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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하늘 새땅 너는 나의 황금나비
2024년 4월 14일 제 934회.
사드배치 결사반대 김천시민 촛불집회
또 다시 찾아온 세월호의 봄, 10번 째..
기억, 약속 그리고 책임..
기억하겠다는 약속, 그리고 그 약속에 대한 책임..
축제를 준비하는 손길이 분주하다.
오늘의 타이틀은 약초들녘의 카스테라와 메리골드 차..
*작은 거인 김종희 팀장의 패기있는 음성으로 시작한다.
" 전쟁을 끝내자. 평화에 살자. 통일로 가자.
사드뽑고 평화심자. 투쟁~!!"
* 순국선열을 기리는 묵념
*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 세월호 다큐멘터리 시청.
바람의 세월! NG? 못다실은 바람의 소리.
https://youtu.be/w6ukYoali0s?si=kU70gl-NGzGEYfYN
** 사회자 멘트.
"그렇습니다.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는 내 아이는 옆에 있지만 저 세월호에 타고 있던 아이들이 나의 아이라고 생각이 들고 그래서 세월호라는 말만 떠올려도 내 아이가 없어진 것 같은 그런 아픔이 여전합니다.
잊혀지지 않기 위해서 아이를 잃은 그 아픔을 간직한 채로 잊혀지지 않기 위해서 저 아이들을 잊히지 않게 하기 위해서 애쓰는 우리 세월호 가족들을 생각하면서 우리 이 자리에서 세월호의 진실이 밝혀지고 다시는 이런 어처구니없는 이런 재난이 일어나지 않도록 다 함께 힘쓰겠다는 그런 약속의 마음을 함께 나누었으면 합니다."
** 첫번째 발언. 전교조 이용기 선생님.
"그날..사무실 출근해서 보니까 세월호가 이렇게 바다에 많이 기울어져가 침수되고 있는 상황인데 그 당시에 구조에 대한 얘기도 나오고 우리나라의 치안 상황이라든지 경찰들이 이 사드 시민들을 제압하는 정도에 취한 상황 같으면 금방 구조하겠다라고 생각하고 좀 다른 일을 하고 있는데 오후에 보니까 거의 침몰하고 구조가 어렵겠다라는 생각을 하면서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그게 충격이고 굉장히 큰 상처로 계속 남아 있습니다.
아마 여러분들도 그럴 것 같습니다. 세월호 후에는 세월호의 피해자하고 가해자로만 나눠진다.
일단 희생된 우리 분들하고 생존자하고 그 배에 탔지는 않지만 재수가 좋아가지고 그 배를 안 탈 수 있어서 계속 생존하는 사람들 이렇게 나누어질 것 같습니다.
세월호에서 가장 우리가 고민하고 요구하는 게 진실을 규명하자 그리고 국가는 뭘 했나 그 얘기가 되어야지 앞으로 세월호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기 위해서 국가가 어떤 역할을 해야 된다는 얘기가 될 거잖아요.
그래서 그게 출발이라고 생각을 하고 국가의 역할을 세월호 사고가 일어날 때부터 계속했던 것 같습니다.
근데 국가는 없었습니다. 그렇게 안정과 개인 재산을 보호하기에는 그렇게 힘이 없다.
정권의 안정과 개인 재산을 보호하기에는 그렇게 힘이 있던 국가가 국가가 국민의 국민이 죽어가는 그러한 재난 상황에서는 국가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더 문제는 국가가 그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고 나서나 계속 그 파장이 정권에게 올까 봐 그걸 막기 위해서 모든 정보기관을 동원해서 오히려 피해자들을 핍박하는 이런 상황이 계속되었었습니다.
그래서 10년을 이어오면서 세월호 특조위하고 사회적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이런 게 만들어져가지고 계속 해 해왔던 과정들이 오롯이 우리 유가족들과 그들과 연대한 우리 시민들의 힘으로 해왔다는 게 한편으로는 가슴 아프고 한편으로는 이게 흔들리지 않겠다라는 그러한 생각도 들기도 하고 합니다.
4월 16일 날 그 참사가 일어나고 그때 논쟁이 청와대가 뭐 했나 하는 거 하고 그러니까 해경이 왜 구하지 않았나 이런 얘기들 계속 배웠었습니다.
근데 청와대의 행적은 이후 계속 세월호의 진실을 요구하는 시민단체들을 핍박하는 그러한 근거로 계속 사용이 되었습니다.
