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 금의환향한 위소보
며칠 뒤 조정에서는 성지를 내렸는데 위소보와 장용 등을 격려하고 각 기 한 계급씩 올려 준다는 내용이었다. 강희는 이 일을 크게 떠들고 싶 지 않았다. 오삼계를 자극하여 어떤 변고가 일어날까 두려웠기 때문이 다. 응웅이 도망을 친 사건이 발생하자 강희는 오삼계가 반란을 일으키 는 것이 눈앞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짐작했다. 오응웅이 잡힌 일이 오삼 계에게 겁을 주어 반란을 일으키는 일이 좀더 늦추어지기를 바랄 뿐이 었다. 강희는 며칠 동안 군사들을 움직이고 장수를 파견하는 한편 대포를 만 들고 말을 사들이면서 매우 분주한 나날을 보냈다. 그런데 고방(庫房) 에 쌓아 둔 은량이 퍽이나 부족한 것을 느꼈다. 만약 세 번왕이 일제히 반란을 일으키고 잇따라 대만, 몽고, 서역 세 곳에서 군사를 일으킨다 면 동시에 여섯 곳의 병마를 상대해야 하는데, 그렇게 된다면 군비가 엄청나게 많이 필요할 것이고 일을 지탱해 내기가 여간 어려운 노릇이 아닐 것 같았다. 그렇기 때문에 하루라도 늦어질수록 그만큼 향은을 준 비하고 양식을 준비할 수 있었다. 강희는 위소보가 신룡도를 깨뜨리고 다시 나찰국을 포섭한 것이 크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신룡도는 대수 로울 것이 못되지만 나찰국은 실로 대적이라 할 수 있었다. 위소보라는 인물은 학문을 배우지 않은 것이 흠이지만 복을 타고난 장수임에는 틀 림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유시를 내려 위소보에게 양주로 달려가 충렬사를 세우도록 명령하 고, 그러는 가운데 몰래 남쪽으로 내려가서 길을 돌아 하남으로 가 왕 옥산 사도백뢰의 도적들을 소탕하라고 일렀다. 그렇게 함으로써 심복지 환을 없애려는 것이었다. 소보는 황상에게 상주하여 장용 등 네 장수를 자기 휘하에 두게 해 달라고 청했고 강희는 그 청을 받아들였다. 소보 가 장용 등 네 장수들을 데리고 양주로 출발하려고 하는 날 갑자기 시 랑과 황보, 그리고 천지회의 서천천, 풍제중이 일제히 도달했다. 이들 은 서로 만나자 모두들 크게 기뻐했다.
위소보가 홍 교주의 미인계에 빠졌을 때 시랑 등은 결코 겁이 나서 돌 아오지 못한 것이 아니라, 매일같이 배를 타고 각처의 섬들을 뒤지며 위소보를 구해 내기 위해 애썼던 것이다. 그리고 서천천 등은 서로 헤 어져 요동성, 직예성, 산동성 등 세 곳의 연안과 육지를 더듬으며 위소 보의 행방을 수소문했다. 위소보가 북경에서 보내온 전갈을 받고서야 북경으로 돌아오게 된 것이었다. 위소보는 자신이 사로잡히게 된 경위 를 말하지 않고 얼렁뚱땅 얼버무렸다. 시랑 등은 속으로 믿지 않았으나 감히 더 묻지 못했다.
위소보는 다시 황제에게 나아가 시랑 등의 공적을 아뢰고 각기 상을 타 게끔 해주었다. 서천천 등은 천지회 형제들이라 청나라 조정의 관록을 받지 않으려 했기 때문에 위소보는 그들의 이름을 들먹이지 않았다. 사 람들은 북경에서 하룻동안 큰 잔치를 고 이튿날 모두 양주를 향해 출발 하였다.
며칠 후 왕옥산 아래에 이르렀을 때 위소보는 천지회 형제들에게 사도 백뢰를 섬멸하라는 황제의 명을 받았다고 말했다. 러 사람들은 깜짝 놀 랐다. 이력세는 말했다.
[위 향주, 이 일을 해서는 아니 되오. 사도백뢰의 뜻은 명나라를 다시 세우는 데 있는 만큼 매우 커다란 영응호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 가 만약 왕옥산을 뒤엎어 놓는다면 그야말로 오랑캐를 위해 힘을 쓰게 되는 꼴이외다.]
위소보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일이 그렇게 되는구려. 내가 보기에도 사도 늙은이의 제자들은 영웅기 개가 있는 것 같았소. 그러나 나는 이미 성지를 받들어 왕옥산으로 토 벌하러 온 셈이니 이 일은 정말 어렵게 되었구려.] [위 향주의 벼슬이 나날이 커지니 아무래도 좋지 않은 것 같소이다. 내 의견은, 우리가 사도백뢰와 손을 잡고 반란을 일으키는 것이 좋겠구 려.]
현정 도인의 말을 듣고 기청표는 고개를 가로 저으며 말했다.
[우리의 가장 큰일은 오랑캐의 손을 빌어 오삼계라는 대매국노를 상대 하는 것이오. 위 향주가 만약 이때 반란을 일으킨다면 오랑캐 황제는 다시 오삼계와 손을 잡게 될 것이오. 그렇게 된다면 다된 밥에 재를 뿌 리는 격이 아니겠소?]
위소보는 강희에게 반란을 일으키고 싶은 마음이 없어서 그 말을 듣고 재빨리 말했다.
[맞았소, 맞았소. 반드시 오삼계를 처치한 후에 다시 논할 수 있는 것 이오. 그것이야말로 으뜸가는 큰일이 아니겠소. 사도백뢰는 그저 수백 명이 왕옥산에 모여 있을 뿐으로 조그만 무리에 지나지 않소. 작은 일 때문에 큰 것을 잃어서는 안 될 것이오.]
서천천은 말했다.
[문제는 위 향주가 오랑캐 황제에게 얼버무리는 것이외다. 더군다나 오 랑캐 황제는 양주에 충렬사를 짓고자 하는데 이 일에 대해서 우리들은 반대하지 않소.]
사씨는 충성을 다한 사람으로 나라를 위해 순사한 몸이라 천하의 영웅 호걸들 중에 그를 우러러보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천지회의 군웅들은 서천천의 그와 같은 소리를 듣고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다고 했다. 황제께 어떻게 얼버무리느냐는 것은 그 누구도 위소보의 재간에 미치지 못하는지라 뭇사람들은 모두 그를 쳐다보며 그가 어떤 방책을 꺼내기를 기다렸다. 위소보는 웃었다.
[왕옥산을 공격할 수 없다면 우리들은 사도 노형에게 전갈을 보내서 그 노형으로 하여금 도망치게 합시다.]
사람들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리고 하나같이 그 계책이 그럴 듯하다 고 생각했다. 위소보는 그날 주사위를 던지며 목숨을 걸었던 사실을 상 기했다. 왕옥파에는 나이 어린 소저 증유라는 아가씨가 있었는데, 갸름 한 얼굴에 커다란 눈망을이 무척 아름답고 귀여웠다는 생각이 떠올랐 다. (나도 사도 늙은이와는 아무런 교분이 없다. 베풀려면 역시 증소저에게 인정을 베풀어야지.)
