어디로 가려고 이런 애를 쓸까. 평평한 언덕에는 풀빛조차 어둑어둑하고 먼
갯벌에는 연기도 시름겹구나. 새소리도 슬픈 듯 짹짹하고 원숭이 울음도 구슬픈데 넘어가는 햇빛
뉘엿뉘엿 누른 구름은 뭉게뭉게, 아무리 오마(五馬)가 영화스럽다 할지라도 나로서 바란 바는
아니었네.
아, 이렇게 멀리 떠나는 길이 옛날에도 어찌 없었으랴. 맹가(孟軻)도 사흘 밤 자고 주(晝)로
떠났고,공구(孔丘)도 노(魯) 나라를 떠나는 걸음이 더디었다네.가의(賈誼)도 낙양(洛陽)의 재자
(才子)였건만 비습(卑濕)한 장사(長沙) 땅에 귀양 갔었다. 성현(聖賢)들도 오히려 이렇게 되었
는데 나쯤이야 뭐 슬플 것이 있으랴? 옛사람의 불우(不遇)에 비교하면 나는 또 전성(專城)으로
인(印)을 찼구나.
그러나 곡산(鵠山 개성(開城) 송악산(松岳山))이 뒤로 점점 멀어지자 서울을 바라보니 마음이
절로 괴롭구나. 벌써 서울을 떠나오니 가까이 보이는 계양(桂陽)이 반갑다오. 일렁이는 배를
물가에 대고 저 바위 언덕으로 올라간다. 누가 나와서 맞이하나. 아무것도 모르는 늙은 아전
(衙前)들이네. 채막(綵幕)은 매우 훌륭하고 붉은 깃발도 찬란하다. 절모(節旄)를 어루만지면서
초주(椒酒) 한잔 들이키는데 횃불이 숲에 비치므로 새가 놀라 날아간다.
헝클어진 머리카락에 슬슬 거니니 바람 설렁설렁 옷자락을 날리네. 험한 강물 아무리 사나워도
나는 벌써 건너왔으니 무서워할 것이 무엇 있겠으며 서울을 떠났어도 오히려 즐길 수 있으니 뭐
돌아가려고 애쓸 필요 있겠는가?
출처(出處)는 맘대로 안 되는 것, 하늘이 내려준 운명을 그대로 즐기면서 선철(先哲)과 같기를
희망해야지.
[주D-001]경수(涇水) : 중국 섬서성(陝西省)에 있는 강으로 그 물이 흐리다. 《시경(詩經)》패풍
(邶風) 곡풍(谷風)에 “경수는 위수(渭水)를 흐리게 만든다.” 하였다.
[주D-002]구당(瞿塘) : 중국 사천성(四川省) 동쪽에 있는 구당협(瞿塘峽)인데 험하기로 유명하다.
[주D-003]영서(靈胥) : 물귀신의 별칭. 좌사(左思)의 오도부(吳都賦)의 “긴 바람을 휘몰고 영서
를 업신여긴다.” 한 주에 “오자서(伍子胥)의 넋을 영서라 한다.” 하였다.
[주D-004]오마(五馬) : 태수(太守)의 별칭. 《북제서(北齊書)》유원책전(柳元策傳)에 “유씨
한집안 5형제가 모두 태수가 되어 각각 말 한 필씩 타고 다녔던 까닭에 그 당시 사람들이
부럽게 여기면서 유씨의 문정에는 오마가 늘어서 있다.” 하였다.
[주D-005]맹가(孟軻)도……떠났고 : 가(軻)는 맹자(孟子)의 이름. 《맹자(孟子)》공손추 하(公孫
丑下)에 “천리 먼 길에 제왕(齊王)을 찾아왔으나 잘 대우하지 않기 때문에 사흘 밤 지난
후 그만 주(晝)로 떠났다.” 하였다.
[주D-006]공구(孔丘)……더디었다네 : 구(丘)는 공자(孔子)의 이름. 《맹자(孟子)》만장 하(萬章
下)에 “공자가 노(魯) 나라를 떠날 때 나의 걸음이 더딘 것은 부모의 나라를 버리고
가는 때문이다 했다.” 하였다.
[주D-007]가의(賈誼)도……귀양 갔었다 : 한 문제(漢文帝) 때 낙양(洛陽) 사람으로 문명(文名)이
높았다. 22세 때 문제(文帝)가 불러서 박사(博士)를 삼고 그 뒤 태중대부(太中大夫)에
제수하여 정삭(正朔)을 고치고 복색(服色)을 바꾸며, 법도(法度)를 제정하고 예악(禮樂)
을 일으키는 등 많은 일을 했다. 이런 공(功)으로 문제가 그를 공경(公卿)에 앉히려
하자 강후(絳侯)인 주발(周勃)ㆍ관영(灌嬰) 등의 참소를 입어 끝내는 장사왕(長沙王)의
태부(太傅)로 좌천당했다. 그가 장사로 가면서 상수(湘水)를 걸 널 때 조굴원부(弔屈原
賦)를 지어 자신의 처지에 비유했다. 얼마 후 다시 양 회왕(梁懷王)의 태부가 되어 국가
의 기강을 확립하고서 33세의 나이로 요절했다.
[주D-008]전성(專城) : 전성백(專城伯)의 약칭으로 한 고을 원이란 칭호이다. 당(唐) 나라 소정
(蘇頲)의 시에 “떠나는 길 멀다고 하지 말라. 전성백 모두들 귀히 여긴다.” 하였다.
[주D-009]절모(節旄) : 임금이 사자(使者)에게 주는 기. 《한서(漢書)》소무전(蘇武傳)에 “한(漢)
나라에서 가지고 온 절모가 다 떨어지도록 흉노(匈奴)에게 잡혀 있었다.” 하였다.
[주D-010]초주(椒酒) : 산호와 다른 약재(藥材)를 섞어서 담근 도소주(屠蘇酒) 따위로 사기(邪氣)
를 물리친다는 말이 있다.
祖江賦 并序 001_295c
貞祐七年四月。予自左補闕被劾。尋除桂陽守。將渡祖江。江水本迅激。適値暴風。困而後濟。爲賦以
悲之。卒以自寬。
浩浩江流。燭如涇水。漆色而泓。
湯之驚沸。蛟鰐呀呀以流涎。又安測毒龍之潛伏以伺。泝灘欲徑進兮。船如行而尙止。不夕而暝。不風
而波。雪浪礧石以崩騰兮。若秦晉戰于彭衙。篙工狎翫靈胥兮。猶畏夫洄洑與盤渦。顧區區一瞥之所如。
豈以其澎濞鬱怒兮成此邈遐。予旣被謫。遭此險流。孤舟兀以出沒兮。其將安適兮去悠悠。望平皐兮草
暗。遡極浦兮煙愁。鳥鳴軋軋。猿哭啾啾。落日兮掩掩。黃雲兮浮浮。雖五馬之足榮兮。亮非吾之攸期。
嗟此遐征。古豈無之。孟三宿而出晝兮。丘去魯兮遲遲。賈誼洛陽之才子兮。謫長沙之濕卑。聖賢尙爾。
予復何悲。較昔人之未遇兮。吾又專城兮斗仰。纍纍。鵠山隱翳兮漸遠。望長安兮徒自疲。業已離兮上
都兮。欣桂陽之伊邇。于以泊舟。于彼碕涘。誰其來迎。貿貿殘吏。紛綵幕兮葳蕤。爛紅旆兮旖旎。弭
節兮山之椒。炬火照林兮鳥驚。以飛聊逍遙以散髮兮。風攪攪兮吹衣。江水駚而疾兮。予旣濟其何疑。
行矣尙足樂兮。何必眷眷兮懷歸。出處不自謀兮。樂天知命兮先哲是希。
○춘망부(春望賦)
화창하고 따뜻한 날 높은 데에 올라가 사방을 바라본다.
부슬부슬 내리던 곡우(穀雨)도 갠 뒤라 나무들은 새로 씻은 듯 깨끗하고, 먼 강물 일렁이며 버들
가지도 푸른 기운이 오르는 듯하다. 비둘기는 울면서 날개를 치고 꾀꼬리도 기이한 나무에 모여
있네. 온갖 꽃 피어서 비단 장막인데 푸른 숲이 섞여서 더 한층 아롱아롱하고, 무성하게 자란 들의
풀밭에는 소들을 놓아 먹이네.
여자들은 광주리 끼고 새로 돋은 뽕을 따는데 부드러운 가지 휘어잡은 손 옥처럼 깨끗하다.
서로들 주고받는 시골 노래 어느 가보(歌譜)의 무슨 곡조일까. 모두가 따뜻한 봄을 마음껏 즐기는
모습 참으로 볼만하다. 그런데 먼 사방을 바라보는 나의 마음은 왜 이토록 민망하고 답답하기만
할까.
저 단금(丹禁)에는 해가 길고 만기(萬機 임금의 여러 가지 임무)에도 겨를이 많아 화창한 봄빛에
감동되어 가끔 높은 곳에 올라가 먼 곳을 바라본다. 갈고(羯鼓)치는 소리가 높아지고 붉은 살구
꽃이 활짝 피게 되면 신주(神州)의 고운 경치 바라보고 임금의 기쁨 그지없어 옥잔에 술을 가득
부어 마신다. 이런 것은 바로 춘망(春望)에 대한 부귀(富貴)이다.
저 왕손(王孫)과 공자(公子)들이 호탕한 벗들과 꽃구경하며, 뒷수레에 기생을 태웠는데 새파란
저고리와 붉은 치마 차림이다. 멈추는 곳마다 자리를 펴고 옥으로 만든 피리와 생황(笙簧) 불면서
비단 같은 온갖 꽃 바라보고 한껏 취한 모습으로 어정거린다. 이런 것은 바로 춘망에 대한 사화
(奢華)이다.
저 빈방만 지키는 예쁜 부인은 천리 밖에 남편을 이별한 뒤 소식조차 멀어진 것이 한이 되어 흔들
리는 마음이 일렁이는 물과 같이 쌍지어 나는 제비 바라보며 난간에 기대서서 눈물흘린다.
이런 것은 바로 춘망에 대한 애원(哀怨)이다.
친한 친구 먼 길을 떠나려 할 때 가랑비 내리고 버들 빛도 푸르구나. 삼첩가(三疊歌) 끝마치자
떠나가는 말도 슬피 운다. 높은 언덕에 올라가는 모습 바라보는데 만발한 꽃 사이로 점점 사라지니
마음 더욱 흔들린다. 이런 것은 바로 춘망에 대한 별한(別恨)이며, 심지어 출정(出征) 군사가 먼
관산(關山) 밖에 가 있으면서 다시 돋는 변방의 봄풀을 바라보거나 남쪽 상수(湘水)로 귀양 간
나그네가 해저물 무렵에 푸른 신나무를 건너다 볼 때면 누구나 발길을 멈추고 바라보며 마음속
맺힌 한에 깊이 잠기리니. 이런 것들은 바로 집을 떠난 자의 춘망(春望)이다.
나는 또 아노라. 저 여름철에 바라보면 찌는 듯한 더위가 고생이고, 가을철에 바라보면 쓸쓸한
회포 견딜 수 없으며, 겨울철에 바라보면 얼어붙은 얼음이 괴롭다는 걸. 이 세 가지는 너무 치우
쳐서 마치 변통이 없어 막힌 듯하다. 그러나 이 춘망만은 시기와 형편에 따라 어떤 이는 바라보
면서 마음껏 즐기기도 하고, 어떤 이는 바라보면서 슬퍼 눈물도 흘리며, 어떤 이는 바라보면서
노래도 하고, 어떤 이는 바라보면서 울 수도 있다. 각각 느끼는 유에 따라 사람을 감동하게 하니
그 심서(心緖) 천만 가지 그지없네.
그런데 이 농서자(隴西子 작자의 호(號)) 같은 이는 어떠한가. 취해서 바라보면 즐겁고 깨어서
바라보면 서러우며 곤궁해서 바라보면 바로 구름과 안개가 가리운 듯하고 현달(顯達)해서 바라보면
햇빛이 환히 비치는 듯하여 즐길 만하면 즐기고 슬플 만하면 슬퍼하기도 한다. 진실로 환경과
기회가 닿는 대로 세상과 더불어 추이(推移)할 것이요 한 가지 법칙만으로 헤아릴 수 없는 것이다.
[주D-001]단금(丹禁) : 붉은 빛깔로 아름답게 장식한 금원(禁苑). 《수서(隋書)》백관지(百官志)에
“각각으로 갈라져 있는 단금에는 시위병(侍衛兵)이 좌우로 열지어 있다.” 하였다.
[주D-002]갈고(羯鼓) : 칠통(漆桶)처럼 만든 오랑캐의 북. 당 현종(唐玄宗)이 양귀비(楊貴妃)와
함께 갈고를 두들기면서 팔음(八音) 중에 첫째라 했다 한다. 《唐書 禮樂志》
[주D-003]신주(神州) : 중국 사람이 그들의 나라를 일컫는 칭호. 《사기(史記)》맹자전(孟子傳)에
“추연(鄒衍)이 중국을 적현신주(赤縣神州)라 했다.” 하였다.
