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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벽
조 선 작
언제부터인가 아버지는 우리 둑방동네에서 개서방이라끈 별명으로 불리었다. 개를 훔치고, 훔친 개를 잡아서 보신탕집에 넘기는 일로 우리 세 식구(아버지와 나, 그리고 열여덟 살짜리 누나 이렇게 세 식구다)의 생계를 삼아온 아버지니까, 그런 별명이 전혀 연고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다가 아버지에게는 개하고 그렇고 그런 일까지 있었다는 알쏭달쏭한 소문도 나돌고 있으니,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개서방이라는 이름은 꼭 맞아떨어지는 별명이 아닐 수가 없었다.
우리 아버지가 개하고 진짜로 그따위 엉터리없는 장난올 저질렀는지 어쨌는지, 그건 내가 알 바 아니다. 그러나 이미 그런 소문은 우리 둑방동네에 파다하게 퍼져버려서 심지어는 나까지도 싸잡아, 저 녀석도 혹시 개의 니노지에서 생겨난 자식이 아닐지 몰라, 하고 도매금으로 몰아 때리는 사람까지도 있을 정도다. 그렇지만 니기미, 또 그렇다 해서 저들이 나를 어쩔 것인가.
내가 그런 소식을 처음 듣기는 자전거포의 탱보에게서였다. 그는 눈알 한 짝에 백태가 끼어 있기 때문에 덕칠이라는 이름보다는 탱보라는 별명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었다. 그런 건 나도 마찬가지여서 어렸을 적에 병을 앓았기 때문에 오른쪽 다리 한 짝이 짧은 나는, 동석이라는 이름 대신에 뚝발이라는 별명으로 더 많이 불리어졌다. 탱보는 자전거포의 수리공이었다. 아니 그의 아버지가 주인 겸 수리공이었고, 탱보는 견습공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도 탱보는 튜브를 때우는 일 따위는 혼잣손*으로도 너끈히 해치웠다. 탱보는 아버지가 없는 동안 들어온 일거리는 혼잣손으로 쓱싹 해치우고 삥땅*을 뜯어냈다. 삥땅을 뜯은 돈으로 탱보는 담배도 사 피우고, 밤이 이슥해서는 건너편 둑방동네로 배를 타러 갔다. 배란 물론 여자들의 배를 말한다.
도심의 하수도에서 흘러나오는 분뇨의 냄새로 충만하여 흘러가는 건지 고여 있는 건지 그들먹하게 차 있는 썩은 물 양쪽의 둑방에는 판잣집들이 마치 바윗등의 굴 껍데기들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같은 판잣집들의 동네였지만, 건너편 둑방촌은 묘한 곳이었다. 탱보는 건너편 둑방동네를 ‘선창가’라고 불렀다. “어른들은 뭐 사창가라고 하더라만, 그 말보다는 선창가가 부르기도 좋고 알기도 쉽다. 어차피 배를 타러 가는 곳이니까.” 탱보는 이렇게 말했었다. 밤이 이슥해져서 탱보는 툭하면 담배를 꼬나물고 선창가로 진출했다.
사실 나는 그 선창가라는 곳이 어떤 곳인지 여간만 궁금한 것이 아니었다. 아무도 모르게 나는 건너편 둑방동네로 잠입해서 싸질러 다녀 보았지만 뭐가 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한 집 건너가 술집으로 술집들이 많고, 그러니까 술 취해서 건들거리는 사람들이 많고, 기다랗게 눈썹을 붙인 여자들이 길거리에 나와 서서 찔뚝거리며 걷고 있는 나를 재미있다는 듯이 쳐다볼 뿐, 여자들의 배를 타는 선창가라는 곳이 어디에 붙어 있는지 나는 도무지 눈치도 챌 수가 없었다. 궁금증에 견디다 못한 나는 탱보를 조른 적이 있었다.
“탱보 형, 나도 그 선창가라는 곳 좀 가르쳐줘.”
“넌 임마, 일 년만 기다려. 고추가 약이 오르면 이 형이 어련히 가르쳐줄려구.” 탱보는 이렇게 딱 잡아서 거절했다. 고추가 약이 오른다는 게 어떻게 되는 건지는 몰라도, 내 그것도 걸핏하면 막대기처럼 딱딱하게 굳어 오르고 있다는 사실을 탱보가 알 까닭은 없었다.
탱보는 우리 누나와 같은 열여덟 살이었고, 얼굴에는 여드름이 덕지덕지하게 돋아 있었다. 한가할 때면 탱보는 나로 하여금 그것을 짜게 했다. 탱보의 여드름을 짜는 일은 재미가 있었다. 내가 아무리 호되게 쥐어짜도 탱보는 눈물만 찔끔 흘릴 뿐 꿈쩍도 않았다. 그때마다 좁쌀만 한 알갱이들이 툭툭 불거져 나와서 나를 여간만 미치게 만들지 않았다.
벌써 언제던가 나는 국민학교를 오 학년에 중퇴해버렸는데, 그것은 사 층이나 되는 높은 교실까지 계단을 오르내리기가 지겨워서였다. 오 학년이 되자 사 층 교실을 사용하게 되었는데, 비지땀을 흘리며 찔뚝거리는 걸음으로 죽자고 계단을 올라가 보았댔자,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라고는 담임선생의 돈 재촉뿐이었다. 사 학년 때부터 밀린 회비 때문에 나는 더욱더 사 층까지의 그 아스라한 계단이 지겨워졌던 것이다. 학교를 때려쳐 버린 뒤, 할 일이 없어진 나는 그럭저럭 탱보와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탱보는 나에게 그를 형이라고 부르라고 말했고, 나는 그것도 손해될 것은 없을 것 같아 그렇게 했다. 탱보는 이상하게 내가 모르고 있었던 것들로 사람을 끄는 마력이 있었다. 나뿐만이 아니고, 우리 둑방동네 대부분의 아이들이 자전거포의 탱보를 알고 있었다. 아이들은 심심하면 자전거포로 몰려들었다. 탱보는 몰려든 아이들에게 다리 사이의 그 고무질 물체에 씌워진 헬멧을 구경시키거나, 그 헬멧에서 터져 나오는 분수 같은 것을 보여주어 아이들을 웃겼다.
탱보가 나에게 유별난 호의를 가지고 있는 것은 내게 예쁘장하게 생긴 누나 하나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기름때가 쩔어 반들반들한 탱보의 바지 단추 앞은 언제나 불쑥하게 솟아 있었는데, 탱보는 뱀처럼 꿈틀거리는 그것을 움켜잡으며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야 뚝발아, 네 누나 똥순이 좀 어떻게 해볼 수 없겠냐?” 둘러서 있던 아이들이 낄낄거리며 웃고, 나는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 달아나버렸지만, 탱보는 언제나 그 모양이었다. 자전거포 앞을 지나가는 퇴근길의 공장 아가씨들은 언제나 탱보의 놀림감이었다. 자전거 바퀴의너트를 조이다 말고도 언뜻 스패너를 내두르며 “야, 이거 사람 환장하게 만드누나. 고 씰룩거리는 궁둥이하며 공순아, 이 탱보를 좀 살려줄 수 없겠냐?” 하고 진저리까지 쳐가며 기묘한 음색으로 떠들어댔다. 우리 누나도 한번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탱보의 야지*를 받았던 모양이었다. 누나는 괜스레 나한테 신경질을 부리며 화를 돋우어 말했다. “그 눈깔 탱보 새끼, 넌 왜 그런 새끼하고 밤낮 붙어 있니? 가서 그래라, 눈깔에 백태가 씌었으면 백탯값이나 하라구.”
