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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량함은 나약한게 아니다.
2024년 5월 4일
글/ 미국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젊은 수련생으로 현재 이공계 대학교 3학년에 재학 중입니다. 저와 어머니는 2018년부터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수련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저는 책 읽기를 좋아했고, 선량함과 고상한 도덕에 관한 많은 이야기들을 읽었습니다. 이런 이야기들은 항상 제가 도덕적으로 고상하고 존경받는 사람이 되라고 격려해주었습니다. 그러나 자라면서 오늘날 사회의 치열한 환경 속에서 고상한 도덕 수준을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깨달았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개인의 이익을 위해 싸우고 서로 속이는 일이 다반사였습니다. 저는 좋은 사람이 되기가 너무 어렵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지나치게 선량하면 오히려 불리할 뿐이며, 자신의 이익을 현명하게 지켜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선량한 본성을 잃고 싶지 않았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저는 자신이 나약하다고 느꼈습니다.
2018년, 저와 어머니는 다행히도 파룬따파를 만나 수련을 시작했습니다. 대법의 강대한 힘 아래 우리의 심신에는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사부님의 가르침은 왜 우리가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진정한 좋은 사람이 무엇인지 이해하도록 도와주셨습니다. 마치 제 인생의 길을 밝혀주는 등대를 찾은 것 같았습니다.
우주의 특성 진선인(真·善·忍)의 법리를 따르고 제 심성을 높일 때, 저는 정말 마음이 평화롭고 행복했습니다.
제 심성이 높아짐에 따라 건강 상태 또한 개선됐습니다. 호흡기 감염과 기타 제게 고통을 주고 많은 의료비를 들였던 질병들이 약 없이 낫게 됐습니다.
제 도덕 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대법 사부님께서는 제 지혜를 열어주셔서 삶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맑은 시야와 평화로운 마음으로 바라보고 대할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법을 배우고 심성을 수련하는 과정에서 대법의 법리는 진정한 좋은 사람이 무엇인지 이해하도록 도와주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다른 사람들은 제가 행실이 바르고 부지런히 공부하는 아이라고 칭찬했습니다. 저는 어른들을 기쁘게 하기 위해 어떻게 착한 아이가 되어야 하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자라면서 저는 항상 다른 사람들을 잘 대하고 도와줌으로써 그들에게 행복을 가져다주기를 바랐습니다. 저는 스스로를 충분히 좋은 사람이라고 여기며 자부심을 느꼈습니다. 수련을 몇 년간 한 후에도 여전히 이런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당신들 이전의 본성(本性)은 위아위사(爲我爲私)의 기초 위에 세워진 것이다. 당신들이 앞으로 일을 함에 먼저 남을 생각해야 하고 무사무아(無私無我), 선타후아(先他後我)의 정각(正覺)으로 수련 성취해야 한다.”(정진요지-불성무루)
사부님께서는 우리가 어떤 일을 할 때 먼저 다른 사람을 생각하고, 반드시 ‘무사무아(無私無我)’의 경지에 도달해야 한다고 요구하셨습니다.
저는 여전히 일을 할 때 매우 강한 이기적인 심리를 가지고 있으며, 거의 다른 사람의 이익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후 저는 어떤 일을 할 때 먼저 다른 사람을 위해 생각하도록 더욱 주의를 기울였습니다. 제가 그렇게 하자 제 마음가짐이 더 좋아지고 일의 효과도 더 좋아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이런 변화는 겉으로 드러나는 것일 뿐, 내면 깊은 잠재의식 속에는 여전히 제가 접근하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는 것 같았습니다. 이런 깊이 숨겨진 것들의 외적 표현은 냉담함과 어려움을 두려워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저는 먼저 다른 사람을 생각하지 않았고 해결해야 할 일이 생겼을 때만 그들을 고려했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친구와 친척들이 저와 중요한 인연을 맺고 있으며, 모든 생명이 대법의 진상을 알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는 보통 그들과 연락하는 것에 큰 신경을 쓰지 않았고, 그들과 거의 연락하거나 방문하지 않아서 많은 관계가 점점 소원해졌습니다.