[주D-004]삼첩가(三疊歌) : 세 번 거듭 부르는 가곡의 일종. 당(唐) 나라 왕유(王維)가 원이사(元
二使)에게 증별한 “권군갱진일배주 서출양관무고인(勸君更進一杯酒 西出陽關無故人)"이란
시를 양관삼첩(陽關三疊)이라 한다.
[주D-005]상수(湘水) : 중국 호남성(湖南省)에 소수(瀟水)와 합류되어 동정호(洞庭湖)로 들어가는
강. 전국 시대(戰國時代) 초(楚) 나라 굴원(屈原)이 빠져 죽은 뒤 한(漢) 나라 가의(賈誼)
도 장사(長沙)로 귀양 가면서 이곳을 건널 때 조굴원부(弔屈原賦)를 지었다.
春望賦 001_296b
欣麗日之方酣。聊登高以游目。穀雨始晴兮。濯濯樹容之新沐。遠水蕩漾。麴塵浮綠。鳩鳴拂羽。鸎集
珍木。衆花敷兮錦幛張。雜以靑林兮。一何斑駮。草芊兮碧滋。牛布野兮散牧。女執筐兮採稚。桑援柔
枝兮手如玉。俚歌相和。何譜何曲。行者坐者去者復者。感陽煕煕。其氣可掬。鬱予望之止玆。何區區
而齪齪。有若丹禁日長。萬機多簡。感韶光之駘蕩。時登覽乎飛觀。羯鼓聲高。紅杏齊綻。望神州之麗
景。宸歡洽兮玉觴滿。此則春望之富貴也。彼王孫與公子。結豪友以尋芳。後乘載妓。茜袂紅裳。隨所
駐兮鋪筵。吹瑤管兮吸玉簧。望紅綠之如織。擡醉眼以倘佯。此則春望之奢華也。有美婦人兮守空閨。
別宕子兮千里。恨音塵之迢遞。情搖搖其若水。望漆鷰之雙飛。倚雕櫳而流淚。此則春望之哀怨也。
故人遠遊兮送將行。雨浥輕塵兮柳色靑。三疊歌闋。別馬嘶鳴。登崇丘兮望行色。煙花掩苒兮蕩淸。
此則春望之別恨也。至若征夫邈寄乎關山。見邊草之再榮。逐客南遷乎湘水。望靑楓之冥冥。莫不翹首
延佇。抱恨怦怦。此則春望之羈離也。吾知夫夏之望兮拘於蒸暑。秋專蕭瑟。冬苦凝閉。玆三者之偏兮。
若昧變而一泥。唯此春望。隨物因勢。或望而和懌。或望而悲悷。或望而歌。或望而涕。各觸類以感人
兮。紛萬端與千緖。若隴西子者何爲哉。醉而望也樂。醒而望也哀。窮而望則雲霧塞。達而望則天日開。
可以喜則喜。可以悲則悲。誠能遇境沿機。與物推移。而不可以一揆測知者乎。
○도앵부(陶甖賦) 병서(幷序)
내가 질항아리 하나를 가졌는데 술맛이 변치 않으므로 매우 소중히 여기고 아낀다. 또 내 마음에
비유한 바가 있어 이 부(賦)를 지어 노래한다.
나에게 자그마한 항아리가 하나 있는데 쇠를 두들기거나 녹여서 만든 것이 아니라 흙을 반죽하여
불로 구워 만든 것이다.
목은 잘록하고 배는 불룩하며 주둥이는 나팔처럼 벌어졌다. 영(瓴) 귀가 있는 병은 영이라 한다.
에 비하면 귀가 없고 추(甀) 주둥이가 작은 질항아리를 추라 한다. 에 비하면 주둥이가 크다.
닦지 않아도 마치 칠한 것처럼 검은 광채가 난다.
어찌 금으로 만든 그릇만 보배로 여기랴. 비록 질그릇이라 할지라도 추하지 않다.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아서 한 손에 들기가 알맞으며 값도 매우 싸서 구하기가 쉬우니 깨진다 하더
라도 뭐 아까울 것이 있겠는가. 술이 얼마쯤 담기느냐 하면 한 말도 들지 않는데 가득차면 다
마시고 다 마시면 다시 붓는다.
진흙을 잘 구워서 깨끗이 만든 까닭에 변하지도 않고 새지도 않으며 공기가 잘 통해서 목이 막히지
않으므로 따라 넣기도 좋고 부어 마시기도 편리하다. 잘 부어지는 까닭에 기울어지거나 엎어지지도
않고 잘 받아들이는 까닭에 계속 술이 저장되어 있다. 한평생 동안 담은 것을 따진다면 몇 섬이나
되는지 셀 수가 없다. 마치 겸허(謙虛)한 군자(君子)처럼 떳떳한 덕이 조금도 간사하지 않다.
아, 재물에 도취한 저 소인(小人)들은 두소(斗筲)와 같이 좁은 국량으로써 끝없는 욕심을 부리고
있다. 쌓기만 하고 남에게 줄줄 모르면서 오히려 부족하다 하니 자그마한 그릇은 쉽게 차서 금방
엎어진다. 나는 이 항아리를 늘 옆에 놓고 너무 가득 차면 넘치게 되는 것을 경계한다. 타고난
분수따라 한 평생을 보내면 몸도 온전하고 복도 제대로 받을 것이다.
[주D-001]두소(斗筲) : 두(斗)는 열 되, 소(筲)는 대그릇 두 되들이로 모두 작은 그릇인데, 짧은
재주와 좁은 도량(度量)을 지닌 소인을 ‘두소의 사람’이라 한다.
《논어(論語)》자로(子路)에 “두소 같은 사람을 뭐 이를 것이 있겠는가.” 하였다.
陶甖賦 幷序 001_297a
予蓄瓦甖。以酒不渝味。甚珍而愛之。且有所況。爲賦以興之。
我有小甖。非鍛非鑄。火與土以相。落埏埴而乃就。頸癭腹膰。觜侔笙味。譬之瓴則無耳。有耳曰瓴。
謂之甀則摦口。瓦甖小口曰甀。不磨而光。如漆之黝。何金皿之是珍。雖瓦器其不陋。適重輕以得宜。
合提挈於一手。價甚賤而易求。雖破碎其曷咎。盛酒幾何。未盈一斗。滿輒斯罄。虛則復受。由陶熟而
且精。故不淪而不漏。由旁通而不咽。能出納乎醇酎。由能出故不傾不覆。由能納故貯酒斯續。顧一生
之攸盛。羌難算其幾斛。類君子之謙虛。秉恒德而不惑。嗟小人之徇財。昧斗筲之局促。以有涯之量。
趁無窮之欲。積不知散。猶謂不足。小器易盈。顚沛是速。予置斯甖於座右。戒滿溢而自勖。庶揣分而
循涯。儻全身而持祿。
●고율시(古律詩)
목차
呈張侍郞自牧一百韻
次韻尹司儀世儒見贈。坐上作。
吳德全東遊不來。以詩寄之。
江上偶吟
江南舊遊
寒食感子推事
題晉秀才別墅
憶吳德全
贈覺禪老
秋送金先輩上第還鄕
詠筆管
詠忘
重遊北山
龜山寺璨師方丈。十五夜翫月。以詩律輸君一百籌爲韻。予得律字。
次韻璨師
晚望
寓古
天壽寺門
詠桐
梅花
題九品寺
次韻梁校勘寒食日邀飮
望南家吟
醉歌行。贈全履之
石竹花
柳怨長句
李先輩陽下第東歸。以詩慰之。
次韻東皐子用杜牧韻。憶德全。
奇尙書林塘次古人韻
次韻崔老育才見寄
贈敏師
○시랑(侍郞) 장자목(張自牧)에게 드린다 백운(百韻)
이름난 집안에 내려온 끝없는 경사 / 世家流慶遠
어르신네 같은 뛰어난 이 태어났네 / 我丈稟靈殊
깨끗한 이슬 경수에 엉긴 듯하고 / 爽露凝瓊樹
찬 얼음 옥호에 비친 것 같네 / 寒氷映玉壺
뛰어난 소문 우레처럼 진동하고 / 名聲驚霹靂
넓은 도량은 강호가 들어 있는 듯하다 / 胸臆貯江湖
집 안에선 청렴한 장호와 같고 / 門繼淸廉鎬
조정에선 정직한 장포를 닮았네 / 朝登質直酺
성격은 눈 속의 소나무처럼 꿋꿋하고 / 雪中松性古
빼어난 모습 달 속의 계수나무처럼 깨끗하다 / 天上桂枝孤
장족을 꿈속에서 벌써 보았었는데 / 瑞夢曾徵鳳
밝은 세상 어찌 장한의 농어회 생각하리 / 明時敢憶鱸
풍당처럼 어진 임금 잘 만나니 / 馮唐方見遇
옛날 안씨처럼 어리석은 듯해도 / 顔氏舊如愚
임금님은 삼경처럼 사랑해 하고 / 帝室誇三鏡
조정에선 육호처럼 보배로 여겨 / 明堂寶六瑚
한결같은 님 향한 일편단심은 / 彤霄循北拱
바다 위에 솟아오른 붕새와 같네 / 蒼海聳南圖
몇 번이나 임금님께 글을 올렸다 / 演誥唐麻上
예부에서 사령장 내려왔구나 / 分儀漢蕝隅
공(公)이 예부(禮部)가 되었다.
담로처럼 깨끗한 은총을 받고 / 沐芳承湛露
말꼬삐 잡고서 먼 거리 달려도 보네 / 縱轡騖長衢
대담하게 이백처럼 술도 마시고 / 酒膽鍾星白
곧게 간함은 주운과 같아 / 忠誠折檻朱
그 재주 여러 사람 누를 만하고 / 轥人才落落
선비를 좋아하는 따뜻한 그 마음 / 好士樂愉愉
옛날 내가 처음으로 투자했을 때 / 憶昔初投刺
마음이 서로 꼭 맞은 듯하여 / 相迎似合符
못생긴 나를 옥처럼 생각하고서 / 夤緣近美玉
만나는 곳마다 늘 생추를 설치했지 / 想像置生蒭
만류하는 마음 어찌 그리 후했던가 / 投轄情何厚
술을 서로 권하면서 한껏 마셨네 / 含杯氣益麤
넓은 도량 조 나라 문객 다 받았고 / 處囊容趙客
뛰어난 기개 제 나라 무당으로 시험도 했지 / 橫氣試齊巫
아름다운 수목 깃발처럼 벌여섰고 / 佳樹旌幢卓
좋은 꽃 비단처럼 피어 있었네 / 名花錦繡敷
청안으로 대한 것도 기쁜 일인데 / 但欣靑眼眄
뭐 예쁜 아가씨 불러올 필요 있으랴 / 何倩翠眉姝
이때 기생을 불렀으나 이르지 않았다.
문장은 조류의 골수 드러낸 듯하고 / 文抉曹劉髓
사부는 굴송의 영역 궁구했네 / 詞窮屈宋膄
향기로운 술 바위 위에서 마실 때 / 芳醪斟石凍
맛좋은 산나물을 안주로 삼았지 / 異味雜山膚
문하에 손님 삼천 명도 넘었고 / 門客三千忝
읊은 시는 백 편을 훨씬 넘었네 / 詩籌一百輸
술독 옆서 필탁처럼 졸기도 하고 / 瓮邊眠畢卓
마루에서 순우곤처럼 눕기도 했다 / 堂上宿淳于
큰 풀무에 무딘 무쇠 녹는 듯하고 / 大冶鎔頑鑛
넓은 바다가 도랑물 받아들이듯 / 洪溟納細汚
두 번째 만나 더 친해져서 / 再來增款密
기쁨과 웃음으로 더욱 즐거웠지 / 歡笑益姁婾
황마가 달리는 듯한 웅변이었고 / 極辯馳黃馬
옛사람의 백구편도 가끔 읊었다 / 遺篇詠白駒
이때 나를 추천한다는 말이 있었다.
동야의 글귀를 공연스레 본받아 / 枉聯東野句
백륜의 술잔을 자주 기울여 / 頻倒伯倫觚
시 읊던 손님들 훈풍에 흩어질 때 / 吟榻薰風散
늦 안개 돌아가는 길에 자욱했지 / 歸程晩霧紆
한껏 취해서 학사의 옷자락 거머잡고 / 醉誇攀學士
교만하게 금오랑(金吾郞)도 피하지 않았다 / 驕不避金吾
벌써 사귐을 황금처럼 중히 여겼으니 / 意已黃金重
죽어도 먹은 마음 변치 않을거야 / 情難白骨渝
세 절구 증별시 잘 지어서 / 雄詩三絶在
초서로 쓴 열 줄 나에게 주었지 / 聖草十行俱
공이 증별시 세 편을 초서로 써서 나에게 주었다.
