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번째 민족대표 프랭크 스코필드 / 박은경 / 글디
1. 프랭크는 말썽쟁이다. 굴뚝 귀신을 잡는다고 굴뚝에 돌 집어넣고. 빨랫줄에 널어놓은 홑이불에 흙 묻힌 손을 닦으며 더럽혔다. 아버지는 선교사를 양성시키는 교수다. 한국에서 유학 온 아저씨(여병현)는 아버지의 제자로 집에 찾아왔는데, 프랭크에게 한국 이야기를 해주었다.
프랭크는 베슬로에서 런던으로 이사를 갔다. 공부에 관심 없다. 짐 싣는 중고자전거를 사고 여행 가서 일터를 찾다가 목장에서 일했다. 가난한 이웃을 도울 수 있다던 아버지의 말씀이 스쳤다. 미련 없이 새보리경 농장을 나왔다. 아버지 집으로 페달을 밟았다.
2. 프랭크는 영국을 떠나 캐나다로 이민을 갔다. 1907년 2월 눈으로 하얀 토론토항에 도착했다. 곧바로 일터로 연결해 주는데 가축 농장이다. 말 애마를 데리고 산책시키곤 했는데, 어느날 아파서 쓰러지고, 수의사 치료를 받고 나았다. 프랭크는 대학에 들어가 공부하려고 농장을 떠났다.
프랭크는 토론토 온타리오 수의과 대학에 입학했다. 흑인 학우들과 가까운 사이다. 가족이 그리워질 때는 교회에 나가 기도생활로 외로움을 이겨냈다. 소아마비도 걸렸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졸업 때까지 장학금 받고 최고의 성적으로 졸업했다. 피아노를 전공한 엘리스를 만나 결혼하고 교수가 되었다. 가난한 약자에게 힘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3. 프랭크가 존경하는 에비슨 박사에게서 편지가 왔다. 한국에서 일하는 박사다. 프랭크는 부인 앨리스와 한국으로 갔다. 지팡이를 짚은 프랭크는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로 갔다. 담당 과목은 세균학과 위생학이었다.
한국어를 가르치고 싶은 프랭크는 목원흥 선생님이 지어준 이름 석호필이다. 세브란스 병원 약재실에 근무하던 이갑성이 왔다. 독립지사들의 국내외 활동과 곧 일어날 3.1만세 운동에 대해 말해준다. 프랭크는 자유를 빼앗고 언론을 검열하는 일본에 대해 분노가 일어났다. 3.1만세 운동에 동참하기로 결심했다.
4. 1919년 3월 1일 거사 날이다. 카메라를 목에 건 프랭크는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서둘러 나섰다. 독립선언문을 낭독하는 시간은 오후 2시였고 탑골공원으로 향했다. 공원을 꽉 채우고 만세를 부르는 사람들의 사진을 찍었다. 그 뒤 검을 허리에 찬 일본 경찰이 여학생을 끌고 갔다. 프랭크는 그 학생을 놔주라고 호통을 쳤다. 일본 경찰에 붙잡힌 학생들과 독립선언문을 낭독한 민족대표들이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다.
프랭크는 그들에게 약을 전달해 주고 일본 경찰과 몸싸움하다 상처가 난 수감자를 치료해 주었다. 무참히 무너진 교회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34번째 민족대표 프랭크는 일본의 잔혹성을 국제 사회에 알리고 비판하는 데 발 벗고 나섰다.
5. 일본경찰은 프랭크가 3.1 만세운동에 가담하였고, 제암리와 수촌리 만행을 해외에 알렸다는 것을 알고, 보낸 괴한은 총독이 프랭크를 살해하라고 했다며. 복면을 벗고 무릎을 꿇었다.
프랭크는 세브란스 병원에서 4년이란 계약이 끝나고 캐나다로 가 ‘끌 수 없는 불꽃’이란 제목으로 출판하여 세상에 알릴 생각이었다. ‘대한독립만세’라고 불렀다. 조국보다 한국을 더 사랑했다. 프랭크는 부산항으로 가는 열차에 올랐다. 창밖을 내다보자 배웅하는 한국 사람들이 손을 깃발처럼 흔들었다.
* 프랭크 스코필드의 어린 시절부터 민족대표가 되기까지를 상상력으로 풀어낸 책입니다. 역사동화를 읽고 싶은 독자에게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