그 소식을 들은 날도 나는 아침에 느지감치 잠자리에서 일어났고, 아버지와 누나가 먹고 밀어둔 밥상에 붙어 앉아 신 김치와 함께 삼십 퍼센트 혼식의 보리밥을 몇 술 뜬 다음, 마치 학교에 늦은 아이처럼 뜀박질을 하여 탱보네 자전거포로 나갔다. 그런데 나를 발견하자 탱보는 스패너를 내던지고 달려 나와 내 턱밑에 여드름으로 덕지덕지한 얼굴을 들이밀며, 마치 통사정이라도 하듯이 말하는 것 아닌가.
“야 뚝발아, 네 아버지 말이다. 간밤에 개하고 흘레를 붙었다던데, 그게 사실이냐?”
그것은 내게 좀 어리둥절할 만한 소식이었다. 전에도 나는 탱보를 통해서, 아버지가 술집의 작순이 하나와 뽀뽀를 하더라든지, 건너편 둑방동네에서 갈보들의 배를 타더라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있지만, 이번에는 개하고라니 정말 어리둥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내가 어리뻥뻥한 표정으로 탱보를 쳐다보고 서 있자, 탱보는 곧바로 실망해서 말했다.
“히야, 고 기맥힌 장면을 그만 놓쳐버리고 말다니…… 야 임마, 한번 생각을 해보란 말야. 네 아버지가 개하고 딱하니 궁합을 맞추고 있는 장면을 말이다. 너나 나나 그 희한한 구경거리를 놓쳐버렸다니, 참으로 분통할 일이다.”
그러나 나는 탱보의 말을 곧이곧대로 신용할 수 없었다. 그런데 그날 저녁, 어디서 일찌감치 만땅코*로 취해서 집으로 돌아와 잠자리에 든 아버지를, 복덕방의 딸기코 안 주사와 최봉알 영감이 찾아와서 떠들어댄 농지거리를 들었을 때, 나는 아침나절에 탱보에게서 들은 그 추잡스런 이야기가 헛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눈치 챌 수가 있었다. 복덕방의 안 주사는 우리 집 부엌의 판자 문짝을 우당탕 밀치고 쳐들어오면서 대뜸 “어이 개서방, 개서방 있나? 듣자 하니 자네 뭐 개한테 새장가를 들었다면서…….” 하고 말했고, 뒤따라 들어온 최봉알 영감이 “좋은 기분일 때 막쇠주라도 한잔 사게나” 하고 말했다.
아버지는 술을 이기지 못하여 뒤채면서도 그의 술친구들을 환영하며 말했다.
“왜들 이리 소란이여?”
“경사가 났는데 소란 안 떨게 됐나, 이 사람아. 그래 맛이 어떻든가. 달콤하든가 새콤하든가. 연장이 아주 쑥 빠져 달아나버리지는 않았겠지?” 최봉알 영감이 방문턱을 넘어서며 말했다. “인젠 자네도 홀아비 신세는 면했네, 면했어” 하고, 안 주사가 낄낄거리며 말했고, 아버지는 간신히 몸을 일으키며 짐짓 화를 돋우어서, 그러나 언제나 매한가지인 그 사람 좋은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예끼 이 사람들, 애들이 듣는디 뭔 점잖지 못헌 소리들인가? 나감세, 아무튼 나가. 자네들이 아마 술 생각이 나서 이렇게 찾아와 허튼 수작들인가본데, 내 술 한잔 삼세.”
아버지는 이렇게 말하고 비틀거리며 일어나 그들을 휩쓸어 밖으로 나갔다. 그날 밤 아버지는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아버지가 개를 훔치고, 훔친 개를 잡아서 보신탕집에 넘기는 일을 직업으로 선택한 지가 몇 년이나 되었는지, 그것은 나도 잘 모른다. 이 둑방동네로 이사 오기 전, 산비탈동네에 살 때에도 아버지는 그런 일로 우리 두 자녀와 함께 생계를 세웠던 것이니까, 그 기간만도 벌써 십 년은 좋이 넘었다. 그 방면에 있어서 아버지는 진짜로 도사였다. 버터를 바른 손바닥 하나면 아버지는 길거리에 싸질러 다니는 개종자들을 얼마든지 몰아올 수가 있었다. 육 개월 과정의 엄격한 애견훈련소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는 망아지 새끼만 한 셰퍼드 종자도, 일단 아버지의 기술에 걸려들었다 하면 꼬리를 잘래잘래 흔들며 따라오게 마련이었다. 이 둑방동네에는 벌써 아버지의 제자가 두 사람이나 생겼다. 본래의 직업은 운전수지만 운전대만 잡았다 하면 감방으로 직행한대서, 유사고 운전수라고 불리는 천 씨와 불명예제대를 했다는 젊은이 방 씨가 그들이다. 그러나 그들의 기술은 아직도 미숙하기 그지없어서, 걸핏하면 맹견에게 허벅지를 물려오기가 일쑤였다. 제자들이 실패하고 주눅이 들어 돌아오면, 아버지는 혀를 끌끌차면서 그의 그 독특하고 느리터분한 말투로 이렇게 가르쳤다. “가이를 몰아오는 디 무이신 중뿔난 빗벱이 있는 게 아니여. 위선 몰아오려구 점찍어 둔 가이새끼랑 눈이 맞아야 헌단 말이여, 말하자면 정분이 통허는 새가 되어야 헌다는 말이지. 서둘러서는 못써. 지집 하나를 볼려두 안 그런디여? 몇 날 며칠을 두고두고 을르고 구슬르고 혀야 겨우 대줄 뚱 말 뚱 아닌가벼? 첫찌로는 그저 맴을 느긋허게 먹어야 허여.”
아버지의 이런 가르침에 제자들로서도 이의가 있을 수 없었다. 가르침대로 못다 하는 자기들의 성급한 태도를 부끄러워할 뿐이었다. 천 씨나 방 씨는 고개를 숙이고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으며 스스로의 주먹으로 자기들의 대갈통에 연방 알밤이나 갈겨댔다.
아버지는 대개 새벽같이 집을 나가서 아침을 먹기 전에는 모든 일을 깨끗이 해치웠다.
아침 햇살이 우리 둑방동네의 판잣집들 지봉 위에서 빛나기 시작할 때면 아버지는 이미 그가 몰아온 개를 깨끗이 불에 그슬려 보신탕 집에 넘기고 난 뒤였다. 일을 마친 아버지는 세숫대야에 맑은 물을 담아서 손을 씻고 누나가 차린 아침상을 받았다.
