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터의 풍경 / 오정순
공터에 내리는 비는 구겨진 절기의 줄기가 느릿합니다
버려진 액자가 있고
시든 난蘭 한 포기가 비에 젖고 있습니다
일직의 빗줄기가 지나가고 뿌리를 잡고 있는 바위에
푸른 이끼라도 살아 날듯합니다
깨어진 유리에는 깨어진 햇볕이 어울리겠지요
반짝, 비가 갠 공복의 허공엔 햇볕이 따뜻합니다
소슬하게 바람이라도 불었는지
흔들린 난蘭잎 주변에 먹물이 번져 있습니다
골목을 막 들어선 봄의 등 뒤로 아지랑이 배접이 구불구불하고
몇 년 아니, 몇 십 년 쯤 피어있었을
꽃대가 피곤해 보입니다
붉은 노을이라도 세 들어 있는지
낙관엔 오래 흔들린 악력握力이 흐릿합니다
낡은 시선만 가득한 풍경,
떠나 온 벽의 경사가 누워 있습니다
어쩌면 저 풍경의 크기만 한 흰 공터를
벽에 남겨 놓았을지도 모르지요
상실의 흔적들이란 저렇듯 각이 져 있을지도 모릅니다
공터의 담 벽이 비스듬히 그늘을 만들고 있고
어쩌다 풍경화 한 점 걸리는 호사를 누리고 있는 담벽
아이들의 웅성거림이
공터의 배접으로 드러눕는 시간
흔들리는 그늘들은 모두 저녁으로 걸어 들어갑니다
이제, 그 어떤 풍경도 이 액자에 들어 갈 수 없다는 듯
캄캄해지고 있습니다
- 2011년 <천강문학상> 대상 수상작
■ 오정순 시인
- 1958년 대구 출생
- 국민대 졸업
- 2011년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
《 심사평 》
... 서정시는 단순성의 미학이다. 분석의 대상이 되는 구조의 틀, 혹은 주제를 구성하는 의미론적인 층이 비록 복잡성을 띠고 있는다고 해도, 적어도 발화 형식의 결에 있어선 그렇다는 얘기다. 시를 쓰려고 하는 사람들 중에 시를 산만한 사설(辭說)의 언술임을 착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고 생각된다.
하고 싶은 말이 많다면 어쩔 수 없이 산문의 장르를 선택해야 할 것이 아닌가 한다. 시를 쓰는 사람은 다름 아니라 산문을 쓰는 사람이 하지 못하는 말을 부리는 사람이다.
그는 산문을 쓰는 사람이 쉽사리 할 수 없는 구석진 말의 물결 같은 흐름에 중시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시는 사물의 이면을 꿰뚫어볼 수 있는 통찰의 상상적 결과가 아닌가 여겨진다. - 중략
- 심사위원: 김종해 송희복
● 하루라도 배우지 않는 것을 부끄러워하라
레오 버스카글리아 교수는
사람의 가장 큰 죄는
아침에 눈을 뜰 때부터 밤에 잠들 때까지
하루 종일 아무것도 배우지 않고
침대로 들어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오늘은 어떤 지혜를 배우고 실천하고,
또한 얼마나 많은 사랑을
주변에 나눠주실지 생각해보고
하루를 시작하셨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