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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자: 2025.09.28 주일 낮 예배
- 말씀: 옙 5:16-17
- 봉독: 16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17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 제목: 시작도 끝도 모르고 사는 인생 - 시간을 구속하라
- 선포: 대한예수교장로회 만나교회담임 이덕휴목사
- 찬송: 301. 지금까지 지내온 것
- 은혜찬양: https://www.youtube.com/watch?v=sNs7pYjKfT4
- 들어가는 말씀
오늘의 말씀 제목은 '시작도 끝도 모르고 사는 인생'입니다. 무엇을 모르는 것은 그 무엇이 없다는 것입니다. 존재론적으로 설명하면 모른디는 것은 존재의 사실과 존재물의 현존재를 인식하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존재를 비현실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무, 즉 없다는 것입니다. 나의 인식에 현존재는 있음이며 그것을 우리는 존재한다. 또는 존재하지 않는다. 즉, 존재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는 않다는 것은 비존재이며 그것은 바로 없음을 말합니다.
우리의 삶을 우리의 인생살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태어나는 것을 인식하고 있지 않는 상황에서 부모의 태반 (Placenta)을 통하여 세상에 태어납니다. 우리가 태어나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지 못합니다. 내가 태어나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기 떄문에 우리의 시작이 어떻게 태동하는지를 모릅니다. 그렇게 살다가 어느날 나는 어디에서 났는가 하는 원초적인 질문을 스스로 하게 됩니다. 이때부터 인식론적으로 존재의 의미를 찾기 시작합니다. 이때부터가 우리의 시작입니다.
그리고
다시 죽음을 맞이하면서 인생살이가 마침표를 찍게 됩니다. 자 그렇다면 그 죽음의 순간을 인식하면서 죽어갑니까? 이 질문에 답할 살함을 이 세상에는 없습니다. 아 지금 나는 죽어갑니다. 라고 하면서 주위 사람들에게 인사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역사적으로 예수님 한분만 내가 죽어간다 그리고 사흘 후에 다시 부활할 것이다. 라고 예언하였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다 인간으로서 살다가 인간으로 죽지만, 예수님은 인간의 형상으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의 죄를 죽음으로 속죄하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하나님 자신이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다른 종교와 다릅니다.
요11:25-26절에 예수님께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부활'이라고 선언하신 것입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아직껏 부활은 없었습니다. 죽은 나사로의 부활은 잠시적 현상이었습니다. 부활한 나사로가 어떻게 살았으며 에녹처럼 300년을 하나님과 동행하였다는 이야기도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생명의 부활을 예표하시는 분으로서 나사로의 생명을 잠시동안 재생시켰을 뿐으로 성경 어디를 보아도 또한 신학자들의 어떠한 연구도 없습니다. 주님은 죽음을 불식시키시는 생명의 부활능력을 지니신 하나님이기 떄문입니다. 아직 이런 기적과 이적이 나타난 적이 없으므로 나는 단연코 죽음을 인식하거나 아 이제 내개 죽는다는 현상을 인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삶에 종지부를 찍는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모든 주검은 인식하지 못합니다. 잠드는 것까지도 인식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살아있는 자가 죽어가는 사람을 지켜주는 것으로서 그 일생은 마감하는 것입니다. 죽엄 자체를 인식하면서 줄어가는 사람은 없고 오직 지켜주는 사람이 그 주검의 마감을 영면이라는 문체로 꾸며주는 것입니다. 그 만큼 죽음에 대한 미스테리는 자연스럽지만 경험하지 못하면서 마감하게 됩니다. 죽었다가 꺠어나도 우리는 죽음을 인식하지 못합니다. 잠시잠깐 숙면상테에서 깨어나는 것입니다. 자 이제 우리는 오늘의 본문으로 들어갑니다.
