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은 네 복음서에 나오는 성모님 관련 이야기들 가운데, 가장 어린 시절의 성모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먼저 평범하여 보이는 그의 신상을 소개합니다.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이라는 고을에 사는 여인으로 다윗 집안의 요셉이라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였던 마리아, 그런데 가브리엘 천사의 등장으로 그의 특별한 신원이 밝혀집니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그리스 말로 ‘케카리토메네’)라는 표현은 마리아가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을 받아 이미 그것을 충만히 누리는 상태임을 드러냅니다.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라는 표현도, “너는 하느님의 총애(그리스 말로 ‘카리스’)를 받았다.”라는 표현도 모두 그가 주님의 특별한 보호와 도움 아래 놓여 있다는 사실을 전합니다. 그러한 마리아에게서 하느님의 구원 계획, 곧 성자 강생의 놀라운 신비가 이루어지리라고 천사는 예고합니다.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
우리는 마리아가 가브리엘 천사를 대면하고서야 비로소 특별한 은총을 얻은 것이 아니라, 그전부터 그것을 누리던 여인으로 묘사된다는 점을 눈여겨보아야 합니다. 이는 오늘 대축일로 기념하는 ‘성모님의 원죄 없으신 잉태’ 사건과도 연결 지어 볼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성자의 강생을 합당하게 준비하도록 하는 첫 번째 사건으로, 그분의 어머니가 될 여인을 원죄에 물들지 않도록 보호하시는 특별한 은총을 베푸셨습니다. 성모님께서 받으신 이 특은은 개인만이 아니라, 우리 교회 공동체를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아드님의 구원 사업에 협력하시고 그 구원의 첫 열매가 되신 분께서는, 같은 구원을 향하여 나아가는 교회의 원형이시요 어머니이시기 때문입니다.
성모님께서 받으신 특별한 은총을 기념하는 오늘, 우리도 하느님께 나아가기에 합당한 사람, 곧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이 될 수 있는 은총을 청합시다.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녀를 통하여, 성자의 합당한 거처를 마련하시고, 성자의 죽음을 미리 내다보시어, 동정 마리아를 어떤 죄에도 물들지 않게 하셨으니, 동정녀의 전구를 들으시어, 저희도 깨끗한 몸과 마음으로 하느님께 나아가게 하소서”(대축일 미사 ‘본기도’에서).
(정천 사도 요한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