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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三國志) (114) 태의 길평(太醫 吉平) <상편>
원술의 명을 받은 진림(陳琳)은 격문을 썼다.
진림은 희대(稀代)의 문장가(文章家)로 그는 붓을 들기가 무섭게 일천사백 자에 달하는 대 문장을 지었다.
<명군은 위태로운 것을 헤아려 변(變)을 미리 다스리고, 충성된 신하는 어려움을 걱정하여 권(權)을 세우는 법이다.
그러므로 비범한 자가 있어야 비범한 일을 하고, 비범한 일이 있어야 비범한 공을 세운다...
사공 조조의 할애비 조등은 한낱 환관인 주제에 먹고 마시며 백성을 괴롭혔고, 그 애비 조숭은 짐승같이 탐욕하고 표독했으니, 조씨 삼대는 역겨운 환관들의 자식이다.
그리하여 나, 기주 태수 원소가 한나라의 명을 받들어 천하를 바로 잡고자 정예 부대를 모아 병주에서 태행산을 넘어 정의의 군사를 일으키는 터이니, 모든 정의의 지사들은 나와 합심 협력하여 역적 조조를 멸하고 사직의 큰 공을 세우도록 하라 ....
아울러 조조의 수급을 취하는 자는 오천호후(五千戶侯)에 봉하며, 오천만 전(錢)을 상으로 주고, 부곡(部曲), 편비(偏裨), 장교 제리(將校 諸吏)로서 스스로 항복하는 자는 그 죄를 묻지 않을 뿐만 아니라, 널리 은신(恩信)을 베풀 것이다.
그러니 모든 조조 휘하의 백성들과 장수, 병졸은 깊이 명심하기 바란다! >
원소는 그 격문을 보고 크게 기뻐하며, 즉시 전국 방방곡곡에 필사하여 퍼뜨리게 하였다.
그 무렵에 조조는 두풍(頭風)으로 병석에 누워 있다가, 진림이 쓴 격문을 입수하여 읽어 보고는 식은 땀을 한 바가지 흘리더니 두통을 싹 떨쳐 버리고 벌떡 일어나 앉으며, 아들 조식에게 물었다.
"이 글을 어떤 놈이 썼다더냐?"
"진림이란 자가 썼다 합니다."
"좋은 문장이로다. 그야 말로 질주하는 듯한 기세로구나. 보기 드문 뛰어난 문장이군. 너희도 보거라."
하며 두 아들에게 격문을 주었다. 조비가 격문을 받아들자 조조가 이어서,
"진림은 천하의 기재로 고금을 꿰뚫는 걸작을 지었군. 이런 격문이면 십만 대군과 맞먹지, 식아!"
하고 말하면서 격문을 펼쳐 보고있는 아들 조식(曺植)을 불렀다.
그러나 격문 문구에 정신이 팔린 조식은 대답이 없었다.
그러자 조조가 다시 한번 아들 조식을 불렀다.
"식아!"
"네!"
조식은 그제서야 아버지 조조를 쳐다보며 대답하였다.
그러자 조조가,
"너는 어찌 그런 문장을 못 쓰느냐?"
하고 힐난의 어조로 물었다.
그리고 이어서,
"네게 드나드는 자들 모두가 박식하다면서, 또 그 자들과 시문을 주고 받는다면서?.. 다 들 밥통같은 놈들만 만나고 있었던게냐? 응?... "
조식은 아버지로부터 비난을 받자,
"지당하십니다. 부끄럽습니다."
하고 머리를 숙였다.
그러자 조조는 화제를 바꿔 말했다.
"지금 곧 밖으로 나가서 모든 문무 대신들을 대전에 들라고 해라."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조비(曺丕)가,
"아버님, 아직 병세도 있사오신데..."
하고 운을 떼자,
"진림의 이 격문이 묘약이었다. 격문을 읽고 식은 땀을 쫙 뺐더니 두통도 나았구나. 허허!"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잠시 후, 조조의 명을 전달 받은 문무 대신들이 대전(大殿)에 모여들었다.
그 자리에서 모사 공융(孔融)이,
"원소에게는 백만에 가까운 대군이 있고, 모사는 물론 문신과 장수들도 넘쳐납니다. 허유(許攸), 곽도(郭圖), 전풍(田豊),봉기(逢紀) 등은 지략이 뛰어나며, 안량(顔良), 문추(文醜),장합, 순우경(淳于璟)등 이름난 맹장들이 많아서 결코 경솔히 대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오니 원소와 전쟁을 피하고 화평을 청하도록 하십시오."
