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영동과 옥천의 경계에 솟아있는 월이산(551.4m)은 달이산이라고도 한다.
'달이 떠오르는 산'이라는 뜻으로 산세가 달처럼 둥근 모양이다.
북쪽으로 금강이 흐르며,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정상 서쪽에 투구처럼 생긴
투구봉과 서봉(천모산 507m)이 있고 남쪽 산등성이 아래에는 높이 20m의 옥계폭포가 있다.
정상에 오르면 S자로 휘어져 흐르는 금강이 보이고 멀리 서쪽으로 금강철교, 서대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정상에서 서봉(507m)으로 넘어가는 산등성이에 있는 투구봉에서는 밧줄을 잡고
암봉을 오르는 산행의 묘미를 느낄 수 있다.
정상에 남아있는 월이산봉수대는 조선조 영동현 소속의 봉수대로 조선 초기에 건립되었다.
봉수대 터의 면적은 100평 정도이며, 둘레 53m, 지름 19m 정도 되는 석루가 1m 정도의 높이로 남아 있다.
외벽은 봉돌로 쌓았으며, 전체적인 모양은 타원형이다.
월이산봉수는 서울까지 전달되는 다섯 가지 봉화로 중 남해 금산에서 영동, 옥천을 거쳐 서울
목멱산(남산)으로 연결되는 제2거봉화로의 간봉에 속한다.
동쪽으로 영동 박달산(朴達山)의 연락을 받아 북쪽으로 환산봉수(環山烽燧)에 전달하였다.
『세종실록지리지』에 "봉화 2곳이니, 월이산은 이산현 동쪽에 있고, 남쪽으로 영동 박달산에,
북쪽으로 본군 환산에 응한다."라는 기록으로 처음 등장한다.
한편, 같은 문헌의 영동현 기록에는 '현이산(懸伊山)'이 기재되어 있다.
순한글 이름이 '다리산'이었고 다리를 '달[月]' 혹은 '매달다[懸]'라는 의미로 해석하여
월이산 혹은 현이산으로 표기한 것으로 여겨진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월이산'과 함께 '월이산봉수'가 언급되어 있다.
또 『여지도서』에 "월이산은 군 남쪽 30리에 있다. 이산창(利山倉) 아랫니다.
지륵산에서 맥이 온다."라는 기록이 있다.
『조선지지자료』에는 '달리산'이라는 또 다른 순한글 이름도 밝히고 있다.
즉 "월이산은 이내면 현리, 이남일소면 대동리에 있다."라는 기록이 나온다.
『한국지명총람』에는 월이산의 다른 명칭으로 '달리산(達理山)'과 '다리산'을 수록하면서
산 모양이 반달처럼 생겨 지어진 이름이라고 소개되어 있다.
박연폭포라고도 불리는 옥계폭포는 영동군 심천면 옥계리로 진입하여 월이산, 천모산 골짜기에 있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에서 쏟아져 내리는 물줄기가 무려 20여 미터에 이르며
수려한 주변 경관과 어우러져 일대 장관을 이룬다.
예부터 국악의 거성 난계 박연선생을 비롯한 수많은 시인 묵객들이 모여
옥계폭포의 아름다움을 찬탄하는 글을 많이 남긴 곳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