다 아시겠지만 4월 16일 그게 일어나고부터 계속 검경 합동수사단부터 해가지고 감사원 감사, 국정감사 그리고 항만 심판원 조사 이런 것들이 당해에 계속 있었습니다.
아시겠지만 당에 계속 있었는데 그들은 철저하게 책임을 묻는 단위나 123정 현장에 투입된 해경 함정 그 함장한테만 정장한테만 거기까지만이고 해경의 지휘부를 비롯해서 경위의 컨트롤타워는 거의 거기까지 논의를 차단하기 위해서 모든 권력기구를 동원하는 이런 형태였습니다.
그래서 그때 했던 게, 내부 기관의 조사로부터 했던 게, 해운사를 조사해가지고 검찰에 기소를 하고 그리고 또한 한국 선적이라든지 화물 선적하는 그런 단위들을 조사하고 그리고 또한 선원들 승무원들을 조사해서 그 재판에 넘겼습니다.
그러면서 국정조사에서 국정조사에서 박근혜 행적에 대해서 물었고, 청와대가 이런 국가 재난에 대해서 컨트롤타워가 아닌가 이런 걸 물었을 때, 아니 비서실장이라는 놈이 앞에서 뻔뻔하게 그냥 아니다라고 하고 김장수라는 국가안보실장이라는 놈은 대변인을 시켜가지고 청와대가 이런 국가 재난의 컨트롤타워라는 일부 언론 보도가 있는데 그건 사실이 아니다 이런 발표까지 해요.
근데 나중에 조사를 해보니까 그 당시에 청와대 대통령실 비서실장을 포함한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국가재난 기본 지침에 있는 컨트롤타워의 명시, 대통령 국가안보실이 컨트롤타워라는 그 문구 자체를 이 참사가 일어나고 나서 삭제했다는 그것도 밝혀졌는데 뻔뻔하게 사과도 안 하고 이렇게 계속 넘어가고 있는 게 현재 상황입니다.
그러면서 4월 16일날 기무사는 대통령실이 이것을 이걸 촛불이라든지 이렇게 확산되는 것들을 방지하기 위해서 좌파와 용공 세력과 용공 세력으로 지칭하려고 하고 있다라는 감을 인지하고 그 차원에서 계속 피해자들하고 시민단체하고 관계라든지 이런 것들을 계속 조사를 했습니다.
특히 국정원은 첫날 4월 16일 그 참사 상황에서 이 세월호 참사가 정권의 비판적인 여론으로 확산되지 않도록 차단할 필요가 있다라는 정세 보고서를 올리는 이런 상황이었습니다.
우리는 국가를 국민으로부터 안전을 보호해 줄 그러한 요구들을 하고 기대를 하고 있었습니다.
헌법은 헌법 10조에서 국가는 개인의 불가항력적 기본적 인권을 인정하고 그것을 보장해야 한다라고 명시를 하고 있고, 헌법 제34조 6항에는 재난 상황에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킬 의무가 국가에게 있음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인 행정부와 청와대는 전혀 그 역할을 하지 않고 오히려 이것을 책임을 회피하기에 급급하고 망하지도 안 하는 그러한 짓들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인식한 우리 학부모 대책위들이 학부모 대책위를 만들어 가지고 대응을 시작을 했고, 청와대로 흘러가면서 박근혜 대통령한테 이 상황이 문제 있다는 걸 호소하고 싶다라고 들어가는 상황이 있었습니다.
그것도 중간에서 경찰 벽에 막혀가지고 그것도 좌절되고 어쨌든 그 이후에 현재 검경합수 합동수사본부의 발표와 이런 것들이 마땅치 않아서 세월호 특별법을 만들어서 특별조사위원회를 만들자라는 제안을 하면서 계속 그 작업을 하는데, 그것도 국회에서 정체되고 막히고 해서 7월에는 아이를 잃은 부모들이 단식을 하는 그런 상황이 있었습니다.