하고 간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순욱(筍彧)리 나서며,
"승상! 공융 선생의 말은 진부한 생각입니다. 소생의 판단으로는 열번 싸워서 원소는 십 패, 승상은 십승 입니다."
하고 아뢰는 것이 아닌가?
조조는 순욱에게 눈길을 보내며 말했다.
"소상히 말해 보시오."
순욱이 당당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원소는 번잡한 예(禮)를 따지고, 승상은 순리(順利)를 따르시니, 도리(道理)에서 이기고,
원소는 불순하고 승상은 대세에 따르니, 정의에서 이기고,
원소는 넓기만 하고 승상은 힘을 모으니, 다스림에서 이기고,
원소는 근심이 많아 자신의 측근만 돌려 막아 쓰지만, 승상은 현명하게 널리 인재를 적시 적소에 등용하니, 도량(度量)에서 이기고,
원소는 결단력이 부족하나, 승상은 판단력이 확고하니, 책략(策略)에서 이기고,
원소는 헛된 명성을 쫓고, 승상은 성실로 대하니, 덕성(德性)에서 이기고,
원소는 소홀함이 많으나, 승상은 두루 살피시니, 인의(仁義)에서 이기고,
원소는 비방(秘方)을 믿으나, 승상은 꿰뚫어 보시니, 밝음에서 이기고,
원소는 시비가 분분하나, 승상은 법도가 엄격하니, 문(文)에서 이기고,
원소는 공만 세우려할 뿐 병법을 모르나, 승상의 병법은 신의 경지로, 무(武)에서 이기니,
가히 원소는 열번 싸워서 열번 질 것이오, 승상은 십전 십승을 거둘 것입니다.
따라서 양쪽 최고 지휘관의 면면을 비교해 보면, 시작도 안 한 전쟁이지만 승리는 정해져있습니다."
....
조조는 순욱의 말을 경청하면서 대신들과 장수들 사이를 천천히 걸어다녔다.
그리고 순욱의 말이 끝날 즈음에는 대전밖을 내다보며 잠시 생각에 잠겨 있었다.
말을 마친 순욱이 조조를 향하여 돌아서며 한 번 쳐다 본 뒤에 자기 자리로 들어가 섰다.
그러자 조조가 뒷 짐을 지고, 대전밖을 내다보는 그 상태로,
"좋아!"
하고 말하고 나서 문무 백관들을 향하여 돌아서며 말했다.
"쟁론은 이제 그만하지! 여러 대신들과 장군들은 속히 돌아가 군대를 정비하라. 닷새 후에, 내 친히 이십만 대군을 이끌고, 원소와 맞서겠다!"
하고 명령하였다.
한편, 장락궁 내실에서는 국구 동승이 천자 유협을 찾아왔다.
"폐하! 희소식이 있습니다."
하고 아뢰니, 천자 유협은 반색을 하며 동승의 다음 말에 귀를 기울였다.
동승이 이어서 아뢴다.
"유비가 오만 군사를 이끌고 원술을 멸한 뒤에 서주의 팔만 군사까지 얻고, 서주를 완전히 장악했으며, 폐하의 밀서를 원소에게 전하고, 이를 본 원소는 격문을 지어 천하에 알리고, 삼십만 대군을 이끌고 조조를 친다고 합니다."
그러자 천자 유협은,
"정말이오? 그렇다면 매우 잘 된 일이오."
하고 만면에 미소를 띠며 좋아하였다.
그러면서 주위를 둘러보며 나직한 소리로 물었다.
"원소와 유비 연합군은 언제 쯤이나 허창으로 온다고 하오?"
"조만간 오지 않겠습니까? 허니 너무 조급해 마세요. 두 장군들과 합세하여 천하를 구할 계책이 따로마련되고 있습니다."
하고 아뢰었다.
그러자 천자는 크게 기뻐하며,
"어떤 계책이오?"
하고 물었다. 그러자 동승은 손으로 자기 가슴을 가르키며,
"소신에게 길평이라는 오랜 벗이 있습니다. 어의로 있으면서 지금 조조를 치료하는 중인데, 성은을 입은 몸이라 충성의 투지가 매우 강합니다. 그가 나서준다면 어렵지 않을 것이옵니다."
하고 심중의 말을 조심스럽게 꺼내었다.
...
국구 동승이 천자를 배알한지 며칠 뒤, 모두가 잠든 한밤중에 동승의 내실에는 국구 동승과 태의 길평,(太醫 吉平) 단 두 사람만이 자리해 있었다.