집안에 한 보물로 전하려 하나 / 擬作家傳寶
귀신에게 빼앗길까 걱정이었고 / 唯懷鬼奪虞
친구가 보자 해도 보이지 않으면서 / 靘粧欺友倩
좋은 가보 잃을까 늘 조심하였소 / 絶辟倒嘉謨
너무 감격하여 목리를 던져줬지만 / 荷重猶投李
너무 보잘것없어 부부에 꼭 알맞을 거야 / 酬卑合覆瓿
부(瓿)자는 평성(平聲)과 상성(上聲)으로 같이 쓰인다.
절룩대며 이리저리 다니는 나는 / 蹇予誠齷齪
태어난 운명이 정말 기구해 / 賦命實崎嶇
우박이 추운 골짜기에 쏟아지는데 / 寒谷生氷子
큰 창옷 입은 사람 썩은 선비지 / 裒衣着腐儒
치룡도 아직 분별할 줄 모르건만 / 癡龍殊未辨
건서를 공연스레 서로 사려 해 / 乾鼠謾相沽
못난 나는 쓸모없는 강호와 닮아 / 醜質慙康瓠
재주 있는 그대는 담로보다 예리해 / 銛鋒謝湛盧
북궁영아(北宮嬰兒)처럼 알아줌이 부끄럽고 / 北宮慙駕蓽
남곽처럼 피리도 못 불면서 자리만 탐했네 / 南郭望吹竽
마을에서 많은 선비들 만나게 되고 / 闕里攀龍鳳
춘관에 나아가 시험까지 보았었네 / 春官戰虎貙
한 사람의 이름이 세상에 알려 지자 / 一鳴方駭世
여러 친구들 따라서 성안으로 가려 하네 / 十影擬過都
좌상이 바로 술마시자 요청했고 / 左相曾邀飮
문 상국(文相國)이 특별히 나를 불러 술 마시자고 한 까닭에 이적지(李適之)에게 비유하였다.
영왕도 취한 나를 부축해 주었다 / 寧王許醉扶
영인후(寧仁侯)도 나를 불러 술을 함께 마셨는데 내가 한껏 취해 쓰러지자 어떤 사람을 시켜 잘
부축하도록 하였다.
미인들은 온 좌석에 가득찼고 / 玉顔羅密座
풍성한 주방에서 좋은 반찬 나왔는데 / 珍膳出豐廚
저녁부터 마셔 새벽까지 이르렀고 / 夜飮長侵曉
아침부터 읊어 해지는 줄 몰랐었네 / 朝吟動及晡
모란꽃 동산에 누워도 있고 / 牡丹園上醉
버들 핀 언덕에서 말도 달렸었네 / 楊柳陌邊驅
지금 와서는 왜 궁곤에 빠져 / 晩落蟠泥困
칼날 어루만지며 탄식만 할까 / 那堪撫劍吁
먼 길은 갈수록 막힐까 걱정이고 / 道長猶恐泥
솟던 샘도 말라 입축이기가 어렵구나 / 泉涸自難濡
끊어진 거문고 줄 어떻게 이어낼지 / 絃絶何由續
허물어진 담도 흙이 제대로 안 붙어 / 牆頑肯可圬
동문들은 모두 드날리건만 / 同門皆振翮
오직 나 홀로 뒤쳐졌구나 / 唯我尙搶楡
젊었던 옛모습은 점점 사라지고 / 故故容顔改
세월만 자꾸 흐른다 / 垂垂歲月徂
돼지는 육신이 뒤집히려 하고 / 六身催倒亥
까마귀도 세 다리를 멈추지 않는구나 / 三足未留烏
마음은 깃발처럼 이리저리 흔들리건만 / 心思如懸旆
수주하듯 우두커니 한 자리에 앉아 있네 / 功名劇守株
온갖 걱정 술로써 잊어버리자 하나 / 愁期千日醉
병이 들어 마음대로 다닐 수 없네 / 病廢四方餬
더구나 모함까지 번갈아 받게 되니 / 讒構交相扇
나갈지 숨을지 애로가 많구나 / 行藏甚似拘
울타리에 쉬파리 왜 죽지 않나 / 樊蠅頑不死
저자에 호랑이도 가끔 속인다네 / 市虎動成誣
곳곳에서 꾸중만 쏟아져 나오는데 / 處處嗔投璧
누구나 할 것 없이 도끼로 치려 하네 / 人人慮竊鈇
용을 비웃는 도마뱀도 많아지고 / 嘲龍多蝘蜓
개를 습격하려는 생쥐도 여럿이라오 / 襲狗幾鼱鼩
답답한 심정은 꼭 평자와 같고 / 鬱鬱同平子
거듭 깨우쳐 주던 여수에겐 부끄러워 / 申申愧女嬃
터지는 울음에 쓸데없는 피눈물만 쏟고 / 自啼無用血
애써 읊던 시상도 다 끊겨 버렸네 / 渾斷苦吟鬚
이리저리 쫓아다님 우체부 같고 / 奔走如郵吏
차일피일하는 모습 장사치와 흡사쿠나 / 遷延似賈胡
두원은 늘 눈앞에 보이는 듯한데 / 杜園空費望
도경은 벌써 황폐해 있을 테지 / 陶徑想應蕪
온몸에 얽힌 그물 벗어버리고 / 擬脫嬰身網
거북처럼 꼬리 끌고 돌아가야지 / 歸安曳尾塗
논에다 가끔 물이나 넣어 주고 / 灌畦常搰搰
장구를 치면서 노래도 불러야지 / 鼓缶樂嗚嗚
남쪽으로 가서는 초 나라를 지나고 / 南去將經楚
동쪽으론 오 나라 끝까지 닿아야지 / 東遊遂極吳
오수인 원결처럼 감초나 캐고 / 帶苓聱叟結
소인인 번수처럼 농사나 지어야지 / 學圃小人須
뱃전에서 운자를 먹기도 하고 / 船尾抄雲子
강가에는 목노 등도 심어야겠네 / 江頭種木奴
쥐가 하수를 마신다 해도 배를 채우는데 불과하고 / 飮河盈鼴腹
우물에 뛰어든 개구리 발만 잠기면 낙이 되듯 / 跳井沒蛙跗
천지에 한 유자가 되었고 / 天地爲遊子
연파에 떠다니는 조도가 되었네 / 煙波作釣徒
돌이켜 생각하니 신성한 시대에 / 翻思神聖代
어찌 차마 산골에 묻혀 살리 / 何忍草萊逋
향기로운 난초로 옷차림 깨끗이 하고 / 佩潔紉芳蕙
쓸쓸한 집일망정 벽오동 심어야지 / 巢寒戀碧梧
마음은 급암처럼 깨끗이 갖고 / 操修憐汲直
꿈에도 늘 고유를 생각할 테야 / 夢想對高兪
거울 속 얼굴 보기도 번거롭고 / 身世煩窺鏡
날마다 신 삼던 일도 게을러졌네 / 生涯倦織絇
이야기가 아무리 간절해도 / 出言雖切切
듣는 이는 모두들 비웃기만 하니 / 廻眼例盱盱
죽실을 오리에게 가리켜 주는 것 같고 / 竹實談鷄騖
쓰르라미에게 춘나무를 설명하는 듯 / 椿年語蟪蛄
말세 만난 것도 슬픈 일인데 / 自嗟遭世晩
남들은 나를 오활하다 나무라네 / 人道與時迂
봄비가 처음으로 내려서 / 雷雨初驚後
온갖 티끌 깨끗이 씻어버리면 / 乾坤可滌無
꺼진 재에 불이 다시 살아나고 / 死灰期復煽
병든 나무도 싹이 다시 돋을 거야 / 病樹會重蘇
기국과 지식이 아무리 얕다 해도 / 器識雖云淺
마음속에 쌓은 포부 펴고 싶다오 / 心肝要欲刳
못난 재주 그냥 썩힐 수밖에 없지만 / 不才堪搦朽
고상한 의론으로 누가 날 깨우쳐 주리 / 高論孰噓枯
다행히도 공 같은 친구가 있어 / 幸感賢知己
못난 나는 늘 감사한 마음이야 / 常稱一鄙夫
선비의 장보 월 나라에선 소용없고 / 衣冠將飾越
모모 같은 얼굴에 화장한들 무엇하랴 / 脂粉强粧嫫
옥이 있어도 궤 속에 깊이 넣고 / 有玉深藏櫝
쇠도 풀무에 넣어 단단하게 달궈야지 / 爲金好躍爐
물귀신이 깊은 물 만난 듯한데 / 波臣如得水
연객에게 어찌 좋은 진주 없으랴 / 淵客豈無珠
전에는 선생으로 모시고자 해도 인연이 없더니 / 曩阻摳衣禮
지금은 신을 끌고 따르게 되었네 / 時方曳履趨
거문고 뜯는 중 편지로 불러오고 / 琴僧折簡召
이때 거문고 잘 뜯는 중을 불러오게 되었다.
피리 부는 손님도 이웃에서 불러왔다오 / 笙客隔墻呼
이웃에 피리 부는 손님이 있어 청해 왔었다.
지난날 이야기에 피로가 절로 풀리고 / 話舊元無倦
문장을 의논하니 더욱더 반갑구나 / 論文亦頗娛
코에 발린 진흙을 떼어버린 듯하고 / 鼻墁逢匠石
등이 가려울 때 마고가 긁는 듯하네 / 背癢得麻姑
처음부터 끝까지 대우를 받아 / 始末如深遇
박복한 이 목숨 잘 이어왔지 / 麋捐有薄軀
만날 때마다 늘 반가운 모습으로 / 每承親昵昵
마음속에 쌓인 회포 다 풀었네 / 罄寫意區區
잠시 은둔해 있자 찾는 이 없어 / 小隱何人到
고요히 지난 지가 열흘이 넘었네 / 端居十日踰
새벽 놀은 붉은 비단을 펼친 듯하고 / 曉霞紅綺散
밤 눈은 흰 방석을 깐 듯한데 / 夜雪白氈鋪
화로에 불조차 꺼져 버리니 / 冷火空頻撥
찬 술 한잔 누구와 함께 데워 마실까 / 寒醅孰與㪺
마루의 손님 자리 텅 비어 있는데 / 虛堂無客位
어두운 방안에서 중처럼 앉아만 있네 / 幽室學僧趺
삼상처럼 이별한 때를 생각하니 / 忽憶參商別
초월보다 더 멀어진 것이 안타깝구나 / 潛悲楚越逾
그대를 생각하니 그리운 마음 일어나 / 仰風滋眷戀
고개를 돌려서 한참씩 머뭇거린다 / 回首亮踟躕
편지 전하는 학이 없는 것이 괴로워 / 苦欠奉書鶴
마름으로 쫓아가는 오리가 되고 싶다오 / 欲爲趨藻鳧
만약 시험삼아 그댈 찾으면 / 試歸如會面
불민한 죄를 어찌 피하랴 / 不敏敢逃誅
맹랑한 이 시가 비록 졸렬하나 / 孟浪詞雖拙
머뭇거리며 보내는 나를 비웃지 마오 / 公無笑囁嚅
[주D-001]장호(張鎬) : 당 숙종(唐肅宗) 때 재상(宰相)으로 환관(宦官)에게 굽히지 않다가 파직
당하였으나 대종(代宗) 때 다시 기용되었다. 자는 종주(縱周)이다. 《唐書 卷139》
[주D-002]장포(張酺) : 자는 맹후(孟侯). 후한 화제(後漢和帝) 때 사도(司徒)를 지냈으며
《상서(尙書)》에 밝았다. 《後漢書 卷75》
[주D-003]장족(張鷟) : 당 예종(唐睿宗) 때 학사(學士)가 되어 문장에 이름이 있자, 신라(新羅)ㆍ
일본(日本)에서 오는 사신(使臣)들이 그의 문장을 구입해 갔다. 호는 부휴자(浮休子)
혹은 청전 학사(靑錢學士)라 하였다. 《唐書 卷161》
[주D-004]장한(張翰) : 진(晉) 나라 오군(吳郡) 사람. 자(字)는 계응(季鷹). 《진서(晉書)》
장한전(張翰傳)에 “연리(掾吏)가 되었을 때 가을철을 만나 그의 고향 고채(菰菜)와
순갱(蓴羹)ㆍ농어회[鱸魚膾]가 생각나 그만 벼슬을 버리고 오군으로 돌아갔다."하였다.
[주D-005]풍당(馮唐) : 한(漢) 나라 안릉인(安陵人)으로 문제(文帝) 때 중랑서장(中郞署長)에
발탁되었다. 때마침 흉노가 국경의 근심거리로 등장하게 되자 문제가 풍당에게 묻기를
“어떻게 하면 염파(廉頗)와 이목(李牧) 같은 장수를 얻을까?” 하니, 풍당은 “한 나라
의 법이 상은 가볍고 죄는 무거우니 비록 염파나 이목을 얻는다 해도 쓸 수 없다.”