저는 여러 번 후회했고 이 방면의 집착을 찾으려 노력했습니다. 저는 그것들이 안일함, 고통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미루는 마음임을 보았습니다.
비록 오랫동안 이런 집착심을 보고 그것들을 제거하는 정념을 냈지만 여전히 제 상태는 오르내리며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2023년 중반, 저는 현지 법공부 모임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고 우리는 함께 법을 배우고 서로 도와 법으로 직면한 문제를 바라보았습니다.
수련생들과 교류하는 과정에서 어느 날 갑자기 제가 여전히 뿌리 깊은 집착이 있으며, 그것에 통제되는 것에 익숙해져 자각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행복을 추구하고 고통을 두려워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저에게 있어서 고립되고, 미움받고,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것은 극도로 괴로운 고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좋은 인상을 남기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한 모든 선행은 진실하고 진정으로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칭찬받고 남에게 거절당하는 고통을 피하려는 이기적인 목적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계속해서 다른 사람을 피동적으로 고려하는 상태에 있었던 이유였습니다.
비록 마침내 이 이기적인 집착을 보았지만 그것을 제거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더 주도적으로 다른 사람을 관찰하고 배려하려고 노력했지만, 때로는 여전히 마지못해 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제가 한 일이 다른 사람에게 진정으로 이롭지만 그들을 화나게 할 수 있을 때, 저는 여전히 직면하기를 꺼려했습니다.
어느 날, 법공부 모임의 한 수련생이 이렇게 교류했습니다. “때로는 우리가 어떤 일을 완전히 다른 사람을 위해 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곤경에 처했을 때 당신이 그들을 전심으로 도왔지만 아무런 보답도 바라지 않았는데, 그들이 은혜를 저버리고 당신을 배신했다면 당신의 마음은 어떨까요? 만약 당신의 마음이 움직였다면 분명 당신은 완전히 그들을 위해 한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당신이 진정으로 그들을 위해 한 것이라면 그들이 당신을 어떻게 대하든 당신은 행복하고 만족할 것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완전히 상대를 위한 것이 아니라면 분명 이기적인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들은 모두 나쁜 집착이며 다른 사람을 해치게 됩니다.”
저는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나는 일할 때 완전히 다른 사람을 위했는가?’ 그 답은 ‘아니오’였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여전히 다른 사람들이 저에게 잘 대해주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이기심이며 자신을 보호하려는 마음, 타인에게 칭찬받는 즐거움과 편안함을 추구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이기적이고 나쁜 집착을 인식했지만 저는 여전히 그것들을 버릴 수 없었습니다.
수련생은 제가 아직 그 집착들을 버릴 ‘합리적인 이유’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는 제가 그 집착들이 저를 통제해 다른 사람을 이용하고 해치는지를 깨닫지 못했기에, 그 집착들이 저에게 가져다주는 이익을 끊어내려는 충분한 동력이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서 물질적 이익을 기대하지 않고, 그들이 나에게 무언가를 갚아줄 필요도 없어. 나는 그저 그들이 나에게 미소 짓기를 바랄 뿐이야. 결국 나는 그들에게서 어떤 것도 얻지 않았잖아. 그럼 내가 어떻게 그들을 이용했다는 거지?’
저는 갑자기 제가 늘 다른 사람들이 저를 좋아하기를 바라는 것이 사실 다른 사람들에게 심각한 해를 끼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왜 그렇게 말할까요? 제가 다른 사람들의 호감을 얻고 싶어 했기에, 저는 항상 그들이 원하는 일을 하고 그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하며, 그들이 거절하는 일은 피하려 했습니다.
비록 그 일들이 그들의 도덕 향상에 도움이 되는 좋은 일이라고 할지라도 말이죠. (예를 들어 신과 부처, 선악에는 보응이 있다는 것, 인과응보 등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
그래서 저는 그들의 집착과 좋지 않은 관념들을 조장했고, 그들 내면의 선함과 불성(佛性)을 일깨우지 못했으며, 그들의 도덕 수준이 우주의 특성에서 점점 더 멀어지게 했고, 심지어 파멸의 경계에 점점 더 가까워지게 했습니다.
