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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암(思菴) 박순(朴淳) 묘 포천답사를 계획하면서 느낀건데 그렇게 많이 다니면서도 놓친 묘들이 참으로 많다는 걸 새삼 느꼈다. 어떤 곳은 다녀오고도 기록으로 남기지 않아 다시 다녀와야 하는 곳도 있고 어떤 곳은 묘역이 새롭게 변화되어 한 번 더 다녀와야 되는 곳도 있다. 그런데 한번도 답사 안 한 곳이 더 많다. 사암 박순선생은 영의정을 15년간 했다고 나와서 의아해 했는데 다른 문건을 확인해 보니 정승을 14년간 했다고 한다. 영의정만 7년 했다고 한다. 그래서 장원급제자가 영의정 못한다는 관례를 깼다고 전해진다. 박순선생 묘는 백호 본신 안산이 앞쪽을 막아주고 영평천이 묘역으로 들어오는 형국이라 재물이 넉넉해지는 형국이다. 앞쪽 안산도 묘역을 안아주고 있는 모양이라 좋은 기운을 보내고 있다. 다만 명당이 너무 좁아 발복은 그리 길지 못할 것이라 판단된다. 묘역의 청룡 쪽에 주차장이 들어서면서 나무를 베어내는 바람에 바람 길이 터져 조금 허한 게 흠이 되고 있다. |
사암(思菴) 박순(朴淳) 본관은 충주(忠州). 자는 화숙(和叔), 호는 사암(思菴). 은산군사(殷山郡事) 박소(朴蘇)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성균관사 박지흥(朴智興)이고, 아버지는 우윤(右尹) 박우(朴祐)이며, 어머니는 당악김씨(棠岳金氏)이다. 기묘명현(己卯名賢) 목사(牧使) 박상(朴祥)의 조카이다. 서경덕(徐敬德)의 문인이다. 1540년 사마시에 합격하고, 1553년(명종 8) 정시 문과에 장원한 뒤 성균관전적(成均館典籍), 홍문관수찬(弘文館修撰)·교리(校理), 의정부사인(議政府舍人) 등을 거쳤다. 1561년 홍문관응교(弘文館應敎)로 있을 때 임백령(林百齡)의 시호 제정 문제에 관련, 윤원형(尹元衡)의 미움을 받고 파면되어 향리인 나주로 돌아왔다. 이듬해 다시 기용되어 한산군수(韓山郡守)로 선정을 베풀었고, 1563년 성균관사성(成均館司成)을 거쳐, 그 뒤 세자시강원보덕(世子侍講院輔德)·사헌부집의(司憲府執義)·홍문관직제학(弘文館直提學)·승정원동부승지·이조참의 등을 지냈다. 1565년 대사간이 되어 대사헌 이탁(李鐸)과 함께 윤원형을 탄핵해 포악한 척신 일당의 횡포를 제거한 주역이 되었다. 그 뒤 대사헌을 거쳐, 1566년 부제학에 임명되고, 이어 이조판서·예조판서를 겸임하였다. 1572년 우의정에 임명되고, 이듬해 왕수인(王守仁)의 학술이 그릇되었음을 진술했으며, 이 해 좌의정에 올랐다. 그 뒤 1579년에는 영의정에 임용되어 약 15년간 재직하였다. 이이(李珥)가 탄핵되었을 때 옹호하다가 도리어 양사(兩司: 사헌부와 사간원)의 탄핵을 받고 스스로 관직에서 물러나 영평(永平) 백운산(白雲山)에 암자를 짓고 은거하였다. 일찍이 서경덕(徐敬德)에게 학문을 배워 성리학에 널리 통했으며, 특히 『주역(周易)』에 대한 연구가 깊었다. 문장이 뛰어나고 시에 더욱 능해 당시(唐詩) 원화(元和)의 정통을 이었으며, 글씨도 잘 썼다. 중년에 이황(李滉)을 사사(師事)했고, 만년에 이이·성혼(成渾)과 깊이 사귀어 ‘이 세 사람은 용모는 달라도 마음은 하나이다.’라고 할 정도였으며, 동향의 기대승(奇大升)과도 교분이 두터웠다. 나주의 월정서원(月井書院), 광주(光州)의 월봉서원(月峰書院), 개성의 화곡서원(花谷書院), 영평(永平)의 옥병서원(玉屛書院)에 제향되었고, 저서로는 『사암집(思菴集)』 7권이 있다.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인용> |
문화재지정 | 포천시 향토유적 제47호 |
문화재명칭 | 사암(思菴) 박순(朴淳) 묘 및 신도비 |
소재지 | 경기 포천시 창수면 주원리 산 210-28(묘), 주원리 688(신도비) |
관리자(연락처) | 충주박씨종중 |
▼ 사암(思菴) 박순(朴淳) 신도비 개요
▼ 사암(思菴) 박순(朴淳) 신도비... 옥병서원 앞에 있다.
▼ 사암(思菴) 박순(朴淳) 구 신도비...
▼ 사암(思菴) 박순(朴淳) 신도비.. 옥병서원 홍살문이 보인다.
▼ 사암(思菴) 박순(朴淳) 묘 앞에 세워진 안내판...
▼ 사암(思菴) 박순(朴淳) 묘역 입구
▼ 사암(思菴) 박순(朴淳) 묘
▼ 사암(思菴) 박순(朴淳) 묘 전경
▼ 사암(思菴) 박순(朴淳) 묘 둘레석에 글이 새겨져 있다. 사암선생 묘에는 송균수월(松筠水月)(선조가 내린 8자 윤음 중에서 4글자를 따서 적음), 부인 개성고씨 묘에는 청신배덕(淸愼配德)(청렴, 근신이 배우자 덕)이라고 적혀있다.
▼ 사암(思菴) 박순(朴淳) 묘비
▼ 사암(思菴) 박순(朴淳) 묘 청룡쪽... 예전 사진에 보면 나무로 바람을 막았던데 지금은 터져 있다.
▼ 사암(思菴) 박순(朴淳) 묘 백호쪽....
▼ 사암(思菴) 박순(朴淳) 묘 안산... 백호 본신 안산으로 영평천 물길이 들어오고 바람도 막아주고 있어 재물이 넉넉하다.
▼ 사암(思菴) 박순(朴淳) 묘 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