대체로 우리나라의 정서는 사람이 죽으면 애도를 같이 하거나 혹은 아파하며 연민을 느끼거나 이게 인간의 도리고 그냥 우리나라가 아니어도 인간이 할 일 같은데 46 단식하는 동안 옆에서 한국청년단이라든지 이런 어버이 연합이라든지 이런 쪽에서 폭식 집회를 열고 폭식 퍼포먼스 런스를 하는 그런 파렴치한 상황들을 겪으면서 여기까지 왔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런 안식과 원래 천만 명의 성령을 받아서 국회 청원을 하기로 했는데 350만 정도 되었을 때 1차로 증원을 했습니다. 그래서 11월에 세월호 특별법이 1차적으로 만들어져가지고 2015년 1월부터 특별조사위원회, 세월호 특조위 특별조사위원회가 만들어져서 활동했는데 이것도 건건이 정부의 반대로 정부의 방해로 반대가 아니고 방해로 이걸 원활하게 하지를 못합니다.
준비 기간이 6개월 내지 9개월 걸렸는데 그것도 특조위 기간이다라고 하고 예산을 지원하지 않는다거나 인력을 파견하지 않고 위원 임명을 늦춘다거나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그다음에 2016년 6월까지 이런 과정을 거칩니다.
그래서 이건 도저히 정부나 국회를 믿어서는 안 된다 해서 직접 행동으로 맞서고 그런 활동들을 거쳐서 이제 2017년에 되어서 2016년 촛불이 이제 불타오르게 됩니다.
세월호 전과 후가 다른 것은 굉장히 많을 것 같습니다.
제가 생각할 때는 첫 번째는 생명 안전에 대한 생각을 다른 차원으로 했다 국가의 의무를 명시했다는 이런 것들이 있을 것 같고요.
그래서 이게 굉장히 중요하게 우리 시민들의 생활에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세월호 이후 201 2014년 6월 교육감 선거가 있었죠. 지방자치 선거가 있었는데 이때 세월호의 영향을 굉장히 많이 받은 것 같습니다.
교육에서 특히 세월호 안에서 가만히 있으라는 말이 학생들을 더 위험에 빠뜨리고 이런 참사를 더 키웠다는 그러한 내부 교육교의 반성과 더불어 우리 교육에 대한 반성, 우리 기성세대의 반성들이 굉장히 크게 있었습니다.
그래서 교육감 선거 이후에 한국사 국정화가 계속 이렇게 대두되면서 그것과 세월호와 맞물리고 노동자의 탄압이 맞물려서 2016년 하반기부터 10월부터 해서 박근혜 퇴진 촛불이 이렇게 나타나고 시작되고 그래서 2017년 3월 10일에 박근혜를 탄핵시키는 그러한 사건도 세월호의 큰 흐름이다라고 생각을 합니다.
생명 안전에 대한 문제와 정치나 국가에 대한 사고 자체가 근본적으로 바뀌었다는 이 두개가 세월호 전후로 가장 크게 바뀐 우리의 인식들이라고 생각을 하고요. 그래서 2017년에 세월호가 인양이 되고 그리고 인양이 되고 선체조사위원회가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3월에서 그다음 해까지 이렇게 쭉 이어졌는데 그 조사위원회에서도 세월호에서 가장 중요한 고민이 하나는 왜 침몰했나 두 번째는 왜 구하지 못했나 국가는 뭐 했나 세 번째 이런 정도인데 왜 침몰했나 부분을 좀 기대를 하면서 조사를 했는데 하나로 결론을 내리지는 못했습니다.
사회적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에서 정리를 했는데 선체조사위원회 내에서는 두 가지 안으로 제출을 해가지고 그게 좀 아직 조사가 미흡하고 아쉬움으로 남고 있는데 하나는 내인설입니다.
내부적으로 이 세월호를 일본에서 구입해오면서 중고 배를 수입해오면서 이것을 이윤을 더 많이 남기기 위해서 840명 규모의 승객을 태울 수 있는 이곳을 956명 정도 배울 수 있는 걸로 증개축하는 과정에서 중심이 굉장히 높아졌다 고
두 번째는 출발하면서 평형수가 제대로 들어가지 않아서 복원력에 한계들이 있었다라고 솔레노이드 밸브라고 하기도 하는데 그게 고장나서 내부적으로 이런 문제가 있어서 한 20도 정도 기울어졌을 때 이 데크 안에 짐들이 한쪽으로 쏠리면서 물건을 못 하고 침몰됐다라는 안이 내인설이고
하나는 열린 안으로 해가지고 그것으로 공권력의 한계가 있다고 하기에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그래서 외부의 충격 등을 포함한 열어놓고 생각을 해야 된다는 안이 열린 안인데 이게 아직 두 개로 제출돼가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아직 왜 침몰했나 이건 아직 확인이 안 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선체조사위원회 이후에 또다시 이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는 또 다른 국가기관이 아닌 또 다른 사회적 조사위원회가 만들어져야 되겠다라는 판단 하에 세월호 특별법 제정 작업에 2차 재정 작업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재생 작업을 하는 가운데 2018년 2018년 말에 이게 세월호를 하려고 그러면 농수산위를 통과해야 되는데 국회 패스트트랙의 문제들 때문에 다른 상임위로 해서 2018년부터 해가지고 사회적 참사 특별조사위원회를 구성을 해가 2018년 12월부터 해가지고 2022년 6월까지 3년 6개월에 걸쳐 굉장히 광범위한 조사를 하고 조사 보고서 3개를 맺는 상황입니다.
