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12월 28일(목) 시편 110:1-7 찬송 108장
(다윗의 시)
1.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2. 여호와께서 시온에서부터 주의 권능의 규를 내보내시리니 주는 원수들 중에서 다스리소서
3.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
4.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하지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5. 주의 오른쪽에 계신 주께서 그의 노하시는 날에 왕들을 쳐서 깨뜨리실 것이라
6. 뭇 나라를 심판하여 시체로 가득하게 하시고 여러 나라의 머리를 쳐서 깨뜨리시며
7. 길 가의 시냇물을 마시므로 그의 머리를 드시리로다 (개역 개정)
- 그리스도의 통치와 심판 -
시편 전체 중에서 가장 분명하고도 온전하게
메시야의 통치와 심판에 대해 예언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본시는
종말에 있을 메시야의 날에 대한 예언의 성격이 강한
‘메시야 에언시’로서 예수 그리스도뿐만 아니라
여러 사도들도 인용한 유명한 시이다.(막12:36; 눅20:42; 행2:34-35)
이러한 본시의 배경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다윗이 그의 말년 곧 기름부음 받은 자가 의의 왕국을 다스릴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즈음에 본시를 기록한 것으로 추측된다.(삼하23:2-4)
본시를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먼저 전반부 1-3절은 왕으로 오셔서 통치하실 그리스도에 대해 묘사하고 있다.
이어 중반부 4절은 그리스도께서 멜기세덱의 반열을 좇은
제사장직을 겸직하게 될 것을 보여 준다.
그리고 후반부 5-7절은 열방을 판단하실 심판주로서의
그리스도에 대해 묘사하고 있다.
한편 이러한 본시에 나타난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은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을 통해 부분적으로 성취되었으며,
그분의 재림을 통해 완전히 성취되어질 것이다.
또 이러한 본시에는 그렇게 위엄있고 영광스럽게 도래할 주의 날에
거룩한 주의 백성은 영광과 즐거움 가운데 주 앞으로 나오게 되며(3절)
세상의 모든 악한 세력들은 주의 분노로 인해
진멸되고 말 것이라는 사실이(5-6절) 확실하게 선포되고 있는데
이는 우리들에게 그러한 주의 날에 대한
보다 분명하고 확고한 소망을 갖게 함과 동시에,
흔들림 없는 믿음과 경건의 생활에 힘쓸 것을 요청하고 있다.(히3:12-14; 계20:11-15)
3절)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
여기서 ‘새벽’은 주의 백성들 곧 성도들이 나아오는 때를 말하는 것이지만
결국에는 그들을 ‘새벽 이슬’에 비유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주의 백성을 새벽 이슬에 비유한 것에 대해서는
우선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는 이슬이 매일 새벽마다 새롭게 맺히듯이 메시야로 인하여 날마다
새로운 영적 활력을 가진 자로서 주의 백성의 면모를 설명하기 위함이다.
둘째로 새벽 이슬이라는 말은 새벽 이슬의 풍성함처럼 수효가 많음을 의미한다.
특별히 팔레스틴 지방에서 맺히는 새벽 이슬은
그것이 흘러 샘을 이룰 정도로 그 양이 많다고 한다.
따라서 이는 이런 무수하게 맺히는 이슬처럼
주의 권능의 날 곧 복음 시대에 수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따르게 될 것임을 나타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이 두 가지 의미는 다윗이 본문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의도를 너무도 잘 반영해 주고 있다고 하겠다.
즉 그리스도의 통치의 날에 백옥보다 순결한 주의 순결한 신부들이
구름떼처럼 주님 앞으로 몰려와 주의 이름을 찬양하며 송축하는
이 놀라운 광경을 그는 상상하며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 신앙 공동체가
추구해야 할 두 가지 요소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다.
그 하나는 거룩함이며,
또 하나는 한 생명이라도 더 구원에 이르게 하라는 지상 최대의 사명이다.
즉 하나님의 신앙 공동체인 교회는
이처럼 성도 하나하나의 보다 성숙한 신앙을 위해 노력해야 하며
동시에 보다 많은 영혼이 주님께 나아오도록 하는
전도의 사명을 최선을 다해 감당해야 한다.
한때 전도만이 살 길이라는 생각으로 대부분의 교회가
전도 사역에 치중한 적이 있었다.
그런 노력을 통해 많은 교회가 양적 부흥을 이루었다.
그리고 한국에도 수만명의 교인이 출석하는 초대형 교회가 생겨나게 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양적 성장에 만 치중했던 교회는
성도 개인의 신앙적 자질에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게 되었고,
이는 결국 세상을 향한 교회의 영향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이런 시행착오를 겪은 교회들은 제자 훈련이나
평신도 양육 프로그램 등을 앞세우고 질적 성장에 치중하게 되었다.
이는 바람직한 현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교회는 이 두 가지 중 어느 하나도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
거듭난 모든 성도는 날마다 예수의 형상을 닮아가는 삶을 살아감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성숙한 제자가 되도록 힘써야 한다.
그러나 그것과 더불어 이 세상에서 아직도 예수의 이름을 듣지 못하고
그의 찬란한 광명의 빛을 체험치 못하고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을
구원의 반열로 강권하여 이끄는 전도자의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한다.
이 둘 중 어느 하나라도 소홀히 여긴다면 교회는 교회로서 존재하기 어렵다.
가르치는 교회, 양육하는 교회만 아니라
온 세상에 복음을 증거하고 사람들을 생명 가운데 이끄는
구원의 방주의 역할을 감당해야만 참된 교회라 할 수 있으며
그렇지 않다면 하나님의 책망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28:1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