하면서 운중 수(雲中守)인 위상(魏尙)이 흉노를 물리치고도 오히려 죄에 걸려 있는 것을
얘기했다. 그러자 문제는 위상을 복직시키고 풍당을 거기도위(車騎都尉)에 제수하였다.
《史記 卷102》
[주D-006]안씨(顔氏) : 공자의 수제자인 안회(顔回)를 가리킨다. 《논어(論語)》위정(爲政)에
“안회와 종일 이야기해도 한 마디의 반대가 없고 마치 어리석은 사람인 듯하더니 물러간
후에 그의 사생활을 자세히 살펴보니 나의 말을 충분히 행동으로 실천해 낸다.
안회는 어리석지 않은 사람이로구나.” 하였다.
[주D-007]삼경(三鏡) : 삼경은 즉 삼감(三鑑)으로 동(銅)으로 거울을 삼고, 예를 거울로 삼으며,
사람으로 거울을 삼는다는 것인데, 이는 인심(人心)을 바로잡아서 자신의 표준으로 삼는
다는 말이다. 《당서(唐書)》위징전(魏徵傳)에 “위징이 죽자 제(帝)가 조회에 참석한 후
탄식하면서, 동으로 거울을 삼으니 의관(衣冠)을 바룰 수 있고, 예로 거울을 삼으니 흥망
을 알 수 있고, 사람으로 거울을 삼으니 득실을 알 수 있다. 나는 항시 이 세 가지를
소중히 여기고 안으로 나의 허물을 경계했는데 이제 위징을 잃었으니 한 개의 거울이
없어졌구나.” 하였다.
[주D-008]육호(六瑚) : 종묘(宗廟)에 쓰는 일종의 제기로 은(殷)은 육호(六瑚)를 사용했고, 하
(夏)는 사련(四璉)을 썼다 한다. 《논어(論語)》공야장(公冶長)에 “사(賜)는 어떻다
하겠습니까?” 하니 공자(孔子)가 “너는 그릇이라 하겠다.” 하므로 “무슨 그릇쯤 된다
는 것입니까?” 하니, 공자가 “호련이라 할 수 있겠다.” 하였다. 이는 귀중한 호련만큼
단목사(端木賜)가 쓸모 있는 훌륭한 인격을 갖추고 있다는 평이다.
[주D-009]담로(湛露) : 《시경(詩經)》소아(小雅)의 편명으로 천자가 제후에게 잔치를 베풀어 준
내용을 엮은 시인데, 천자의 혜택이 이슬이 온갖 생물을 윤택하게 하는 것처럼 한다는
비유.
[주D-010]주운(朱雲) : 한 성제(漢成帝) 때의 직신(直臣). 그가 한 성제에게 아첨한 장우(張禹)의
머리를 잘라야만 백성이 편히 살 수 있다고 하자, 성제가 어사(御史)에게 주운을 끌어내어
하옥(下獄)시키도록 하였다. 그러자 그가 마루 난간을 부여잡고 버티며 간하다 그만 난간
이 부러지기까지 했는데 성제가 그 부러진 난간을 그대로 보수하여 직신의 자취를 남겨
두었다 한다. 《漢書 朱雲傳》
[주D-011]투자(投刺) : 명함을 꺼내어 면회를 요청한다는 것.
[주D-012]옥처럼……설치했지 : 추생은 말먹이 꼴. 《시경》소아(小雅) 백구(白駒)에 “흰 망아지
한 필 깊은 골짜기에 있는데 싱싱한 꼴 한 다발 먹이는 그 사람 구슬처럼 예쁘게 생겼
구나.” 하였는데, 어진 선비를 잘 대우한다는 말이다.
[주D-013]조 나라 문객 : 전국 시대 조(趙) 나라 평원군(平原君)의 식객(食客) 모수(毛遂)를
가리킨다. 《史記 平原君傳》
[주D-014]제 나라 무당 : 제 나라의 여악(女樂)을 가리킨다. 《사기(史記)》공자세가(孔子世家)에
“제나라에서 여악을 노 나라에 보내줌으로써 공자는 그만 떠나가 버렸다.” 하였다.
[주D-015]청안(靑眼) : 반가운 눈으로 남을 대한다는 뜻. 《진서(晉書)》완적전(阮籍傳)에
“반가운 사람은 청안(靑眼)으로 대하고 반갑지 않은 사람은 백안(白眼)으로 흘겨보았다.”
하였다.
[주D-016]조류(曹劉) : 삼국 시대(三國時代) 위(魏) 나라 조식(曹植)과 유정(劉楨).
[주D-017]굴송(屈宋) : 전국 시대(戰國時代) 초(楚) 나라 굴원(屈原)과 송옥(宋玉).
[주D-018]필탁(畢卓) : 진 회제(晉懷帝) 때 신채 동양(新蔡鮦陽) 사람으로 자는 무세(茂世)이다.
일찍이 이부랑(吏部郞)으로 있을 때 비사랑(比舍郞)의 집에 숨어들어가 술을 훔쳐 먹다가
포박을 당했을 정도로 술을 좋아하였다. 《晉書 卷45》
[주D-019]순우곤(淳于髡) : 전국 시대(戰國時代) 제나라 변사로 학문이 깊고 넓어서 섭렵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뒤에 양 혜왕(梁惠王)이 그의 자질을 알아보고 벼슬을 주려 했으나
사양하고 받지 않았다. 《史記》
[주D-020]황마(黃馬) : 누른 말. 양(梁) 나라 유준(劉峻)의 광절교론(廣絶交論)에 “황마가 달리는
듯한 농담, 벽계(碧鷄)가 치오르는 듯한 웅변이다.” 하였다.
[주D-021]백구편(白駒篇) : 《시경(詩經)》소아(小雅)의 편명. 어진 선비를 불러 써야 한다는 시.
[주D-022]동야(東野) : 당(唐) 나라 문장가 맹교(孟郊)의 자.
[주D-023]백륜(伯倫) : 진(晉) 나라 죽림칠현(竹林七賢)의 한 사람인 유령(劉伶)의 자.
[주D-024]금오랑(金吾郞) : 의금부 도사(義禁府都事)의 별칭.
[주D-025]목리(木李) : 오얏. 《시경(詩經)》모과(木瓜)에 “나에게 모과를 던져주기에 아름다운
옥으로 보답합니다.” 하였다.
[주D-026]부부(覆瓿) : 장독 뚜껑. 《한서(漢書)》양웅전(揚雄傳)에 “유흠(劉歆)이 양웅이 지은
법언(法言)을 보고 ‘왜 세상에서 알지도 못하는 글을 이토록 애써 지었을까.
나중에는 장독뚜껑밖에 되지 않을 것 같다.’ 했다.” 하였다. 대개 자기의 저술을 겸칭
(謙稱)하는 말이다.
[주D-027]치룡(癡龍) : 큰 염소의 별칭. 《북몽쇄언(北夢瑣言)》에 의하면, 낙중(洛中) 어떤동굴
속에 빠졌던 사람이 큰 염소 수염에 달린 구슬을 따먹고 굴 밖에 나오게 되었는데 장화
(張華)가 그 염소는 치룡이라는 짐승이라 하였다.
[주D-028]건서(乾鼠) : 쥐처럼 생긴 이상한 물건. 《후한서(後漢書)》응봉전(應奉傳)에 “옛날 정
(鄭) 나라 어떤 사람은 건서를 옥이라 했다.” 하였다.
[주D-029]강호(康瓠) : 질솥. 가의(賈誼)의 조굴원부(弔屈原賦)에 “쓸모 있는 주정(周鼎)은 버려
두고 깨어진 강호를 보배로 여긴다.” 하였다.
[주D-030]담로(湛盧) : 칼 이름. 《오월춘추(吳越春秋)》합려전(闔閭傳)에" 초 소왕(楚昭王)은
고이 누워서 오왕(吳王)의 담로란 보검(寶劍)을 얻었었다.” 하였다.
[주D-031]북궁영아(北宮嬰兒)처럼……부끄럽고 : 북궁영아는 전국(戰國) 시대 제(齊) 나라의 효녀
이다.《전국책(戰國策)》제책(齊策)에 “조 위후(趙威后)가 제나라 사신에게 ‘북궁영아
는 무고한가.’하고 안부를 물었다.” 하였다. 즉 미천한 사람을 높은 사람이 알아주니
오히려 부끄럽다는 뜻이다.
[주D-032]남곽(南郭)처럼……탐했네 : 재주가 없으면서 지위에 거하여 자리만 채운다는 뜻.
《한비자(韓非子)》내저(內儲)에 “제 선왕(齊宣王)이 피리 부는 사람 3백인을 모으려
했는데 남곽 처사가 자기도 피리를 불겠다 하니 왕이 기뻐하여 특대우를 하였다.
그 후 선왕(宣王)이 죽고 민왕(湣王)이 임금이 되어 일일이 피리를 듣고자 하니 남곽
처사는 도망갔다.
[주D-033]춘관(春官) : 예부(禮部)의 별칭.
[주D-034]육신(六身) : 여섯 몸뚱이, 즉 해자(亥字)를 가리킨다. 《춘추좌전(春秋左傳)》양공
(襄公) 30년 기사에 “해(亥)는 두 머리와 여섯 몸뚱이가 있다.” 하였고, 그 주에
“두 획은 해자(亥字)의 머리로 되었고 여섯 획은 해자의 몸뚱이로 되었다.” 하였다.
이는 빠른 세월이 해월(亥月)로 접어든다는 뜻이다.
[주D-035]까마귀도 세 다리 : 태양의 별칭. 《춘추원명포(春秋元命苞)》에 “해 속에 세 다리를
가진 까마귀가 있다.” 하였다.
[주D-036]수주(守株) : 수주대토(守株待兔)를 말한다. 변통할 줄 모르고 한 자리만 지킨다는 비유.
《한비자(韓非子)》오두(五蠹)에 “송(宋) 나라 어떤 사람이 밭을 갈 때 토끼 한 마리가
달려오다가 나무에 부딪쳐 목이 부러져 죽는 것을 보자, 그만 밭갈기를 중지하고 다른
토끼가 오기만 기다리면서 나무를 지키고 있었으나 토끼는 더 얻지 못한 채 남의 비웃
음만 받았다.” 하였다.
[주D-037]쉬파리 : 《시경(詩經)》소아(小雅) 청승(靑蠅)에 “오가는 쉬파리 무엇을 찾는지 울타
리에 많이들 붙어 있다.” 했는데, 이욕에 휩쓸리는 소인들을 비유한 시이다.
[주D-038]저자에 호랑이 : 이 말은 근거 없는 말도 여러 번 하면 남들이 믿게 된다는 비유.
《전국책(戰國策)》위책(魏策)에 “한 사람이 와서 저자에 호랑이가 있다 하면 믿지
않다가도 두세 사람이 잇달아 와서 저자에 호랑이가 있다 하면 그만 믿게 된다."하였다.
[주D-039]평자(平子) : 후한(後漢) 때 오경(五經)에 능통하고 육예(六藝)에도 익숙했다는 장형
(張衡)의 자. 그 당시 사치한 풍조를 개탄하여 이도부(二都賦)를 지어 풍간했다.
[주D-040]여수(女嬃) : 굴원(屈原)의 누이 이름. 《이소경(離騷經)》에 “정답고 고운 여수 거듭
나에게 타일러 주었지.” 하였다.
[주D-041]두원(杜園) : 두보(杜甫)의 동산.
[주D-042]도경(陶徑) : 도잠(陶潛)이 다니던 길. 귀거래사(歸去來辭)에 “친구와 다니던 세 갈래
길 거칠게 되었어도 소나무와 국화는 제대로 있구나.” 하였다.
[주D-043]거북처럼……돌아가야지 : 벼슬길에 속박받지 말고 향리에서 안전하게 살아야 한다는
비유. 《장자(莊子)》추수(秋水)에 “거북이 죽어서 뼈를 묘당(廟堂) 위에 얹혀서 귀여
움을 받기보다는 살아서 꼬리를 진흙탕 속에 끌고 다니는 것이 나을 것이다.” 하였다.
[주D-044]원결(元結) : 당 숙종(唐肅宗) 때 사람으로 벼슬을 그만두고 번구(樊口)에 숨어서 호를
오수(聱叟)라 하였다. 《唐書 卷143》
[주D-045]번수(樊須) : 수(須)는 공자(孔子)의 제자 번지(樊遲)의 이름. 《논어(論語)》자로(子路
)에 “번지가 농사를 배우려 하자, 공자가 소인이로구나 번수여, 예(禮)와 의(義)와 신
(信)을 좋아하면 사방 백성들이 복종하지 않는 이가 없을 텐데 왜 농사를 짓고 싶어하
느냐.” 하였다.
[주D-046]운자(雲子) : 밥의 별칭으로 쌀이 구름처럼 희다는 뜻. 두보(杜甫)의 시에 “밥은 운자
처럼 흰 것을 가려 먹고 오이는 수정처럼 찬 것을 씹는구나.” 하였다.
[주D-047]목노(木奴) : 감귤의 별칭.