아버지는 자전거를 타고 나가 그 어딘가에서 개를 몰아왔다. 아마 다리를 건너서 저쪽, 길들이 반듯반듯하게 포장되어 쓰레기 하나 없고, 그 길에 개들이 똥을 누어도 식모들이 나와서 부삽으로 치우는 동네, 가로수와 집집마다 정원에서 기어 나온 꽃나무 가지가 어우러져 서 있고, 철대문이 달린 벽돌집이 즐비하게 서 있는 동네, 한 집에서 종자가 좋은 개를 두 마리 세 마리씩 기르는 동네에서이리라. 나도 그런 동네를 가본 적은 있었다. 새벽이면 개들이 골목골목으로 쏟아져 나와 포장된 길바닥에 똥을 누거나, 횰레를 붙거나, 아침 산책을 즐기고는 하였다.
아버지는 개를 자전거 뒤꽁무니에 쇠줄로 달아매어 둑방동네로 돌아왔다. 딸딸이를 울리며 자전거의 페달을 힘차게 밟아서 돌아왔다. 마치 사냥꾼이 대단한 노획*을 자랑하듯이, 아버지는 그렇게 의기양양해서 자전거를 달렸다. 쇠줄에 매달린 개도 괜스레 의기양양해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자전거를 따랐다. 자전거가 우리 집 앞을 지나칠 때면 벌써 일찍 깬 아이들이 아버지의 자전거를 따라 열심히 뜀박질을 했다. 개를 목매달고, 목매단 개를 불에 그슬리는 광경을 찡그린 표정으로 눈곱도 덜 떨어진 눈으로 지켜보기 위해서 죽자 하고 달렸다. 아버지의 개 도축장은 둑방동네의 끝에 있었다. 다릿목에서 도축장까지는 족히 일 킬로가 넘었다. 판잣집들의 둑방동네가 끝나고 누나가 다니는 화장지 공장이 서 있는 곳까지 가면 둑방 위에 콘크리트 전봇대 하나가 서 있었다. 아버지는 그 전봇대에 매달린, 전기 수리공이 밟고 올라가게 만들어놓은 쇠갈고리에 개를 목매달았다. 그 전봇대 밑에 자전거를 받쳐놓고, 아버지는 개의 목에 매달린 쇠줄을 목매달기 좋은 삐삐선으로 고쳐 맨다. 그리고 개를 이끌어 전봇대 밑으로 가서, 그 최후를 앞둔 개에게 버터 조각이나 고깃덩어리를 던져
준다. 대개의 개들은 아버지의 눈치를 힐끔힐끔 살피면서 아버지가 던져준 먹을 것을 코에 들이댄다. 그때 이미 아버지는 그 기다란 삐삐선 한 자락을 전봇대의 쇠갈고리에 걸치고 있는 것이다. 개가 덥석 먹을 것을 물었을 때, 아버지는 마치 낚시꾼이 낚싯대를 낚아채듯이 민첩한 동작으로 삐삐선을 낚아챈다. 순간 개는 허공으로 떠오르며 발버둥을 치고 두 눈을 까뒤집는 것이다. 얼마 동안 아버지는 두 팔의 근육을 씰룩거리며 힘주어 삐삐선을 잡고 허공에 떠오르는 개를 쳐다본다. 아, 그 눈. 핏발이 서고 불거져 나온 아버지의 그 눈. 그 눈 속에서 나는 매번 아버지의 그 증오와 분노, 불타는 듯한 복수심의 징표와 끓어오르는 듯한 원한의 빛을, 몸서리까지 쳐가면서 보았다.
아버지가 만약 그의 생전에 우리들의 생모(生母)를 붙잡는다면 아마 개처럼 그렇게 목매달아 죽일 것이 분명했다. 소싯적에 아버지는 농사꾼이었던 모양이었다. 농사꾼으로 잔뼈가 굵었고, 역시 농사꾼의 딸을 아내로 맞이했던 모양이었다. 농사꾼이랬자 논 서 마지기가 밑천이어서, 동네의 이 집 저 집 머슴살이까지도 겸했던 모양이었다. 가난한 농사꾼인 주제에 어쩌다 보니 꽤는 아리따운 여자를 아내로 얻게 되었던 모양이었다. 지금은 이미 무덤 속에 들어갔지만 할머니는 늘 입버릇처럼 “인물 좋은 지집이 여수여” 하고 한숨 섞어 말했었다. 아이들을 둘이나 낳고도 그 여자는 아버지를 박차고 도망쳐버린 모양이었다. 떠돌아다니는 노름꾼 하나와 배가 맞아 달아났다고, 매풍리(梅豊里)는 물론 당진(唐津) 땅 전체가 떠들썩 했던 모양이었다. 그것은 내가 아직 젖도 떨어지지 않았던 어린 시절, 아직 쥐구멍도 메워지지 않았던 옛날 이야기였다. “지집 하나 때문에 이 녀석도 팔도강산 단물 짠물 다 맛본 놈이여” 하고 아버지는 그의 술친구들에게 가끔 이렇게 말했다. 그런 말을 할 때면 아버지는 괜스레 관자놀이가 벌떡거리고 얼굴색이 화끈 달아오르곤 했다. 실지로 누나와 나는 어린 시절 매풍리에서 할머니하고만 살았다. 나는 우리들에게는 아버지라든가 어머니라는 것이 애당초 없이 태어난 것으로만 알았다. 그런데 내가 다섯 살 나던 해(그러니까 그때 누나는 일곱 살이었겠지) 어디서 인가 아버지가 돌아왔고, 그해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아버지를 따라 서울로 이사를 했다. 아버지가 그 다섯 해 동안 그를 박차고 도망쳐버린 여자를 찾아서 팔도강산을 빠대고* 다녔는지 어쨌는지는 잘 모르겠다. 모르긴 해도 아마 아버지는 그 시절에, 지금 천 씨나 방 씨가 아버지에게 그 짓을 배우듯이 그렇게 개 도둑질을 배웠으리라.
이 동네에서 개를 한 마리 훔쳐 저 마을에 넘기고, 저 마을에서 개를 한 마리 도둑질해 이 동네에 넘기면서 그를 배반한 우리들의 생모를 찾아 전국 방방곡곡을 헤매었을 아버지를 생각하면 딱하다는 생각에 앞서 무섭다는 생각만 난다. 개를 전봇대의 쇠갈고리에 목매달 때, 아버지의 그 부리부리한 눈에 결친 핏줄을 바라보면 나는 금시 아버지에게서 도망쳐버린 우리들의 생모처럼 도망쳐버리고 싶어졌다.
아버지는 내가 학교를 그만두어버린 것을 그때는 감쪽같이 모르고 있었다. 아버지는 기실 내가 육 학년에 다니고 있거니 하고 믿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아침이면 나는 빈 가방을 들고 찔뚝거리며 학교에 가는 척 집을 나온다. 아버지는 그런 나를 대견스럽게 쳐다보는 눈치다. 어떤 때는 문밖에 나온 나를 봉창으로 넘겨다보며 “공부 열심히 하거라” 하고 말하기도 했다. 그럴 때면 나는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을 정도였다. 아마 아버지가, 내가 학교를 때려치워 버린 것을 알았다면 나도 마치 그 개들처럼 끌어다가 전봇대에 목을 매달아버렸을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내가 어떻게 아슬아슬하게 여섯 달이나 아버지를 눈 속여왔던지, 그것은 참으로 기적적인 사실이었다.
