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을 아십니까? 요한일서 1;3 사귐
유대인이 사용하는 언어입니다.
<나 요즈음에 힘들어.> 상대방은 말합니다.
<신발벗고 하나님께 맡겨.>
신발 벗는다는 말은 자기 생각과 자기 의지를 버림을 의미합니다.
모세는 80세에 신발을 벗었습니다.
지금까지는 자기가 민족 혁명을 일으키려고 하였습니다.
실패하였습니다. 도망쳤습니다. 광야에서 자기 의지대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이제부터는 네 생각대로 살지 말고 내가 시키는 대로 살아. 네 생각을 포기해. 신발벗어.>
하나님은 모세을 쓰실 때 “ 내신을 벗으라고,, 합니다.
출3;5 ]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이런 명령은 기독교 복음에서 하나님의 성도로써의 삶의 최고의 형태[사물의 생김새나 모양]을 말합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복음의 신앙과 정반대 되는 삶을 살면서 기독교인이라고 하는 사람 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면서
자신이 기독교인이라고 하는 허무 맹랑한 사람들이나,
하나님의 말씀 부인 하고,
전혀 타협이나 협상의 대상이 되지 않는 것을 말하면서
자신이 그리스도인 이라고 주장 하는 사람을 볼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인성, 부활, 주님의 죽으심을 통한 죄사함의 가치을 부인 하는자 중에 교회의 중요한 직분을 맡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성경은 이런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삶의 본질[본디부터 가지고 있는 사물 자체의 성질이나 모습]은 바로 하나님과의 연합이요, 사귐입니다.
요1서1;3절 ]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이것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본질이요 기본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어떤 성도는 평생 교회와 하나님의 일을 하다고 하면서도 임종시 자신이 하나님을 전혀 알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는자들도 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본질이 하나님과 아들과의 교제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사귐이란 ? 무슨 뜻이 있습니까.
1] 성경의 전반적인 가르침에서는 “ 우리는 동반자, 파트너” 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베드로는 베드로 후서1;4]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라고 표현 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새로 태어나고,
성령으로 말미암아 중생과 거듭남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예수 믿고 달라진 부분이 어떤 것일까?
성경은 “ 신적 생명”을 부여 받은 사람이라고 합니다.
즉 하나님의 신성[ 성령]이 우리안에 들어와 계시다는 것을 알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을 갈2;20]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묘사 하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는 우리안에 그분의 성품과 생명에 참여 하는자 라는 사실 입니다.
이는 그분과의 연합 속에서 모든 것을 나누고 있으며 모든 것에 참여하고 있는 것입니다.
2] 사귐의 상태는 하나님과 나눔의 관계에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구원사역에 있어서,
이 세상에서의 삶의 자세에서.
사회적이 생활에서 ,
하나님이 이 세상을 바라보시듯이 볼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뜻과 영광을 이 세상에 전달하여 주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합니까?
하나님과 생각을 나누고, 이세상의 삶에 대한 하나님의 생각과 그분의 관심을 나누는 것은 동반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사귐의 의미는 “ 연합의 의미가 있습니다.
즉 A라는 사람과 B라는 사람이 대화을 나누고 ,“ 오늘 참으로 좋은 교제” 나누었습니다. 말할 때 ,,, 그 사람의 대화을 이해 했다는 의미을 가진다.
이것은 연합의 요소가 됩니다.
즉 우리의 사귐은 함께 하는 것은 “ 하나님과의 연합”을 의미 하는 것입니다.
모르면 “ 연합” 할수 없다.
갈4;9]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 뿐 아니라 더욱이 하나님이 아신 바 되었거늘 ...하나님은 실존 하시는분 이시며 우리는 그분을 압니다.
요한은 조심스럽게 이것을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함께한 것 이라” 고 말하는 이유입니다.
사도 바울은 롬8;15 우리가 양자의 영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 되었으며 하나님을 가깝게 알수 있게 되어서 그분을 향하여 “ 아바 아버지” 라 부를수 있게 되었다고 설명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기도와 연결해서 생각 한다면
기도는 하루 종일 계속해야 합니다.
꼭 길 필요는 없습니다. 짧게 해도 됩니다.
