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 -
권다품(영철)
우리 나라 최대의 명절 설이다.
설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이 어른들께 세배를 올리는 것이다.
어른들께 세배를 올리면 어른들은 자손들에게 좋은 덕담과 함께 세뱃돈을 주시고.
자식들도 어른들께 용돈도 챙겨드리고.
그리고는 온 가족들이 차례 준비로 분주하다.
우리 민족들은 윗어른께 올리는 세배와 함께 차례를 명절 최고의 행사라고 생각하고, 너무 당연한 것처럼 온갖 제수들을 준비해서, 차례상을 제삿상처럼 상다리가 휘어질 만큼 차린다.
차례상과 제삿상은 같은 것일까?
중국 '주희'가 쓴 '주자가례'를 철저히 따라했던 우리 나라 사대부들이 쓴 책에도 "차례상에는 차 한 잔에 술 한 잔, 과일 한 접시만 올리고, 술도 한 잔 이상은 올리지 않는다."라고 나와 있다.
또, 우리 나라 전통 격식을 연구한 학자들도 "옛날부터 전통 격식을 엄격히 따졌던 우리 나라 종가에서도 차례상은 술과 떡국, 전 한 접시, 과일 한 쟁반이라는 격식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지나치거나 넘침은 모자라는 것보다 못하고, 오히려 예가 아니다."라며, 차례상과 제삿상을 구별않고 차리는 것을 경계하기도 했다.
그럼 왜 이렇게 차례을 제사상처럼 차렸을까를 생각해 보자.
옛날에는 양반들의 권위를 보존하기 위해서 양반들끼리만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상놈들이 양반 흉내를 내며 제사를 지내면, 천한 놈이 감히 양반의 권위에 도전을 한다며, 잡아다가 물고를 내기도 했단다.
그러다가 조선후기, 종이나 노비 등 상민들도 양반 주인의 성을 받거나, 족보를 사서 양반 흉내를 내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갑자기 무식한 양반들이 많아지게 되었단다.
그 양반 티는 내고 싶은 사람들이, 차례상도 제삿상처럼 차리는 줄 알고 차리게 되면서 오늘날 차례상이 이렇게 변했다고 한다.
양반 집안에서는 '조율이시'니 '홍동백서'니 '어동육서'니 하면서 지내니, 반드시 그 원칙에 따라 차려야 한다며, 그렇게 차리지 않으면 상놈 집안이라며 흉을 보기도 했단다.
그런데, 예법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주자가례'어디에도 '조율이시'니, '홍동백서'니, '어동육서' 따위의 말은 없다고 한다.
무식한 양반들의 생각에 명문 사대부들의 집에서는 차례상이나 제삿상을 엄청나게 차릴 거라고 생각하고는, 양반 흉내를 내고 싶어서 사대부 흉내를 내다 보니, 오늘날처럼 상다리가 휘어질 만큼 차린 것이라고 학자들은 추측하고 있다.
"이 음식은 여기 놓아야 맞고 저 음식은 저기 놓아야 맞고, 이 음식은 고춧가루가 들어가서 차례상에 올릴 수 없고, 그 생선은 비늘없는 생선이라 올리면 안 되고, 또 그 생선은 차례상에 반드시 올려야 되고, 대추는 작지만 씨가 하나라서 왕처럼 맨 윗 자리에 놓아야 하고, 밤은 세 알이니 3정승을 뜻하니 대추 다음에 놔야 하고, 배는 씨가 6개니 육판서를 뜻하고, 감은 씨가 8개니 8도 관찰사고, 수박과 참외는 씨가 많으니 백성이라 생각하고....."
'주자가례'에는 없는 내용들이 무식을 떠는 가짜 양반들에게서부터 잘못 전해지고, 그 방식이 오늘 날까지 전해져서 지금도 그 잘못된 방법을 따르고 있다는 것이다.
내 생각에는, 자손들이 할아버지 할머니를 생각하며, 이 음식은 생전에 할아버지께서 좋아하셨는데, 저 음식은 할머니께서 좋아하셨는데 생각하면서, 드리고 싶은 음식을 올리는 것은 어떨까 싶다.
차례는 자손들이 먹기 전에,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올 명절에는 이렇게 차렸습니다'라고 생각하며, 효가 바탕이 된 마음으로 어른들께 먼저 올리고 먹는 것을 차례상이라 생각하면 어떨까 싶다.
유교를 따지면서도, 예법도 정확히 모르는 나름 양반이라는 사람들은 이런 나를 '이런 막 돼먹은 상놈이 있나'고 할 진 모르겠다.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를 생각하는 그 정성이 중요하지, 음식을 어디 놓는다고 정해진 그 형식이 중요할까 싶다.
또, 요즘은 돌아가신 분의 모습을 직접 볼 수 있는 사진이 있는데, 아직도 무슨 뜻인지도 정확히 모르는 그 "현고학생부군신위"란 한자가 왜 필요할까?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풍습이라고 해서 꼭 다 맞는 것도 아니야. 잘못된 걸 알면서 조상들로부터 내려오는 것이라고 무조건 따를 필요는 없어. 잘못됐다 싶은 건 바꿔야지. 중국 꺼 말고, 새로운 우리 껏도 만들어내고. 아빠 생각에는 차례상이고 제삿상에는 너거가 할아버지 할머니께 드리고 싶은 것들 올리는 기 맞지 싶다."
나는 내 자식들에게 이렇게 말해 준다.
"아빠 그럼 할아버지는 술 못 드시고 단술 억수로 좋아하셨으니까 단술 올리고, 할머니는 커피를 하루에도 몇 잔씩 드셨을 만큼 좋아하셨으니까 커피 올릴까요?"
"그렇지. 귀신이 있기야 하겠나 마는, 만일 계신다카마, 손자들이 맛있다고 드리는 긴데, 할아버지 할머니가 얼마나 좋아하시겠노? 참, 오종아, 할아버지는 회를 엄청 좋아하시고, 할머니는 맵싹한 양념 통닭이라카마 주무시다가도 벌떡 일어나시더라 아이가 와."
"맞네! 그런데 아빠 회는 날 것이고, 양념통닭은 고춧가루 들어가서 매운 건데 차례상이나 제삿상에 올려도 되나?"
"그러마 제삿상에 고춧가루 안 든 나물하고 생선 익혀서 올려놓으이끼네, 할배 할매 쪼매이라도 드셨더나?"
"맞네!"
정해진 형식대로 모시면 양반이고, 그렇게 모시지 않으면 못 배운 상놈이라면, 그럼 기독교인들은 다 상놈이고 다 무식한 사람들이란 말인가?
또, '평소 행동은 바르지 못하면서, 차례나 제사 때만 양반 흉내만 낸다고 양반이 될까' 하는 생각도 들기도 한다.
시대에 맞게 우리 것을 찾자고 하면 상놈이라면, 나는 자기 나라 것을 버리고, 남의 나라 문화를 따랐던 그런 썩어빠진 양반보다는, 차라리 우리 대한민국의 상놈이 되는 게 낫지 않을까 싶다.
내 생각일 뿐이고, 물론 내 생각이 다 맞지는 않을 수도 있겠다.
그래도, 우리 것을 생각해 보는 기회라도 됐으면 좋겠다 싶어서, 한 번 써 보기는 써 본다.
판단은 읽는 사람들의 몫이겠고....
옛날 판소리 명인 박동진 할아버지께서 외치시던 말씀이 생각네에.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
2023년 1월 23일 낮 2시,
권다품(영철) 이 생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