학교에 회비를 갖다 바치지 못한 것은 아버지가 주지를 않았기 때문은 아니었다. 도리어 나는 아버지에게 그것을 곱빼기로 타내었다. 회비라면 아버지는 두말도 하지 않고 내주는 성미였다. 그런데 나는 그것을 유용(流用)해버렸던 것이다. 아니, 처음부터 유용한 것은 아니었다. 학교에 가는 길 쌍굴다리 근처에는 찐드기파라고 불리는 불량배들이 있었다. 그들은 쌍굴다리에다 진을 치고 학교에 가는 아이들의 책가방을 털었다. 찐드기파들은 스무 살씩이나 먹은 어른들이었다.
“야 땅꼬마, 너 이리 좀 와봐.” 그들은 먼저 이런 말로 나를 겁주었다.
나는 오금이 달라붙은 걸음걸이로 그들 앞으로 다가갔다.
“너 이름 뭐야, 이 종간나쌔끼야, 이름이 뭐냔 말이야.”
“차동석이요.” 내가 얼어붙은 음성으로 대답했다.
“너 우리가 누구들인지 알지? 네 책가방 좀 보자. 어린애가 함부로 꾸찌나 또 부시기 같은 것을 가지고 다니며 까따부시면 못써. 너도 꾸찌 같은 것 넣어가지고 다니지?”
한 놈이 내 가방을 거꾸로 쏟아냈다. 책과 공책, 필통과 도시락이 쏟아져 내리고, 그 위에 회비 봉투가 떨어졌다.
“이건 뭐여.” 다른 한 놈이 회비 봉투를 집어 들며 말했다. “어린놈이 웬 돈을 이렇게 많이 가지고 다녀. 너 이거 어디서 쌔볐지?”
“아니요, 회비 낼 돈이여요.” 나는 볼이 부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 새끼, 거짓말 마. 아가리를 확 찢어버릴까 부다.” 한 놈이 내 턱밑에 단추를 누르면 날이 척 나오는 진짜 꾸찌를 들이대며 말했다.
“이건 형들이 맡아둘 테니까 이따가 찾으러 와.” 이렇게 말하고 그들은 나를 버려둔 채 집들이 드문드문 섞여 있는 포플러 묘목밭 저쪽으로 사라졌다.
이렇게 당하고, 이 어리석은 피해를 나는 아무에게도 말할 수가 없었다. 만약 아버지에게 그런 이야기를 했다면 단박에 나를 의심할 것이었다. 언제던가, 나는 아버지의 호주머니를 뒤졌다가 치도곤을 맞은 일이 있었는데 그따위 이야기를 해봤자, 아버지는 그것을 또 나의 신종(新種) 야바위라고 생각할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나는 다음 달 회비도 유용하기 시작했다. 솔직히 말한다면 나는 돈이 쓰고 싶었다. 만화가게의 미니당구나 공기총 사격 같은 것이 더럽게 하고 싶었다. 나는 돈을 썼다. 십 원을 주고 깃털 달린 바늘을 꽂아서 은하수 한 갑을 따기도 했으나 그것은 돈이 아니었다. 나는 그것을 한 가치씩 피워보았다. 가방을 잡히고 소라빵으로 배를 채우고 맘씨가 고운 누나를 졸라 가방을 찾았다. 배가 얼마나 고팠으면 그랬겠느냐고 누나는 눈물부터 흘렸다. 학급문고를 홈쳐다가 고물상에 팔았다. 체육시간에(나는 뚝발이이기 때문에 교실에 남았다) 담임선생의 바지주머니를 털었다. 나는 옆 반의 선생이 당했던 것처럼 담임선생을 사기쳤다. 담임선생은 감쪽같이 속아 넘어갔다. 그때는 옆 반이 체육시간이었다고 한다. 당번 한 명만 남고 선생과 아이들이 모두 운동장으로 나갔었다. 그때 교실로 여자 하나가 찾아왔다. 아마 치맛바람의 사모님쯤이었겠지. 그 여자가 당번아이에게 말했다. “얘, 선생님에게 가서 귀한 손님이 오셨다구 말해줄련?” “네” 하고 대답한 당번아이는 신바람이 나서 운동장으로 달려 나갔다. 선생이 당번아이와 함께 교실로 돌아와 보니 그 여자 손님은 선생의 벗어둔 양복주머니를 털어달아난 뒤였다. 나는 그것을 응용하였다. 담임선생의 바지주머니를 내 손으로 턴 다음 나는 운동장으로 나가 손님이 찾아오셨다고 선생에게 일러주었다.
담임선생은 전날 옆 반과 똑같은 경우로만 알고 우둔한 나를 책망하였다. 그렇지만 내가 우둔하다니 어림도 없는 말이었다. 그렇게 훔친 돈을 나는 돈 놓고 돈 먹기, 삼딱지 놀이를 해서 털렸다. 우리 둑방동네를 가로질러 전철(電鐵)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인 철도 건널목 근처의 시장에서, 장보러 나온 여편네들 틈에 섞여 검은 안경을 낀 어른들이 벌여놓은 야바위판에다 나는 일천구백 원을 고스란히 바쳤다. 니기미, 뭐가 뭔지 도무지 모르겠다. 그럭저럭하다가 학교도 그만두어버렸는데, 어쩌다 내가 이렇게 되었는지 도통 모르겠다. 그렇게 삼 년이나 지난 요즈음에 와서 그저 확실해진 것은 나도 탱보처럼 부시기나 한 가치 피워 물고 건너편 둑방동네, 선창가로 진격해서 배를 타보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얼마 전 탱보는 약을 먹었다. 손톱자국 한 군데 난 곳이 없는데, 탱보는 치료를 해야 한다고 말하며 마이신이란 알약을 두 개나 먹었다.
“니기미, 내 이런 줄 알기는 알았지만……” 탱보는 얼굴을 찡그리고 웃으며 말했었다. 그때는 탱보의 아버지가 경찰에 잡혀가 버렸을 때였다. 탱보네 아버지는 자전거포의 주인 겸 수리공만은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어쩐지 항상 자전거포는 탱보에게만 맡겨두고 어딘가로 빌빌 싸돌아다니기만 하더라니, 덜컥 경찰에 때가는 신세가 돼버린 것이었다. 탱보의 아버지가 지은 죄는 보나마나 자전거 도둑일 것이다. 사실 탱보네 자전거포에는 주인도 없는, 차전거가 조립 (組立)을 풀어헤친 부분품으로서 수도 없이 쌓여 있었다. 자전거포는 이제 완전히 탱보의 것이 되어 있었다. 탱보는 이제 누구에게도 감시받지 않고 삥땅을 뜯어낼 수가 있었다.