[주D-048]쥐가……불가하고 : 《장자(莊子)》소요유(逍遙遊)에 “쥐가 하수를 들이마신다 해도
배 채우는 데에 지나지 않는다.” 하였다.
[주D-049]우물에……낙이 되듯 : 《장자》추수(秋水)에 “메워진 우물의 개구리는 발등이 겨우
덮일 만한 물을 갖고도 제 낙으로 여긴다.” 하였다.
[주D-050]조도(釣徒) : 낚시꾼. 《당서(唐書)》장지화전(張志和傳)에 “지화는 한 은사로서 자칭
연파조도(煙波釣徒)라 하고 현진자(玄眞子)라는 글을 지었는데, 낚시꾼 노릇은 해도
낚시에 미끼를 달지 않고 고기잡이에 뜻을 두지 않았다.” 하였다.
[주D-051]급암처럼……갖고 : 한 무제(漢武帝)의 직신(直臣)인 급암(汲黯)을 가리킨다. 《한서
(漢書)》가연지전(賈捐之傳)에 “가연지의 간하는 성격은 급암의 정직함과 똑같다.”
하였다.
[주D-052]꿈에도……테야 : 고유(高兪)란 원래 《서경(書經)》순전(舜典)에 나오는 ‘요왈유
(堯曰兪)’란 글귀인데 이 시(詩)에서 요(堯) 자가 고(高) 자로 바뀐 것은 고려(高麗)
정종(定宗)의 이름이 요(堯)이기 때문에 피한 것이다. 여기서는 삼대(三代) 같은 태평
시절을 그린다는 뜻이다.
[주D-053]죽실(竹實)을……같고 : 《한시외전(韓詩外傳)》에 “황제(黃帝) 때에 봉황이 오동에
깃들면서 죽실을 먹었다.” 했는데, 여기서는 이 죽실을 닭과 오리는 무엇인지 모른다는
비유이다.
[주D-054]쓰르라미에게……설명하는 듯 : 《장자(莊子)》소요유(逍遙遊)에 “쓰르라미는 여름 한철
에만 생겨났다가 없어지기 때문에 봄과 가을을 모르는데 저 8천 년이나 오래 묵은
춘나무를 어찌 알겠느냐.” 했는데, 얕은 식견으로는 깊은 도량을 모른다는 비유이다.
[주D-055]장보(章甫) : 공자(孔子)가 썼다는 갓 이름. 《장자(莊子)》소요유(逍遙遊)에 “송(宋)
나라 어떤 사람이 장보를 쓰고 한번 뽐내기 위해 월(越) 나라에 갔으나 월 나라 사람들은
모두 머리를 깎고 갓을 쓰지 않았던 까닭에 아무 소용이 없었다.” 하였다.
[주D-056]모모(嫫母) : 황제(黃帝)의 제4비(妃)로 얼굴은 아주 못생겼어도 마음씨는 매우 착했
다는 여자.《戰國策 楚策》
[주D-057]연객(淵客) : 교인(鮫人)의 별칭. 좌사(左思)의 오도부(吳都賦)에 “연객이 울음을 울면
눈물이 모두 진주로 된다.” 한 주에 “연객은 교인이다.” 하였다.
교인은 바로 인어(人魚).
[주D-058]코에……떼어버린 듯하고 : 《장자(莊子)》서무귀(徐無鬼)에 “어떤 토수(土手)가 토역
을 하다가 흙덩이가 코에 떨어지므로 대목을 시켜 닦으라고 했는데, 대목은 큰 자귀를
갖고 바람이 날 정도로 그 흙덩이를 깎아버렸으나 코가 조금도 상하지 않았다.” 하였다.
[주D-059]마고(麻姑) : 한 환제(漢桓帝) 때의 선녀 이름. 손톱이 마치 새 발톱처럼 생겨 사람의
소양증(搔癢症)을 긁어 없앴다. 《列仙傳》
[주D-060]삼상(參商)처럼 이별한 : 삼성(參星)과 상성(商星)이란 두 별 이름. 삼성은 서남방 신
(申)의 위치에 있고, 상성은 동방 묘(卯)의 위치에 있어서 서로 보이지 않는다. 사람이
서로 흩어져 만나지 못한다는 비유이다.
[주D-061]초월(楚越)보다……것 : 초 나라와 월 나라. 《장자(莊子)》덕충부(德充符)에 “서로
다른 것을 따지면 다같이 뱃속에 있는 간(肝)과 담(膽)도 초월처럼 멀다 할 것이다.”
하였다.
[주D-062]편지 전하는 학 : 공치규(孔稚圭)의 북산이문(北山移文)에 “학서(鶴書)가 언덕 위로
달려온다.” 한 주에 “한(漢) 나라 때 선비를 초빙하는 편지를 마치 학의 머리처럼
쓰는 전자체(篆字體)를 이용한 까닭에 그 편지 명칭을 학두서(鶴頭書)라 했다.”하였다.
[주D-063]마름으로 쫓아가는 오리 : 이 말은 《후한서(後漢書)》유도전(劉陶傳)에 “군사들이
싸움을 괴롭게 여기지 않고 기뻐하는 모습이 마치 오리가 마름을 만난 듯하다.” 한 글
에서 부조(鳧藻) 두 글자를 인용한 것이다.
○사의(司儀) 윤세유(尹世儒)가 주는 운에 따라 바로 그 자리에서 짓다
편지 전하는 삼조는 더디 와도 / 三鳥報書晩
해를 휘모는 육룡은 빠르구나 / 六龍驅日忙
청도가 왜 그리 멀리 있는지 / 淸都空縹緲
뜬 세상에서 공연스레 방황하네 / 浮世謾彷徨
정홍의 들판에서 사슴을 물어보기도 하고 / 鄭野猶爭鹿
양주의 이웃에서 염소를 찾기도 했지 / 楊隣苦覓羊
한평생 걱정이 몇 섬이나 될까 / 一生愁幾斛
온갖 일에 눈물만 천 줄이라오 / 萬事淚千行
책상에는 참동계가 있건만 / 案有參同契
주머니에는 불사약이 없답니다 / 囊無不死方
나 자신은 단리로 자칭하는데 / 自猶稱短李
남들은 장전과 같다고 비웃는구나 / 人競笑顚張
파리하니 거울에 비쳐보기 두렵고 / 瘦怯菱花照
걱정이 많아 술 마시기만 좋아하네 / 愁貪竹葉香
취향에는 돌아갈 길 평탄한데 / 醉鄕歸路坦
벼슬길 풍파가 왜 저리 험할까 / 宦海怒濤狂
좋은 시절 술잔 속에 다 보내고 / 日月含杯外
어지러운 세상이라 칼만 어루만지네 / 風塵撫劍傍
온갖 고난 모두 다 겪고 보니 / 世情渾閱盡
오직 자네의 뜻만은 잊기 어렵네 / 子意獨難忘
잠 자고 밥 먹을 때 늘 마주 대하고 / 寢食雙形影
궁달(窮達)에 있었어도 마음 서로 통했었지 / 窮通一肺腸
오년 동안 주야를 같이했고 / 五年同晝夜
사시의 염량도 함께 했는데 / 四序共炎涼
그대의 세계는 관윤에서 생겨나왔고 / 君系生關尹
우리 조상은 백양에서 시작되었다 / 吾宗起伯陽
정신으로 사귄 지 벌써 오랬던 바 / 神交久已泯
오늘날 우리들에게 전해왔었네 / 末業復偏長
술병을 가지고 처음 찾게 되자 / 櫑具初來訪
갓에 낀 먼지조차 못 털었구나 / 塵巾掃未遑
옥처럼 생긴 모습 반갑게 만나 / 出門看玉立
방으로 들어가니 난초 향기 좋아라 / 入室喜蘭芳
붓 잡고 시 한 수 휘두른 다음 / 摛藻爭揮筆
수없이 권하는 술에 담뿍 취했네 / 乘酣不算觴
복 입고 쌍륙치던 원자와 같고 / 呼盧袁子服
우리 두 사람이 다 복인(服人)이었다.
상제로 술마시던 완생과 흡사하네 / 飮酒阮生喪
옆 손님 서로들 비웃을 테지만 / 傍客應相笑
우리 둘의 속마음 헤아리지 못할 거야 / 中懷固叵量
추운 겨울 거의 다 끝나가니 / 籥窮今歲律
따뜻한 봄 또다시 돌아오겠지 / 物挑好春光
좋은 시절 앞으로 다가오더라도 / 佳節行將近
빠른 세월 생각할수록 슬프기만 해 / 流年但可傷
인생살이 다만 즐길 뿐이니 / 人生行樂耳
서로 만날 때마다 술이나 실컷 마셔보세 / 相見醉千場
[주D-001]삼조(三鳥) : 세 마리의 새. 《초사(楚辭)》구가(九歌)에 “삼조에게 말을 붙이려 해도
빨리 가버려 잡을 수 없다.” 한 주에 “첫째는 기러기, 둘째는 학, 셋째는 제비이다.”
하였다.
[주D-002]해를 휘모는 육룡(六龍) : 여섯 필의 용. 《주역(周易)》건괘(乾卦)에 “육룡을 타고
하늘에 휘몰아 다닌다.” 한 말에서 유래되었는데 이는 세월이 빠르다는 말이다.
[주D-003]청도(淸都) : 옥황상제(玉皇上帝)가 있다는 곳인데 이는 제도(帝都)를 가리킨다.
[주D-004]정홍(鄭弘) : 《후한서(後漢書)》정홍전(鄭弘傳)에 “정홍이 회음 태수(淮陰太守)가
되어 순행할 때 사슴 두 마리가 수레 옆에 바짝 붙어서 떠나지 않기에 주부(主簿) 황국
(黃國)에게 ‘이것이 무슨 이유일까?’ 물었다. 황국이 절하고 축하하면서 ‘옛날 삼공
(三公)이 타는 수레에는 사슴을 그림으로 새겼다 하니 아마 명부(明府)도 재상(宰相)이
될 징조인 듯합니다.’ 했는데, 정홍은 과연 나중에 태위(太尉)가 되었다.” 하였다.
[주D-005]양주(楊朱)의……했지 : 《열자(列子)》설부(說符)에 “양주의 이웃 사람이 염소를 잃고
온 집안이 찾게 되자, 양주의 종에게도 협조를 요청하였다. 양주가 ‘아, 한 마리 염소를
잃었는데 왜 따라가는 이가 이토록 많으냐?’ 하니, 종이 ‘갈림길이 많기 때문입니다.’
하였다. 얼마 후에 종이 돌아왔기에, 양주가 ‘염소를 찾았느냐?’ 하니, 종이 ‘잃어버
렸습니다.’ 하므로 ‘왜 잃어버렸느냐?’ 하니‘갈림길이하도 많아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어 그만 되돌아 왔습니다.’ 했다.” 하였다. 즉, 도(道)의 갈래가 많아 제대로 들어
가는 이가 없다는 비유이다.
[주D-006]《참동계(參同契》 : 한(漢) 나라 위백양(魏伯陽)이 지은 책 이름. 《주역(周易)》효사
(爻辭)에 맞추어 연단(鍊丹)하는 방법을 논한 글.
[주D-007]단리(短李) : 키가 아주 작았다는 당(唐) 나라 이신(李紳)의 별호. 《당서(唐書)》이신전
(李紳傳)에 “신체는 아주 작게 생겼으나 성격이 호방하고 시(詩)에 이름이 있어 당시
사람들이 단리라 일컬었다.” 하였다.
[주D-008]장전(張顚) : 당(唐) 나라 서예가 장욱(張旭)의 별호. 초서(草書)를 아주 잘 썼는데 술이
한껏 취하면 머리털에다 먹을 묻혀 미친 듯이 초서를 썼으므로 남들이 전장(顚張)이라
했다 한다. 《唐書 卷202》
[주D-009]취향(醉鄕) : 술에 취했을 때 온갖 걱정을 잊는 별천지의 경계. 당(唐) 나라 왕적(王績)
의 취향기(醉鄕記)에 보인다.
[주D-010]관윤(關尹) : 주(周) 나라 관령(關令) 윤희(尹喜), 즉 그대의 성이 윤씨라는 뜻.
[주D-011]우리……시작되었다 : 백양(伯陽)은 노자(老子)의 자. 저자 자신의 성이 이씨라는 뜻.
[주D-012]원자(袁子) : 진(晉) 나라 원탐(袁耽)을 가리킨다. 《진서(晉書)》원탐전(袁耽傳)에
“탐은 도박을 매우 잘했는데, 환온(桓溫)이 재산을 탕진하고 탐에게 요청하자 날렸던
재산을 다 찾아주었다.” 하였다.
[주D-013]완생(阮生) : 진(晉) 나라 때 죽림칠현(竹林七賢) 중의 한 사람인 완적(阮籍)을 말한다.
자(字)는 사종(嗣宗)으로 제서(諸書)를 박람하였고 특히 노장(老莊)을 모범으로 삼았다.
