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섯살 딸, 세살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책을 집어든 이유
이 책은 몇가지 충분조건을 만족하여 구입하고 읽게 되었단다.
일단 괴벨스란 인물이 궁금했어.
2차 세계대전에 관련된 부분이 언급되는 역사책을 읽을 때마다
빠지지 않고 나오는 인물이었어.
히틀러를 보좌하는 인물로,
이 책의 제목처럼 독일 국민들을 선동한 인물이었어.
그런 그가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궁금했어.
그리고 책이 무려 1000페이지가 넘었어.
아빠가 요즘 두께운 책에 마음이 끌리거든...
실제로 구입해서 보니
두꺼운 하드커버 양장본이 너무 맘에 들더구나.
하지만, 책 가격이 만만치 않았어.
그런데, 알라딘에서 반값 할인한다고 해서 덥석 구매를 했단다.
요즘 다시 국회에서 도서정가제를 실시하겠다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단다.
아빠도 뭐, 이젠 도서정가제에 대해 크게 반대할 생각은 하지 않는단다.
그들이 약속한 것처럼 책값의 거품을 빼서 경쟁력을 높일 수만 있다면 말이야.
하지만, 정치인들은 원래 약속을 잘 지키지 않을 뿐더러,
법 개정만 해놓고, 뭐 그 이후에 관심이 있을랑가 모르겠다.
한번 올라간 책값들이 법 개정을 했다고 다시 떨어질 것 같지도 않고 말이야.
그리고, 새로 출간되는 책값들이 떨어진다고 해도,
이미 출간된 책들의 가격은 어떻게 할 것인지도 궁금하고...
통째 이런 논란들을 다 고려하고 있는 것인지 궁금하구나.
과연 그들이 생각한대로 도서정가제를 하면 책정가가 떨어지고,
책읽기가 다시 활성화되고, 죽었던 동네서점들이 다시 살아날까?
참 궁금하구나.
대형마트에서 정가보다 싸게 팔고 있는 물건들은 왜 정가제를 안하는지도 궁금하고..
암튼, 아빠의 생각은 그렇네.
아빠도 책을 대부분 구매해서 보는 입장이라,
아빠의 생각이 틀렸으면 좋겠구나.
그래도 도서정가제가 되기 전에 사고픈 책들을 열심히 사두어겠구나.
이런, 괴벨스 책 이야기를 하다가 딴데로 빠졌네.
암튼, 이 책은 그런 충분 조건을 만족하여 구입해서 읽었단다.
이 책의 독자서평을 보면 대부분이 재미있다는 것이 대부분이었어.
하지만, 아빠는 읽어내기가 쉽지는 않았단다.
2차 세계 대전에 대한 상식도 단편적인 것들이고,
당시 독일 사정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지도 못했고 말이야.
읽으면서 생각한 것인데, 히틀러에 관한 책을 먼저 읽을 걸 그랬네...
라는 생각이 들었어.
집에 구매해놓고 안않은 히틀러 책이 두어권 있었는데,
그 책을 먼저 읽고 읽을 걸 하는 생각이 들었어.
뭐, 이 책을 읽고 히틀러에 관한 책을 나중에 읽게 되면,
히틀러에 책을 읽는데 도움이 될 것 같기도 하구나.
괴벨스.
음.. 한마디로 평가하자면,
똑똑하긴 한데, 존경받을 만한 인물은 아니라고 생각하는구나.
그 똑똑함을 대중을 선동하는데 사용하였고,
한사람, 즉 히틀러 바라기에 쓰였고,
자신만족에 충실하는데 쓰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었으니 말이다.
1. 장애를 갖은 어린 시절
1000페이지가 넘는 페이지를,
그것도 소설이 아닌 인물 평전에 관한 이야기를
어떻게 간추려서 이야기를 해주어야 하나 고민이 들더구나.
아빠의 기억력이 좋지 않아서,
정확하게 기억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어렴풋하게 생각나는 이야기들을 다시 보겠다고 책을 편다 한들,
그 내용이 어디쯤이었는지 찾기도 만만치 않고...
그냥 아빠가 인상깊었던 내용들고,
간혹 적어 놓은 메모로 이야기를 해줄께.
혹, 아빠가 쓴 글을 보고 관심이 있다면
나중에 이 무겁고 두꺼운 하지만, 하드커버에 양장본이라 좀 폼이 나는 이 책을 한번 읽어보렴.