탱보는 매일 밤 선창가로 달려가는 눈치였다. 그러더니 어느 날은 그 선창가에서 몸의 어딘가를 다쳤다고 하며 마이신이란 알약을 두 개나 먹었다. 탱보는 그 길쭉한 알약을 삼키기 위해서 나에게 물을 떠다 달라고 했다. 나는 가게에 붙어 있는 부엌으로 가서 알루미늄 대접에 물을 떠다 주었다. 언제던가 나는 아버지에게도, 그가 그 비슷한 알약을 삼키는 데 필요한 물을 떠다가 바친 것이 기억난다. 글쎄, 아버지도 그 선창가에서 몸의 어딘가 중요한 부분을 다쳤었던 건지 잘 모르겠다.
아버지가 또 송아지만 한 셰퍼드 한 마리를 끌어온 것은 그 즈음의 일이었다. 잘생긴 놈이었다. 아니, 메리라고 불리는 암캐였으니까 잘 생긴 년이었다. 귀가 서고 두 눈이 부리부리하게 빛나며, 윤나는 검은 털이 등을 덮고, 배에는 콩알만큼씩 한 젖들이 쌍줄로 나 있었다. 그런데 아버지는 어찌 된 심판인지 여느 때처럼 메리를 끌어온 그날 새벽으로 목을 매달지 않았다. 메리는 우리 집 부엌의 문짝 틀에 쇠줄로 비끄러 매어졌다. 아버지는 나와 누나 동순이에게 말했다.
“때때로 너희들 밥을 좀 나누어 먹여라.”
나는 혹시 또 아버지가 그 메리와 흘레를 붙으려는 것이 아닐까 하고 의아했다. 전에도 아버지가 그런 소문을 냈을 때 우리 집 부엌에는 며칠을 두고 알 수 없는, 훤칠하게 잘생긴 검둥이 한 마리가 매어져 있었던 것을 기억했다. 조바심치며, 밤에는 잠도 들지 않고 나는 아버지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폈다. 저녁에 공장에서 돌아오면 누나는 부엌에서 개 냄새가 난다고 신경질을 부렸다. 그래도 아버지는 묵묵부답이었다. 메리는 며칠이고 우리 집 부엌의 한구석에 매어져 있었다. 메리는 마치 세상이 귀찮아진 사람처럼 눈만 멀뚱멀뚱 뜨고 꼼짝도 않고 앉아만 있었다. 내가 먹다 남은 보리밥을 국물에 말아 디밀어보아도 본 척 만 척이었다. 누나는 개가 아주 질색인 모양이었다. 내가 디밀어준 밥도 금방 빼앗아서 구정물통에 버리고 그릇을 깨끗이 닦아버렸다. “사람 먹을 것도 없는데 어떻게 개까지 먹여 살리니.” 누나는 이렇게 짜증을 부렸다.
누나는 개가 질색인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개 도둑질이 마땅치 않았던 것이다. 화장지 공장에 포장공(包裝工)으로 취직이 된 이래, 누나는 아버지에게 말끝마다 이제는 그 짓 좀 그만두어 달라고 청 했다.
“이제는 나만 벌어도 우리 세 식구 굶어 죽지는 않아요. 아버지 제발 그 짓만은 그만둬 주셔요, 네?” 사실 누나의 벌이는 곡식 닷 말 연탄 육십 장 값은 훨씬 넘었기 때문에 아버지로서는 할 말이 없었을 것이다. 누나의 부탁에 아버지는 늘 묵묵부답이었다. 그러나 여차하면 어딘가에서 또 개를 끌어다 목을 매달았다. 누나가 살림살이를 맡게 되자, 이제 아버지의 일은 생계를 세우기 위한 것이라는 명목도 별 볼일 없이 돼버렸다. 그래서 아버지는˙ 한풀 꺾인 것이 사실이었지만, 그래도 그는 그가 오랫동안 생업으로 해왔딘 일을 그만두지는 않았다. 때문에 아버지는 동네의 술친구들과 어울리는 때가 많았고, 대개는 아버지가 그들에게 술을 샀다. “어이 개서˙방, 요즈음 경기가 비까비까한 모양인데, 그래 술 한잔도 안 살 건가?” 하는 식으로, 최봉알 영감도, 타이루 시공(施工) 배타이루 아저씨도 항상 아버지에게 빌붙었다.
밤이 되면 아버지는 늘 술냄새를 풍기며 비척비척 돌아왔다. 돌아와서는 우리 집 담장 뒷구멍에 바지를 까 내리고 오줌을 갈겼으며, 방으로 들어와 내가 깔아놓은 이부자리에 벌렁 드러누워 곯아떨어졌다. 그때쯤 누나가 야간당번에서 돌아온다. 돌아온 누나는 아버지를 내려다보며 금시 실망으로 가득 찬 표정 이 되어 신경질까지 부리며 곯아떨어진 아버지를 흔들어 깨운다.
“아버지, 아버지, 또 술 잡수셨죠?”
그러나 아버지의 육중한 체구는 꿈쩍도 않았다. 코 고는 소리만이 천장까지 찌렁찌렁 울리고, 그 소리에 놀란 천장 속의 쥐들이 달음박질친다. 누나는 눈물까지 흘리며 호소한다. “아버지, 이젠 술 좀 그만 잡숫고 정신 차리고 살아봐요, 네? 우리도 잘살아봐야 하잖아요, 네? 정신 좀 차리시고…….”
그러나 곯아떨어진 아버지에게 그런 말이 들어갈 까닭은 없었다. 누나는 그저 아버지를 바라볼 때마다 동동거리는 초조한 마음이 되는 모양이었다. 아버지가 개 도둑질을 그만두고 술도 끊는다면 어떤 사람이 될까, 하고 나는 곰곰이 생각해보았지만 어떤 사람이 될는지 도무지 생각나지 않았다. 누나는 아마 아버지가 그렇게만 해준다면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분명히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누나는 아마 그 화장지 공장의 여사무원이 되는 것이 꿈인 모양이었다. 밤에도 누나는 자지 않고 달그락거리며 열심히 주판 연습을 했다. 여중까지 다닌 누나니까 아마 누나는 그렇게 될 수 있을는지도 모르겠다.
부엌의 한구석에 매놓은 그 영문 모를 셰퍼드 한 마리에 대해서 나는 탱보에게 알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탱보는 까닭 없이 환성을 터뜨리며 내 두 귀를 잡아당겨 입 맞추었다.
“그래, 그래? 좋았어. 오늘 밤까지 그냥 놓아둘 것은 분명하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탱보가 다시 말했다. “그걸 어떻게 저쪽 개천으로 끌어낼 수 없겠냐? 이따가 밤에 말이다.”
“왜?” 내가 의아해서 물었다.
“네 아버지가 흘레를 붙기 전에 내가 먼저 붙어야겠다. 사납진 않겠지?”
탱보는 기활 좋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나는 탱보가 진짜로 그따위 짓을 저지를 것 인지는 아리송했다. 내가 말했다.
“웃기지 마.”
“어, 이거 진짜란 말이다. 너도 알지, 내 병. 옛날에 너희들 아버지도 그렇게 해서 고쳤다지만, 그 병에는 마이신 천 개보다 개의 호찌가 최고라더라. 잘 좀 부탁한다. 뚝발아.”