평소 술을 너무 좋아하여 보병주(步兵廚)에 술이 1백 곡(斛)이나 저장되어 있다는 말을
듣고 보병교위(步兵校尉) 벼슬을 구하여 부임하자 매일 술에 취하여 업무를 폐할 정도
였으며, 모상(母喪)을 당해서는 술에 취해 통곡하다 피를 쏟고 기절할 정도로 행동이
예절을 벗어났다 한다. 《晉書 卷21》
○오덕전(吳德全)이 동쪽으로 놀이를 나가 돌아오지 않기에 시로 써서 부쳐 주다
바다와 산 보려고 동쪽 먼 길을 떠나더니 / 海山東去路悠悠
한번 천애에 떨어져서 오래오래 노는가봐 / 一落天涯久倦遊
누른 벼 풍년 들어 닭과 오리 좋아해도 / 黃稻日肥鷄騖喜
벽오동 가을 되면 봉황은 걱정일세 / 碧梧秋老鳳凰愁
안개 낀 강호에서 범려의 배 돌아오지 않으니 / 煙波不返遊吳棹
언제 눈 내린 달밤 대안도를 찾으려나 / 雪月期浮訪剡舟
이 성스러운 시대에 버림받지 않을 테니 / 聖代未應終見棄
백수를 휘날리며 낚시질만 생각 마오 / 莫思垂白釣淸流
[주D-001]범려(范蠡) : 춘추 시대(春秋時代) 월(越) 나라 사람. 《사기(史記)》화식전(貨殖傳)에
“범려는 월왕(越王) 구천(句踐)이 회계(會稽) 싸움에서 실패한 수치를 씻어준 후, 배를
타고 오호(五湖)를 유람하면서 성명을 고치고 세상 영화를 멀리하였다.” 하였다.
[주D-002]대안도(戴安道) : 진(晉) 나라 대규(戴逵)의 자. 왕자유(王子猷)가 눈 내린 달밤에
배를 타고 섬계(剡溪)로 대안도를 찾으려 했다는 고사. 《진서(晉書)》왕휘지전(王徽之
傳)에 보인다.
○강 가에서 우연히 읊다
쉴새없이 흐르는 강 동으로 향하듯이 / 滾滾長江流向東
오가는 세월도 끝이 없을 테지 / 古今來往亦何窮
상선은 푸른 물결 가르며 지나가고 / 商船截破寒濤碧
어적이 울리는 곳엔 석양이 붉다 / 漁笛吹殘落照紅
줄풀 핀 언덕에 해오라기 높이 날고 / 鷺格斗高菰岸上
벼 익은 논두렁엔 기러기 모여드네 / 雁謀都寄稻畦中
엄자릉의 옛 자취 잇는 이 없어 / 嚴陵舊迹無人繼
결국 강호에서 어부가 되려 해 / 終抱煙波作釣翁
[주D-001]엄자릉(嚴子陵)의……없어 : 자릉(子陵)은 은사로 유명한 엄광(嚴光)의 자. 한 광무
(漢光武)가 세 차례나 초빙했어도 끝내 응하지 않고 동강(桐江)에 숨어 낚시질로 낙을
삼았다.《後漢書 高士傳》
○강남(江南)에서 지난 일을 추억하다
옛날 결발하던 젊을 때에는 / 結髮少年日
하찮은 살림살이 한남에 두었지 / 輕裝寄漢南
수주(水州)를 일명 한남이라 하였다.
한가로운 틈타서 술도 자주 마셨고 / 乘閑頻劇飮
좋은 경치 나면 한없이 놀기도 했다 / 遇勝輒窮探
강가에서 물고기와 함께 즐기고 / 水共魚相樂
꽃을 보면 나비보다 앞서 갔다네 / 花先蝶自貪
연꽃 심어 놓고 맺힌 이슬 보기도 하고 / 種荷看露嚲
달빛 사랑하여 구름낀 밤 미워했지 / 愛月訴雲含
도잠의 오류전 가끔 외고 / 柳玩陶潛五
이백의 독작시도 자주 읊었네 / 杯傾太白三
아양떠는 아가씨들 아름다움 다투는데 / 仙姝爭自媚
방그레 웃는 뺨 제일 사랑스러웠지 / 笑臉最憐欱
절묘한 거문고 소리 옥 같은 손끝에서 울리니 / 纖玉哀彈妙
모두들 눈길이 그리로 쏠렸네 / 流波注視媅
금비녀 비스듬해도 보기가 좋고 / 金釵嬌不整
연약한 몸은 비단옷도 못이기는 듯했다 / 羅袖弱難堪
서가에 꽂은 금보도 빼어 보고 / 縹帙披琴譜
바둑판 벌여 놓고 승부도 겨루었지 / 紋楸鬪手談
꾀꼬리 우는 봄엔 시상이 번뜩이고 / 鶯春詩思暢
닭 우는 새벽까지 술에 취해 잠잤네 / 鷄曉醉眠酣
오랫동안 머물러 있어 민풍에 익숙했고 / 久住民風熟
좋은 놀이 자주 하여 나그네 회포도 잊었다 / 佳遊客意甘
강산에 볼 만한 경치 너무도 많아 / 江山無盡藏
몇 해를 지나도록 풍월을 즐겼네 / 聲色幾年耽
지나간 일 모두 다 꿈같으니 / 往事渾成夢
어느 때에 또다시 달려갈지 / 何時更理驂
호주로 가는 길 어찌 그리 늦은가 / 湖州去何晩
두목처럼 부끄러움 얻지 말아야지 / 杜牧得無慙
[주D-001]결발(結髮) : 머리를 묶고 갓을 쓰는 것, 곧 어른이 됨을 말한다.
[주D-002]도잠(陶潛)의 오류전(五柳傳) : 진(晉)의 도잠(陶潛)의 저서. 오류 선생이란 그가 집
앞에 버드나무 다섯 그루를 심어 놓고 자신을 자호(自號)한 것이다.
[주D-003]이백(李白)의 독작시(獨酌詩) : 이백이 지은 산중대작시(山中對酌詩)를 말한다.그 시는
다음과 같다. “兩人對酌山花開 一杯一杯復一杯 我醉欲眠君且去 明朝有意抱琴來”
[주D-004]금보(琴譜) : 거문고에 대한 곡조를 총망라한 책. 《당서(唐書)》예문지(藝文志)에
“유씨(劉氏)ㆍ주씨(周氏)의 금보가 네권이다.” 하였다.
[주D-005]두목(杜牧)처럼 부끄러움 : 당(唐) 나라 문장가로 자(字)는 목지(牧之)이며, 진사로
뽑힌 뒤 호주 자사(湖州刺史) 등을 지냈다. 그가 포의(布衣)로 있을 당시 친구가 자사
(刺史)로 있는 호주(湖州)에 놀러갔다가 10여 세에 지나지 않는 절색의 기생을 만났는데
그때 그는 10년 후 자기가 자사로 올 때까지 기다려 달라 하고 돌아왔다.
14년 만에 자사로 부임하자 이미 그녀는 결혼하여 자식을 둘이나 거느린 부인으로 변해
있었다.
○한식일(寒食日) 자추(子推)의 고사에 감탄하여 짓다
뭇 벌레 구름과 비에 은택을 받을 때 / 衆鱗化雲雨
외로운 뱀 한 마리 함께 다투지 않았었지 / 一蛇不與爭
내려지는 혜택을 보지 못하고 / 未見恩波潤
도리어 숯불 속에서 삶기게 되었구나 / 反爲燥炭烹
면산 마루까지 타오른 불은 / 綿山山上火
뛰어난 인재 그만 태워 죽였다 / 已忍焚人英
왜 사나운 불길 널리 놓아서 / 胡不放神燄
전하는 이름까지 태우지 않고 / 焚滅千載名
드디어 후세 사람들에게 / 遂使後代人
이름 듣고 마음 아프게 하였을까 / 聞名輒傷情
해마다 한식일이 되면 / 每至百五辰
만옥에 솟는 연기 보이지 않네 / 萬屋禁煙生
곤륜산 옥과 돌이 모두 탈 때 / 不及炎岡日
한 굽이 맑은 강물 미치지 못했나 / 一勺江水淸
[주C-001]자추(子推)의 고사 : 자추는 춘추(春秋) 때 진(晉) 나라 개자추(介子推)를 말한다. 그는
일찍이 진 문공(晉文公)에게 허벅지살을 베어 봉양할 정도로 충성을 다했었다.
그 뒤 문공이 위(位)에 오른 다음 문공을 수행했던 사람들 대부분이 녹(祿)을 받았으나
그에게는 녹상(祿賞)이 없었으므로 면산(綿山)에 숨어버렸다.
문공이 뒤늦게 그 사실을 알고 그를 불렀으나 응하지 않으므로 산에 불을 놓아 그를
오게 했으나 끝내 타죽고 말았다. 후에 그가 죽은 날을 한식일(寒食日)이라 하여 불을
지피지 않고 그의 덕을 추모하였다. 《左傳 喜公24年》
○진 수재(晉秀才)의 별장에 써서 붙이다 관동(冠童)들을 모아 학업을 익혔다.
용산을 가로지른 성 서쪽 모퉁이에 / 龍山橫枕城西角
우뚝 솟은 한 봉우리 / 斗起奔來一峯綠
한가로운 사람 그 밑에 집을 지었는데 / 下有幽人數間屋
마치 뱀이 머리를 세워 도사린 듯하네 / 昂首神虯軒半腹
한여름이면 사람마다 무더위를 싫어하는데 / 盛夏人人厭蒸溽
여기만 시원하여 상쾌하구나 / 獨此淸涼如可掬
번후가 나무심기 좋아한다 비웃지 말라 / 莫笑樊侯貪種木
주인이 나무심기를 좋아했다.
동산에 들어찬 가래나무 옻나무는 재목으로 쓰일 거야 / 滿園梓漆行可斲
춘추로 심는 나물도 여러 종류고 / 春耕秋種富蔬蔌
기나무도 삼년만 되면 넉넉히 땔 수 있구나 / 榿木三年薪亦足
문 앞 오솔길은 마치 뱀이 서린 듯하고 / 門前路細盤蛇曲
축대 위 바윗돌은 표범과 같네 / 臺上石差頑豹伏
세상에 나가지 않고 스스로 숨어 있으니 / 不出入間自幽獨
타고난 천성 거북처럼 잘 보호하겠네 / 養性媅學龜藏六
눈빛 같은 창문에 아침해 비치니 / 雪色紙窓紅日燭
온갖 서적 차례로 다 읽을 수 있지 / 萬帙縹編宜可讀
모든 선비들 마치 물고기 떼처럼 모여들어 / 白面學子魚聚族
공부에 뜻을 갖고 여기를 서숙으로 삼는구나 / 橫經鼓篋此爲塾
오직 한스러움은 동산에 물이 없어 / 唯恨園無水漱玉
어른 아이 봄 날씨에 목욕할 수 없음일세 / 未協冠童春暮浴
땅을 그어서 하수로 만든다는 술법 배울 수 없는데 / 畫地成河那可學
산을 찔러 샘이 솟도록 한 자 누구였던가 / 刺山出泉知有孰
만 길쯤 되는 긴 사다리 어떻게 얻어서 / 安得長梯萬才矗
하늘의 은하수를 내리게 할지 / 直注天潢亙相續
[주D-001]번후(樊侯) : 주(周) 나라 선왕(宣王)의 신하인 중산보(仲山甫)의 작호(爵號). 나무심은
일은 미상.
[주D-002]땅을……만든다는 : 《잠확유서(潛確類書)》에 “강동(江東)의 하육(夏育)이 큰 솥을
메고는 땅을 그어 하천을 만드는 환술이 있었다.” 하였다.
[주D-003]산을……한 자 : 《한서(漢書)》이광리전(李廣利傳)에 이광리가 선마(善馬)를 빼앗으러
군사를 동원하여 이사성(貳師城)으로 갈 때 물이 없어 군사들의 목이 타자 광리가 패도
(佩刀)로 산을 치니 물줄기가 솟아났다고 하였다.
○오덕전(吳德全)을 생각하면서
마음은 하늘에 뜬구름과 함께 멀어지고 / 心將萬里長雲遠
눈물은 뜰에 내리는 빗방울처럼 쏟아진다 / 淚逐空庭密雨零
한 번 자네를 이별한 후 누구와 이야기하랴 / 一別君來誰與語
눈앞에는 옛날처럼 반가운 얼굴 하나 없네 / 眼中無復舊時靑
○각 선로(覺禪老)에게 주다
바리때는 구름 속에 던져버리고 / 高擲雲間鉢
술잔 갖고 바다 위에서 띄우는구나 / 輕浮海上杯
법상(法床)을 치면 두 호랑이가 우는 듯하고 / 敲床二虎吼
목탁을 칠 때는 한 용이 나타나듯 하지 / 呪鉢一龍來
수함에는 푸른 연기 늘 끼어 있고 / 水檻靑煙濕
풍암에는 푸른 안개 저절로 걷히는구나 / 風巖翠霧開
내가 도 정절이 아니건만 / 予非陶靖節
연사에서 날마다 모시고 논다 / 蓮社日遊陪
[주D-001]도 정절(陶靖節) : 진(晉) 나라 처사 도잠(陶潛)의 시호.