........
1897년 독일황제 제국 시절 괴벨스는 태어태났단다.
이때 독일은 한창 번창하고 급속한 경제 발전을 이루고 있던 시기야.
당시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과도 대등한 관계를 가지고 갈등이 있던 시기래.
당시 독일의 정치는 이해단체와 시민 계급이 권력을 좌우하고 있었고,
변혁의 조짐이 보이던 시기였대.
괴벨스는
어린 시절에 골수염을 앓고,
완치가 안되어 다리에 보조장치를 달아야 했단다.
그리고 그 장애는 평생 동안 그를 절룩거리게 했어.
괴벨스는 골수염으로 병원에 입원할 때가 있었는데,
그때 독서의 즐거움을 알게 되어 책을 많이 읽었다고 하는구나.
그는 장애를 학업으로 극복하려고 공부를 열심히 했대.
항상 우등생이었고, 연극이나 시에도 재능이 있었어.
괴벨스의 아버지는 사무관으로 일했지만,
아이들이 많아서 넉넉한 생활은 아니었대.
그는 신을 원망하면서도 희망을 신에게서 찾으려고 했어.
그래서 한때신학자를 꿈꾸기도 했어.
..
1914년 6월 28일.
사라예보 사건으로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어.
괴벨스는 전쟁에 대해 호의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그것은 전쟁은 더 나은 미래의 희망을 준다고 생각했어.
그리고 자신도 참전하려고 했지만, 장애인이기 때문에 불가능했지..
그래도 그는 전쟁에 관여하고 싶어서,
전쟁에 관련된 다른 일을 했단다.
하지만, 전쟁에 참여했던 친구들의 전사 소식에 전쟁열광은 시들어지기도 했다는구나.
그는 우등생으로 졸업사를 발표했는데,
이것이 청중에게 첫 발표였어.
그는 여기서 격앙된 목소리로 애국심을 호소했다는구나.
그는 선생님의 조언에 따라 대학에서 고전문현학, 독문학, 역사학쪽을 공부했어.
2. 청년 괴벨스
대학에 들어간 그는 쾰슈라는 친구를 추종하였는데,
늘 그를 따라다니면 같이 공부를 했다고 하는구나.
그 시절부터 그는 누군가를 추켜세우는 그런 역할을 좋아했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단다.
그는 쾰슈의 여동생 아그네스를 사랑했는데,
얼마못가 쾰슈가 좋아하던 안카라는 여인과 사랑에 빠지게 되었어.
그로 인해 쾰슈와 절교하게 된다.
안카는 부잣집 딸이어서, 괴벨스에게 경제적 지원을 해주었으나,
자존심이 센 괴벨스는 거기에 부담을 가졌어.
그의 대학 시절이 이렇게 흐르는 동안,
1차 세계 대전은 독일의 패배로 끝나고 말았어.
괴벨스는 이때 신앙을 버렸지만,
이 일은 독일을 더욱 강해질 수 있는 계기라고 생각했어.
1차 세계 대전 패전의 책임으로 독일은 앞으로 수십년 동안
전쟁에 대한 보상을 주변국들에게 해야만 했단다.
그리고 1차 세계 대전 이후 독일에서는 여러 정당들이 난무했고,
사회주의 정당 중심으로 공화국을 선포했지만,
우파들의 움직임도 있었어.
그 중에 나치의 전신인 민주노동자당도 있었어.
....
괴벨스는 안카와 다투고 집에 돌아와서,
전쟁에 참여했다가 프랑스에 포로로 있다가 풀려난
한스 형과 자주 어울렸어.
이때 집에 머물려서 많은 글도 썼다고 하는구나.
그러면서 사회주의 사상을 접하기도 했대.
괴벨스는 안카에서 청혼을 했는데, 거절당하고 나서,
자살 소동을 하고 신경 쇠약에 걸리고 했다는구나.
이런 괴벨스의 행적을 보면,
괴벨스가 나중에 어떻게 그런 선동가가 되었는가 하는 의구심들도 들더구나.
이렇게 나약한 인간이 말이야..
...
암튼 괴벨스는 공부에는 소질이 있었는지,
박사 학위까지 따게 되었어.