바로 이때였다. 장용과 조양동이 사람을 보내 보고를 해왔다. 이미 왕옥산을 겹겹이 에 워싸고 사방의 통로를 모조리 막았다는 것이었다. 위소보는 하남성 일 대에 들어오자마자 왕옥산을 에워싸고 토벌하라는 유시를 장용과 조양 동 등 네 장수에게 명했었다.그들은 병마를 이끌고 왕옥산 아래 곳곳의 길목을 지키며 산을 공격하라는 명령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네 장수는 오응웅을 잡는 일을 해치움으로써 벼슬이 오르자 모두 고마 워했으며 이번에도 힘을 써서 공을 세우려고 각처의 통로마다 함정을 파고 반마삭(絆馬索)을 잔뜩 깔아 놓았다. 그리고 궁전수와 구겸창수 (鉤鎌槍手)로 하여금 사면팔방에서 지키도록 했다. 산 위의 사람들을 모조리 사로잡아 한 사람도 놓치지 않을 작정이었다. 네 장수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오천 명이나 되는 관병으로 산 위의 천 명밖에 안 되는 도적들을 공격 해서 이겨도 대수로울 게 없다. 그러니 한 사람도 놓치지 말고 사로잡 아야 공로를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사도백뢰 일당을 모조리 잡는다 해도 큰 공이라 할 수 없다. 더구나 천지회의 형제들은 지극히 반대하고 있다. 강호의 호걸들은 의리를 가 장 중시하는데, 친구들에게 죄를 짓지 말아야지.) 그는 어떻게 하면 증유에게 편지를 보내 왕옥산의 사도들을 놓아 줄 수 있을까를 생각하고 있었다.
바로 이때였다. 갑자기 동쪽에서 북소리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군사들의 함성이 크게 일었다. 곧이어 첩보병이 산 위에서 누가 공격해 오고 있 다고 전갈을 했다.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삼군(三軍) 앞에서 사람을 놓아주라는 명령을 내릴 수는 없으니 잡은 후에 천천히 방법을 강구해서 석방하는 것이 좋겠다.) 그는 명령을 내렸다.
[모두 사로잡되 한 사람이라도 살상하는 것은 허락하지 않겠다.]
친위병은 즉시 영을 전달했다. 위소보는 다시 한 마디를 보댔다.
[여자들은 더욱이 상처를 입혀서는 안 된다.]
그는 서천천과 전노본 등의 표정을 힐끗 보고는 그만 얼굴을 살짝 붉히 고 속으로 생각했다. (그대들은 안심하시오. 이번에는 신룡도에서처럼 미인계에 빠져 사로잡 히지는 않을 것이오.) 그는 천지회의 군웅들을 데리고 동쪽 산길로 향하면서 싸움을지켜보았 다. 흘연 산허리께에서 백여 명의 무리들이 질풍같이 달려오고 있었다. 관병들은 원수의 명령을 받아 감히 활을 쏘지 못하고 우르르 몰려가 막 으려고 했다. 호통소리가 이곳저곳에서 울려퍼지는 가운데 달려온 사람 들은 하나하나 함정에 빠져들어 구겸창수들에 의해 잡히고 말았다. 위소보는 증유 역시 잡히지 않았는지 살펴보려고 했지만 거리가 너무 멀어서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별안간 한 사람이 나는 듯 커다란 나무 사이로 몸을 날리면서 달려 내 려왔다. 관병이 앞으로 나아가 막으려고 했지만 그 사람이 민첩하기 이 를데 없어서 놀랍게도 앞을 막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현정 도인은 칭찬했다.
[훌륭한 솜씨다!]
그 사람은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다시 수십 장을 돌진해 내려온다면 산 밑에 이를 것이었다. 전노본이 말했다.
[저 사람의 무공이 매우 뛰어난 것을 보니 그가 혹시 사도백뢰가 아닐 까요?]
서천천은 말했다.
[사도 노영웅 외에 다른 사람은 저와 같은....]
그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손사극이 별안간 부르짖었다.
[저 사람은 오삼계의 위사 같습니다.]
그 말을 하는 사이에 그 사람은 어느덧 수 장이나 더 가까워지고 있었 다. 위소보는 부르짖었다.
[먼저 그를 잡은 후에 다시 이야기하도록 합시다.]
천지회의 군웅들은 다투어 그 사람을 에워쌌다. 그 사람은 손에 강철칼 을 들고 있었는데 한 번 휘두를 때마다 한 명의 군사를 찔러 눕혔다. 손사극은 장창을 들고 앞으로 뻗어내며 마주 나가서 똑똑히 얼굴을 보 고 부르짖었다.
[파랑성(巴朗星), 그대는 이곳에서 무엇하는 것이오?]
그 사람은 바로 오삼계의 심복 위사인 파랑성이었다. 그는 큰소리로 부 르짖었다.
[나는 평서친왕의 명령을 받고 조정을 위해 반적 사도백뢰를 죽였소. 그대들은 어째서 나를 막는 것이오?]
서천천 등은 깜짝 놀랐다. 그자의 허리에는 피투성이가 된 머리가 하나 매달려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우르르 달려와 그를 에워쌌다. 손사극은 말했다.
[위 도통이 이곳에 있으니 무기를 놓고 인사를 하시오. 그리고 도통대 인의 처분을 기다리도록 하시오.]
파랑성은 말했다.
[좋소.]
그는 칼을 칼집에 꽂더니 재빠른 걸음으로 위소보에게 다가가 큰소리로 말했다.
[도통대인께 인사드립니다.]
위소보는 말했다.
[그대는 이곳에서....]
파랑성은 갑자기 몸을 펄쩍 날리더니 두 손으로 위소보의 안면과 가슴 팍을 움켜잡으려 들었다. 위소보는 큰소리로 부르짖었다.
[아이쿠!]
그는 몸을 홱 돌려 도망쳤다. 파랑성의 무공은 정묘하고 고강하기 이를 데 없어 꽉, 하는 소리와 함께 왼손으로 위소보의 등을 찢었다. 다시 오른손이 위소보의 머리 위로 떨어지는 찰나 갑자기 오른쪽에서 발길질 이 세차게 걷어차 오는데 그 기세가 너무나 빨랐다. 파랑성은 재빨리 몸을 옆으로 피했고 곧이어 그 사람이 뻗쳐 오는 일 장을 맞받았다. 그 사람은 풍제중이었다. 파랑성이 손을 들어 막는 순간 몸이 흔들렸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뒷허리가 바짝 조여왔다. 이미 서천천에게 잡힌 것 이었다. 전노본이 손가락을 뻗쳐 그의 가슴팍을 찌르려고 했을 때 파랑 성은 흥, 하고 살며시 코웃음을 쳤다. 풍제중의 왼쪽 팔이 그를 치자 파랑성은 제대로 서 있지 못하고 넘어졌다. 전노본은 그를 힘주어 내리 눌렀고 친위병이 달려와 그를 묶어서 위소보 앞으로 끌고왔다. 파랑성 은 큰소리로 말했다.
