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한국교회 영성인물들
초대 한국교회 영성 인물론―부흥운동의 중심인물
1. 길 선주 목사-새벽기도회 처음 시작
초대 한국교회의 영적인 거성인 길선주 목사(1869.3.15 ~1935.11.26)는 평남 안주읍 후장동에서 태어났다. 유복한 가정에서 자라났으며 남달리 총명하여 12세에 벌써 한시를 지었다. 11세에 신선행양과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었으며 17세 때는 평양에서 장사를 하다 1년만에 그만두고 몇 명의 친구들과 평양 근처에 있는 절에 들어가 입산수도를 하다가 병을 얻고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그는 기이한 꿈을 꾼대로 대동강변으로 나가 창일거사란 도사를 만나 그의 제자가 되어 주문을 외워 병을 낫고 차력을 익히게 되었다. 그 후로 여러 유명한 도사들을 찾아다니며 몇 가지 차력술을 익히고 유사 종교를 통한 동양전래의 수도에 전념하였다. 그때에 그에게 예수를 믿게한 김종성도 만나게 되었으며 그는 선술정도에 만족하지 않고 항상 더 고상한 도를 찾기에 고심하였다.
평양에 마포삼열이란 선교사가 기독교의 새로운 진리를 전하고 있어 길선주도 흥미를 갖고 그와 가까이 하였으나 믿어볼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선술을 같이 배웠던 김종성이 먼저 기독교에 입신하자 화가 치민 길선주는 자기가 선술로 세상을 평정하는 날에는 변심하여 서학을 믿는 김종성 같은 배신자의 무리를 결코 살려 두지 않겠다고 벼르기도 하였다. 그러나 전도인이 된 김종성이 여러차례 길선주를 찾아와 전도하였으나 믿지 않고 예수교가 참다운 종교인지를 자기가 믿는 삼령신군에게 기도하였으나 회의에 빠지게 되었고 중병을 얻기까지 하였다.
그러다 김 전도인의 말대로 “예수가 참구주이신지 알게하여 주옵소서”하고 연사흘 동안 기도를 계속하던 중 깊은 밤중에 음성을 듣고 “나를 사랑하시는 나의 하나님 아버지시여 나의 죄를 사하여 주시고 나를 살려 주옵소서”하고 외쳤다. 그해 1897년 8월 29세 되던 해에 이길함 선교사로부터 세례를 받고 곧 전도자로서의 열성을 발휘하여 자신의 선술제자이자 함께 동업을 하던 이정식에게 전도하고 고향에 내려와 미신적 신앙에 강하게 사로잡혀 있던 온 가족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였다.
그는 또 그의 선문 동료인 김찬성을 인도하였고 김찬성은 강한 거부를 하다가 결국 진리에 순복하고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가는 곳마다 전도하게 되었다. 그리고 장로회 제2회 목사가 되고 두 아들도 목사가 되어 많은 영혼들을 주께로 인도하였다.
길 선주는 친구인 근엄한 옛 선비 이 경식을 위하여 6년 동안이나 쉬지 않고 기도를 하여 7년째 되는 해 기도가 이루어져서 믿게 되었고 열심을 다했다. 길 선주는 주의 복음을 전하는 것에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았다.
그런데 길 선주가 예수를 믿기로 결심한 후부터 이상하게 장사에 거듭 실패하고 단골손님도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에게는 가족의 생계보다 하나님의 일이 더욱 중하여 마침내 상점을 정리하여 빚을 모두 청산하고 말았다. 그는 기쁨으로 온전히 자신을 전도사업에 바치기로 결심하고 더욱 하나님의 일에 힘썼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서 재산을 늘리기도 하였으나 그에게는 이미 물질의 많고 적음이 안중에 없었다. 자기의 재산을 처분해버리고 청빈한 생활을 감수하면서 오직 복음의 사도로서 그리스도를 위한 사업에만 진력하였다.
1903년 평양 신학교에 입학한 그는 1906년 신학교 2학년으로 장대현 교회를 담임하고 있었는데 기도의 사람으로 유명하였다. 산에 들어가 기도해보고 교회에서 기도를 아무리 해도 마음에 흡족함을 얻지 못하여 새벽마다 시간을 정하고 기도를 계속하면서 성령의 충만한 역사를 체험하였다. 이 새벽시간에 신학생들과 열심 있는 교인들이 기도에 동참하여 사람이 늘어나게 되었다. 이것이 1906년에 시작된 세계 교회 사상 일찍이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새벽기도회’의 시초가 된 것이다.
1907년 평양 장대현 교회에서 사경회가 열렸는데 마지막말이 되어도 기도에 대한 응답이 없어 애를 태우던 중 하늘에서 뜨거운 성령의 불길이 임하는 체험을 하자 그는 기도하던 도중에 일어나 큰 소리로 하늘을 향하여 “나는 아간과 같은 도둑이올시다‘하고 외치며 자기가 불의한 생각으로 남의 돈 백원을 가로챈 사실을 성도들 앞에 회개하였다. 길 선주가 자기의 죄를 고백하면서 마룻바닥을 치며 통회하자 모든 사람들이 자기들의 죄를 회개하기 시작하여 밤새도록 많은 사람들이 애통의 눈물을 흘리면서 군중 앞에서 자신의 죄를 자복하였다.
이 날 장대현 교회 에서부터 일기 시작한 사경회를 통한 부흥운동은 전국적으로 번졌고 이와 함께 조직적인 복음 전도 운동도 일어나 두 사람씩 짝을 지어 평양 시대 집집마다 전도하는 축호 전도 운동을 일으킨 것이다.
길 목사는 1907년 부흥운동의 기수였다. 1908년부터 원산과 함경도의 교회마다 신앙의 부흥이 일어나 교회는 비좁게 되고 교인들은 모두 은혜 안에 충만하게 되었다. 그는 3.1운동 때문에 2년간 옥고를 치르는 중에 기도와 성경 특히 요한 계시록을 많이 읽어 계시록의 모든 장, 절을 암송하였는데 그는 일생을 통해 계시록을 일만 이백 번 읽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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