이게 여태까지 10년 과정에 굉장히 정리된 안이고 아직 과제는 굉장히 많습니다.
사참미 특조위에서는 특별조사위원회에서는 세관의 보고서를 내게 됩니다.
세월호 침몰의 진실을 밝히는 그러한 조사 보고서 하나하고 피해자 지원에 대한 조사 보고서 이거 이후 국가의 이런 새로운 참사가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한 국가 재난안전 시스템에 대한 권고 보고서 이렇게 회계를 제출하게 됩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현재 10년에 이르렀습니다.
아직 완전히 해결은 안 되었습니다. 네 얼마 전에 생존자들하고 그 형제 자매들하고 자유자들이라고 하는데 수학여행을 안 간 학생들하고 인터뷰를 했는 걸 책으로 냈습니다.
몸을 마주하고 10년을 걸었다라는 책인데 여기 보면 10년이 지나면 고통이 조금이라도 해소되거나 정리될 수 있을까 근데 고통이 정리되지는 않는다.
진실이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냥 단지 초기 때처럼 그렇게 바로 아픔으로 직접적으로 오는 이런 것들이 생활을 하면서 이제 세월호의 아픔이 생활화됐다 그래서 좀 다르게 다가와서 말을 할 수 있을 정도는 됐다 이런 얘기를 들었습니다.
앞에 처음 시작하면서 세월호 참사 관련해서 가해자와 피해자가 있다.
증권과 기득권들 일부 외에는 거의 피해자인 게 현재 우리 상황이다라고 말씀을 드렸는데 피해자의 범위를 넓힌 것도 굉장히 중요할 것 같아요.
여태까지 만약 이런 참사가 일어나면 국가가 이 참사의 정의를 하고 1인당 얼마를 위로금으로 하겠다 이 결정하면 끝이었습니다.
근데 이 세월호 참사는 참사가 일어나는 과정부터 해가지고 거기에 대처하는 과정 승무원도 마찬가지지만 국가의 대응 배경에 대응 이거하고 이걸 가리기 위한 국가와 권력기관의 행태들 이러한 것들이 총체적으로 모여서 우리 사회가 이대로는 안 된다라는 인식들을 하게 된 것 같습니다.
앞으로 10년 20년이 되면 이 문제가 해결될까 하는 기대를 가지고 앞으로 계속 우리는 생활을 해나가야 될 것 같은데요.
여전히 최초에 들여올 때부터 중고를 들여와 가지고 자본의 유인을 위해서 개축하거나 이런 것들부터 해가지고,
박근혜가 자기에게 이 책임이 돌아오지 않게 하기 위해서 대통령 비서실이 조직적으로 나서가지고 있는 지침마저도 변경해 가면서 자기 책임을 회피하려고 하지 이런 작업들을 보면서 국가는 헌법에 규정된 걸
스스로 하지는 않는다 이런 생각을 합니다. 아마 여기 계신 분들이 사도 투쟁을 8년 계속해 오시기 때문에 그걸 뼈저리게 느끼실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국가에 대한 인식과 그리고 사드라든지 이런 것들이 국민과 국민의 생존과 국민의 평화와 어떠한 역할을 어떠한 역할을 하는지 여기에 대한 분명한 인식을 가지고 거기에 대응하고 연대를 확대해 나가지 않으면 국가의 위상은 항상 읽는 사람 편에서 폭력적으로 대응하는 걸 확인을 할 수 있습니다.
자본이나 혹은 기득권자들이 떠받들고 있는 미국을 봐도 볼티모어의 프린세스 스포 힘이 부딪칩니까?