[평서왕의 대군이 곧 도달할 것이오. 그때 당신들로 하여금 죽어 뼈를 묻힐 곳이 없게 만들 것이오. 분수를 안다면 빨리 투항하시오.]
위소보는 웃었다.
[평서왕이 반란을 일으켰소? 나는 모르고 있었는걸? 그 어르신께서는 편안하시오?]
파랑성은 위소보의 얼굴 모습과 태도가 호의적인 것을 보고 일시 그의 의도를 몰라 말했다.
[흠차대신은 곤명에 가 본 적이 있으며 평서왕은 흠차대신을 매우 중시 하고 있소. 그대는 총명한 사람인데 어째서 오랑캐의 노예가 되려고 하 시오? 그대 역시 빨리 평서왕에게 귀순하도록 하시오.]
서천천은 그의 엉덩이를 걷어차며 호통을 내질렀다.
[오삼계라는 대매국노는 비열하고 몰염치하기 짝이 없다. 네가 그의 노 예가 되었다니 더더욱 몰염치한 일이다.]
파랑성은 대노해서 고개를 돌리고 서천천에게 침을 탁 뱉었다. 서천천 은 몸을 옆으로 돌려서 피했다. 침은 그 바람에 한 명의 친위병 얼굴에 떨어지게 되었다. 위소보는 말했다.
[파 노형, 우리 좋은 말로 하고 화를 내지 맙시다. 그대는 나에게 평서 왕에게 항복하라고 했는데 좋게 상의하지 못할 것도 없지 않겠소? 그런 데 그대는 무슨 일로 왕윽산에 찾아왔소?]
파랑성은 말했다.
[그대에게 말해도 상관이 없소. 어찌되었든 사도백뢰는 내가 이미 죽였 으니 말이외다.]
그는 허리에 있던 수급을 한번 내려다보았다. 위소보는 말했다.
[평서왕은 그를 죽이고자 했소?] [그대는 나와 함께 평서왕을 만나러 갑시다. 그러면 그 어르신께서 그 대에게 이야기해 줄 것이오.]
서천천 등은 대노해서 주먹으로 그를 후려치려고 했다. 위소보는 재빨 리 눈짓으로 제지하고 친위병을 시켜 파랑성을 군중 속으로 데리고 가 심문을 했다. 그런데 뜻밖에 그 사람은 매우 굳건했으며 오삼계에 대해 서 지극히 충성스러웠다. 그저 위소보에게 투항하라고만 할 뿐 그 밖의 말은 한 마디도 실토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의 몸을 수색하자 커다란 붉은색 도장이 찍힌 한 통의 유시를 찾아낼 수 있었다. 위소보가 다른 사람을 시켜 읽어 보았더니 오삼계가 쓴 가짜 유시인데 사도백뢰를 개 국장군(開國將軍)에 봉한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 문서의 내럭을 그 에게 물었으나 파랑성은 눈을 부릅뜨며 대답하지 않았다. 위소보는 아무런 결과도 얻어낼 수 없자, 그를 꿇어엎드리게 하고 잡아 온 나머지 사람들에게 고문을 가했다. 심문을 한 결과 끝내 한 사람이 아픔을 견디지 못해 실토했다. 오삼계는 며칠 안으로 군사를 모으고 반란을 헐으킬 준비를 하고 있었 다. 그리하여 심복인 파랑성으로 하여금 일 소대의 부하들을 거느리고 옛 부하인 사도백뢰를 찾아가 그가 호응해 줄 것을 간청하라고 했다. 동시에 그는 파랑성에게 분부하기를, 사도백뢰가 만약에 명을 받들면 더없이 좋은 일이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그를 죽여 밀모(密謀)가 누설 되는 것을 방지하라고 일렀다.
사도백뢰는 군사를 일으켜 청나라에 반란을 일으킨다는 말을 듣고 매우 좋아했으며 즉시 함께 의거에 가담하겠다고 응낙했다. 그러나 자세한 사정을 알고 보니 오삼계가 명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우려는 것이 아니 고 자신이 황제가 되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사도백뢰는 가짜 유시를 받들려고 하지 않았고, 파랑성에게 돌아가 오삼계에게 알리되 만약에 명나라 황제의 후손을 옹호한다면 그 가 선봉에 설 것이며 만번 죽더라도 사양치 않겠다는 말을 전하도록 했 다. 그러나 오삼계는 과거 계왕을 죽였고 자기가 다시 황제가 되고자 했으므로 명나라에 충성을 했던 지사들은 결코귀의하거나 붙으려고 하 지 않았다. 파랑성은 몇 마디의 말로 권고했으나 사도백뢰는 오히려 탁 자를 치며 크게 욕을 했다.
[오삼계는 한나라 강산을 없앤 장본인으로서 온갖 악한 일을 저지른 용 서받지 못할 사람이다. 옛날 과오를 뉘우치고 새 사람이 되기 위해 나 선다면 그래도 공을 세워 속죄할 길이 있겠으나 만약 그렇지 않는다면 나는 반드시 그의 살을 뜯고 그의 가죽을 벗겨서 이부자리로 삼겠다.]
파랑성은 더 이상 말하지 않고 그날 밤 사도백뢰가 방비하지 않는 틈을 타서 갑자기 그를 찔러 죽이고 그의 목을 잘라 함께 데리고 온 패거리 들과 더불어 산 아래로 도망쳐 내려왔다. 왕옥파의 제자들은 뜻밖의 일 을 당하여 뒤쫓아올 수가 없었다. 바로 이때에 관병이 산을 호위하고 있었던 터라 오삼계의 부하들은 그만 일망타진되고 말았던 것이다. 파랑성이 갑자기 위소보를 습격한 것은 원수를 사로잡은 뒤 인질로 삼 아 도망을 치려는 것이었다. 위소보는 자세한 사정을 알아내자 천지회 의 군웅들을 모아서 밀의를 거듭했다. 이력세는 말했다.
[위 향주, 사도 노영웅으로 말하면 충성심과 의리가 깊은 사람이었습니 다. 불행히 간악한 자의 손에 목숨을 잃게 되었으니 우리들은 그를 성 대히 장사지내 줘야 할 것입니다.]
위소보는 말했다.
[나에게 한 가지 생각이 있소.]
그는 마음속에 품고 있는 계책을 말했다. 사람들은 일제히 손뼉을 치고 좋아하며 즉시 헤어져서 준비를 했다. 이날 관병은 산을 공격하지 않았 다. 왕옥파의 사람들도 우두머리격이며 사부격인 사람이 피살됨에 따라 어떻게 할지를 결정하지 못하고 그저 산 입구를 엄히 지키기만 했다. 이튿날 이른 아침 위소보는 천지회 군웅과 일대의 효기영 관병들을 데 리고 여러 가지 물건을 준비하여 산 중턱에 이르렀다. 그는 관병에게 그곳에서 주둔하여 영을 기다리도록 하고 그 자신과 서천천 등은 친위 병들을 데리고 산 위로 오르게 되었다. 일 마장쯤 나아갔을 때 십여 명 이나 되는 왕옥파의 제자들이 손에 무기를 들고 길을 가로막았다. 서천 천은 홀로 앞으로 나아가 두 손으로 한 장의 하얀 종이에 쓰여진 배첩 을 올렸는데 배첩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다.