하지만,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독일은 1차 세계대전의 보상을 해야 하기 때문에
국내 경제는 침체일로였고, 취업하기가 쉽지 않았단ㄷ.
괴벨스는 자신이 원하던 언론쪽에 취업을 못하고,
은행에 취직해서 사회의 첫발을 내디뎠단다.
그리고 사회 생활을 시작하면서 정치에도 관심을 가지게 된 괴벨스는
이때부터 국가사회주의노동자당에 적을 두고 있던 히틀러를 좋아하게 됭ㅆ대.
그는 히틀러를 만나는 게 최대의 희망을 정도였어.
독일의 당시 불경기는 계속 이어져서 괴벨스는 은행에서 해고되었어.
...
그대 독일은 슈트레제만이라는 사람이 총리에 즉위했는데,
그는 소극적인 저항으로 국민들의 반발을 샀대.
히틀러는 그런 국민들의 여론을 발판삼아 1923년 11월 뮌헨에서 구데타를 일으켰는데 실패를 했단다.
그는 재판에서 직접 자신을 변호했는데, 애국심으로 호소했다는구나.
그래서 쿠데타 치고는 양형인 5년 금고형과 그가 속해있는 나치당이 불법으로 규정하게 되었대.
이 쿠데타는 실패했지만, 오히려 백성들에게 그의 인기는 더 올라가는 계기가 되었다고 하는구나.
3. 괴벨스, 히틀러를 만나다
경제가 조금씩 살아나면서,
괴벨스는 <민족의 자유>라는 잡지의 편집인으로 취직을 했어.
드디어 자신이 바라던 언론인이 된거야.
그는 이 잡지를 통해 히틀러를 염두에 둔 글을 자주 썼단다.
강력한 지도자가 필요하는 등의 내용이었어.
그는 몇몇 유대인들과 친분을 갖고 있었는데,
자신들의 국민들은 굶주리고 있는데 비해
자본으로 돈을 벌어들인 유대인에 반감을 가지고 있어서,
이때부터 반유대주의 사상을 갖게 되었대.
그는 히틀러가 몸을 담고 있는 나치당에 관심이 많았어.
그는 친구 프랑을 통해 나치당 모임에 갈 수 있고,
거기서 유력 정치인들도 만나면서,
나치당 모임에 계속 참석했다가 연설까지 하게 되었어.
그리고 그 연설에 소질이 있음을 알게 되고 자주 연설을 했다는구나.
...
이럴 즈음 히틀러는 감형으로 풀려나고, 나치당도 다시 합법화되었어.
이때 괴벨스도 나치당에 정식으로 입당했단다.
그리고 북구 라인란트 관구사무장이라는 직함을 갖고 일하게 되었어.
그는 나치당의 유력 정치인 슈트라세와 친분을 쌓아갔고,
히틀러를 만나면 잘 보이려고 히틀러가 쓴 <나의 투쟁>이란 책을 연구했단다.
대단한 히틀러바리기구나.
그리고 드디어 히틀러를 만난 괴벨스는 그 이후 더욱 히틀러의 광팬이 되었어.
괴벨스는 히틀러를 호민관, 독재관에 적합하다는 평을 했어.
....
나치당의 목표는 나름 괜찮었어.
억압된 계층들에게 자유와 빵을 위한 권리를 쟁취하겠다. 였으니 말이야.
그리고 그들의 유적은 증권자본주의였는데,
증권자본주의의 핵심은 유대인 금융자본이었던거야.
...
4. 나치당, 독일을 접수하다.
이후 책의 내용은 히틀러와 괴벨스가 독일의 권력을 잡아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단다.
그들이 무력으로 권력을 잡을 능력이 안되었어.
선거라는 합법적인 방법뿐이 없었단다.
하지만, 나치당은 처음부터 그리 높은 지지율을 받는 정당은 아니었어.
사회민주당이 지지도가 가장 높았고, 그 다음이 공산당이었고,
나치당은 지지율이 무척 낮았어.
히틀러는 괴벨스를 베를린 관구장을 맡게 하고,
베를린에서 세를 확대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어.
베를린에서의 그의 첫 연설은 많은 호응을 받으며 열광적이었어.
하지만, 그것이 선거 결과와 바로 연결되지 않았단다.
또 하지만, 몇몇 괴벨스와 나치당을 따르는 충견같은 이들이 나타났어.