그게 무너지는 과정들 보면서 그것도 자본의 이윤을 우선 추구하다가 그렇게 됐는데 특히 어떤 교수 중 한 분이 미국에서 유학을 하고 어떤 그 과정이나 이런 걸 얘기를 하면서 미국의 몇 천 개의 그러한 다리가 있는데 그 다리 중에 지금 당장 보수해야 될 게 한 3분의 1은 된다 이런 얘기를 해요.
왜 그런지 분석을 하면서 이런 얘기를 합니다. 미국의 자본이나 미국의 이윤 추구의 핵심은 수자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산은 거의 전쟁하는 데 쏟아붓고 국가 기반시설이라든지 서민들이 주로 이용하는 데는 별로 예산을 안 쓰기 때문에 오히려 우리나라나 이런 데보다 더 취약하다 이런 얘기들을 해 세계 1위 경제국이라는 미국 운용도 이런 자본 중심으로 운영되다 보니 이런 문제가 있고 그것을 하늘같이 떠봤다는 윤석열 사람도 보면 참 자본을 위해서 철저하게 방문하겠다는 그러한 입장을 분명히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사드로 아픔을 겪고 있는 교수가 우리 김천 우리 주민들도 그렇고 세월호의 희생자를 포함한 그 주위에 있는 희생자 가족들, 그 주위에 있는 생존자와 생존자 가족들, 학교 관계자들, 안산 시민들 포함해서 전 국민들도 그렇고 우리가 이 아픔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 이런 고민들을 할 필요는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아플 때 국가가 정권이 나서서 이 아픔을
적극적으로 위로해주지는 않는다는 걸 확인을 했습니다. 1차적으로 그런 정권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을 해야 될 것 같고요.
그건 우리가 연대와 깨어 있는 의식으로 그러한 노력을 해야 될 것 같고 이 이것의 완전한 해결이 뭔가 하는 그러한 기준들도 좀 삼을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요즘 학교에는 학교 폭력 문제가 굉장히 많이 나옵니다.
학생과 학생 간의 다툼이나 이런 걸로 폭력의 문제가 많이 있는데 거기에는 가해자 피해자가 막 섞여 있기도 합니다만 가해자는 계속 가해자고 피해자는 계속 피해자인 경우가 상당히 많습니다.
근데 이 피해자가 돌아와서 학교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이 가해자가 뭘 해야 될까 이런 고민들을 하면서 이런 얘기를 합니다.
가해자들 학교 폭력이라든지 규정이나 혹은 법에 따라 처벌하는 걸로 이 피해자가 안심하고 돌아올 수 있을까 가해 자녀 처벌을 받아서 망하나 그 잘못은 다 끝났어 하면서 학교 와서 글루로 하면서 또 기분 나쁘면 피해자를 또 괴롭힐 거 아니냐 그 불안은 피해자한테 계속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 이게 해결되는 이런 외부의 공동체를 복원하고 그 복원하는 길의 출발이 가해자가 그것에 대해서 자기가 가해를 행한 것을 피해자의 아픔을 공감하고 사과하는 게 제일 먼저다.
그래야지 피해자가 안심하고 가해자가 다시 화해를 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하면서 안심하고 학교에 다닐 거 아닙니까?
그런 형태로 되려 그러면 현재 우리 416 유가족을 포함한 416 활동을 했던 관계자들도 국가의 사과를 받고 국가가 이러 다시 이런 재난이 일어나지 않도록 국가 재난 대응 시스템을 잘 갖추게 하는 그러한 데까지 나가야 한다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런 국가를 만드는 길은 우리밖에 없다라고 생각을 합니다. 우리가 국회나 정치인들이 뭘 하지는 않을 것 같고 그 이를 위해서 앞으로 연대를 확장하고 함께해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두번째 순서.. 이 루치아님의 회고와 정진석님의 노래 <진실의 빛>
** 정진석님 발언
"기억나시죠? 그때 우리..문재인 대통령 때 청와대로 올라갔었습니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뭐 사참이다 뭐 이런 쪽으로 이렇게 가고 있었고 왜 그 대통령이 수사단을 직접 꾸린 거는 대통령이 책임져야 될 일이었잖아요.