[후배 위소보가 이력세, 기청표, 현정 도인, 풍제중, 번강, 전노본, 마 언초 등을 데리고 삼가 사도 영웅의 영전에 명복을 빌고자 왔소이다.]
왕옥파의 제자들은 나타난 사람들이 적의가 없는 것 같았고 뒤쪽의 여 러 사람들이 한 구의 관을 들고 있을 뿐 아니라 향초, 지전등의 물건을 갗추고 있는 것을 보고 크게 이상하게 생각해서 말했다.
[여러분들은 잠깐 기다리시오. 불초가 위로 올라가 보고를 하리다.]
한 사람이 나는 듯 산 위로 올라가고 나머지 사람들은 여전히 산길을 지키고 있었다. 위소보 등은 수십 걸음 뒤로 물러나서 바위 위에 앉아 휴식을 취했다. 얼마 후 산 위에서 수십 명이 내려왔는데 앞장선 사람 은 바로 옛날에 만난 적이 있던 사도학이었다. 그는 사도백뢰의 아들인 데 그의 아버지이며 사부인 사도백뢰가 세상을 뜨자 왕옥파에서는 그를 우두머리로 삼게 되었던 것이다. 위소보는 눈동자를 굴려 사도학의 등 뒤를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한 아리따운 몸매의 소녀가 서 있었는데 머 리에는 하얀 꽃을 꽂고 있었다. 바로 증유였다. 위소보는 속으로 여간 반가운 것이 아니었다. 사도학은 낭랑히 말했다.
[여러분들이 이곳에 온 것은 무슨 뜻인가요?]
그러면서 그는 허리에 차고 있는 칼자루에 손을 댔다. 전노본은 앞으로 나가 포권을 하며 말했다.
[저의 윗사람인 위군(韋君)께서 사도 노영웅이 불행하게도 간악한 자에 게 해침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고 매우 애통해 하며 불초들을 데리고 노 영웅의 영전에 삼가 명복을 빌고자 하오.]
사도학은 멀리서 위소보를 한번 바라보더니 말했다.
[그는 오랑캐 조정의 관원으로 관병을 데리고 산을 포위했으며 호의를 품지 않고 있는 것에 틀림이 없소. 그대들은 간계를 쓰려고 하지만 우 리들은 그대들의 그와 같은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을 것이오.]
전노본은 말했다.
[실례지만 사도 노영웅을 죽인 흉수가 누구요?]
사도학은 이를 갈며 말했다.
[오삼계의 외사 파랑성이오. 그리고 그의 수하인 한 떼의 악적들이외 다.]
전노본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도 소협이 우리들의 호의를 믿지 않는 것도 무리가 아니외다. 우리 가 먼저 제품(祭品)을 올리리다.]
그는 고개를 돌리고 명령했다.
[이리 데려오너라!]
두 명의 친위병이 한 사람을 천천히 끌고 왔다. 이 사람의 손과 발에는 쇠사슬이 채워져 있었고 머리에는 한 조각 검은 베를 씌워놓고 있었다. 왕옥파의 제자들은 모두 이상하게 생각했으며 상대방에서 무슨 수작을 부리는지 의아해 했다. 그 사람이 전노본의 등뒤에 왔을 때 친위병들은 쇠사슬을 잡고서 앞으로 더 나아가지 못하게 했다. 전노본은 말했다.
[사도 소협은 잘 보시구려.]
그가 손을 뻗어 그 사람의 머리에 쐬웠던 검은 베를 벗겨내자 다름아닌 파랑성이 눈을 부릅뜨고 바라보는 것이 아닌가? 왕옥파의 제자들은 그를 보자 다투어 노갈을 터뜨렸다.
[간적이다. 빨리 그를 죽여라!]
쨍그랑거리는 소리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각자가 무기를 들고 파랑성을 난도질하려고 하였다. 사도학은 두 손을 들어 여러 사람을 저지하고 말 했다.
[잠깐!]
그는 포권을 한 이후 전노본에게 물었다.
[귀하가 간악한 자를 잡았는데 어떻게 처치할 것인지 모르겠군요.] [우리 윗사람께서는 평소 사도 노영웅을 우러러보던 바였소. 그날 사도 소협과 일면지식의 인연을 맺지 않았소이까? 오늘 흉악한 짓을 한 간악 한 자를 잡았으니 그가 데리고 온 악적들과 더불어 모조리 사도 노영웅 앞에서 천갈래 만갈래로 찢어 죽여 하늘에 계신 노영웅의 영혼을 위로 하고자 하오.]
사도학은 고개를 옆으로 돌려 파랑성을 바라보며 속으로 반신반의하면 서 생각했다. (오랑캐는 교활하니 반드시 간계가 있을 것이다.) 파랑성은 갑자기 크게 욕을 퍼부었다.
[제기랄! 떡을칠! 어째서 나를 자꾸만 쳐다보느냐? 너의 아비는 바로 나에게 살해되었다....]
전노본은 오른손으로 그의 등을 후려치고 왼발로 그의 엉덩이를 걷어찼 다. 파랑성은 손발이 묶여 있는지라 피하기 어려워 몸을 곧장 앞으로 날아가듯 달려가게 되었고 결국은 사도학의 옆에 쓰러져 몸을 일으키지 못했다.
[이것은 저의 윗사람이 보내는 조그만 예물이오. 그 간악한 자는 귀하 가 알아서 처리하시오.]
전노본은 고개를 돌리고 부르짖었다.
[모두 데리고 오너라!]
일 대의 친위병들이 몸에 쇠사슬이 묶여 있는 백여 명이나 되는 범인들 을 앞세우고 왔는데 모든 범인의 머리 위에는 검은 베가 씌워져 있었 다. 검은 베를 벗기자 얼굴 모습이 드러났는데 모두 파랑성의 부하들이 아닌가? 전노본은 말했다.
[아무쪼록 사도 소협께서 함께 데려가도록 하시구려.]
이렇게 되자 사도학은 더욱더 의심할 수 없어 위소보를 향해 멀리서 허 리를 굽히고 말했다.
[귀하의 성의에 대해서 정말 뭐라고 말할 수 없는 고마움을 느낍니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가 우리에게 이와 같이 크게 호의를 베푸는 것은 우리들에게 어떤 일을 시키려고 그러는 것일까? 설마 하니 우리들에게 오랑캐에게 투항 하라는 것일까? 그것은 절대 있을 수 없는 노릇이다.) 위소보는 빠른 걸음으로 나아가 반례하며 말했다.
[그날 사도 형과 증유 소저와 함께 주사위 노름을 한 사실을 줄곧 뇌리 에 기억하고 있었으며 그저 언젠가 다시 한번 놀아 보기를 원했소이 다.]
그는 등뒤의 관을 가리키며 말했다.
[사도 노영웅의 유체는 바로 이 관 안에 있으니 아무쪼록 산 위로 모시 고 가 몸에 붙여 꿰매도록 한 이후 안장토록 하시구려.]