베셀이라는 사람도 그 중에 한명이야.
이 사람을 아빠가 특별히 이야기한 이유는 그가 나중에 공산당원으로부터 죽게 되는데,
괴벨스가 그의 죽음을 교묘히 이용하여,
나치당의 세확산과 동시에 공산당을 비판하는데 이용하기 때문이야.
...
당시 베를린은 사회적으로 안정된 시기가 아니었어.
나치당도 다른 다른당들과 의견 충돌이 일어나면서 실제 몸싸움까지 일어나는 경우도 있어써.
그래서 나치당에 해산 명령이 떨어지고, 괴벨스에게는 연설금지령이 내려지기도 했어.
이 일을 계기로
괴벨스의 선동 방식을 탐탁치 않게 생각하던 반대파가 전면으로 나서게 되었단다.
나치당 내에서도 괴벨스를 싫어하는 반대파가 항상 있었던 것 같구나.
괴벨스는 간혹 그들을 없애려는 시도도 했었고, 성공한 경우도 있었단다.
.....
괴벨스는 언론을 이용해 국민들을 선동하는 것이 중요함을 알고,
언론을 직접 만들었는데, 그것이 <공격>이라는 신문이었어.
그는 이 공격이라는 신문을 이용하여 반대파를 비난하기도 했어.
반대파도 괴벨스와 히틀러 사이를 이간질했지만, 히틀러는 괴벨스를 신임했단다.
베를린에서의 선동정책은 그리 효과를 보지 못했지만,
중책을 맡고 있는 괴벨스는 제국 의회에 진출할 수 있게 되었어.
...
앞서 이야기했지만, 세계 1차 대전에 대한 보상으로 인해 독일은 수십년 동안 가난에 허덕여만 했어.
그래서 보상에 대한 수정 협상이 계속 이어졌는데,
어느 정도 줄어들기는 했지만, 여전히 큰 부담이었다.
정부와 여당이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에 대해 야당은 맹렬히 공격했단다.
그렇다 보니 나치당은 다른 야당들과 연합을 할 수 밖에 없었는데,
괴벨스는 다른 노선의 정당들과 연합하는 것을 몹시 싫어했대.
하지만, 그는 히틀러하는 한 말과 행동에 대해서는 언제나 정당화시키고,
자신의 뜻도 결국 바꿔버렸단다.
그리고 아까 이야기한 베셀이라는 사람이 공산당원에 의해 죽음을 당하게 되서,
이것을 선전으로 활용했어.
그리고 <공격>을 통해 나치당과 히틀러를 대변했어.
히틀러는 괴벨스를 제국선전책으로 임명하였어.
...
1930년 9월 총선거에서 드디어 그동안의 선동정책이 빛을 보게 되었단다.
그 전부다 9배나 많은 의석을 차지하여 제 2 당이 된거야.
세가 커진 나치당은 공산당과 자주 대립하면서 유혈사태도 가끔 났어.
이때 대통령은 힌덴부르크라는 사람이었는데, 나이가 많았대.
그리고 총리는 파펜이라는 사람이었는데,
나치를 정부에 부분적으로 끌어들이려고 했지만,
히틀러가 부분적인 편입에 대해 반대를 했어.
그리고 파펜 내각을 무너뜨리기 위해 총공세를 했단다.
....
아참, 그 사이에 괴벨스가 결혼을 했어.
아빠가 편지 서두에 말한 거 기억나는지 모르겠구나.
책이 너무 두꺼워 세세한 내용까지 모두 적어두지 않아서,
중간중간 빼먹는 부분도 많다고 말이야.
괴벨스와 마그다의 결혼도 그 중 하나야.
괴벨스는 마그다라는 여인과 결혼했는데,
마그다는 재혼이었고, 전남편과 사이에 아들도 있었어.
그 아들도 괴벨스, 마그다와 함께 살았단다.
그들은 이후 결혼생활이 순탄치만 않았지만,
결국 마지막까지 같이 하게 된단다.
....
괴벨스는 언론 뿐만 아니라, 이제 막 출범한 방송의 힘을 알고 있었거.
그래서 그는 히틀러를 설득하여 나치당 방송을 자신이 갖도록 했어.
히틀러는 1933년 1월 드디어 총리로 임명되었단다.
그는 나치당 인물로 내각을 구성했어.