그래서 박근혜가 물러갔잖아요. 그죠 그러면 따져야 될 대상이 마땅히 문재인이었는데 그때 당시에 어떻게 된 일인지 그 박ㅈ민.. 지금도 잘 헤쳐 먹고 있대요.
지금 또 당선돼 있더라고요. 그 개만도 못한 새xx 박ㅈ민이 우리 그때 서울 청와대에서 문재인 나오라고 단식하고 있을 때 박ㅈ민이가 몇 번을 왔어요 와가지고 속을 얼마나 비벼놨는지 몰라요.
우리 속을 그래 이렇게 해가지고 진상 규명되나? 사참위의 그 권리가 있나 ?조사할 수 있는 권리가 있나? 사법적인 강제력이 있나? 없다.
근데 뭐 있는 듯 없는 듯 뭐 하여튼 이상하게 이야기하면서 아 그러니까 우리 애가 힘을 합쳐서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그때 당시에 진짜.. 문재인을 지지했던 우리가 뭐 때문에 그랬어요?
예, 나왔습니다. 이 루치아님이 받아서 한마디 좀 해주겠습니다."
이 루치아님의 발언. 세월호에 얽힌 뒷 이야기.
" 그때 방송에 나왔던.. <전원 구조>라는 것에 대해서 우리는 생각해 봐야 됩니다.
세월호 사건이 터지던 날 전원 구조되었다는 뉴스와 보도가 모든 방송사 전체에서 다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게 거짓이었습니다. 그 공원 구조라는 기사를 왜 썼냐고 아무도 그 언론사나 방송사에 클레임 거는 사람 없었을 겁니다.
그리고 전원 구조되지 않았을 그 상황에 모든 기자들이 그거를 보도했다는 사실은 어디선가 뿌린 겁니다.
그거는 저는 구조 시간과 장소와 근데 제가 정말 그 세월호 사건이 일어난 날 새벽에 이렇게 뉴스를 듣고 인터넷을 열었습니다. 인터넷을 열었을 때 제가 정말 제가 딱 보고 난 다음에 삭제된 기사가 있었습니다.
이거를 말하면 이제 제 지인들 몇 명한테는 말했는데 너 이 말했다가 맞아 죽는다 그랬는데 제가 그거를 보고 거리에 나오게 됐거든요.
사실은 그래서 제가 정말 솔직하게 본 거를 말씀드리자면 그게 다 묻혀 있는데.. 그날이 박근혜 부정선거 발표하는 날이었습니다.
그래서 박근혜가 그 부정선거 발표된다면 어떻게 될지 알기 때문에 계획을 짠 것이었어요.
그 글에서는 그래서 세월호 학생들이 세월호 인천 단원고가 그 모든 학교 중에서도 제일 없는 동네라고 합니다. 그래서 타겟이 되었다고 하기도 거기에 그렇게 쓰여 있었어요.
그래서 빠진 거를 전원 구조라는 기사를 써놓고 완전히 죽일 생각은 아니었다고 그래서 전원 구조라는 걸 모든 기자들 방송사에 다 뿌려놓은 거라고 그래놓고 복병이 있었습니다.
그날 왜 그러면은 전원 구조 안 하고 다 빠뜨렸느냐 그 이유는 그날 바람이 너무나 많이 불어서 써놓은 기사에 있는 장소에서 장소를 지나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정말 너무나 이게 개연성이 있었고 또 얼마든지 구할 수도 있었는데 전원 빠뜨려야 박근혜 부정선거가 묻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정말 제 말이 아무 정말 쓸데없는 말일 수도 있는데 저는 이거를 진실로 사실은 받아들였어요.
그래서 제가 정말 이거 밝혀야 된다 싶어서 거리에 나오게도 되었고 또 그날 의혹이 너무 많습니다.
정말 몇 가지 한 가지만 말하더라도 그날 인천공항에서 인천항에서 바람이 불어서 모든 배는 출발할 수 없었습니다.
근데 세월호만 출발했습니다. 이것만으로도 저는 그렇게 믿게 되었고 또 이런 거를 밝히기 위해서 문재인 대통령한테 서명 20만 넘으면 답하게 돼 있는 게 시스템이 있잖아요. 그 시스템에서 우리가 이제 뛰어다니면서 20만 서명을 받았습니다.
진실 규명을 위한 단체를 만들으라고 근데 문재인 대통령의 답은 특조위로 하라고 사참위로 하라고 정말 그 수사기소권도 없는 단체로 하라는 거를 말했습니다.