사도백뢰의 머리와 몸뚱이는 두 쪽으로 나누어지고 수급은 이미 파랑성 이 가지고 산을 내려가 왕옥파의 제자들은 하나같이 통분해 마지않았 다. 그런데 이제 위소보의 말을 듣게 되자 사도학은 여전히 어떤 수작 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관으로 다가와서 살펴보니 관 뚜껑 에 못질을 하지 않은 상태라 관을 열어 보았다. 아니나다를까, 부친의 수급이 놀랍게도 그 안에 들어 있는 것이 아닌가? 그는 그만 대성통곡을 하며 땅바닥에 엎드려 울부짖었다. 나머지 제자 들도 그의 행동을 보더니 일제히 땅바닥에 엎드려 슬피 울었다. 사도학 은 몸을 일으키더니 네 명의 사제를 불러서 관을 들고 산 위로 올라가 도록 하고 위소보에게 말했다.
[아무쪼록 귀하께서는 선친의 영전에 한 대의 향이라도 피워 주십시 오.] [당연히 노영웅의 영전에 절을 올려야죠.]
위소보는 친위병들을 산 입구에서 기다리도록 하고 쌍아와 천지회 형제 들만 이끌고 사도학을 따라 산 위로 올라갔다. 위소보는 증유의 곁에 다가가서 나직이 말했다.
[증 소저, 안녕하셨소?]
증유의 얼굴은 눈물 자국이 아직 마르지 않은 상태로 두 눈은 울어서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측은한 모습으로 그녀는 고개를 들고 흐느끼며 말했다.
[그대는....그대는 화차....화차화차 장군이신가요?]
위소보는 크게 기뻐서 말했다.
[그대는 나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소?]
증유는 고개를 숙이며 얼굴을 살짝 붉혔다. 그녀의 얼굴이 그같이 붉어 지자 위소보는 대뜸 마음이 설레이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어째서 나를 보자 얼굴을 붉혔을까? 여인이 얼굴을 붉히는 것 은 마음속으로 남성을 느끼기 때문이다. 혹시 그녀는 나를 그녀의 지아 비로 삼으려는 것이 아닐까? 내가 그녀에게 준 주사위를 아직도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군.) 그는 나직이 물었다.
[증 소저, 지난 번 내가 그대에게 준 물건을 아직도 가지고 있소?]
증유는 얼굴을 다시 한번 붉히며 고개를 돌리더니 물었다.
[무슨 물건인가요? 저는 잊었어요.]
위소보는 크게 실망해서 한숨을 내쉬었다. 증유는 고개를 돌리더니 나 직이 웃으며 대답했다.
[별십?]
위소보는 매우 기뻐서 그만 속이 다 근지러울 지경인지라 정겹게 속삭 였다.
[나는 별십이고 그대는 지존이외다.]
증유는 다시 그를 아랑곳하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 앞으로 나아가더니 사도학의 곁에서 산을 걸어을라갔다. 왕옥산의 사면은 깎은 듯했으며 그 형태가 마치 임금님의 수레지붕처럼 생겼기 때문에 그와 같은 이름 이 붙여졌고, 가장 높은 곳은 천단(天壇)이라 했는데 동쪽으로는 일정 봉(日精峯)이 있고 서쪽으로는 윌화봉(月花峯)이있었다. 일행은 사도학을 따라 천단 이북의 옥모동(王母洞)에 이르렀다. 길을 오는 동안 우거진 소나무와 백나무들이 어우러져 산경치는 고즈넉하고 아늑했다. 왕옥산은 그야말로 도가의 서적에서 청허소유동천(淸虛小有 洞天)이라고 일컬어지는 곳이며 천하의 동천 가운데 으뜸으로 손꼽히는 곳으로서, 전해내려오는 말에 의하면 황제(黃帝)가 왕모(王母)를 이곳 에서 만났다고 했다. 왕옥파의 사람들은 떼를 지어 왕모동과 그 부근 각 동굴에서 살고 있었는데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해서 집보 다 한결 나은 편이었다. 사도백뢰의 영위는 바로 왕모동에 차려져 있었 다. 제자들은 수급과 몸뚱이를 꿰매서 염을 했다. 위소보는 천지회의 형제들을 데리고 영전 앞으로 나아가 향을 올려 경 의를 표하고 나서 끓어엎드려 큰절을 하며 속으로 생각했다. (증 소저에게 호감을 사기 위해서는 슬퍼하면 슬퍼할수록 좋겠다.) 위소보는 별안간 울음을 터뜨렸다. 본래 거짓으로 우는 것은 그가 자랑 하는 장기였다. 그는 궁중에서 수차례에 걸쳐 늙은 갈보에게 구타당했 던 참혹한 일들과 홍 교주에게 잡힌 후 아슬아슬했던 광경, 그리고 거 듭 방이에게 속아서 운수 사납게 되었던 일, 아가가 정극상을 사랑한다 는 억울한 사실들을 생각하자 그만 진정으로 설움에 복받쳐 대성통곡을 했다. 처음에는 억지로 애를 썼으나 일단 울기 시작하자 그 울음은 갈 수록 비통해졌다. 그는 큰소리로 말했다.
[사도 노영웅, 이 후배는 어려서부터 그대가 충신의사이며 매우 커다란 영웅호걸임을 알았소이다. 과거 아드님의 검법을 보고 더욱더 그대의 무공이 뛰어나다는 것을 알았고 그저 그대의 문하로 들어가 제자가 되 거나 사손이 되어서 몇 초의 무공을 익혀 강호에서 이름을 드날릴까 생 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르신은 간악한 자에게 해침을 당했으니, 엉 엉....엉엉....정말 사람의 창자를 끊어 놓는군요.]
사도학과 증유 등은 그렇지 않아도 정말 죽고 싶도록 슬퍼하고 있는 터 에 그가 그와 같이 울부짖자 대뜸 왕모동 안은 곡소리가 진동하게 되었 다. 서천천과 전노본은 애초에는 울지 않으려 했으나 그만 위소보와 여 러 사람들의 슬픔에 동화되어서 몇 방울의 눈물을 뿌리지 않을 수 없었 다. 위소보는 가슴을 치며 발버둥을 치는 등 대성통곡해 오히려 왕옥파의 제자들이 수없이 달래고 위로해서야 겨우 눈물을 거두었다. 그는 파랑 성을 한쪽으로 끌고와 한 자루의 강철칼을 사도학의 손에 건네주며 말 했다.
[사도 소협, 그대가 이 간적을 죽여 영존의 원한을 갚도록 하시오.]
사도학은 한칼에 파랑성의 수급을 베어서 홍탁 위에 올려놓았다. 왕옥 파의 제자들은 일제히 위소보의 커다란 은혜에 사의를 표했다. 위소보 같이 어린 나이에 사람의 인심을 얻는 계책을 생각해 내는 것은 예삿일 이 아니었다. 이 방법을 그는 와룡조효(臥龍弔孝) 라는 한 토막의 극에서 배운 것이었다. 주유가 제갈양에 의해 울화통이 터져 죽은 이후 제갈양은 친히 시상구(柴桑口)로 가서 제례를 올렸으며 슬피 울면서 절을 하였는데 그 바람에 동오의 장수들은 매우 고맙게 여 기게 되었다. 다행히 극중의 제갈양이 읽은 제문은 너무나 길고 또 그 구절이 너무나 고아하여 위소보는 한 마디도 기억할 수가 없었다. 그렇 지 않았다면 왕옥산 위에서도 똑같이 읊어댔을 것이고 그렇게 되었다면 즉시 본색을 드러내게 되었으리라.
