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현절과 성령세례
사도행전 19:1-7 2022/1/9 주현 후 제1주
19:1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에 바울이 윗지방으로 다녀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
19:2 이르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이르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노라
19:3 바울이 이르되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대답하되 요한의 세례니라
19:4 바울이 이르되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라 하거늘
19:5 그들이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
19:6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19:7 모두 열두 사람쯤 되니라
하나님의 은총과 평화가 우리 모두에게 함께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은 두 가지에 있어, 우리에게 의미가 있는 날입니다.
하나는 장정교회 목회달력이 정한 ‘신천임원 임명식’이 있는 날입니다.
오늘 새롭게 임명된 다섯 분의 권사님과 그의 가정에 드리고 싶은 권면이 있습니다.
앞으로신천 권사로서 신앙생활을 알차게 이어나가길 원하신다면
로마서 12장 1절에 나오는 사도 바울의 권면을 꼭 기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롬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우리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는 것
이것이 우리가 드릴 참된 예배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머리와 마음으로만 믿지 말고,
몸으로, 우리의 신앙을 적극적으로, 표현해야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모든 이들의 모범이 되는 것이지요.
*집사: 봉사하는 이(손)
*권사: 모범을 보이는 이(발바닥)
우리 몸의 신체로 비유하자면,
집사가 ‘손’이라면 권사는 ‘발바닥’입니다.
교회라는 거대한 몸을 지탱하면서,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사랑의 흔적(족적)을 남기는 발바닥이지요.
마침 이와 관련해서, 좋은 권면의 시가 하나 있어, 소개할까합니다.
시인 박노해의 ‘사랑은 발바닥이다’입니다.
머리는 너무 빨리 돌아가고
생각은 너무 쉽게 뒤바뀌고
마음은 날씨보다 변덕스럽다
사람은 자신의 발이 그리로 가면
머리도 가슴도 함께 따라가지 않을 수 없으니
발바닥이 가는 대로 생각하게 되고
발바닥이 이어주는 대로 만나게 되고
그 인연에 따라 삶 또한 달라지리니
현장에 딛고 선 나의 발바닥
대지와 입맞춤하는 나의 발바닥
내 두 발에 찍힌 사랑의 입맞춤
그 영혼의 낙인이 바로 나이니
그리하여 우리 최후의 날
하늘은 단 한 가지만을 요구하리니
어디 너의 발바닥 사랑을 좀 보자꾸나.
다시 한 번 신천 권사님들께 축복하며 부탁을 드리겠습니다.
이제부터 여러분이 걷는 그 힘찬 걸음들이
하나님의 사랑이자 장정교회의 역사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이 또 다른 의미에서 중요한 것은
오늘이 ‘주현 후 첫 번째 주일’이자
전 세계의 모든 교회가 기념하는 ‘세례주일’이기 때문입니다.
주현절, 세례주일
생소하지요.
먼저 주현절입니다.
주현절은 성탄절을 기준으로, 12번째 되는 날이 주현절입니다.
지난 1월 6일(목)이 주현절이었습니다.
주현主顯
'주인 주主'의 '나타날 현顯'자를 씁니다.
주인이 나타난 날(절기)이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주인’은?
하나님의 아들이자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이겠지요.
그러니까 ‘주현절’이란?
나사렛 출신의 사람의 아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
그리고 ‘그리스도(메시아)’로 공인을 받고,
우리에게 나타나신 날이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사람의 아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로
‘나사렛 사람’이 어떻게 ‘그리스도’로 공인을 받게 되었는가?
이것에 대한 의미와 해석이 서방교회와 동방교회가 조금 다릅니다.
우선, 우리가 속해 있는 서방그리스도교(천주교 개신교)의 주현절 해석입니다.
‘사람의 아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로,
‘나사렛 사람’이 어떻게 ‘그리스도’로 사람들로부터 공인을 받게 되었는가?
그 첫 번째 증거가 ‘동방박사의 아기 예수 경배(Nativity Scene 성탄풍경)’라는 것입니다.
아기 예수님이 동방박사들로부터 경배를 받으실 때,
그 때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경배를 받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드려진 증거의 예물이 ‘황금 유향 몰락’입니다.
마2:9 박사들이 왕의 말을 듣고 갈새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이 문득 앞서 인도하여 가다가 아기 있는 곳 위에 머물러 서 있는지라
2:10 그들이 별을 보고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2:11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반면, 동방 그리스도교, 정교회의 주현절은
세례를 중요시 여깁니다.
세례자 요한으로부터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실 때,
그 때 하나님의 아들로, 그리스도로, 증거(공인)를 받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는 시각적 이미지인데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내려, 예수님 위에 머무심(abide)으로
또 하나는 청각적 이미지인데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는 하늘의 소리로
공인을 받으셨다는 것입니다.
마3:16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3:17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그래서 주현절 전통에 따라
세계의 모든 교회가 오늘 ‘세례주일’로 기념합니다.
세례를 통하여,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 머물게 된 것과
세례를 통하여,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게 된 것을
기억하고 감사하자는 의미입니다.