그래서 한 번 더 2차로 진상규명에 대한 대통령한테 답변을 듣기 위한 거를 청원을 했습니다.
20만 원을 넘겨서 답변을 다시 했는데 그 답변조차 수사기소권 없는 그 단체가 하라는 똑같은 말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세월호 배를 타고 같이 가던 김성묵 씨가 그 아이들.. 그 사람이 왜 나오게 됐냐면 자기가 손을 잡고 끌어올리다가 그 아이 눈과 마주치면서 그 아이는 바닷속으로 빠져버리고 자기는 살아있는 그 책임을 지기 위해서 수년간 그렇게 노력을 했습니다.
김성국 씨가 그렇게 했는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 대통령 선거운동도 하고 모든 노력을 다 했지만 지금 밝혀지지 못했고 또 우리가 전원 구조라는 그거 하나만 볼 때도 정말 아무도 구조하지 못했는데 전원 구조라는 말을 썼는데 어느 언론사 하나 처벌받지 못했고 거기에 대해서 의의를 제기하지 못했습니다.
정말 우리가 이 수많은 우리나라에 정말 법을 가지고 이 세월호로 처벌받은 사람 없습니다.
선장 진짜 몇 개월 살다 나왔지요. 정말 그래서 지금 다시 전원 구조에 대한 것만을 물고 늘어지더라도 왜 전원 구조 안 되었는데 이런 식으로 되었냐고 우리가 다시 물어봐야 될 것 같기도 합니다.
저는 수많은 사람들이 제가 이런 말을 자주 하지는 않았습니다. 믿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제가 정말 마음속에 품고 제가 그날 새벽에 봤던 그 글을 알리고 싶습니다.
이 10주기가 되어가면서 10주기에 제가 페북에 썼습니다. 10주기에 10주기 세월호 기사 쓰지 마라고 기자들 그날 전원 구조했다고 기사 그 기자들이 무슨 명목으로 10주기 기억한다는 기사를 쓰겠냐고 10주기 되면 10주기 기억이라는 기사 온 언론에서 다 쓸 겁니다.
아마 그것도 정말 그 희생자들한테 너무나 못할 짓입니다. 진상규명도 못한 주제에 우리가 그 기사 내려고 노력하는 것도 아무것도 못했으면 그냥 가만히 있는 게 차라리 낫습니다.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정말 이 말을 정말 믿고 말씀드립니다. 이상입니다."
** 세번째 발언. 예수살기의 백창욱 목사님.
"요즘 정치의 화두는 트렌드는 민생인가봐요. 먹고 사는 문제 그게 아주 양당의 다 이제 공통의 주제인 것 같은데 제가 이제 저는 성서를 늘 이렇게 견줘보는데 성서에 민생이라는 말이 한 글자도 없거든요.반대로 이런 말이 있어요. 이제 구약의 예언서가 있는데 이제 예언자 중에 대표적인 예언자로 이제 아모스라는 예언자가 있는데 이 사람은 뭐라고 얘기했냐면 오직 공법을 물같이 정의를 하수같이 흘리게 하라 이런 말을 했습니다. 공의, 정의 이 얘기를 했어요. 신약으로 넘어와서 예수님이 무슨 얘기를 했냐면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지 말라. 그래서 너희는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이런 말을 했어요.역시 이제 예수도 이제 정의 공의 의 이런 말이 그게 이제 우리가 가장 우선적으로 이제 취득해야 될 그런 가치다 이런 말을 했거든요.그때 1세기 민중은 지금 우리 민중보다 몇십 배도 못 살았어요.정말 하루하루 끼니가 아주 큰 화제였거든요. 그래서 주기도문에 이런 말이 있잖아요.날마다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이런 말이 하루하루 먹는 게 정말 큰 문제였어요. 지금 우리가 날마다 먹을 양식 걱정하세요? 그렇지않잖아요?근데 그 주기도문의 내용이 1세기 민중들 상황이기 때문에 그렇게 먹고 사는 게 그렇게 중요했던 그 1세기 민중들에게조차도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지 말라, 너희는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이런 얘기를 했어요. 