사태가 이렇게 되자 왕옥파의 사람들은 자연히 그의 은덕을 고마워하게 되었다. 더군다나 위소보는 사도학 등을 사로잡았을 적에 은자를 주면 서까지 석방시켜 주는 등 크게 정을 베푼 적이 있지 않았는가? 그러나 그는 청나라 조정의 높은 벼슬아치인데 어째서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인 지 사람들은 시종 이해할 수 없었다. 전노본은 사도학을 한쪽으로 불러 자신들은 바로 천지회의 청목당 형제 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위소보는 조정에서 벼슬을 하고 있는 만큼 그의 신분을 결코 토로할 수가 없었다. 일단 누설되면 큰일을 그르치기 쉽기 때문에 그저 애매하게 말하고 위소보의 위인됨이 지극히 의리가 있으며 몸은 조조의 군영에 있으나 마음은 한나라에 있을 뿐 아니라 형제들은 모두 그를 좋은 친구로 여기고 있다고 말했다. 사도학은 그 말을 듣고 는 확연히 깨닫게 되었고 연신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이때 그의 말은 지성에서 우러난 말이라 조금 전 반신반의했던 때와는 또 다른 점이 있었다. 곧이어 왕옥파의 앞으로 나아갈 길을 이야기하게 되었다. 사도학은 왕옥파에서 이와 같은 커다란 변고를 맞고, 큰 장례 를 치러야 할 판인 데다 관병이 산을 에워싸고 있으니만큼 앞으로의 일 을 생각해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전노본은 살짝 망명할 뜻을 비췄다. 천지회는 강호에서 지극히 위명을 펼치고 있었고 은연중 그 당시 반청복명의 영도자적 위치를 굳히고 있었기 때문에 왕옥파에서는 천지회를 우러러보고 있었고 또한 뜻을 같이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사도학은 그와 같은 말을 듣고는 크게 기뻐서 왕옥파의 명숙들과 사형 제들과 더불어 상의를 하였는데 모든 사람이 이 의견에 찬성하고 나섰 다. 그는 즉시 전노본에게 천지회에 가맹시켜 달라고부탁했다. 전노본 은 이때서야 그에게 위소보가 실제 청목당의 향주라는 사실을 밝혔다. 그날 오후 천지회의 청목당은 바로 왕모동에서 향당(香堂)을 크게 열고 왕옥파의 사람들을 받아들였다. 사람들은 향주에게 인사를 올리고 모두 다 위소보의 부하가 되었다. 위소보는 속으로 기뻐서 결맹주(結盟酒)를 마신 후 노름판을 벌여서는 새로이 가입한 형제들과 더불어 크게 한번 놀아 보고 싶었다. 이력세 전노본 등은 재빨리 말렸다. 신이 나서 노름 판을 벌인다는 것은 이제 막 세상을 뜬 사도백뢰에게 불경스러운 일이 된다고 말했다. 위소보는 노름을 할 수 없자 약간 흥이 깨졌다. 왕옥파 의 뒷처리를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고 물으니 이력세는 말했다.
[왕옥산은 산서와 하남성이 맞닿는 곳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 청 목당의 관할이 아닙니다. 본희의 규칙에 따르면 경계를 벗어나 형제를 거두어들여 가입시키는 것은 상관이 없지만 각 당의 형제들은 그 관할 지역을 벗어나 일을 처리할 수 없으니 가장 좋기로는 사도 형제와 여러 분들이 직예성(경기 일대)으로 옮겨 가서 사는 것입니다.]
전노본은 말했다.
[오랑캐의 황제가 위 향주에게 왕옥산을 공격하도록 분부했는데 사도 형제 여러분들이 왕옥산에서 사라진다면 위 향주로서는 이 일을 보고하 기가 쉬워집니다.]
사도학은 말했다.
[그렇소이다. 소제는 삼가 여러 형님들의 분부를 받들도록 하겠습니 다.]
위소보는 말했다.
[사도 형, 이제 나는 양주로 가서 사각부의 충렬사를 지어야 하오. 그 사당을 다 만들어 놓은 후에 모두 함께 오삼계를 공격하러 갑시다.]
사도학은 몸을 일으키더니 큰소리로 말했다.
[위 향주께서 오삼계를 공격한다면 속하는 선봉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 리고 사형제들을 이끌고 오삼계라는 악적과 사생결단을 내어 선친의 원 한을 갚도록 하겠소이다.]
위소보는 기뻐서 말했다.
[그것은 더없이 좋은 일이오. 여러분들은 곧 나와 함께 양주로 갑시다. 그러나 반드시 오랑캐의 관병으로 분장을 해야 할 것이니 억울해도 좀 참도록 하시오.] [오삼계를 공격하기 위해서라면 더 큰 억울함도 기꺼이 받아들이겠습니 다. 위 향주께서 오랑캐의 벼슬아치가 되었으니 우리도 당연히 오랑캐 의 병졸이 되어야겠지요. 더군다나 이형과 서형, 여러분들도 오랑캐의 군졸로 가장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날 밤 사도백뢰를 안장한 후 짐을 챙겨서 산을 내려왔다. 무공을 아 는 남자들은 위소보를 따라 양주로 갔다. 그리고 노약자와 부녀자들 및 어린애들은 보정부(保定府)로 가서는 안거할 땅을 찾도록 했다. 그곳에 는 천지회 청목당의 분타가 있기 때문에 자연히 접응을 해주는 사람이 있었다. 위소보는 장용 등에게 말했다.
[왕옥산의 비적들은 대군이 에워싼 것을 보고 겁을 먹고 투항해왔소. 나는 그들을 초안(招安)하여 관병으로 삼았소.]
장용 등은 일제히 그에게 축하의 말을 전하고 도통이 군사들에게 피를 뿌리지 않게 왕옥산의 용감한 비적들을 평정하였으니 그야말로 큰 공을 세웠다고 말했다. 위소보는 말했다.
[이 모두가 네 분 장군의 공이외다. 만약 그대들이 겹겹이 에워싸지 않 았다면 그들 역시 투항하지 않았을 것이오. 나중에 이 형제가 조정에 알려서 제각기 상을 받게 하겠소.]