괴링이 프로이센 내무장관이 되고, 빌헬른 프리크가 제국 내무장관이 되었어.
히틀러와 나치당이 권력을 잡게 되자,
공산당은 봉기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어.
방송, 언론을 장악한 괴벨스는 국민들의 귀를 멀게 만들기 시작했단다.
괴벨스는 유대인 만큼 공산당도 싫어했어.
그의 말솜씨는 외교관으로서의 역할도 잘 해냈어.
유대인의 탄압과 학살이 시작되어 주변국들의 비난을 하자,
그들을 직접 만나 그 문제들을 잘 풀었다고 하는구나.
...
그가 선전부 장관을 맡게 되는데,
그렇다 보니 영화배우, 예술인과도 자주 어울리게 되었어.
그리고 괴벨스는 젊은 여배우들과 염문을 뿌리고 다니는데,
이때부터 부인 마그다와 사이가 안좋아지게 된단다.
...
늙은 대통령 힌덴부르크는 죽고 말았어.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단다.
히틀러와 괴벨스는 힌덴부르크의 가짜 유서를 조작하여,
총통 겸 제국 총리직을 히틀러가 맡도록 했어.
이것에 대한 국민투표를 실시했는데,
엄청난 조작을 했는데도 불하고,
그리 만족스럽지 못한 89.9%를 차지했다고 하는구나.
조장에 비해 많이 낮은 수치였던거야.
드디어 히틀러가 독일의 최고 권력자가 되었고,
나치당이 그런 히틀러를 적극 뒷받침해주는 형국이었단다.
5. 전쟁광
그 다음부터는 유렵을 차지하고,
유대인을 멸살시키려는 잔악한 행위의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고
간단히 이야기할 수 있겠구나.
1936년 베를릴 올림픽이 열였어.
나치당은 유대인 박해에 대한 흔적을 지우려고 노렸했고,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의 이미지를 만들어냈어.
하지만 그것은 모두 위장이었지.
얼마 가지 않아 독일은 동쪽으로 생활권 확대를 외치면서,
동으로 진격이 이루어졌단다.
그들의 첫번째 목표물이 오스트리아였어.
히틀러는 강압적으로 오스트리를 합병하려고 하자,
오스트리아 총리는 슈슈니크는 거부를 하고 국민투료를 통해 거부의사를 확실히 했어.
그러자, 히틀러는 바로 첫 군사행동으로 오스트리아 침공을 감행하고,
손쉽게 오스트리이 합병에 성공했단다.
괴벨스는 오스트리아에 제국선전지국을 설치했어.
뒤이어 체코슬로바키아를 침공하여 병합했어. 1938년 10월이었단다.
....
독일의 전쟁 야욕은 더 이어져 폴란드를 침략하려고 했어.
히틀러는 소력과 공동전선 조약을 맺었어.
독소불가침조약이었지.
서로 상대국을 공격하지 말자고 한 조약이야.
괴벨스는 소련과 협력하는 것에 처음에는 반대했지만,
언제나 그런 것처럼 히틀러의 뜻에 따랐어.
괴벨스의 역할은 전쟁의 정당성을 찾는 일이었고,
국민들이 수긍할 만한 거짓말을 만들어 언론과 방송에 실었단다.
그리고 1939년 9월 1일 폴란드를 침략했어.
이로 인해 2차 세계 대전이 본격적으로 발생했다고 보면 돼.
폴란드를 침략하면서도 독일의 팽창정책을 비판했던 영국의 개입을 불안하게 생각하고 있었어.
독일은 먼저 공격하자는 의견으로,
영국과 프랑스에 최후통첩을 보냈단다.
이제 전쟁은 동쪽으로만이 아닌 유렵 전방향으로 향했어.
그리고 영국과 프랑스가 미적거리는 사이,
한달만에 독일은 폴란드를 접수했단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서방세계에 평화를 제안했다고 하니...
참 염치도 없구나.
독일은 전 유럽에 걸쳐 전쟁을 선포했고,
프랑스도 점령하고, 영국과 전쟁도 이어졌어.
..
뿐만 아니라, 독소불가침 조약마저 깨고 소련을 공격했단다.
영국과 전쟁을 하면서 늘 뒷쪽에 불안을 느꼈던 거야.
히틀러와 괴벨스는 빠른 시간안에 러시아를 제압하고 영국과 전면전을 하려는 생각이었어.