아니나 다를까 총선 다음 날 우리 목요일 우리 아침 평화 행동하는데 여당 입장에서는 참패를 했고 야당 입장에서 압승을 했지만 우리 소성리 평화 행동은 그냥 여전히 계속하고 있고 거기서 부패 권력은 여전히 또 미제의 시다바리를 하고 있었어요. 도대체 달라진 게 뭐가 있어요? 민생만 잘하면 돼요??이게 너무나 참 정말 우리 현실과 안 맞다. 여러분 우리가 그렇게 민생이 중요합니까?우리 정의가 중요하잖아요. 세월호 진상 규명하는 게 민생의 문제예요? 진실 말하는 정의의 요구잖아요. 정의의 요구 우리가 사드 철거하라는 게 민생 문제입니까? 대한민국의 주권을 바로 세우자는, 미제의 종속에서 벗어나자는 그 자주의 문제 그러니까 오늘날의 정의가 우리에게 자주인 거죠.그렇죠? 저는 그 문익환 목사님이 이한열 열사 장례식 조사 영상을 오늘 다시 한 번 봤어요. 그분이 그 전날 감옥에서 나오셨더라고요. 문익환 목사님이 그 전날 감옥에서 나와가지고 처음에 이제 내가 올해가 70살인데 인생 살 만큼 살았는데 내가 21살 청년의 조사를 한다.그 자체가 너무나 아주 참 비극적인 상황이잖아요?그러고 나서 그 유명한 연설을 했어요. 기억나세요?26명의 열사 이름을 하나하나 이름 부르고 끝.
전태일 열사여! 장준하 열사여! 김세진 열사여! 이재호 열사여!이렇게 쭉 얘기하고 마지막에 이한열 열사여! 내려왔어요.그 힘이 엄청 났습니다. 여러분.. 그 열사들이 무슨 주장을 하고 자기 몸에 불을 질렀는지 아세요?왜 자기를 할복하고 뛰어내리는 지 아세요? 거기에 우리 먹고 살게 해달라고 얘기한 사람이 있습니까?한 예로 이재호 열사 주한미군 철수해라 그때도 이 구호를 했어요. 이렇게 우리가 느끼는 문제의식과 권력층이 느끼는 문제의식이 이렇게 달라요.우리는 참 지금 외로워요. 사실은 제가 지난번 집회 때 말했잖아요. 우리가 지금 여러분.. 지금 반국가 단체 집회하고 있는 거예요.아무도 여당도 야당도 우리를 알아주지 않는 사드 반대 집회에 내가 열정적으로 참여한 것도 아니고 그 단체에 소속된 것 자체가 비토 대상이 돼버렸다는 게 이게 얼마나 이게 기가 막힌 현실이에요.여러분 이런 속에서 우리가 있어요. 그렇다고 우리가 뭐 어떻게 하겠습니까? 방법이 있습니까? 그렇다고 그러면 네, 민생이 맞아요, 우리 같이 민생의 짝짝꿍해서 갑시다. 이렇게 해야 되겠습니까? 그렇지 않죠? 동학농민 전쟁.. 이 명칭을 얻는 데 100년이 걸렸대요.그때는 그냥 반란이었어요. 그냥 농민의 반란이었다고 그때는 그렇게 얘기했어요. 양반들 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그 동학 농민전쟁을 우러러 보잖아요?유명한 그 철학 이론들이 있는데 그 이론들이 그 당대에는 전혀 인정을 받지 못했더라고요. 그게 자기가 죽고 세월이 지나서 그 사람이 얘기한 게 정말 그게 맞구나 하고 다시 조명되면서 그 인류사를 흔드는 흔드는 그런 중요한 철학 이론이 됐더라고요.여러분, 우리가 이렇게 좀 고군분투하는 상황에 있지만 위축되지 맙시다.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아모스 예언자가 정의를 오직 정의를 하수같이 흐르게 하라고 너희는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고.네. 민생은 정치가들이 책임진다고 그랬으니까 거기에 맡기고 우리는 그들이 돌아보지 않는 이 미제에 종속된 우리 현실을 타파하는 일에 우리가 더 앞장서야 하지 않겠어요.그것이 우리나라를 진정으로 주권국가로 세우는 독립 국가로 세우는 자주국가로 세우는 그런 길목이라고 저는 믿습니다.함께 그 길에 우리가 마주해서 마주할 때까지 함께 나갑시다. 투쟁~!!!"
** 사회자 마무리 발언 :
" 오늘도 이렇게 자리를 함께 해주신 여러분 모두에게 감사드립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편안하시기 바랍니다. 다음주에 또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