때로는 외마디 절규가 참된 기도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 전서 5:17에서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권면한 말의 의미입니다.
즉, 하루 종일 무릎을 꿇고 있으라는 뜻이 아니라
항상 기도하는 상태에 있으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길을 가면서도, 서재에서 일하는 동안에도
수시로 기도로써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저는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보는데
기도하고 싶다는 충동이 들 때마다 빠짐없이 반응해야 합니다.
책을 읽을 때든 본문과 씨름할 때든 기도하고 싶은 충동이 들 수 있습니다.
저의 절대법칙은 그런 충동에 항상 복종하는 것입니다.
기도의 충동은 어디에서 올까요?
성령의 역사에서 옵니다.
그러므로 그 충동을 거역하거나, 그 충동에 순종하기를 미루거나,
바쁘다는 이유로 밀쳐내지 마십시오.
그 충동에 온전히 자신을 바치고 맡기십시오.
그러면 그 기도한 시간 때문에 자신이 하던 일에 손해가 발생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크고 실제적인 유익이 생겼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기도하라는 부르심을 주의를 분산시키는 일로 여기지 말고,
항상 즉각적으로 반응하십시오.
그리고 그런 충동이 자주 찾아올수록 하나님께 감사드리십시오.
미국의 한 유명한 세미나 강사의 간증입니다.
어느 날 그가 강연하러 가서 보니, 강연할 때 신는 하이힐을 비행기에 두고 내렸습니다. 할 수 없이 비행기 안에서 신었던 운동화를 신고 강단에 올라가 강연을 했습니다. 강연을 마치는 시간에 굉음이 들리면서 유리창이 깨지고 총탄이 날아왔습니다. 그리고 “엎드려!”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모두 바닥에 엎드렸습니다. 조금 후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바로 뒷벽에 그의 키보다 3cm 높이 총탄이 박혀 있었습니다. 만일 그가 하이힐을 신었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그의 하이힐은 굽이 7cm이었으니 말입니다. 그가 비행기 안에 구두를 놓고 온 것이 그의 생명을 살리는 길이었습니다. 그것도 우연한 일이 아닙니다.
여러분, 혹 구두를 잃어버려도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자동차 사고가 나도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더 큰 사고가 날 것을 그만큼 해주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성령님께서는 아주 섬세하십니다. 큰 일만 도우시는 것이 아니라 작은 일도 도우십니다. 사람을 구원하고 전도하는 일만 도우시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 중에서도 우리의 생명을 보호하시고 위기에서 구원해 주십니다.
미국의 치킨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한 아가씨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닭고기가 많이 남아 주인이 종업원들에게 그것을 나누어 가지고 가게 했습니다. 아가씨도 랩으로 싼 닭고기를 가지고 식당 문을 나섰습니다. 그런데 그날 손님들이 늑장을 부려 버스를 놓쳤습니다. 집까지는 길이 먼데 택시비도 없어서 걸어갔습니다. 너무 늦은 밤이라 ‘주여, 무사히 가게 해 주세요.’하며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어두운 골목길로 들어서자 한 남자가 칼을 뽑아 들이대며 “입 닥치고 따라 와!”라고 했습니다. 그런 상황이 되면 아무리 용기 있는 사람이라도 꼼짝 못하는데, 어린 아가씨가 그런 일을 당했으니 얼마나 무서웠겠습니까? 그 남자를 따라가면 폭행을 당할 수도 있고, 죽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너무나 무섭고 두려워 속으로 ‘주여! 주여!’하는데, ‘닭고기를 먹어라. 닭고기를 먹어라.’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폭행을 당할지 죽음을 당할지 모르는 그 상황에서 ‘닭고기를 먹어라.’하는 음성이 세 번이나 들리니, 아가씨는 덜덜 떨면서도 랩을 풀어 닭고기를 꺼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먹을 정신이 있었겠습니까?
먹지도 못하고 그냥 들고 가는데, 골목길에 앉아 있던 큰 개 두 마리가 닭고기 냄새를 맡고 쫓아왔습니다. 그러자 그 남자가 걸음아 날 살려라 하며 줄행랑을 놓았습니다. 아가씨가 닭고기를 던져 주니 개들이 아주 맛있게 먹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 틈을 타서 아가씨가 무사히 집으로 갈 수 있었답니다.