○가을에 김 선배(金先輩)가 등과한 후 시골로 돌아가기에 전송하다
사책으로 급제하여 / 射策登高第
좋은 옷차림으로 고향에 돌아가네 / 騰裝返故鄕
봄철 꾀꼬리와 함께 골짜기를 나오더니 / 春同鶯出谷
가을철 기러기 따라 따뜻한 데로 가는구나 / 秋趁雁隨陽
해질 무렵 떠나는 모습 바라보니 / 落日愁行色
한 줄기 연기 속에 마음이 괴로워 / 孤煙慘別腸
내년이면 틀림없이 서로 만날 테니 / 明年會相見
잘 가라 눈물 흘리지 말고 / 好去莫霑裳
[주D-001]사책(射策) : 한(漢) 나라 때 과거(科擧)의 한 과목. 《한서(漢書)》소망지전(蕭望之傳)
에 “사책갑제(射策甲第)로 낭관(郞官)이 되었다.” 하였다.
○붓[筆]을 읊다
뾰족한 옥처럼 생긴 네 모습 / 憶爾抽碧玉
꼿꼿한 절조 한림 속에 뛰어났네 / 孤直挺寒林
찬바람 된서리에도 꺾이지 않았는데 / 風霜苦不死
도리어 칼날에 베임을 당했구나 / 反見鋒刃侵
누가 독부의 수단을 가지고 / 誰將獨夫手
비간의 심장을 갈라내었느냐 / 刳出比于心
네 억울함을 씻고자 한다면 / 爲汝欲雪憤
마땅히 곧은 말만 써야 할 거야 / 當書直言箴
[주D-001]독부(獨夫) : 악정(惡政)으로 인심을 잃은 외로운 임금을 지칭. 《서경(書經)》주서
(周書) 태서(泰誓)에 “악정하던 독부 수(受)는 대대로 원수이다.” 하였다. 수는 은(殷)
나라 끝 임금인 주(紂)의 이름.
[주D-002]비간(比干) : 은(殷) 나라 주왕(紂王)의 숙부. 주의 음란함을 간한다 하여 주(紂)는
“성인(聖人)은 뱃속에 일곱 개의 구멍이 있다 하니 참 그런지 보자 하고 드디어 비간을
처형시켜 배를 갈라 보았다.” 하였다. 《史記》
○잊음에 대해 읊다
세상 사람 모두 나를 잊어버리니 / 世人皆忘我
사해의 한 몸이 외롭구나 / 四海一身孤
어찌 남들만 나를 잊을 뿐이랴 / 豈唯世忘我
형제도 모두 나를 잊는다오 / 兄弟亦忘予
오늘은 아내가 나를 잊게 되고 / 今日婦忘我
내일엔 내가 나를 잊을 테지 / 明日吾忘吾
이런 뒤에는 온 천지 안에 / 却後天地內
친한 이도 생소한 이도 다 없을 거야 / 了無親與疏
○거듭 북산(北山)에서 놀 때 지은 두 수
위와 아래를 바라보니 지난 세월이 놀라와 / 俯仰頻驚歲屢更
십 년을 지났어도 나는 한 서생이로다 / 十年猶是一書生
우연히 옛절에 와 묵은 자취 찾으면서 / 偶來古寺尋陳迹
고승과 마주 앉아 옛이야기 주고받네 / 却對高僧話舊情
석양이 반쯤 걸린 절벽엔 새 그림자 지나고 / 半壁夕陽飛鳥影
온 산 가을 달에 잔나비 소리 구슬프네 / 滿山秋月冷猿聲
겹겹으로 쌓인 회포 다 풀기 어려워 / 幽懷壹鬱殊難寫
가끔 뜰로 내려가 발 가는 대로 다닌다오 / 時下中庭信步行
얻은 것은 털끝만하고 잃은 것은 산더미 같아 / 得僅毫氂喪似崖
십 년 동안 떠도는 신세 한결같이 곤궁쿠나 / 十年檻籠困徘徊
오늘날 뛰어난 학을 뉘라서 잡아 맬까 / 如今逸鶴知誰繫
반가와하는 잔나비 내 돌아오길 기다리는데 / 粗慰驚猿遲我廻
진세에 더럽힌 얼굴 바람이 씻어 가고 / 塵世舊顔風拂盡
좋은 경지에 숨으려니 달도 반기는 듯 / 煙溪新隱月迎來
산속으로 돌아온 나를 산승은 묻지 말라 / 山僧莫問還山意
보잘것없는 뜬이름 결국 무엇에 쓰리 / 寸草浮名安用哉
○귀산사(龜山寺)에서 방장(方丈) 찬사(璨師)가 보름날 밤에 달을 구경하면서 ‘그대에게 운자
(韻字) 백 개를 주니 아무 자나 뽑아서 시율(詩律)로 지으라’ 하므로 나는 그 중에서 율(律)자
를 고르다
여름과 봄에는 구름 안개 너무 많아 / 夏春足雲霧
달 구경 꼭 기필할 수 없었네 / 玩月未可必
초가을은 더위 아직 남아 있고 / 秋初餘暑熱
늦가을은 또 너무나 쓸쓸하지 / 秋晩過蕭瑟
오직 이 중추절쯤 되어서는 / 獨是中秋中
시원한 기후 차갑진 않아 / 涼不至凄慄
깨끗한 하늘 더욱 높은데 / 掃碧天更高
한 점 안개도 덮이지 않았다 / 纖靄不侵軼
이렇게 알맞은 때를 저버리면 / 負此最宜辰
다시는 구경할 만한 날 없을 거야 / 更無堪玩日
달도 역시 교태를 부리는 듯하여 / 月亦若驕矜
허공에 둥실 솟아오르네 / 踊躍凌空出
깨끗한 둥근 거울인 듯하고 / 澄澄玉鏡圓
가득찬 금물결이 넘치는 듯하다 / 瀲瀲金波溢
가득 부은 술잔 자네도 비워야지 / 請君倒觥般
이토록 좋은 경치 놓칠 수 없다네 / 淸景不可失
먼저 잠자면 엄벌이 있을 거야 / 先眠罰固嚴
술자리엔들 율령이 없겠는가 / 酒席豈無律
○찬사(璨師)의 운에 차하다
덧없는 인생살이 너무도 빨리 지나 / 咄咄浮生隙駟馳
술에 병들고 시에 늙었네 / 病於杯酒老於詩
누가 밝은 거울로 나를 환하게 비쳐주려나 / 誰將明鏡來相照
나는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한다오 / 珠在皮膚自不知
○해질 무렵에 바라보며
이태백 두자미가 읊고 간 뒤론 / 李杜嘲啾後
천지가 온통 적막하였네 / 乾坤寂寞中
강산은 절로 한가로운데 / 江山自閑暇
한 조각 달만이 허공에 걸렸네 / 片月掛長空
○옛일을 빙자하여 생각을 붙이다
하늘에 기도하여 성인을 구한다 해도 / 禱天求聖人
공씨를 비처럼 내려주지 않으며 / 天不雨孔氏
땅을 파고 현인을 찾는다 해도 / 鑿地索賢人
안자를 샘처럼 솟게 하지 않으리 / 地不湧顔子
성현의 뼈가 벌써 썩었으니 / 聖賢骨已朽
힘이 있더라도 살려낼 수 없겠지 / 有力未負致
오늘날 사람들은 무슨 이유로 / 奈何今之人
안목은 낮은데 귀만 높이려고 / 賤目唯貴耳
서책을 펴고 앉아 / 徒生靑史毛
찌꺼기만 좋아한다네 / 糟粕例自嗜
모르겠네 지금 세상 선비들도 / 不識今世士
성현될 기국 있을는지 / 亦有聖賢器
후세 사람도 오늘을 되돌아보며 / 後來復視今
우리처럼 이렇게 생각할 거야 / 攀企亦如此
만물의 생장 이치 관찰해 보니 / 吾觀萬物生
천지의 조화가 공연스레 바쁘구나 / 造化空自勤
초자의 덩굴 함부로 생기게 하고 / 徒生楚茨蔓
또 형극도 너무나 번성하네 / 徒産荊棘繁
왜 지녕초 같은 풀을 / 不使指佞草
이리저리 뻗도록 하지 않아서 / 延引榮其孫
드디어 온 천하 선비들에게 / 遂令天下士
사(邪)와 정(正)을 분변 못하도록 했나 / 邪正久未分
대우가 홍수는 잘 다스렸으나 / 大禹理洪水
사람의 마음만은 못 다스렸네 / 未平人心險
하찮은 일로 풍파를 일으켜 / 睚眦生狂瀾
함정 속에 많은 사람 빠지게 했다 / 萬人平地墊
[주D-001]하늘에……않으며 : 공씨는 공자(孔子)를 가리킨다. 공자의 어머니 안씨(顔氏)가 이구산
(尼丘山)에 기도하여 공자를 낳았다 한다.
[주D-002]초자(楚茨) : 더부룩한 납가새. 《시경(詩經)》소아(小雅)의 한 편명인데, 주 유왕
(周幽王)의 학정을 비난한 시이다.
[주D-003]형극(荊棘) : 가시덩굴로, 소인들에 비유한 말.
[주D-004]지녕초(指佞草) : 제요(帝堯)의 뜰에 난 풀이름. 아첨하는 사람이 들어오면 꼭 그를
가리켜 주었다 하여 이름을 지녕초라 했다 한다.
[주D-005]대우(大禹) : 하(夏) 나라의 시조. 9년의 홍수를 다스릴 때 손발에 군살이 배기고 얼굴에
검버섯이 피었다 한다.
○천수사(天壽寺) 앞에서
하늘에 닿는 풀빛 푸른 연기 뒤치는 듯 / 連天草色碧煙翻
땅에 가득찬 배꽃 흰 눈처럼 피었구나 / 滿地梨花白雪繁
여기는 해마다 이별하는 곳이라 / 此是年年離別處
손님 보내지 않을 때도 넋이 나간다오 / 不因送客亦銷魂
○오동을 읊다
넓고 큰 그늘 장막을 이룬 듯하더니 / 漠漠陰成幄
나부끼는 잎 인장처럼 흩어지네 / 飄飄葉散圭
본래 봉황새 보려고 심었었는데 / 本因高鳳植
쓸데없는 뭇새만 깃들고 있네 / 空有衆禽棲
○매화(梅花)
유령에 추위 닥치자 언 입술이 터지건만 / 庾嶺侵寒拆凍脣
붉은 빛 지니고 참다운 모습 변하지 않네 / 不將紅粉損天眞
갑자기 강적 속에 떨어지도록 하지 말고 / 莫敎驚落羌兒笛
잘 기다리다가 역사를 따라와야 할 거야 / 好待來隨驛使塵
눈을 띠고 다시 많은 눈꽃을 꾸미고서 / 帶雪更粧千點雪
봄 오기 전에 미리 피어 또 한 봄을 이뤘네 / 先春偸作一番春
옥 같은 꽃송이 향기롭고 깨끗함은 / 玉肌尙有淸香在
약 훔쳐먹던 항아의 전신인 듯하네 / 竊藥姮娥月裏身
[주D-001]유령(庾嶺) : 중국 강서성(江西省)의 산이름. 매화의 명소라는 곳.
[주D-002]강적(羌笛) : 일종의 호가(胡笳). 이백(李白)의 취적시(吹笛詩)의 “황학루에서 옥피리
부니 오월 강성(江城)에 매화가 떨어지네[黃鶴樓中吹玉笛 江城五月落梅花]” 한 시가
낙매화곡(落梅花曲)으로 악부(樂府)에 들어있다는 것.
[주D-003]역사(驛使) : 우체부. 삼국 시대(三國時代) 오(吳) 나라 육개(陸凱)가 범엽(范曄)에게
“매화를 꺾자 역사가 오므로, 영두(嶺頭)에 있는 그대에게 부쳐줍니다.” 하였다.
[주D-004]항아(姮娥) : 달의 별칭. 《후한서(後漢書)》천문지(天文志)에 “유궁후 예(有窮后羿)
의 아내가 예의 불사약(不死藥)을 훔쳐 먹고 월궁(月宮)으로 도망쳐서 항아가 되었다.”
하였다.