주현절이 또 중요한 것은
여기서부터 유대교와 그리스도교가 갈라지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사람의 아들’이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는지?
어떻게 육체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 ‘성자 하나님’이 될 수 있는지?를
증언해 줄 수 있는 날이 바로 주현절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주현절기간에는 우리가 ‘교회의 정체성’
‘그리스도인의 정체성’ 그리고 ‘세례의 의미’를 되새겨야 합니다.
회당(시나고그)과 다른, 교회(에클레시아)란 무엇인지?
바리새인과 다른, 그리스도인이란 누구인지?
요한의 세례와 다른, 성령세례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입니다.
이 중에서 오늘은 성령세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요한의 세례가 아닌 성령세례입니다.
사도 바울의 3차전도 여행이 있을 때, 일입니다.
2차전도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잠시 머문 에베소를 바울이 다시 방문하게 됩니다.
그 때 아볼로로부터 성경(율법과 예언서)을 배운,
그렇게 해서 유대교로 개종한 경건한 헬라인들이 바울의 소문을 듣고 찾아오게 됩니다.
19:1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에 바울이 윗지방으로 다녀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
여기서 바울이 만난 ‘어떤 제자들’이란?
아볼로처럼
디아스포라 유대인의 경건한 삶을 보고,
그들의 높은 도덕성과 거룩한 삶을 따랐던 헬라인들을 말합니다.
유대교로 개종한 헬라인들입니다.
이들에 대한 기록이 처음 등장한 것은 사도행전13장 43절입니다.
13:43 회당의 모임이 끝난 후에 유대인과 ‘유대교에 입교한 경건한 사람들’이 많이 바울과 바나바를 따르니 두 사도가 더불어 말하고 항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으라 권하니라
13:43 회중이 흩어진 뒤에도, 유대 사람들과 ‘경건한 개종자들’이 바울과 바나바를 많이 따랐다. 바울과 바나바는 그들에게 말을 걸면서, 늘 하나님의 은혜에 머물러 있으라고 권하였다.
여기서 말하는 ‘유대교에 입교한 경건한 사람들’ ‘경건한 개종자들’이
바로 오늘 본문 19장 1절에 나오는 ‘어떤 제자들’입니다.
바울은 그들을 만날 때 마다 틈틈이 이런 권면을 했습니다.
‘항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으라’
‘늘 하나님의 은혜에 머물러 있으라’
하지만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그들을 알 수가 없었습니다.
아볼로의 가르침처럼
율법을 더욱 열심히 공부하라는 것인지
율법의 계명을 더욱 힘써 지키라는 것인지
도저히 알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에베소에 머문 바울을 다시 찾아간 것입니다.
‘항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으라’
‘늘 하나님의 은혜에 머물러 있으라’
도대체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려달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며칠을 보내지요.
그런데 이상한 거예요.
‘하나님의 은혜’라는 주제는 같은데, 그 은혜의 실체가 다른 것입니다.
우선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어떤 제자들은 하나님의 은혜,
그 실체를 율법 안에서 찾으려 했습니다.
어떤 율법의 가르침이 하나님의 은혜일까?
어떤 율법의 실천이 하나님의 은혜일까?
반면, 바울은요?
하나님의 은혜를 ‘그리스도 안에 머무는 것’으로 가르쳤지요.
그러니 같은 주제를 놓고, 서로 다른 말을 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을 먼저 깨달은 것은 바울이었습니다.
지금 그들의 믿음에(열심에) 치명적인 문제점이 있다는 것을 바울이 발견합니다. 그래서 즉각 문제의 본질을 찾아, 바울이 이렇게 묻습니다.
19:2 이르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하나님의 은혜’라는 주제에 있어, ‘성령’은 가장 중요한 질문이지요.
하지만 그들은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신앙의 주제였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합니다.
19:2 이르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이르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노라
그 때 가르친 것이 바로 ‘성령세례’입니다.
지난날의 죄를 씻는 요한의 세례.
물세례만으로는 ‘항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머물러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항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머물러 있을 수 있는가?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받는 성령세례를 통해서입니다.
행19:3 바울이 이르되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대답하되 요한의 세례니라
19:4 바울이 이르되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라 하거늘
19:5 그들이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
19:6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19:7 모두 열두 사람쯤 되니라
말씀을 마칩니다.
유럽의 여러 도시들을 순례할 때, 유서 깊은 교회를 찾게 됩니다.
그 때 순례 객들은 웅장한 교회 건물에 모든 시선을 멈춥니다.
하지만 교회 건물만큼 중요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교회 입구나 그 중심의 놓인, 팔각형 형태의 세례반洗禮盤입니다.
그만큼 유럽의 교회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주는 성령세례를 중시했다는 말일 겁니다.
저는 우리 장정교회가 그 전통을 있는 세례반洗禮盤과 같은 교회가 되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세례 반에 담긴 물처럼 하나님의 은혜가 항상 머무는 교회이지요.
이를 위해 손바닥 발바닥으로 열심을 다하는 아름다운 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