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커
요즈음 학교 앞 차도에는 모두 어린이 보호구역이 있다. 노란색이 많이 칠해져 있고 간선도로변을 빼고는 모두 30km이하로 속도제한이 있으며 신호등도 많이 설치되어 있다. 그런데 여기에 더하여 ‘노인(어르신)보호구역’이라는 곳도 있다. 어린이보호구역 만큼의 보호시설이 집중 설치되지는 않았지만 운전자들에게 조심하도록 도로 바닥안내나 30km 제한속도 등이 어린이보호구역 못지않게 안내되어 있다. 어쩌면 노인들의 왕래가 많은 지역에서는 운전자들이 학교 앞 보다 더 조심해야 될지도 모르겠다. 운전을 하다보면 아이들은 잘 살피지도 않고 갑자기 차도로 뛰어드는 것이 제일 조심스럽지만 노인들은 인지 능력이 떨어지고 행동도 느리면서도 건널목 신호를 잘 지키지 않는 분들도 있어 아이들 보다 더 조심을 하게 된다. 언제 면허증을 반납해야 할까 생각 중인 나이에 노인의 인지능력을 따지는 내가 우습기도 하지만.
운전 중 앞에 가는 차량의 뒤창에 ‘어르신 운전 중’이라는 스티커가 붙어 있는 게 눈에 띠었다. 뒤에 따라오는 차량들에게 노스티커의 역할이 배려를 바라는 것인지 노인이 운전하니 뒤따라오는 차들은 조심하라는 경고인지는 모르겠지만 배려나 부탁으로 이해하고 싶다. 본인이 스스로 붙인 것은 아닐 테고 노인 운전 관련 단체나 기관에서 붙여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진행방향이 비슷했기 때문에 뒤따르면서 관찰을 할 수가 있었다. 다른 차들에 비하여 속도가 좀 느리기는 했어도 그런대로 잘 가고 있었다. 회전차로나 끼어들기에서 방향지시등을 몰라라 하는 운전자들은 나이에 상관없이 늘어만 가고 누가 앞에 끼어들기라도 하면 0.5초만 브레이크를 밟으면 될 텐데 차 한 대 끼워주면 인생이 끝나는 것처럼 경적을 울려대기도 하고 20미터 정도 앞에서 깜빡이로 의사표시를 해도 쌍라이트와 경적을 동시에 사용하며 가속 페달을 밟는 운전자를 경험한 사람들이 있다면 노인 운전이 좀 느리기는 해도 그나마 낫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배려나 양보를 모르는 그런 급한 운전자들에게 스티커가 얼마나 제 역할을 할지는 미지수이지만.
젊은 운전자들은 잘 모르겠지만 한 때 종교적인 상징물들을 차 안의 거울에 매달거나 뒤창 유리 혹은 차체 뒤쪽에 붙이고 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캠페인이었는지 아니면 자신의 안전을 바라는 마음이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런 분들이 모두 모범 운전을 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자신의 안전과 함께 타인의 안전까지 고려하였다고 한다면 이에 동의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 당시 나에게 그 스티커 하나를 건네주신 절친한 분이 있었다. ‘내 탓이오‘라고 쓰인 스티커였다. 한 종교단체에서 벌리는, 잘못된 것은 다 내 탓이라는 의미의 캠페인에 동참하라고 건네준 스티커였다. 많은 자동차들에 그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그러나 난 그것을 내 차에 붙이지는 않았다. 대신 난 그에게 자동차 뒤에 붙인 스티커를 떼어 운전석에 붙이라고 권고하였다. 왜냐고 묻는 그에게 “뒤따라오는 사람들이 보라고 ’내 탓이오‘를 뒤에 붙이고 다니면 잘못된 것은 내 탓이 아니고 다 뒤에 따라오는 네 탓이라는 표시이니 모든 잘못이 다 내 탓이라 생각한다면 운전석에 붙여놓고 본인 스스로 운전할 때마다 보면서 반성하는 게 좋지 않겠나”라고 대답하였다. 그의 반응은 “그러네”였지만 그가 그 스티커를 자신의 운전석에 붙였는지는 모르겠다.
요즈음도 자동차 뒤에 뭔가를 붙이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다. ‘초보운전’이야 법으로 정해진 것이니 (요새도 유효한 법인지는 모르겠다) 그렇다 치더라도 초보운전자임을 나타내는 글귀가 각양각색이다. 아이들을 보호한다면 ‘어르신 운전 중’과 같은 목적으로 아이를 보호해 달라는 정중한 그러나 간단한 스티커 ‘아이가 타고 있어요’면 충분할 일을 영어를 비롯하여 농담따먹기 하자는 건지 코미디 하자는 건지 멋을 창조하고 싶은 것인지 모를 스티커를 많이 붙이고 다닌다. 아이가 타고 있다고 알리는 그런 스티커가 어디서 왜 생겨났는지 파악이 되었다면 그 목적에 걸맞게 알리는 문구 하나면 충분하다. 사고 시에 아이를 먼저 구조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러나 모든 경우가 같지 않으므로 구조를 하는 분들은 우선 먼저 구조할 수 있는 사람부터 구조한다고 한다. 그리고 아이들의 혈액형을 적어 놨다고 해서 그걸 믿고 그대로 수혈을 하는 의사가 있을까하는 의구심도 든다. 요새는 아이들이 많이 줄어들어서인지 ‘아이가 없으니 나부터 구해주세요’가 많이 눈에 띤다.
어르신은 노인의 순수한 우리말이라고 한다. 그러나 지금 어르신의 어감은 ‘젊은이들에게 귀감이 되는 행동을 하는 노인’을 예우하는 존칭으로 사용되는 느낌이다. 그렇다면 운전에서도 노인 스스로 어르신으로 불릴 운전을 하여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그냥 ‘늙은이’ 소리 밖에 듣지 못할 것이다. 또한 아이들을 보호할 마음이 있는 부모나 운전자들이라면 남들에게 부탁하는 스티커 이전에 스스로 모범운전을 하여야 한다. 어르신이나 아이들을 위한 스티커를 붙였다고 해서 그 스티커가 나보다 먼저 어르신이나 아이들을 보호해 주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한 때 유행하던 SH♡HS 같은 사랑의 표현을 자동차에 붙이고 다니는 것은 요새 보기 힘들다. 왜 그들은 자신들의 애정을 남에게 보여주어야 했을까? 난 지금까지 규정으로 정해진 것 외에 자동차에 어떤 스티커도 붙여보질 않았다. 이제 나이도 먹을 대로 먹었으니 나도 ‘어르신 운전 중’이나 유행지난 이 ♡표시 한 번 붙여볼까? 한글로.
2025년 3월 23일
하늘빛
음악 : 유튜브 https://www.youtube.com/watch?v=iJ02hnkmOiw 링크
"THE ULTIMATE BLU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