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단고기 저자] 환단고기 삼성기상 저자 안함로는 누구?
오늘은 삼성기 상의 저자이신 안함로 대성사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우선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기록을 보면
안함로(安含老)는 《환단고기》를 통해 알려진 신라 사람으로, 《환단고기》에서는 그가
《삼성기 (三聖紀)》 상권을 썼다고 언급되어 있다[1]. 하지만 《조선왕조실록》에 언급된
〈안함로원동중삼성기〉를 안함로, 원동중 작의 삼성기가 아닌 안함, 노원, 동중 3인이 지은
삼성기로 보아야 한다는 견해가 있으며, 안함로라는 인물에 대한 활동상이 삼국사기 등
주요 역사책에는 전혀 기술되어 있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이 인물의 실존 여부 또한
불확실하다.[2][3]
[편집] 주석
1.↑ 《환단고기》에서는 원동중(元董仲)이 《삼성기 (三聖紀)》 하권(신시역대기 포함)을 썼다고
언급되어 있다.
2.↑ 이유립, 《환단고기》, 광오이해사, 1979.
3.↑ ‘안함로’는 조선왕조실록 세조실록 3년(1457) 음력 5월 26일(무자) 3번째 기사의
《안함로원동중삼성기(安含老元董仲三聖記)》에 등장하며 《해동고승전》 제2권에는 진평왕 대의
안함(安含)이 등장하는데, 당에 유학을 다녀왔으며 예언서를 저술한 고승으로 설명되었다.
안함은 신라 십대 고승 중 한 명이다
라고 되어 있네요.
* 삼성기 원문
一.
三聖紀는 有二種이나 而似非完編이오 安含老氏所撰은 余家舊傳이니 今爲三聖紀全上編하고
元董仲氏所撰은 得於泰川白進士寬黙氏하니 今爲三聖紀全下篇總하야 謂之三聖紀全이라.
삼성기는 유이종이나 이사비완편이오 안함로씨소찬은 여가구전이니 금위삼성기전상편하고
원동중씨소찬은 득어태천백진사관묵씨하니 금위삼성기전하편총하야 위지삼성기전이라.
삼성기(三聖紀)는 두 종류가 있어 비슷하나 완전한 것은 아니다.
안함로(安含老)씨가 편찬한 것은 우리 집안에 전해 오는 책이니
이제 삼성기 전 상편(三聖紀全上編)이라 하고,
원동중(元董仲)씨가 편찬한 것은 태천(泰川)의 백진사(白進士) 관묵씨(寬黙氏)로부터
얻은 것이니 이제 삼성기 전 하편(三聖紀全下篇)이라 하고
이를 총괄하여 <삼성기 전(三聖紀全)>이라 한다.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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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함로(安含老 578 ~ 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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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 자료들을 인용․보완하여 작성함
속성은 김씨이며 흥륜사 십성(十聖) 중의 한 사람으로 속성은 김(金)씨이다.
시부이찬(詩賻伊湌)의 자손이다.
해동고승전에 의하면, 영민하고 도량이 넓었으며 일찍부터 뜻을 나라 밖에 두었다.
신라 진평왕 22년(600년)에 고승 혜숙(惠宿)과 함께 이포진(泥浦津)에서 배를 타고 중국으로
가다가 섭도(涉島) 근처에서 풍랑을 만나 되돌아 왔다.
이듬해 칙명을 받고 법사가 되어 중국 사신과 함께 중국으로 건너가서 황제를 만나고,
대흥사(大興寺)에 머물렀다고 한다.
그 뒤 십승(十乘)의 비법(秘法) 및 현의(玄義)와 진문(眞文)을 5년 동안 배우고,
605년 우전국 사문 비마진제(毘摩眞言帝), 농가타(農加陀) 등과 함께 귀국하였다.
서역의 승려들이 신라에 들어 온 것은 이때가 처음이라고 한다.
저서로는 참서(讖書) 1권을 지어 견문한 바를 기록하였다고 하나 전하지 않는다고 썼다.
이 참서(讖書)라 이름한게 삼성기(三聖記)를 말함이 아닌가 한다.
조선시대 들어오면서 기존 선가 맥의 도서들을 참위서라고 폄하했다.
그는 물위를 걸었으며 공중을 날아다니는 등 많은 이적을 행하는 선승이었다고 한다.
이 같은 행적으로 보아 그는 신교(神敎)의 선맥을 이어받은 것으로 짐작된다.
선덕여왕 9년 62세(640년)로 만선도장(萬善道場)에서 세상을 떠났다.
☞ 동사강목 제 3 상 기록
535년 (신라 법흥왕 22년) 여름 5월 신라가 흥륜사(興輪寺)를 창건하였다.
왕이 불법을 행한 뒤로부터 면류관(冕旒冠)을 쓰지 않고
방포[方袍 비구(比丘)가 입는 가사(袈裟)]를 입으며, 궁척(宮戚)을 사찰의 노예로 주었다.
이 절은 시작한 지 10년 만에 이루어졌다.
두 절의 옛 터는 지금의 경주부 남쪽 2리에 있다.
(흥륜사에 나오는 신라 성인 십성 기록)
☞ 三國遺事 興輪寺金堂十聖 興輪寺
삼국유사 흥륜사금당십성 흥륜사
신라 최초의 큰 절로서 경주 봉황대에서 오릉(五陵)에 이르는 중간 동편에 있었다.
동쪽 벽에 다섯 개의 우상이 있는데,
아도(我道)ㆍ염촉(厭髑)ㆍ혜숙(惠宿)ㆍ안함(安含)ㆍ의상(義湘) 등이다.
그리고 서벽에 앉혀진 다섯 개는
표훈(表訓)ㆍ야파(虵巴)ㆍ원효(元曉)ㆍ혜공(惠空)ㆍ자장(慈藏) 등이다.
○ 원동중(元董仲) : 미상, 현재 추적중인데 조만간 성과가 나올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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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함(安含), 로원(老元), 동중(董仲) 설(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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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황해도 해주목에 나오는 내용이다.
- 수양산성
돌로 쌓은 성으로, 둘레는 2만 856척이고 높이는 18척이다.
세상에 전하기로 옛날 안함, 원로, 동중 3명이 땅을 택하여 성을 쌓았다고 한다.
산중에는 또 옛 고죽군의 남은 터가 있다.
☞ 신증동국여지승람은 1530년 중종의 명에 의해 이행·윤은보·신공제 등이
펴낸 관찬지리서이다.
조선왕조실록 세조 7권, 3년(1457) 5월 26일(무자) 3번째 기사에 보면
안함노원동중삼성기(安含老元董仲三聖記)라는 기사가 보이고,
동사강목, 납자필람, 삼국유사 등에서 안함노(安含老)라 증빙되고 있어,
세조 3년의 기록보다 73년 늦게 기록된 여지승람의 기록은
기록자들이 잘못 기록한 것으로 보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