그러나 이들의 회합에는 시종 진경동(侍從 秦慶童)이란 사내놈이 문밖에서 옅듣고 있었다. 이런 사실도 모른채 두 사람은 겪의 없는 대화를 나누었다.
먼저 길평이 입을 열었다.
"국적(國敵)을 없애는데 어찌 군사가 필요하겠소! 이 손만 까닥하면 조조의 목숨은 순식간에 달아날 것이오."
하고 말하자 동승이,
"조조에게는 측근이 많아 외부인은 얼씬도 못하는 데, 어찌 그리 자신이 있소이까?"
하고 걱정스런 어조로 물었다. 그러자 길평이,
"어디 내가 외부인입니까? 요 며칠 전 조조의 측근인 시의(侍醫)가 되었구먼, 그러니 조조의 지병(持病)인 두통이 재발하면 나를 불러 치료해 달라고 할 것이오. 그때 약탕기에 독약 한포만 풀어넣게 되면, 조조는 단박에 저 세상 사람이 되지요."
하고 자신만만한 어조로 말하였다.
그러자 그 말을 듣고 동승이 침통한 얼굴을 하면서,
"조조 독살에 성공한다 한들, 자네도 죽게 될 텐데...이건 아닐세!"
동승은 고개를 저으며 손을 들어 길평에 의견에 부정하는 뜻을 보였다.
그러자 길평이 새삼스럽게 결연한 얼굴로 말한다.
"나라를 위해 이 한몸 죽은들! ...하나도 두렵지 않소. 나는 전대(前代)로 부터 성은을 입었으니, 폐하가 힘든 이때, 신하된 자로 어찌 목숨이 아깝겠소?"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동승은 자리에서 일어나 길평의 앞으로 다가가, 그에 앞에 무릅을 꿇고 두 손을 모았다.
"이런!"
길평은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동승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동승은,
"길평 형의 도움을 얻다니! 하늘이 폐하께 내린 복입니다! 조조만 죽게 된다면 나머지 무리들은 오합지졸이니, 모든 문무 대신들이 폐하를 반석(盤石)에 떠 받들게 될 것이오! 그렇게 된다면 폐하께서는 길평 형의 위패를 선제들의 공신각(功臣閣)에 함께 모셔, 길이길이 그 업적을 기리게 할 것이오."
하고,감격에 겨워하면서, 만류하는 길평에게 큰 절을 하였다.
그러나 세상에는 비밀이 없는것인가?
아니면 조조의 천명(天命)이 긴 탓인가?
국구 동승과 태의 길평의 비밀스러운 대화를 옅듣는 자가 있었으니, 하늘이 무심한 것인가?
두 사람의 대화를 옅듣게 된 진경동은 무심히 그 길로 헛간을 향해 갔다.
사실 진경동이가 자신의 주인인 동승의 내실앞을 지나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진경동은 동승의 시첩 운영(侍妾 雲英)과 남모르게 통정(通情)을 하는 사이였다.
그리하여 운영이 숨어 기다리고 있는 헛간으로 가기 위해 주인의 내실 앞을 지나다가 우연히 두 사람간의 대화를 옅듣게 된 것이었다.
사네놈은 헛간 앞에 도착하자 문을 열고 들어가며, 나지막한 소리로,
"이쁜아, 오빠가 왔다."
하고, 숨죽인 소리를 하였다.
그러자 어둠 속에서 한 계집이 이를 드러내며 웃으며 다가왔다.
"보고싶어 혼났지?"
사내놈은 능글맞게 말하며 계집을 끌어안았다.
그러자 계집은,
"쉿! 목소리를 낮춰요, 누가 듣겠어요."
하고 말하며 이어서,
"어서 빨리..."
하고 사내놈을 재촉한다.
그러자 사내놈은 계집을 끌어안고 그대로 자빠졌다.
헛간 짚더미에 그대로 자빠진 두 년놈은 누구랄 것도 없이 서로 옷을 벗기며 순식간에 알몸이 되었다.
사내놈이 계집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애무 하면서 계집의 엉덩이를 자기 앞으로 끌어당기는 순간, 헛간문이 큰 소리를 내며,<벌컥>열렸다.
"으엇?"
"어머!"
사내와 계집은 기겁을 하도록 놀라며 열린 헛간문을 쳐다보았다.
그 앞에는 시종들을 관리하는 집사(執事)와 그의 수하들 대 여섯이 노기띤 얼굴로 서 있는 것이 아닌가?