○구품사(九品寺)에 제(題)하다
더부룩한 풀 온 길에 덮여 있고 / 草暗工防路
다닥다닥한 이끼는 문에까지 붙어 있네 / 苔頑不避門
솔바람은 밤중에 산골을 울리고 / 松風夜響谷
산기운은 새벽에 마루에 낀다 / 山氣曉蒸軒
숲 속 실과는 잔나비가 흔들어 떨구고 / 林菓猿搖落
바위 밑 샘에는 새가 목욕하네 / 巖泉鳥浴渾
중은 가끔 일을 좋아하여 / 居僧偏好事
손님들 인도해서 좋은 경치 보게 하네 / 贊導閱名園
○양 교감(梁校勘)이 한식날 술 마시자고 요청하므로 그의 운을 차하다
살구꽃 만발한 늦은 봄 다가왔으니 / 杏花齊拆暮春晨
서울 거리에 투란할 시기로다 / 正是長安鬪卵辰
술에 취해 금화일인 줄도 알지 못하니 / 杯酒不知藏火日
훈훈한 술기운 사람을 데워 주네 / 醺醺猶遣暖加人
[주D-001]투란(鬪卵) : 계란을 깨뜨리는 놀이.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에 “한식일을 전후
하여 3일 동안 투란놀이를 벌인다.” 하였다.
[주D-002]금화일(禁火日) : 불을 금지하는 날로 즉 한식일(寒食日). 육홰(陸翽)의 《업중기
(鄴中記)》에 “병주(幷州) 풍속은 개자추(介子推)가 불에 타 죽었으므로 그를 애도하는
뜻에서 3일 동안 불때기를 금한다.” 하였다.
○남쪽 집을 바라보고 짓다
남쪽 집은 부자요 동쪽 집은 가난한데 / 南家富東家貧
남가에선 가무가 들려오고 동가에선 곡성(哭聲)만 애절토다 / 南家歌舞東家哭
노래와 춤은 어찌 저리도 즐거운가 / 歌舞何最樂
손님이 마루를 메우고 술도 만 섬이 넘네 / 賓客盈堂酒萬斛
통곡하는 소리는 왜 저리 구슬픈가 / 哭聲何最悲
냉랭한 부엌에는 이레 동안 연기 한 점 안 오르네 / 寒廚七日無煙綠
동쪽 집 아이들 남쪽 집 바라보니 / 東家之子望南家
고기 씹는 소리 마치 대 쪼개듯 요란하네 / 大嚼一聲如裂竹
그대는 알지 못하는가 석장군이 날마다 미희(美姬)끼고 금곡원에서 취해 지냈건만
/君不見石將軍日擁紅粧醉金谷
수양산 아부의 깨끗한 이름 천고에 빛남만 같지 못한 것을 / 不若首山餓夫淸名千古獨
[주D-001]석장군(石將軍) : 진(晉) 나라 갑부였다는 석숭(石崇)을 가리킨다.
《세설신어(世說新語)》태치(汰侈)에 “석숭은 금곡원(金谷園)에서 기생들이 손님에게
술을 취하도록 권하지 않으면 기생을 죽이기까지 했다.” 하였다.
[주D-002]아부(餓夫) : 주(周) 나라 무왕(武王)이 주(紂)를 치는 것에 반대하여 수양산(首陽山)
에 숨어서 충신의 절개를 지키면서 고사리로 연명하다가 굶어 죽었다는 백이(伯夷)와
숙제(叔齊)를 가리킨다.
○취가행(醉歌行)으로 전이지(全履之)에게 주다
해는 정강이도 날개도 없이 / 日無脛又無翼
나는 듯이 달리면서 조금도 쉬지 않고 / 爲劫劫飛走不少息
아침과 저녁을 매일 만들어 / 日來日去暮復朝
나의 귀밑털 희게 하고 나의 얼굴 검게 하나 / 使我鬢髮如銀顔如墨
나는 동쪽 부상으로 달려가 뜨는 해 구경하고 / 吾欲東走扶桑看日上
서쪽 몽사로 들어가 해지는 것도 보려 한다 / 西入濛汜觀日匿
해뜰 때에 금오를 잡아 땅바닥에 떨어뜨리고 / 日上時遮擁金烏拉翼墜
해질 때도 희화를 끌어당겨 술에 잔뜩 취하도록 만들 참이야 / 日匿處牽挽羲和使沈醉
이렇게 하면 해도 그만 멈추게 되어 / 是時日未行
희화가 술에 깨고 금오가 정신이 나도록 기다리겠지 / 留待羲和醒酒烏生翅
삼백 육십일과 삼천 일백 년을 일천 년으로 만들어서 / 三百六十日三千一百年作一千年
나의 양쪽 뺨이 다시 붉고 온 머리가 다시 검어지도록 / 使我兩頰更赤雙鬢玄
날마다 좋은 술 바꾸어 한껏 마실 텐데 / 日換美酒倒放顚狂
그대에게 묻노니 돈이 얼마나 있는지 / 問君能有許多錢
[주D-001]부상(扶桑) : 동해 가운데 있다는 나무 이름. 《회남자(淮南子)》 천문훈(天文訓)에
“해가 양곡(暘谷)에서 돋아 함지(咸池)에서 목욕하고 부상에서 솟는다.” 하였다.
[주D-002]몽사(濛汜) : 해가 넘어가는 곳. 장형(張衡)의 서경부(西京賦)에 “해가 부상(扶桑)
에서 떠올라 몽사로 넘어간다.” 하였다.
[주D-003]금오(金烏) : 태양(太陽)의 별칭.
[주D-004]희화(羲和) : 역법(曆法)을 관장했다는 희씨(羲氏)와 화씨(和氏). 《書經 堯典》
○석죽화(石竹花)
절조는 대나무처럼 고상한데 / 節肖此君高
꽃이 피면 아녀들이 좋아하네 / 花開兒女艶
찬 가을엔 그만 떨어져 버리니 / 飄零不耐秋
석죽이란 이름 분수에 넘치지 않나 / 爲竹能無濫
○유원(柳怨) 장구(長句) 3수
이슬과 안개에 한없이 드리워진 버들 / 露嚲煙低無限思
흩날리는 꽃 일렁이는 가지 봄 생각 못 견디듯 / 絮狂絲亂不勝春
사방 통하는 길거리에서 / 其如南北東西路
오가는 고금 사람 얼마나 애타게 했나 / 惱殺古今來往人
소랑의 집 옆에서 서로 대하면 알맞지만 / 蘇娘宅畔宜相見
양제의 제방 가에는 차마 볼 수 없지 / 煬帝堤邊不忍看
이는 사람의 의견에 따라 구별이 있다 함이요 / 自緣人意有分別
봄빛만은 서로가 다 일반이라네 / 彼此春光摠一般
일 좋아하는 봄바람 해마다 돌아와 / 好事春風歲歲廻
공연히 버들가지 새롭게 만드네 / 無端吹綠柳條新
서울거리에서 한 번 보고 간장이 끊어질 듯했는데 / 都門一見腸猶斷
더구나 정든 사람에게 꺾어 보내줌에랴 / 何況情人折贈春
[주D-001]소랑(蘇娘) : 진(晉) 나라 사람 사탐(謝耽)의 첩인 소자궁(蘇紫藭)을 가리킨다.차소지
(釵小志)에 “소자궁이 사탐을 좋아했으나 만날 기회가 나지 않기에 그녀의 몸종을
보내 사탐이 항시 입는 작은 적삼을 구해오게 하여 밤낮으로 끼고 있었다.
사탐이 이 사실을 알고 자기도 그녀의 옷을 얻고 싶다는 내용의 시를 지어 주었다.”
하였다.
[주D-002]양제(煬帝) : 수(隋) 나라 제2대 임금 양광(楊廣)의 시호.
○선배(先輩) 이양(李陽)이 과거에 떨어져 동쪽으로 돌아가므로 시로써 위로하다
약 훔쳐 먹은 예의 아내 달로 도망한 것 그대는 못 보았나 / 君不見羿妻竊藥奔月裏
예도 꾸짖지 못한 것을 누가 꾸짖겠나 / 羿不得詰誰詰之
그런데도 선생님이 붓을 잡고서 / 無奈先生筆有舌
쉴새없이 풍월만 잇달아 읊고 있지 / 嘲弄風月無休時
선아가 남편의 약을 훔쳐 / 因笑仙娥盜壻物
좋은 배필 저버리고 과부됨을 비웃었다네 / 忍背佳耦爲孤嫠
시가 이루어지면 하늘이 뽑게 될 것인데 / 詩成及被天所取
시가 달을 스쳐 선아가 엿보았네 / 飛出月脅娥先窺
나는 자네와 함께 선아가 하늘의 명을 오도하여 / 與君欲釋憾矯天之命
계수나무 한 가지 내려 주지 않은 것에 유감을 풀고자 하네 / 不贈桂一枝
하늘이 벌써 선아의 죄를 결단했으리니 / 仙娥此罰天已斷
명년을 기다려도 늦지 않을 거야 / 更待明年猶未遲
[주D-001]예(羿) : 유궁후 예(有窮后羿)를 가리킨다. 《후한서(後漢書)》천문지(天文志)에
“유궁후 예(有窮后羿)의 아내가 예의 불사약(不死藥)을 훔쳐 먹고 월궁(月宮)으로
도망쳐서 항아가 되었다.” 하였다.
[주D-002]선아(仙娥) : 달 속에 있다는 항아(姮娥)를 가리킨다.
○동고자(東皐子)가 두목(杜牧)의 운에 따라 덕전(德全)을 생각했기에 그 운을 본받다
시골로 돌아감은 팽택을 추모하고 / 歸去追彭澤
거짓으로 미침은 한림을 생각나봐 / 佯狂憶翰林
한결같은 마음 산과 함께 푸르건만 / 一心山色古
양쪽 귀밑털 눈보다 희구나 / 雙鬢雪痕深
꾀꼬리 울던 날엔 무슨 생각 그리 많아 / 鶯日漫多思
기러기 날아올 때 편지를 부쳤었지 / 雁天空寄音
늘 시 짓고 술 마시는 자리에서 / 每逢詩酒會
누구와 더불어 즐겁게 읊을 거나 / 誰與放高吟
[주D-001]팽택(彭澤) : 진(晉) 나라 팽택 영(彭澤令) 도잠(陶潛)을 가리킨다.
[주D-002]한림(翰林) : 당(唐) 나라 한림 학사(翰林學士) 이백(李白)을 가리킨다.
○기 상서(奇尙書)의 임당(林塘)에서 옛사람의 운을 차하다
오래오래 살 만한 터 골라서 / 占斷千年地
새로 깨끗한 별장 이룩했구나 / 新開一洞仙
연못 물은 흰 비단 펴 놓은 듯하고 / 池淸鋪淨練
죽순은 채찍처럼 미친 듯이 솟아난다 / 笋迸走狂鞭
앵무는 둥우리 엿보면서 재잘거리고 / 鸚鵡窺籠語
원앙은 언덕을 베고 잠을 잔다 / 鴛鴦枕岸眠
이 뜨거운 석 달 여름철에도 / 炎光九十日
어느날인들 가을과 같지 않을까 / 何日不秋天
○최육재(崔育才) 노장이 붙여준 운을 차하다
어촌에서 예부터 살아왔는데 / 海村曾卜築
양쪽 귀밑털 눈처럼 희어져 / 雙鬢雪飄然
맑은 술 알맞게 자주 마시고 / 擧白頻中聖
신선을 배우려고 연단도 만들었네 / 燒丹學上仙
기죽 삿자리 의자에 깔아 놓고 / 床鋪蘄竹簟
풍류는 대사로 만든 거문고 뜯을 뿐이야 / 琴弄岱絲絃
수천 리 먼 거리에서 서로 생각하니 / 相憶數千里
밝은 달 몇 번이나 차고 기울었나 / 蟾輪幾缺圓
[주D-001]기죽(蘄竹) : 중국 호북성(湖北省) 기주(蘄州)에서 생산되는 대.
[주D-002]대사(岱絲) : 중국 산동성(山東省) 대령(岱嶺) 지방에서 생산되는 생사(生絲).
○민사(敏師)에게 주다
청산 만리를 주장자 짚고 다니는데 / 靑山萬里拄筇行
시 잘 짓는 솜씨 이청을 이을 거야 / 餘事能詩絶二淸
두 눈은 새벽 시냇물처럼 푸르고 / 雙眼曉隨溪水碧
몸은 가을 구름처럼 가볍구나 / 一身秋與嶺雲輕
의자에 빙 둘린 호후 사나운 바람에 흩어지고 / 繞床虎吼獰風散
바리때에 들어온 용사흰 기를 토해 낸다 / 入鉢龍蛇白氣生
본래 남을 피하려 했으나 남이 절로 알았으니 / 本欲避人人自識
훗날 고승전(高僧傳)에 이름 숨길 수 있으랴 / 他年僧傳肯逃名
[주D-001]호후(虎吼) : 석가모니(釋迦牟尼)의 설교 소리가 마치 호랑이 울음처럼 웅장했다는 것.
즉 사자후(獅子吼)와 같다. 사자가 울면 온갖 짐승이 겁내는 것처럼 염불하는 소리에
뭇 마귀가 숨어 버린다는 비유이다. 《涅槃經》
[주D-002]용사(龍蛇) : 용과 뱀. 《불인어록(佛印語錄)》에 “범인(凡人)과 성인(聖人)이 함께
사는 것이 마치 용과 뱀이 한데 섞여 있는 것과 같다.” 하였다. 이는 서로가 해치지
않았다는 비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