그러나 나는 탱보의 말을 종잡을 수가 없었다. 뭐가 뭔지, 도무지 무슨 말을 어떻게 하는 건지, 나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개의 호찌로 병을 고친다, 옛날에 아버지도 그렇게 했다…… 선창가에서 다친 병을 그렇게 해서 고친다니, 그러니까 갯값이 사람값보다도 비싸다는 말이 생긴 모양인지도 모르겠다.
“오늘 밤에는 니기미, 으지씨도 한번 개서방이 돼버리겠다.” 탱보가 득의만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그날 밤 탱보는 그 개와 흘레를 붙지는 못했다. 흘레를 붙기는커녕 탱보는 그 부처님 가운데 토막 같던 암캐에게 허벅지를 물려버렸다.
다음날 아침 아버지는 셰퍼드를 끌고 나가 목을 매달았다. 아마 그제서야 필요로 하는 보신탕집이 나타났던 모양이었다.
그날 밤도 아버지는 술에 취해서 돌아왔고, 그보다 늦게 돌아온 누나는 곯아떨어진 아버지에게 눈물을 흘리며 호소했다. “아버지, 정말 정신 차리셔요. 우리 남매가 누굴 믿고 사는데 아버지가 이러시는 거여요. 아버지가 정 이러시면 살림살이고 뭐고 다 때려쳐요, 정말.”
그러나 누나의 눈물 같은 것에 쉽사리 녹아떨어질 아버지는 아니었다. 여전히 아버지는 대낮부터 술에 취해서 둑방 골목을 휘젓고 다니며 개판을 쳤다.
누나가 집을 나가버린 것은 그로부터 두 달쯤 뒤였다. 겨울이 되었고, 둑방 아래 개천이 빙판으로 되었고, 스케이트장이 설치되어 돈 많은 집 아이들이 몰려들어 비싼 스케이트를 신고 신나게 돌아가던 그 어느 날이었다. 누나는 아버지와 내가 한 주일을 퍼먹고도 남을 만큼 푸짐하게도 많은 밥을 지어놓고 홀연히 자취를 감추어버렸다.
그날 나는 으바리같이 화장지 공장으로 누나를 찾으러 갔었다. 갔었지만 누나는 거기도 그만둬 버렸다는 것이었다. 내가 찾아가자 어디선가 젊은 놈팡이 한 명이 뛰어나와서 오히려 나한테 누나의 행방을 알려달라고 졸라댔다. 씨발, 어떻게 된 영문인지 나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찔뚝거리며 집으로 돌아오면서, 우리 둑방동네 아이들이라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노래, 「청계천 다리 밑에」를 목이 멘 음성으로 웅얼거렸다.
청계천 다리 밑에, 따라라라 라라라라
개떡 같은 집을 짓고, 따라라라 라라라라
귀신 같은 마누라와―
쥐약 먹고 죽고 싶네요―
나는 집 에 당도하기까지 몇 번이고 그 노래를 되풀이해서 불렀다.
누나가 집을 나가버려서야 아버지는 겨우 정신을 차린 모양이었다. 개를 목매달 때와 같이 두 눈에 쌍심지를 켜고 아버지는 누나를 찾으러 다녔다. 그러나 말짱 헛일이었다.
누나가 아버지의 그 부릅뜬 눈에 그렇게 쉽게 발견될 만한 곳에 숨바꼭질을 한 것이 아니었으니까. 아버지와는 따로 나도 누나가 갔을 만한 곳으로 모조리 수소문하였지만 헛수고였는데, 하물며 아버지에게는 어림도 없을 일이었다. 나는 아버지가 모르는 곳, 누나를 점원으로 오라고 했다는 신설동 가구점과 누나의 친구가 함께 일하자고 한다는 미아리의 양말 공장까지도 찔뚝거리며 모두 더트었던* 것이다.
아버지는 마치 우리들의 생모가 그에게서 도망쳤을 때만큼이나(아마 그만큼이나) 낙담한 것임에 틀림없었다. 하루 온종일 누나를 찾으러 다니다가 기진맥진해서 돌아온 아버지는 어느 날 저녁 내가 삶아다 바친 라면 한 그릇으로 저녁을 때우며 주눅이 들어서 마치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년도 참 오도방정이지, 애비가 우찌 생각이 없을라구…… 봄부터는 애비도 착실한 걸로 뭐 하나 해볼려구 하는 참인디. 개 훈련소라도 하나…….”
그러나 그따위 말은 이미 버스 지나간 다음에 손 들기였다.
나에게마저도 말 한마디 없이 도망쳐버린 누나가 나는 대단히 섭섭하였지만, 아버지로 생각하자면 그것은 쌤통이었다. 아버지는 누나가 없어져서 여간 불편해진 것이 아니었다. 때맞춰 밥상을 차려주는 것은 고사하고, 그가 벗어 팽개친 더러운 내복마저도 할 수 없이 자기 손으로 빨지 않으며 안 되게 되었다. 말하자면 말년에 고생줄이 훤하게 트인 셈이었다.
그런 아버지에게 설상가상으로 생각지도 않던 재앙(災殃)이 닥쳐왔다. 봄이 되자 아버지가 중풍으로 쓰러져버린 것이었다. 이번에는 나에게 고생줄이 훤하게 트이고 말았다.
아버지는 측간에 앉았다가 측간 문짝과 함께 꼬꾸라져버렸다. 동네 어른들이 몰려들어 우리 둑방동네의 공동변소에서부터 아버지를 우리 집 단칸방으로 옮겼는데, 그날부터 아버지는 똥도 싸고 오줌도 쌌다.
물론 개백정이고 개 도둑이고는 모두 폐업해버렸고, 욧바닥에 똥이나 갈기는 것이 일이었다. 문병차 들렀던 배타이루 아저씨 말대로 죽을 날을 받아놓은 사람이 되었다. 나는 손바닥에 아버지가 갈겨놓은 배설물로 맥질을 해가며 그것을 치우지 않으면 안 되었다.
복덕방의 딸기코 안 주사는 말했다. 중풍이란, 병이 생긴 지 최초의 세 시간 안에 죽지 않으면 다음은 삼 일, 그 안에도 죽지 않으면 다음은 석 달, 다음은 삼 년, 이런 식으로 옹골차게 끌어간다고…… 그 말을 들으면서 아버지는 불편한 목을 끄덕거리면서 눈물을 흘렸었다.
아버지의 증세는 좌신마비(左身痲痺), 왼쪽의 팔과 다리 그리고 몸통의 절반을 못 쓰게 된 것이었다. 그쯤 되면 전신을 못 쓰는 것이나 매일반이었다. 팔을 뻗으면 닿을 곳에 요강을 들여놓았는데도 그것을 잡아당겨 올라탈 수가 없었고, 배설기관 자체가 제멋대로인 모양이었다. 그리고 입이 삐뚤어졌고, 그러니까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돼서 최초의 세 시간과 최초의 삼 일까지는 무사히 넘겼다.
나는 침쟁이를 불러들였다. 그러나 그 침쟁이는 가짜였던 모양이었다. 이제는 또 석 달을 기다려보아야 귀정*이 날 판이었다.