"이 음탕하고 더러운 것들을 끌어내라!"
집사가 명령하자 수하들이 달려들어 년,놈에게 결박을 지었다.
집사는 이들을 끌고가며 소리쳤다.
"헛간에서 금수같은 짓을 저지르다 들켰으니, 너희들은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길평을 보내고 잠이들지 못하고 있던 동승이 밖이 시끄럽자 방문을 열고,
"웬 소란이냐?"
하고 물었다.
그러자 두 년,놈을 결박하여 끌어오던 집사가 아뢴다.
"종놈과 대인의 시첩이 헛간에서 간통하는 것을 잡아왔습니다!"
동승이 기막혀 하면서 말한다.
"이런 죽일 년,놈 같으니라고! 문란한 짓거리로 집안 명성을 더렵혀? 이 잡것들을 어디다 쓰겠냐! 따로 가둬라! 내일 날이 밝는 대로 참 하겠다."
하고 명하였다.
그러자 집사는 수하에게 명령한다.
"끌고 가라!"
"살려주십시오. 대인!"
"살려주세요! 나리!"
년,놈은 끌려가며 울부짖었다.
주인 모르게 불륜을 저지른 종놈 진경동과 시첩 운영은 각기 결박을 지운 채로 다른 광(壙)속에 같히게 되었다.
그러나 날이 밝으면 죽게 될 종놈은 기필코 살아나려고 발버둥을 쳤다.
그리하여 뒤로 묶인 결박을 끌러내기 위해 광 속 기둥에 손에 묶인 줄을 문질러 대기 시작했다.
한참을 문질러 댄 끝에 종놈은 손에 묶인 결박을 끊고 도망하여 조조의 승상부로 고발하러 달려갔다.
"이 새벽에 네가 누구냐?"
수문장의 호통에, 진경동은 숨을 헐떡거리며 이렇게 말했다.
"조 승상을 살해하려는 사람이 있어서 급히 고하러 왔습니다."
조조의 부하들이 크게 놀라 곧 내실로 알렸다.
조조가 자다 말고 진경동을 밀실로 불러 물었다.
"도데체 네가 누구냐?"
"국구 동승(國舅 董承) 대감 댁 종놈 이옵니다."
"그래, 네가 새벽에 내게 급히 알리겠다는 말은 무엇이냐?"
"우리집 대감께서 조 승상을 살해하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습니다."
진경동은 동승과 태의 길평이 조조를 독살하려고 대화한 내용을 낱낱이 일러 바쳤다.
"음!... 네가 이같은 중대사를 내게 알리는 까닭은 무엇이냐?"
"조 승상 같은 어른을 해하면 나라가 크게 어지러워질 것 같아서 알려드리는 것이옵니다."
"음!... 잘 알았다. 그것이 사실이라고 밝혀지면 크게 상을 줄 것이니 그리 알아라!"
조조는 곧 부하를 불러, 진경동을 아무도 모르게 숨겨두도록 말했다.
아침이 되자 동승 대감 댁에서는 진경동이 결박을 끊고 도망쳐 버린 것이 발견되었다.
그러나 그가 조조를 살해하려는 비밀을 알고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기에 애써 찾으려고 하지도 않았다.
한 낮이 되자, 조조의 아들 조비가 승상부 밖으로 달려나오며 소리쳤다.
"승상의 두통이 심하다! 어서 어의 길평을 불러라! 어서!"
그러면서 시종의 등을 떠다 밀었다.
"어서 뛰어가! 어서!"
조조는 별안간 두풍(頭風)이 일어났다는 핑게로 태의 길평을 부중으로 불렀다.
(흥! 네가 오늘에야 죽게 되었구나!)
길평은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리며, 독약을 품에 지니고 부중으로 달려 들어왔다.
조조는 평상에 누워 있다가 태의 길평을 보자 머리를 두두리며,
"두풍이 극심하니, 어서 빨리 약을 짓게!"
하고 말했다.
"예!"
길평은 약이 끓기를 기다려, 품속에서 독약을 담은 봉투를 꺼내어 약탕기 안으로 털어 넣었다.
"길평! 약은 다 되었냐?"
조조는 두통이 심한지 재촉을 해 댄다. 그러자 길평이,
"곧 갑니다."
하고 대답하고 약탕기를 기울여 탕약을 사발에 따라내었다.
이윽고 길평이 탕약을 들고 조조 앞으로 와서,
"승상! 탕약 드시옵소서."
하고 말하면서 조조에게 독약이 담긴 약사발을 내밀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