하지만, 러시아의 저항은 만만치 않았어.
괴벨스는 전쟁의 패배를 추운 날씨탓으로 돌렸지만,
실제는 무능한 지도부가 패배의 원인이었던거야.
....
사막의 여우라는 별명을 가진 로멜이라는 사람이 있었어.
북아프리카에서 영국과 전쟁을 승리를 이끈 사람인데,
영국에서도 자신의 패배를 자신의 잘못으로 돌리기 싫으니까
적국인 독일의 로멜이라는 유능한 장군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그랬대.
그리고 괴벨스로 로멜을 영웅화하여 독일군의 사기를 높이려고 했어.
어떻게 보면 로멜은 자국과 적국의 거짓말이 보태어져 그렇게 된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나중에 독일의 지원이 끊긴 로멜도 별수 있나.
전투에서 질 수 밖에...
....
히틀러와 괴벨스가 전쟁을 일으킨 것도 나쁜 것이지만,
더욱 나쁜 짓은 유대인 멸살정책이었어.
라인드리히라는 사람이 주도적으로 유대인 멸살정책을 펼쳤는데,
괴벨스는 적극적이었어.
그래서 만들어진 것인 아우슈비츠를 비롯한 유대인 수용소란다.
그리고 수없이 많은 유대인들의 죽음...
생명은 모두 소중한 것인데, 괴벨스 이 사람은 그렇게 많은 생명을 죽였으니...
그러면서도 자신들의 아이들과 웃으면서 놀고 있는 사진이 있는데..
아빠는 보기가 아주 역겹더구나.
...
러시아와 전투에서 힘을 크게 소진한 독일.
그리고 미국의 참전.
사방으로 확대전쟁으로 펼쳤던 독일은
사방에서 몰려오는 적군에 맞서 싸워야했어.
이제 괴벨스가 자신들이 우세하다고 하는 방송을 믿는 사람들은 얼마 없었단다.
그들이 차지하고 있을 만한 땅은 점점 작아져서
조그마한 지하 벙커에서 겨우 몸을 유지할 수 있었단다.
패전이 확실한 상황에서, 히틀러는 연인 에바 브라운과 결혼을 하고,
모든 이들이 보는 앞에서 에바 브라운과 함께 자살을 하기로 했단다.
그리고 죽기 전 괴벨스에게 총리직을 임명했단다.
결국 괴벨스는 독일의 최고 권력 자리에 오르긴 했지만,
그의 독일은 작은 벙커가 전부였어.
괴벨스 또한 좋은 방법이 있었겠니?
괴벨스와 아미 마그다 그리고 어린 자식들..
모두 자살로 삶을 마감했단다.
....
아빠가 듬성듬성 이야기를 하긴 했지만, 암튼 책의 내용은 그렇게 끝을 맺었단다.
...
모르겠다.
오늘날도 분명 괴벨스의 능력을 높이 사서 그를 좋아하는 이들도 있겠지.
하지만, 아빠의 눈에는 현란한 거짓말로 사람들을 속이고,
출세를 위해 자신의 뜻도 쉽게 바꾸는 기회주의자이고,
자신의 신체 장애를 다른 방법으로 극복하려고 했지만, 끝내 열등감을 이기지 못한 것처럼 보였고,
한낱 전쟁광이었고, 살인을 서슴치 않는 사이코패스라는 생각이 들었단다.
...
아빠가 요즘 인터넷만 보면 눈물이 흐르는구나.
세월호 침몰로 인해 너무 많은 어린 생명들이 하늘나라로 가버렸어.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이 일어났고,
일어난 다음 그들이 한 조치는 할 말을 잃게 만드는구나.
이것이 우리나라의 현주소라는 것에 창피하기도 하고,
책임을 져야할 어른들은 책임을 회피하려는 방향으로 행동하고.
정말이지 답답하기 그지 없구나.
도대체 어쩌다 이런 일이 일어나야 하는지...
....
책제목 : 괴벨스, 대중 선동의 심리학
지은이 : 랄프 게오르크 로이트
펴낸곳 : 교양인
페이지 : 1058 page
펴낸날 : 2006년 01월 16일
책정가 : 39,000원
읽은날 : 2014.04.02~2014.04.16
글쓴날 : 2014.04.15,17,18,22,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