아버지의 술친구들은 모두 한 번씩 문병을 왔었다. 그러나 그들도 모두가 속수무책이었다. 그들은 모두가 아버지 앞에서 비방(秘方)과 비약(秘藥)을 떠벌렸지만 그런 것을 구해다 줄 만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아버지는 물 같은 액체밖에는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그것도 내가 한 손으로 입술을 떠들고 숟가락으로 흘려 넣어야만 했는데, 절반쯤은 도로 기어 나왔다. 점차 광대뼈가 치솟아 오르고 두 눈자위가 깊숙이 꺼져 들기 시작했다. 문병을 다녀갔던 아버지의 술친구들도 이제 송장을 치게 되는 날에나 찾아볼 생각들인 모양이었다.
아버지에게 살아남은 기능이라면 눈시울이 시뻘겋게 눈물이 고이는 것밖에는 없었다.
내가 손바닥에 맥질을 하며 아버지의 배설물을 치울 때면 아버지는 그렇게 울었다. 그렇지만 나는 아버지의 그 유일한 기능마저도 짜증스러웠다. 그럴 때면 나는 소리라도 꽥 내지르고 싶을 만큼 화가 났다. 정직하게 말해서, 나는 아버지가 빨랑 송장이나 되어주었으면 하고, 두려움에 떨며 몇 번씩이나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도 이런 나를 알아주는 것은 탱보밖에 없었다. 탱보는 우리 아버지의 병 이야기를 듣고 나에게 “니기미, 그것 참 더럽게 됐구나”
하고 위로했다. 탱보는 때때로 우리 집에 들러 몇 봉달*의 라면 같은 것을 놓고 갔다. 우리 집에는 탱보가 놓고 간 라면이 아니면 먹을 양식도 떨어져버릴 형편이었다. 라면을 삶아 국물은 아버지 입에 떠 넣고 라면 건더기로 주린 내 창자를 채웠다.
불어터진 라면을 먹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 탱보가 이맛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네 아버지 진짜로 웃기는 사람이구나. 우리 바지씨처럼 경찰에 때가는 게 차라리 낫지, 그래 널더러 어쩌란 말이냐. 뚝발아, 너 우리 집에 와서 식모나 살아라.”
그렇다. 하루 온종일 아버지나 지켜보고 앉아 있어봤댔자 입으로 밥이 들어오는 것은 아니었다. 탱보의 말은 참으로 고마운 제안이 아닐 수 없었다. 탱보는 그의 어머니가 작년에 교통사고로 죽었기 때문에 그 뒤부터 자기 집의 식모도 겸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그것을 면하게 되었고, 대신 나는 부족하지 않게 내 굶주린 배를 채울 수가 있는 것이었다.
나는 낮 동안 탱보네 부엌에서 두 번 밥을 지었다. 그러나 실상 탱보는 먹는 둥 마는 둥이었고, 그것은 거의 전부 내 차지가 되었다.
낮 동안 나는 탱보네 자전거포에서 살았다. 가게 앞의 나무걸상에 앉아서 둑방길을 오고 가는 사람들이나 쳐다보며 봄철의 긴 하루해를 그럭저럭 보냈다. 혹시 그 사람들 속에 섞여 누나가 돌아오지나 않을까 하는 기대도 저버리지는 못했다.
탱보는 이제 그 병이 다 나은 모양인지 낮 동안 번 돈으로 밤이 이슥해지면 또 선창가로 나아갔다. 그런 날은 밤늦도록, 아니면 밤을 숫제 탱보네 가게에서 보내야만 했다. 점차 아버지에게는 나마저도 떨어져 나가 아버지는 진짜 외톨박이로 남아 있게 되었다. 나는 그것을 알고 있었지만, 솔직히 고백해서 나도 할 수만 있다면 아버지에게서 도망치고 싶었다. 아무도 모르게 나는 다음의 석 달을 기다렸으나 허사였고, 약 한 첩 쓰지 못하는 중풍환자의 모진 목숨은 지지부진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그래도 나는 하루에 두세 차례씩은 아버지에게 들러 그의 삐뚤어진 입을 밥물로 봉양했고, 내지른 점액질의 분뇨를 코를 틀어막고서 해치웠다.
여름이 되면서 탱보는 숫제 자전거포는 나에게 맡겨놓고 밖으로 나가 온종일 싸돌아다녔다. 더러는 어디에서 비까비까한 새 자전거를, 마치 그의 아버지가 그렇게 했듯이 신바람이 나서 몰고 들어왔다. 그러고는 손등으로 땀을 씻으며 나를 향해 말했다.
“한탕 했는데, 오토바이 새끼가 따라오는 거야. 씨발, 붕알에서 불이 나더라.”
탱보는 진짜로 호경기였다. 더불어 나도 탱보네 자전거포에서 빵구 정도는 때울 수 있는 수리공으로 나설 수 있게 되었다. 나도 조금만 더 익숙해진다면 삥땅을 뜯어 건너편 둑방동네 선창가로 진출해 볼 수가 있게 되었다.
탱보는 간덩이가 크게도, 이제는 선창가가 아니라 그보다 몇 배나 더 큰 부두(埠頭)로 나간다구 말했다. “부두에는 이거 뭐, 니노지가 장바닥에 쓰레기들처럼 널렸더라, 널렸어. 상판대기가 모두 볼 만한 계집들인데 니기미, 비싸기도 곱절이지만 기술도 그만이더라.”
그럴 때면 나는, 나도 빨리 삥땅을 뜯어 부시기를 피워 물고 선창가로 진출하여 그곳을 졸업하고, 그 어마어마한 부듯가로 진격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굴뚝같이 솟아났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얼굴에 여드름 한 개도 돋아나지 않아 실망이 여간 아니었다. 탱보는 항상 저 처럼 여드름이 풍년이 들지 않고는 그런데는 얼씬도 할 수가 없다고 억눌렀는데 니기미, 그게 전염병이라면 어디 가 돈 주고라도 옮아오고 싶을 정도였다. 이런 생각들에 빠져 내가 정신을 못 차릴 때면 나는 아버지 생각 같은 것은 그만 까맣게 잊어먹 기가 일쑤였다. 덕분에 아버지는 더욱더 쇠약해져갔다.
비가 억수같이 퍼봇던 어느 날 밤이었다. 늦게 부둣가에서 돌아온 탱보는 그의 가겟방에서 잠든 나를 발길로 차 깨워놓고 느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야 뚝발아, 이젠 날 매형이라고 불러라.”
잠이 덜 깬 눈으로 내가 어리둥절하여 탱보를 올려다보자, 탱보는 입가에 묘한 웃음을 띠며 다시 말했다. “네 누나 똥순이는 그걸 비밀로 해달라고 말하더라만, 아무튼 이제 나는 네 매형이야. 알았어?”
“뭐라구, 우리 누나를 만났다구?” 나는 어리둥절하여 목에 가래가 걸리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만났다, 부두에서 그냥 만나기만 한 것이 아니라, 궁합까지 맞췄지. 기가 막히게 딱 맞더라.”
나는 분노에 찬 목소리로 식식거리며 말했다. 나는 탱보의 말을 이해할 수도 믿을 수도 없었지만 괜스레 화가 치밀어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일어서서 탱보의 청바지에 맨 허리띠를 붙잡고 말했다.