네 장수는 크게 기뻐했다. 그들은 병부상서 명주가 위소보를 지극히 떠 받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위 도통이 보고하는 공로에 대 해서 병부에서는 반드시 특별히 우대하여 품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 었다. 위소보는 처음 증유가 왕옥파의 부녀자들을 따라 보정부로 가서 안거하지 않을까 걱정했다. 그러나 그녀를 따로 지정해서 함께 양주로 가자는 말은 차마 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그녀가 남장을 하고 사도 학과 더불어 동행하는 것을 보고 마음속으로 뭐라 말할 수 없는 기쁨을 느꼈다. 길을 가면서도 그는 기회가 생기는 대로 그녀에게 다정히 굴려 고 했다. 그러나 증유가 왕옥파의 사형들과 한 걸음도 떨어지지 않았고 그와 눈이 마주치면 그저 겸연쩍어하는 미소만 띄울 뿐 말을 하지 않았 다. 위소보는 그녀와 몇 마디의 다정한 말을 나누고 싶었으나 시종 그 기회 를 찾지 못해 그만 속이 근질근질해졌다. 만약 그가 청나라 군사의 대 장 직책이라면 공무를 빙자해서 나이 어린 여자 친위병을 군영 안으로 끌어들여 시중을 들게 했을 것이지만 그의 신분이 천지회의 향주인 데 다가 천지회의 형제들이 부녀를 희롱하는 것을 엄히 금하고 있어서 마 른침을 삼키며 기회를 기다렸다. 연도의 관원들이 그들을 환영하고 전송을 했으며 풍성한 뇌물을 안겨 주었다. 위소보는 언제나 주는 것을 거절하거나 사양하지 않았으니 남 쪽으로 내려가는 길에 자연히 봇짐이 날로 무거워지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천지회의 형제들에게 자기들이 오랑캐 벼슬아치들의 기강을 흐트 러뜨리고 뇌물을 받아들이는 것이 많을수록 백성들은 더욱더 청나라 조 정을 원망하게 되고 각처의 관원들에 대한 평판이 나빠져 장래에 군사 를 모으고 반란을 일으킬 때 더욱 쉽게 성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서천 천 등은 그 말을 깊이 믿어 의심치않았다.
며칠 후 양주에 도달하였다. 양강(兩江)의 총독 마를길(痲勒吉), 강녕 순무(江寧巡撫) 마우(馬佑) 및 포정사(布政使), 안찰사(按蔡使), 학정 (學政), 회양도(淮揚道) 양도(糧道), 하공도(河工道)의 도태(道台), 양 주부(揚州府)의 지부(知府) 지현(知縣) 그리고 각급(各級)의 무관들은 이미 전갈을 듣고 수 마장 밖으로 나와 영접했다. 흠차행원(欽差行轅)이 희양도 도태(道台)의 아문에 설치되었으나 위소 보는 구속받는 게 싫어 저녁밥을 먹은 후 도태에게 다른 곳으로 옮겨 가겠다고 말했다. 그는 행원의 소재지를 옛날 여춘원으로 옮기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 했다. 그러면 금의환향하는 셈이니 자연히 뽐낼 수 있을 것이었다. 그 러나 흠차대신이 행원을 기원에 설치한다는 것은 역시 말이 되지 않았 다. 옛날 양주에 있을 때 그의 웅심과 큰 뜻은 커다란 기녀원을 몇 채 경영하는 외에 바로 선지사(禪智寺) 앞의 작약포를 망가뜨리는 것이었 다. 양주의 작약은 천하에 명성이 알려져 있었고 선지사 앞의 작약포는 더 욱 규모가 웅장해서 유명한 종자가 수천 수백 가지에 이르렀고 꽃이 사 발만큼 컸다. 위소보는 열세 살 나던 해에 한 떼의 장난꾸러기들과 이곳으로 놀러간 적이 있었는데 작약이 아름답게 피어 있는 것을 보고 두 송이를 꺾어서 손에 들고 놀다가 절간의 화상에게 들켜 꽃을 빼앗겼을 뿐 아니라 따귀 까지 두 대 얻어맞은 적이 있었다. 위소보는 그렇게 되자 발길로 차고 물고늘어지면서 그 화상과 소란을 피우게 되었고 결국 그 화상에 의해 땅바닥에 내팽겨쳐져 몇 번 발길질을 당하였다. 장난꾸러기들은 와, 하고 사방으로 흩어지면서 작약을 마구 뽑아 내동 댕이쳤다. 그 화상이 소리를 내지르자 절에서 한 떼의 화상들과 화공 (火工)들이 우르르 달려나와 손에 곤봉을 들고 장난꾸러기들을 내쫓았 다. 위소보는 그 장난꾸러기들의 대장격이라 해서 몸에 적지 않게 곤봉 세 례를 받아 머리에 혹을 크게 달고 여춘원으로 돌아갔는데 모친은 그에 게 벌을 내린답시고 밥을 한 끼도 먹이지 않았다. 그는 주방에서 음식 을 배부르게 훔쳐먹기는 했지만 선지사 앞에서 꽃을 꺾다가 욕을 당한 그 사건을 가장 수치스러운 일로 여기게 되었고 다음날 그는 절 앞으로 가서 멀찍이 서서 여래보살의 어머니에서부터 화상의 딸에 이르기까지 욕을 했으며, 그 스스로 언젠가는 자기가 이 절 앞의 작약을 모조리 뽑 고 냄새나는 그 절간을 똥오줌을 채워 두는 구덩이로 만들어 놓겠다고 맹세했다. 그리하여 절 안의 화상들이 쫓아나올 때까지 욕을 했고 쨍소 니치면서까지 계속 욕을 했었다. 몇 년이라는 세윌이 흘러 그 일은 벌 써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이날 양주에 돌아와 행원으로 삼을 만한 곳을 찾다 보니 선지사가 생각났다. 그리하여 그는 즉시 희양도의 도태에게 이야기했다. 그는 속으로 선지사와 작약포를 한번 짓밟아 보고 싶은 생 각이 들었다. 그 도태는 속으로 생각했다. (선지사는 불문의 성지로서 천 년의 고찰이다. 흠차가 그 안으로 들어 가 살게 된다면 발칵 뒤집어엎는 꼴이 될 것이다.) 그는 말했다.
[대인께 말씀을 올리지요. 선지사의 풍경은 정말 훌륭하기 짝이 없습니 다. 대인의 고견에 대해서 폐직은 감탄해 마지않는 바입니다. 하지만 절간에서 비린 것과 술을 먹게 된다면 아무래도 불편할 것 같습니다.]
위소보는 말했다.
[뭐가 그렇게 불편하겠소? 절간의 보살들을 옮기면 될 것 아니겠소?]
그 도태는 보살을 옮겨야 한다는 말을 듣고 더욱 놀라 이번에야말로 화 를 불러일으켜 양주성 안의 모든 백성들이 공분을 일으키게 된다면 처 리하기가 어려워진다고 생각하고 즉시 웃음을 짓고 새삼스럽게 인사를 한 후 나직이 말했다.
[대인께 말씀드립니다. 양주의 여인들이 아름답다는 것은 천하가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대인께서는 길을 오시느라고 고생이 많았고 공도 크 신데, 이곳에 이른 이상 폐직이 마땅히 정성을 다해서 모셔야 할 것이 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거문고 잘 튕기고 노래 잘 부르는 예 쁜 여인네들을 뽑아서 대인께 감상을 시켜 드릴까 하고 있습니다. 그러 니 절간 안의 딱딱한 침대와 딱딱한 걸상에 눕거나 앉는다면 크게 살풍 경한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위소보는 속으로 그 말에도 일리는 있다고 생각하고 웃었다.