1. 세월을 아껴라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엡 5:15-18).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한달을 맞이하면서 기자회견을 합니다. 대통령의 한 시간은 5천 2백만 국민의 한시간을 책임지는 시간이라고 하면서 모든 공무원이 나의 한시간은 모든 국민의 한시간을 책임지고 봉사해야 한다는 말씀을 했습니다. 기막히게 옳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시간을 구속하라(골 4:5) '외인에게 대해서는 지혜로 행하여 세월을 아끼라' 시간을 구속한다는 것은 이 주어진 시간을 건져낸다는 의미에서 시간을 낭비하지 않음을 말합니다. 그리스도 밖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사도바울의 가르침은 제혜로써 그들을 구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세월을 아끼는 것, 즉 시간을 구속하라는 부탁을 하였습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도 없고 하나님을 소망하지 않는 불경한 죄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완전히 결핍한 사람들입니다.그들은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회 성도들을 향하여 이 세상에 살면서 지혜롭게 행하여 세월을 아끼라고 한 교훈의 말씀을 깨달아 이 세상의 것에 한 눈 팔지 말고 이왕 축복의 길에 들어 섰으니 이 길에서 이탈하지 말고 끝까지 믿음의 길 걸어서 모두가 세월을 허송하지 말고 아끼고 값지게 써서 열매 많이 맺는 만나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할렐루야
2. 어리석은 자는 시간을 낭비하는 사람이다 - 하나님을 부인하는 자
시편 14편은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저희는 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시 14:1)라고 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하나님의 뜻 안에서 살아가는 자이지만, 어리석은 자는 하나님이 없다고 부인하는 자들인 것입니다.
어리석은 자는 하나님을 부인하기에 자신이 삶의 주인이 되려고 합니다. 잠언은 “미련한 자는 자기 행위를 바른줄로 여기나 ...”(잠 12:15)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부인하는 자는 자신이 중심이 되기에 자신의 행위를 바른줄로 여깁니다. 자기 행위를 바른줄로 여기는 것은 자신의 눈에 옳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즉 자신이 삶에서 옳고 그름을 판단하려고 하는 재판관이 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삶의 기준으로 삼는 것입니다.
미련한 자는 하나님을 부인하기에 죄를 가볍게 여깁니다. “미련한 자는 죄를 심상히 여겨도 ...”(잠 14:9). 홉니와 비느하스는 어리석은 자였기에 하나님 앞에서 범하는 죄를 가볍게 여겼습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을 부인하며 살아가기에 온갖 죄를 범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혜자와 미련한 자의 차이는 하나님을 경외하는가에 달려있습니다.
시편 57편 8절에서 다윗은 적극적인 신앙의 태도를 보입니다. "내 영광아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여기서 "내 영광아 깰지어다"(히브리어: "עוּרָה כְבוֹדִי", 우라 케보디)는 그의 영혼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아가도록 독려하는 표현입니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는 악기를 사용하여 하나님을 찬양하겠다는 다짐을 의미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잠 1:7). 지혜로운 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식으로 살아가지만, 미련한 자는 하나님의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며 살아갑니다. 이와같이 하나님을 멸시하는 어리석은 자는 재앙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너희의 두려움이 광풍 같이 임하겠고 너희의 재앙이 폭풍 같이 이르겠고 너희에게 근심과 슬픔이 임하리니 ... 어리석은 자의 퇴보는 자기를 죽이며 미련한 자의 안일은 자기를 멸망시키려니와.”(잠 1:27, 32). 미련한 자의 멸망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3. 지혜로운 자는 하나님의 뜻 가운데 행하는 자입니다.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엡 5:15).
우리는 어떻게 어리석음을 버리고 지혜를 얻을 수가 있을까요? 지혜를 얻을 수 있는 근원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입니다. 디모데후서는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딤후 3:15). 지혜는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지식인 것입니다. 그리고 진리는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에 이르는 지혜인 것입니다. 사람이 어리석음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는 이제 하나님의 말씀을 배워서 삶에 적용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며.”(딤후 3:14).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배운대로 삶에서 실천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성경은 두 가지의 목적을 우리에게 제시합니다. 하나는 구원에 이르는 길이고, 둘째는 구원받은 자가 어떻게 살아가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자는 하나님께서 주신 삶의 원리를 말씀을 통하여 배워서 실천하는 자입니다.
사도 바울은 아직 어두움 가운데 있는 자들은 그리스도의 빛인 복음을 듣고 잠에서 깨어 일어나라고 권면했습니다.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네게 비취시리라 하셨느니라.”(엡 5:14). 그리고 이제 잠에서 깨어나 일어난 자들은 지혜롭게 행하는 것을 배워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엡 5:15)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지혜의 원천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 할렐루야
고린도전서는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고전 1:30)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안에 거하시면, 그 분은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이 되십니다. 즉 예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기에, 그 분의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이 우리 안에 내재되어 있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과 구속의 은혜를 누립니다.
