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불어 가는 쪽으로 슬며시 굽어드는 물결 무심코 바라본 먼 곳이 아찔하게 흔들리고 가까운 일은 그로테스크해지는 것이다
다래끼를 앓았던 눈꺼풀이 좁쌀만 한 흉터를 불쑥 내민다 눈꼬리는 부챗살을 펼친다 협곡을 따라 어느 행성의 분화구 같은 땀구멍들, 열꽃 흐드러졌던 웅덩이 아직 깊다
밤이라는 돋보기가 적막을 묻혀온다 달빛이 슬픔을 구부린다 확실한 건 동근 원 안에 든 오늘뿐, 오 무래미에 샛강이 흘러드는 소리, 쭈뼛거리는 머리카락이 먼 소식을 듣고 있다 몰라도 좋을 것까지 확대하는 버릇을 나무라지 않겠다
웃어본다 찡그려본다 쓸쓸한 표정을 지어본다 눈(目)에도 자주 눈물을 주어야겠다고, 청록 빛 어둠이 내려앉는 저녁 지금 누가 나를 연주하는지 주름이 아코디언처럼 펴졌다 접어진다
분청 다기에 찻잎을 우리며 실금에 배어드는 다향(茶香)을 유심히 바라본다
먼 어느 날의 나에게 금이 가고 있다 무수한 금이 금을 부축하며 아득히 걸어가는 것이 보인다
<세계일보 2018 신춘문예 당선작>
지금까지 적어보지 않았던 글을 적습니다. 신춘문예 시를 감상합니다. 어렵고 힘든 길이 될 것을 압니다. 왜냐하면 이해가 가지 않는 것들이 대부분일 테니까요. 그렇다고 그냥 넘어간다면 영영 해독이 불가한 암호처럼 남겠지요. 시인에게 물어볼 재간도 없고 또, 시(詩)란 시인의 손을 벗어나면 독자(讀者)의 몫이 되는 법이니까요. 제가 근무하는 직장 앞에 단골 맛집이 하나 있습니다. 거기에는 '있다, 되고 된다.'라는 통통한 가게 주인의 다짐이 벽에 시금석처럼 붙어 있습니다. 저도 어떤 꿈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일이 될 것을 믿습니다. 시작합니다.
접힌 표정이 펴지는 사이, 실금이 간다
처음의 시작이 압권입니다. 모름지기 모든 글은 첫 구절이 승패를 가늠합니다. 돋보기로 누군가의 표정을 들여다보는가 봅니다. 접혀 있던 표정이 돋보기로 보면 펴지겠지요. 그러나 전에는 보지 못했던 실금이 보이는군요. 주름살입니다.
시간이 불어 가는 쪽으로 슬며시 굽어드는 물결
주름살을 시인은 '실금'으로 보았고 주름살은 세월의 흔적이겠지요. 그래서 '시간이 불어 가는 쪽'은 '실금' 즉 주름살이 나 있는 곳이 아닐까요? 이제 주름살은 '시간이 불어 가는 쪽'이 되었다가 '골짜기'나 '계곡'의 이미지로 변합니다. 그곳으로 물결이 굽어드니까요.
무심코 바라본 먼 곳이 아찔하게 흔들리고 가까운 일은 그로테스크해지는 것이다
돋보기안경을 끼고 먼 곳을 바라보면 사물은 흔들리고, 가까운 곳을 바라보면 세상의 일들은 기괴해지는 거지요.
시인은 어떻게 이런 발상을 할 수 있었을까요? 먼 훗날은 두렵고 눈앞에 닥친 현실은 말할 수 없이 힘듭니다.
다래끼를 앓았던 눈꺼풀이 좁쌀만 한 흉터를 불쑥 내민다 눈꼬리는 부챗살을 펼친다 협곡을 따라
어느 행성의 분화구 같은 땀구멍들, 열꽃 흐드러졌던 웅덩이 아직 깊다
돋보기안경을 통해 바라보던 세상이 갑자기 역전이 되었습니다. 세상이 돋보기를 통해 실금 간 얼굴을 들여다봅니다. 흉터와 부챗살의 협곡, 분화구 같은 땀구멍, 어린 시절 알았던 마마의 흔적이 본 모습을 들어내는군요.
밤이라는 돋보기가 적막을 묻혀온다 달빛이 슬픔을 구부린다 확실한 건 동근 원 안에 든 오늘뿐, 오
무래미에 샛강이 흘러드는 소리, 쭈뼛거리는 머리카락이 먼 소식을 듣고 있다 몰라도 좋을 것까지
확대하는 버릇을 나무라지 않겠다
아예 돋보기안경은 밤이 되어서 적막을 묻혀왔군요. 달빛이 슬픔을 구부릴 수 있을까요? 돋보기로 보면 슬픔으로 가득 찬 세상을 둥근 달빛이 그나마 환하게 밝힙니다. 오목해진 합죽이 같은 할머니 아니 할아버지의 주름 속으로 샛강이 흘러듭니다. 자식들의 소식을 기다리지요. 돋보기의 속성이 자꾸만 확대하는 것이니 어른들의 걱정은 하루도 바람잘 날이 없을 겁니다.
웃어본다 찡그려본다 쓸쓸한 표정을 지어본다 눈(目)에도 자주 눈물을 주어야겠다고, 청록 빛 어둠이 내려앉는 저녁 지금 누가 나를 연주하는지 주름이 아코디언처럼 펴졌다 접어진다
세상을 관조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1연에서 돋보기가 접힌 표정을 펴기도 하고 접기도 하니 그것들을 가져와서 아코디언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아, 그전에 돋보기와 관련된 '눈'도 슬며시 끼워 넣었습니다. 시인은 뭐든 허투루 넘기는 법이 없으니까요. 이제 돋보기는 신이 되었습니다. 인간을 펼쳤다가 접었다가 연주하는 지경이니까요.
분청 다기에 찻잎을 우리며 실금에 배어드는 다향(茶香)을 유심히 바라본다
이제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아코디언처럼 연주되던 시절을 지나 휴식의 시간입니다. '실금에 배어드는 다향' 왠지 진부한 표현인듯하지만 노년의 노련함과 완숙함과 여유로움이 힘든 세파를 겪어온 노인에게 스며들었음이 다 느껴집니다. 이 시의 압권이 아닐까요?
먼 어느 날의 나에게 금이 가고 있다 무수한 금이 금을 부축하며 아득히 걸어가는 것이 보인다
시인도 언젠가는 늙겠지요. 금이 갑니다. 하지만 실금 사이사이 배어든 인생의 경험과 세상살이에 대한 배려와 공감과 관계와 걱정과 두려움과 온갖 난관들이 지금의 당신을 부축하며 앞으로도 당신을 당신답게 하겠지요. 해피엔딩으로 결말을 맺었습니다.
심사위원의 심사평을 덧붙이려고 하다가 그냥 적지 않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저 읽고 감상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