[그렇다면 행원은 어디에다 설치했으면 좋겠소?] [양주의 염상(鹽商)으로 하(何)씨 성을 가진 사람이 있는데 그의 집은 하원(何園)이라고 불리우고 있지요. 그는 흠차대인께 호의를 갖고 있어 이미 모든 것을 적절히 조치해 놓고 대인께서 왕림하시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다만 그의 공명이 너무 적어 감히 입을 열어 청하지를 못하 고 있지요. 대인께서 만약 초라하다고 생각지 않으시다면 그곳으로 가 보시는 것도 상관이 없겠습니다.]
하가는 소문난 부자였다. 위소보는 어릴 때 그 집의 높은 담장을 지나 칠 때마다 담장 안에서 들려오는 풍악소리를 듣고 매우 부러워 했으나 한 번도 안으로 들어가 볼 만한 인연을 맺지 못한 터라 즉시 말했다.
[좋소. 그렇다면 며칠간 묵도록 하지. 만약에 불편하다면 그때 다시 옮 기도록 합시다. 양주의 소금 밀매업자들은 우리가 며칠간 실컷 먹고 마 셔도 곤궁해질 사람들이 아니니까 말이오.]
그 하원은 집들이 즐비했으며 샘물과 바위들도 아늑하게 만들어놓았을 뿐 아니라 정자와 집들이 운치있게 꾸며져 있었다. 그야말로 건축의 구 성이 정교하여 아름답다고 할 수 있었다. 첫눈에 한자의 땅에 적지 않 은 황금과 백금을 뿌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위소보는 매우 만족하였고 친위병과 시종들을 모조리 하원 안으로 불러 들여 머물도록 했다. 장용 등 네 장수는 관병들을 거느리고 나누어 부 근 관사와 민가에 묵었다.
이때 양주는 매우 번화하여 천하에서 으뜸가는 곳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당나라 시대에도 이미 '십리주렴(十里珠簾)에 이십사교풍월 (二十四橋風月)'이라는 말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청나라 초기에는 강서성과 안휘성의 염상들이 모조리 이곳에 모여 더욱 흥청거리게 되었 다. 역사책에 실려 있는 기록을 보면 명나라 말 양주부의 인구는 모두 구십 칠만오천여 정(십육 세 이상의 남자)이나 되었는데 청나라에 이르러 양 주가 청나라 군사에게 도살을 당하게 된 순치 삼 년에는 겨우 육천삼백 이십여 정만 남게 되었다. 강희 육 년에 이르러 다시 삼십구만칠천구백 여 정으로 불어나 비단 원기가 완전히 회복되었을 뿐 아니라 옛날보다 더욱더 번화해졌다. 이튿날 아침 양주성의 크고 작은 관리들은 줄을 지어 흠차행원으로 와 서 인사를 드렸다. 위소보는 그들을 접견한 이후 성지를 읽었다. 그는 글을 모르기 때문에 이미 사야(師爺)에게 익숙해지도록 가르침을 받았 는데 한자 한자 외운 셈이었다. 그런데 어찌되었든 그의 기억력은 무척 좋았다. 때로는 촉망중에 그것을 거꾸로 들기도 했으나 다른 사람은 이 를 발견하지 못했다. 관원들은 황제께서 성지를 내려 양주부에 속한 각 현에 삼 년 동안 전량을 감면해 줄뿐 아니라 청나라를 세울 때 병란으 로 과부가 된 사람들을 구혈하고 충렬사를 지어서 사가법등 충신을 제 사지내겠다는 말에 모두가 크게 소리내어 만세를 부르며 황제의 넓으신 은혜에 사의를 표했다. 위소보는 성지를 다 읽고 나서 말했다.
[여러 대인들, 형제가 북경에서 나설 때 황상께서는 강소성의 출산품이 매우 풍성하지만 근년에 이르러 벼슬아치들의 다스림이 해이해지고 군 사도 제대로 갖추지 않았기 때문에 이 형제로 하여금 잘 살펴서 정리하 라고 일렀소. 황상께서는 양주의 백성을 이토록 사랑하고 아끼시니 우 리 벼슬아치들은 마땅히 정성을 다해 성은에 보답해야 할 것이외다.]
문부백관들은 일제히 그렇다고 말했으나 위소보는 불현듯 속으로 걱정 을 했다. 기실 이 몇 마디의 말은 색액도가 그에게 가르쳐준 것이었다. 위소보는 상대방에게 뇌물을 받고 싶으면 상대방이 어떤 것을 바라도록 만들고 또 상대방에게 부담을 지워 주는 것이 좋다는 것을 알고 있었 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강소성의 문무관원에게 한바탕 위협적인 말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 몇 마디의 말은 너무 가볍지도 않고 적당한 것이라야 하고 또한 의젓하고 위엄이 서려 있어야 했으므로 반 드시 색액도에게 가르침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위소보가 벼슬아치의 의젓한 수작을 하게 되면 자연히 곤계의 관원들이 충렬사를 모실 곳을 찾아내어 충렬사를 세울 것이고, 구혈을 해줄 사람 들을 찾아내서 명부책을 만들 뿐 아니라, 사람을 시켜서 사방의 고을에 다가 황상이 전량을 면하게 해준다는 창자 뒤집히는 소리를 선포할 것 이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일들은 일조일석에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었 다. 그는 돈을 막 뿌려 대는 양주에서 일시 복을 누려 보자는 것이었 다. 수일 동안 충독과 순무가 잔치를 열어 주었고, 포정사와 안찰사 등 도 잔치를 열었으며, 각 지방의 도태들도 잔치를 벌였다. 그 잔치는 으 리으리한 진수성찬으로 호사함을 다했다는 사실은 더 말할 필요도 없었 다.
위소보는 여춘원으로 가서 모친을 만나 보고 싶었으나 매일같이 찾아오 는 벼슬아치들을 상대하느라 그 기회는 좀처럼 찾아오지 않았다. 차대 인의 어머니가 양주의 기녀라는 사실을 들춰낼 필요는 없었다. 위소보 개인의 창피는 오히려 작은 일이고 조정의 체통을 잃게 되는 것이 더 큰일이었다. 더군다나 위소보는 조정의 커다란 벼슬을 한 지 오래됐으 나 줄곧 어머니를 북경으로 모시고 가서 편안한 여생을 보낼 수 있도록 하지 않았기 때문에 실로 커다란 불효를 저지르고 있었던 것이다. 어사 가 이와 같은 사실을 알고 위에 대고 한 마디 하게 된다면 황제라도 그 를 변호할 수 없는 것이다. 그는 속으로 나중에 안정이 되었을 때 살그 머니 차림을 바꾸고 여춘원으로 가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친위 병으로 하여금 모친을 북경으로 보내 편안한 삶을 누리도록 하되 반드 시 귀신도 모르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항상 발밑에 기름을 바 르고 여차하면 도망칠 생각만 하고 있었고 뭔가 잘못되었을 때는 즉시 발에 채찍질을 가해서 멀리 도망칠 심산이었다. 그런데 벼슬은 갈수록 높아지고 가면 갈수록 기분이 좋아져 어머니마저 서울로 모셔와야겠다 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인데 이는 바로 벼슬을 오랫동안 해나갈 뜻이 있 음을 비춘 것이라 하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