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기온과 한가위
최명애
오늘은 새벽부터 비가 온종일 주룩주룩 내린다. 가을비를 기다리는 건 유난히도 더웠던 여름 때문에 빨리 가을을 맞고 싶은 기대가 묻어 있는 듯하다. 사상 처음으로 한가위에 열대야가 나타나 폭염경보가 내려졌었다.
추석 차례는 벌초와 성묘를 미리 다녀온 터라 지내지 않기로 했다. 아들 식구들도 해외 주재원으로 나가서 올 수가 없다. 이번에는 명절 음식을 안 하려고 했는데 동생 식구들이 온다는 연락이 왔다. 손님이 온다고 하니 습관적으로 몸이 움직인다. 나누어 먹을 만큼 나물도 장만하고 전도 몇 가지 부쳤다. 몸이 부산하게 움직여 힘은 들었지만, 해놓고 나니 마음은 넉넉하고 풍성하다.
.
추석날 아침에 평소 다니는 절에 봉사하러 갔다. 공양간에서 봉사하거나 법당 내에 안내와 합동 차례 지내는 일을 도와주는 일이다. 어느 곳엔가 머물다가 명절날 찾아오시는 영가님들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법당을 가득 채우고, 사시 불공 후에 천도 법식에 따라 기도 법회가 이루어진다. 각자 준비해 온 공양물을 정성스럽게 올리고 지극한 마음으로 돌아가신 분들을 위해 잔을 올리며 삼배한다. 절에서 지내는 추석 합동 차례는 해를 거듭할수록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 같다.
동생 가족과 친정엄마를 모시고 집 가까운 팔공산으로 바람 쐬러 가다가 더운 날씨 탓에 송림사에 들렀다. 절 마당에 들어서니 은행알이 여기저기 떨어져 있고 은행잎도 제법 많이 컸다. 나무 끝부분은 노랗게 물이 들기 시작하였다. 여름의 뜨거운 열기는 아직 가실 줄을 모르고 있지만 주변 자연은 가을을 알리듯이 변하고 있다. 날씨가 절기를 잊은 듯 날마다 땡볕이다. 이렇게 덥다가 갑자기 영하권이 되는 것이 아닐까? 예전 같으면 더위도 한풀 꺾이고 아침저녁 선선한 가을 날씨일텐에 도무지 더위가 가실 줄을 모른다.
가장 더운 여름이고, 가장 더운 추석이다. 연일 폭염경보가 발효되어 메시지가 날아온다. 9월 중순이 지나도 열대야를 동반하는 무더위가 계속되고, 한낮에는 에어컨과 선풍기를 틀어야 하고 열대야 때문에 밤새도록 선풍기를 돌리고 있다. 어머니는 구십 평생 살면서 추석에 폭염으로 이렇게 더운 적은 처음이란다. 올여름 온 세상은 홍수와 가뭄과 폭염으로 이상기온의 몸살을 앓고 있다.
우즈베키스탄에 있는 아들이 카톡을 보내왔다. 갖가지 나물을 담은 비빔밥과 접시에 전을 예쁘게 담은 명절 음식 사진이다. 단골 한식집 사장님의 초대를 받아 명절 음식을 대접받았다고 한다. 외국에서 같은 나라 사람들이 정을 나누고 음식도 함께해서 좋았다고 한다. 소박한 명절 상차림이지만 따뜻한 정을 가슴으로 느꼈으리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라는 말처럼 명절 음식을 나눠 준 한국식당 사장님이 감사하다.
보름달을 보면서 가족들의 건강과 소원을 빌었다. 구름 사이로 보름달이 보였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우리의 따스한 마음이 모여 이웃으로 번져가 보름달처럼 둥그렇고 달빛처럼 환한 세상이 되었으면 싶다. 봄을 이기는 겨울이 없듯이 가을을 이기는 여름 또한 없다는 진리를 계절은 몸으로, 소리로, 빛깔로 말해주고 있다. 한여름 무더위가 저만치 물러나고, 가을이 시원한 바람과 함께 소리 없이 찾아오길 기도해 본다.
종일 비가 오더니 새벽에는 열기가 서서히 식어가고 있는 듯이 제법 쌀쌀하다. 가을이 바짝 다가온 모양이다.
첫댓글 가을이 왔습니다. 벌써 저만큼 가고 있습니다. 더욱 노력하여 좋은 글 많이 쓰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무덥다가 갑자기 가버린 여름에게 배신 당한 느낌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