“우리 누나에게 우리 아버지 말도 했단 말이야?”
“시끄럽다. 내가 그 구질구질한 이야기를 뭣하러 씨부리냐? 괜히 나까지도 산통 깨지게…….” 탱보가 완강한 표정으로 말했다.
탱보의 거센 말투로 보아서는 탱보는 진짜로 누나를 그 부듯가에서 만난 모양이었다.
나는 호흡이 꽉 막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부듯가에서 누나가 무엇을 하는지 나로서는 자세하게 알 수 없는 일이었지만, 만약 탱보 같은 사내들과 입을 맞추거나 궁합을 맞춘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니기미, 우리 집도 이제 볼장 다 본 판일 것이다.
내가 새파랗게 죽은 낯빛으로 서 있는 것을 보고 탱보는 내 눈길을 피하며 말했다.
“흥분할 것 없어. 네 누나는 곧 내가 데려다 살 테니까. 너도 꼽사리 껴주지. 이건 진실이야.”
나는 탱보가 말하는 그 부듯가라는 곳이 어딘지를 알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버스를 타고 시가지로 들어가 이 골목 저 골목 쏘다니면서, 누나가 있을지도 모르는 부둣가의 낌새를 눈치 채기 위해서 발광을 했다. 자전거포에서 탱보의 뒤를 밟기도 했으나 허사였다. 탱보는 교묘히 나를 피해서 달아나버렸다. 아마 탱보는 그 부듯가에서 누나를 만나는 것이 분명했다. 나는 분통이 터졌지만, 노독(路毒)으로 물집이 난 다리를 더 이상 움직일 수도 없었다. 나는 지쳐버렸다.
아버지가 죽은 것은 내가 그렇게 얼이 빠져 누나를 찾겠다고 북새통을 떨고 있을 때였다. 그날 나는 청계천까지 갔다가 지친 다리를 되돌려 집에 돌아와 아버지 앞에서 녹아떨어져 잤다. 아침에 깨어보니, 내 옆에 누워 있어야 할 아버지가 귀신도 곡하게 없어져버렸다. 나는 눈을 비비면서 집 안팎을 두루 찾아보았지만 아버지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이웃에서도 아무도 본 사람이 없다는 것 이었다.
그런 아버지가 그날 아침 해가 떠오를 무렵, 아버지가 개를 잡아서 그슬리고는 하던 화장지 공장 앞 모래밭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나는 아버지를 누가 거기까지 옮겨놓았는지 짐작할 수도 없었다. 소문을 듣고 동네 사람들이 모두 그 모래밭 위 둑방으로 몰려들었다. 그들은 모두 미간을 찡그리고 더러운 모래밭 위에 엎어져 죽어 있는 아버지를 내려다보았다.
누군가가 말했다.
“개서방 아니야?”
“맞아, 운신도 못 하던 사람이 예까지 이게 웬일이ㅇP”
“죽을 때면 젖 먹던 기운까지 솟아난다고 하데요.”
이어서 내 또래의 목소리 하나가 바로 내 옆에서 또랑또랑하게 말했다. “내가 보았어요. 새벽에 신문 가지러 나갈 때 여기로 지났걸랑요. 그런데 저 사람이 전쟁놀이하는 것처럼 엎드려서 기어갔어요. 그래서 난 도둑놈인 줄 알고 무서워서 빨랑 도망쳤어요.”
둘러서 있던 사람들이 모두 소년의 말에 귀를 기울였는데, 소년이 이야기를 끝내자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나도 그 구경꾼들이나 똑같은 폼으로 서서 아버지의 시체를 내려다볼 뿐 할 말이 없었다. 알 만한 동네 아낙네가 팽 하고 코를 풀고 나서 나에게 말했다.
“녀석아, 곡이나 좀 해라.”
그제서야 비로소 나는 눈물이 눈시울을 축축이 적시기 시작했다.
아침까지 아버지의 시체는 거기에 버려져 있었다. 아마 아버지의 술친구였던 둑방동네의 어른들이 딸기코 안 주사의 복덕방에 모여 아버지의 시체를 치우는 일로 의논들을 하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날은 아침부터 우리 둑방동네에 상상도 하지 못했던 갑작스런 공사가 시작되고 있었다. 우리 둑방동네에(건너편 둑방동네에도 물론이지만) 담장을 치는 공사였다. 내일이면 청량리에서 제천 간의 전기철도(電氣鐵道)가 완성되어, 마치 제트기처럼 빠른 전기기관차가 달리게 되는데, 그 개통식(開通式)에는 누군가가 아주 높은 어른이 타고서 우리 둑방동네의 건널목을 지나가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 둑방동네 같은 더럽고 추잡하며, 헐벗은 인간들로 우글거리는 동네가 그런 어른의 눈에 띄어서는 곤란하다는 것이었고, 그리하여 우리 둑방동네가 그 전철의 전망창을 통해 내려다보이지 않도록 가려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갑작스럽게 시작된 공사였는데, 어디서 인가 인부들이 까맣게 몰려들어 건널목을 중심으로 양편의 둑방에 담장을 치기 시작했다. 담장이 아니라 이것은 숫제 성벽이었다. 마치 서커스단이 그들의 공연장을 세울 때처럼 각목(角木)들을 아주 높고 튼튼하게 세우고, 세워놓은 각목에 합판을 붙였다.
아직까지 지난 적이 없는 육중한 트럭이 각목과 합판 등의 자재를 싣고 좁다란 둑방길을 헤집고 나아갔다. 판잣집들은 그 육중한 트럭에 길을 내주기 위해서 조금씩 귀퉁이가 달아났다.
아버지의 시체는 그들의 작업을 방해하기에 알맞은 장소에 놓여있었다. 그래서 인부들은 아침부터 재수가 옴 붙었다고 침을 세 번씩 툇툇툇 하고 뱉은 다음, 모래밭을 깊이 파고 그 속에 묻어버렸다. 그리고 그들은 바로 아버지의 시체를 묻은 모래밭 위를 마구잡이로 밟아가면서 작업을 서둘렀다.
저녁 때까지는 우리 둑방동네가 철도 건널목에서 내려다보이는 시야(視野) 로는 합판의 성벽으로 완전하게 가려져버렸다. 우리 둑방동네는 우리 둑방동네 나름대로 이제까지는 가져본 일이 없는 아주 까맣게 높고 튼튼한, 그리고 그 안에서만은 서로 정답게 얼굴을 맞대고 부벼볼 아늑한 울타리를 얻은 것이었다.
인부들은 밤까지도 그 높은 성벽에 줄을 맞춰 전등불을 밝혀놓고, 합판의 나뭇결 위에 아주 아름다운 색으로 페인트를 입혔다. 구린내를 풍기며 언제나 도도하게 괴어 있던 냇물에도, 썩은 널빤지와 녹슨 함석이나 찢어진 루핑 따위로 연이어진 판잣집의 그림자가 아니라, 줄지어진 전등불이 밝히고 있는, 아주 아름다운 색깔로 말끔히 도장된 아스라한 성벽이 영롱하게 떠 있었다.
『창작과비평』 29호(1973년 가을); 『영자의 전성시대』 (일선출판사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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