여러분, 치킨 레스토랑의 주인이 종업원들에게 닭고기를 가지고 가게 한 것도 우연이 아니고, 닭고기를 먹으라는 음성이 들렸던 것도 우연이 아닙니다. 모든 것을 아시는 성령님께서 도와주신 것입니다.
어머니는 자식의 발톱 하나까지 생각합니다. 옷 하나, 신발 하나까지 다 마음을 씁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자식을 잘 압니다.
어머니가 자식을 알듯이, 성령님께서는 우리를 잘 아십니다.
우리가 발톱을 깎았는지, 깎지 않았는지를 아십니다. 양말을 짝짝이로 신은 것을 자기는 몰라도 성령님께서는 아십니다. 모든 것을 아시는 성령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시편 기자들의 기록을 보면 그들은 기도를 얼마나 즐겨 하였는지 알수 있다.
그들은 기도을 통해 하나님과 교제을 나누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다른식으로 설명 한다면
하나님과 연합한 사람은 하나님의 현존하심을 확신 하고 있는자 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계심과 그분의 임재하심을 알고 인식하면
이는 하나님과의 사귐의 필수적인 부분 입니다.
이것을 주도 하시는 분은 하나님입니다.
빌2;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저에게 말씀 하시는분이 하나님이고
저안에서 말씀에 반응하게 하시는분도 하나님 이십니다.
사도 요한은 서신서 뒷부분에서 “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도 그를 사랑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식으로 우리와 사귐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뜻을 나타내십니다.
인도하시면, 문을 열기도, 닫기도, 어떤때는 장애물도 놓기도 ...
전적으로 하나님의 손안에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예] 코미디언 ‘뽀식이’ 이용식(65·서울 예능교회) 안수집사는 “어릴 때부터 부모를 따라 신앙생활을 했고 지금은 주일날 안내봉사를 하며 열심히 교회를 섬기고 있다”고 근황을 전했다. 최근 간증집회를 다니고 있는 그는 “돌이켜보니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다”고 간증했다.그는 “기도의 중요성을 깨닫고 있다
그의 딸 이수민은 믿음 있는 사람 달라고 기도 했다. [새벽기도.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남자. 3대 모태 신앙. 목사님 아들. 이수민이 다사랑 교회 들어갈때 - 처음 성령님; 너가 이 교회 며느리는 너다“ ] 기도로 밀어 붙쳤다.
우리 인생을 우리 삶속에서 계시면 주관하고 있으을 인식 해야 합니다.
그 부르심에 “ 온유” 순종함으로 “ 진리의 통제, 다스림을 받아야 합니다.
설교하는 사람은 설교하는 사람답게 살아야 됩니다., 물건을 살 때도 설교하는 사람답게, 운동을 할 때도 설교하는 사람답게 살아야 됩니다.
우리가 기도하고 예배드렸으면 기도하고 예배드린 사람답게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드린 기도와 예배가 생활로 이어져야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예수님과 격차가 심한 자녀가 아니라,
맏아들 예수님의 형상을 닮은 자녀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사람들이 우리를 보면 예수님을 생각할 수 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자식은 부모도 닮지만 형제끼리도 서로 닮습니다. 어딘가 모르게 닮습니다.
우리에게도 예수님을 닮은 흔적이 있어야 됩니다.
성령님은 어머니 같으십니다. 우리를 도우시고, 우리의 기도를 도와주시고, 우리를 위해 친히 기도해 주시고, 우리의 모든 것, 헝클어진 것도 풀어 주십니다. 그리고 기도하는 사람답게 살도록 우리의 생활을 이끌어 주십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라디아서 5:22-23)
왜 사과나무입니까? 사과를 맺으니 사과나무입니다.
왜 배나무입니까? 배를 맺으니 배나무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열매, 성령의 열매를 맺으면 예수님과 같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하나님의 사귐이 얼마나 영광 스럽고 귀한것인지 .
심지어 임종의 자리에 까지 하나님의 사귐:을 갖고 있음을 성경은 말합니다.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 했습니다.
참된 하나님의 성도는 하나님과 동행 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