골로새서는 “...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라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취어 있느니라.‘(골 2:2-3)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오셔서 구원의 은혜를 주실 때에 지혜와 지식의 보화까지 함께 주시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1장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구속함을 받은 우리는 하나님의 지혜와 총명으로 넘치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헤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으로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엡 1:7-8).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실 때에 우리에게 모든 지혜와 총명으로 넘치게 하셨습니다.
요한일서는 ”너희는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 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니라.“(요일 2:20)고 했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성령으로 기름부으셔서 모든 것을 아는 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얻는 구원에는 하나님이 주신 지혜가지 포함되어 영적인 것을 분별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통찰력을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세상과 같이 하나님을 부인하며 살아가는 어리석은 자가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해야 합니다. 우리가 전에는 어리석은 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디도서 3장은 우리가 전에 어떠한 삶을 살아왔는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전에는 어리석은 자요 순종치 아니한 자요 속은 자요 각색 정욕과 행락에 종노릇한 자요 악독과 투기로 지낸 자요 가증스러운 자요 피차 미워한 자이었으나.“(딛 3:3). 우리는 전에는 어리석은 자의 삶을 살았기에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고 정욕의 종노릇하며 악독과 투기로 지내며 서로 미워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구원받은 이후에는 이러한 옛 사람의 어리석은 행실을 모두 벗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어리석은 행실을 버릴 때에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결론: 지혜로운 자는 세월을 아끼며 살아갑니다.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엡 5:16).
우리가 지혜로운 삶을 살아가는 비결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시간을 잘 활ㄹ용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은 시간입니다. 시간은 곧 우리의 인생입니다. 우리가 시간을 잘 사용하는 것은 인생을 잘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시간은 무한대로 주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시간은 한계가 있습니다. 우리가 그 시간의 한계를 만나면 모든 인생에서 살아왔던 것을 내려놓고 주님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제한된 시간 안에서 가장 가치있는 일을 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인생을 낭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하나님이 주신 시간을 결코 헛되게 낭비하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주신 삶의 여정에서 최선의 삶을 살았습니다. 디모데후서에서 사도 바울은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딤후 4:7)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구원받은 이후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마지막 순간까지 선한 싸움을 싸우며 믿음을 지키는 삶을 살아갔습니다.
우리의 삶에도 시작이 있듯이 마지막이 있습니다. 우리의 삶의 시작은 태어나는 시간만 있을 뿐입니다. 그 시간을 우리 모두는 알지 못한 채 태어납니다. 죽음의 시간도 그 시간만 있을 뿐 죽음의 시간을 알지 못합니다. 대형병원의 임종 대기실에 가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가 죽어가면서도 죽어가는 것을 모르는 채 죽어갑니다. 심지어 주무시면서도 죽어가는 사람이 허다합니다.
그렇듯 우리의 마지막 날은 아무도 모릅니다. 적어도 우리가 아는 것은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의 마지막이 있다는 것을 존재론적으로 알 수있을 뿐 죽음 자체를 인지하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의 시간을 정하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운명을 스스로 정하셖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우리의 시간은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우리의 부활의 때가 정해진 것도 아닙니다. 또한 부활한 경우는 주님 한 분 뿐입니다. 언제 어느때 부활할지도 모르는 인생을 낭비할 수 있습니까? 시간을 구속하시기 바랍니다. 항상 깨어 준비하는 우리 만나인을 하나님께서 지켜주시는 것을 믿습니다. 아멘, 할렐루야
야고보서는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약 4:14)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우리의 생명은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영원한 생명의 부활을 약속합니다. 이와같이 우리의 인생은 안개와 같이 짧은 인생입니다.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와 같은 것이 우리의 생명입니다.
야고보서는 우리의 생명이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와 같지만 우리는 주님의 뜻을 행하며 살아가는 삶이 되어야 함을 실천적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약 4:15). 우리는 내일 일을 알지 못하기에 항상 주님의 뜻을 따라 행하는 삶으로 하루 하루의 매시간을 한사람의 몫이 5천2백만 시간이 되도록 의미있게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기도 합니다.
오늘도 주님께서 우리 만나인에게 주신 말씀은 살전5:16-18입니다. 함께 봉독하시면서 이 시간을 마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