이는 제가 오로지 자신의 안전과 행복에만 신경을 썼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도덕이 떨어질 때 그들이 처한 위험한 상황에 대해 저는 전혀 무감각했습니다.
저는 그들이 도덕을 다시 높여 이 말법시기에 구원받을 기회를 갖도록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기대하신 것을 하지 못했고, 세상 사람들의 진정한 자아가 구도되기를 기다리는 것도 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제가 남에게 해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람들에게 그토록 심각한 해를 끼친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제 저는 그 집착들을 버릴 동력이 생겼고, 더 이상 그것들이 저를 통제하고 다른 사람들을 해치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입니다.
비록 다른 사람들의 반대나 비방을 받을 때마다 마음 깊이 상처를 받지만, 저는 여전히 고통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버려야만 진정으로 다른 사람들을 위해 진심으로 생각할 수 있고, 점차 다른 사람들의 반대와 비방 앞에서 웃으면서 마주할 수 있으며, 자비로 그들을 대할 수 있고,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수 있을 것입니다.
현 단계 수련 중의 이런 인식을 갖고 사부님께서는 저의 정념(正念)을 강화해주셨고, 저는 이전에 다른 사람들 앞에서 느꼈던 두려움이 줄어든 것을 느꼈습니다.
지금은 그런 상황에 직면하면 더 이상 예전처럼 강한 두려움에 통제되지 않고 점차 제 행동을 통제할 수 있게 됐습니다.
맺음말
진선인(真·善·忍)의 빛이 제 마음을 비추었습니다. 사부님과 대법은 저를 한 걸음 한 걸음 이기적이고 자신만 생각하는 아이에서 진정으로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다른 사람을 위해 생각하는 사람으로 변화시켜 주셨습니다.
이상은 제 현재 층차에서의 이해입니다. 만약 법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지적해주시길 바랍니다.
법륜대법(파룬궁)은 중국 길림성 출신인 李洪志 대사께서 1992년부터 중국에서 전하기 시작한 심신수련법으로, 몸과 마음의 정화효과가 탁월하여 현재 전세계 100여개 국가에 전파되어 있습니다. 현대인들은 과거의 사람들보다 業이 많아 대부분 몸에 질병이 많기에 몸은 등한시하고 마음만 닦는 방법으론 병든 사람들을 해탈시킬 수가 없는 실정입니다. 그래서 이홍지 사부님은 몸과 마음을 함께 닦는 성명쌍수의 大法으로 세계 각지의 사람들을 제도하고 있습니다. 전법륜은 법륜대법의 수련지침서로 끝까지 여러번 읽어보시면 인생을 살면서 꼭 알고 싶었던 진리에 대한 많은 의문점들을 해결하실 수 있을 겁니다. 전법륜 책에는 진정한 나는 누구이며 왜 인간으로 태어나 고생하며 사는지, 우주 만물의 근원인 우주의 특성(우주의식, 우주 정신)은 무엇인지, 업력을 소멸하고 공덕을 쌓는 법, 수련과정 중에 나타나는 각종 문제점과 예방책, 제3의눈(천목), 숙명통, 빙의현상과 방언, 주화입마, 공중부양현상, 몽유병, 자심생마의 실체, 살생과 육식문제, 질병의 원인, 영감, 근기, 청정심 등 깨달음을 추구하는 수행자들이나 종교인들이 꼭 알아야 할 내용들이 담겨 있어 어떤 종교를 믿든, 어떤 수행을 하든 모두 지도적 작용이 있는 책입니다. 사람은 감각기관을 통해 후천적으로 보고 듣고 느끼고 경험하여 인식한 정보를 대뇌에 저장하게 되는데 이런 정보들이 자신의 몸과 마음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거짓말을 진실이라 믿고 살면 거짓말에 속아 나중에 낭패를 보는 것처럼 평소 우리가 무엇을 자주 보고 자주 듣는가가 아주 중요합니다. 우리가 야동을 보면 음욕이 일어나 음욕을 만족시키려 하듯이 나쁜 사람, 부정적인 기운과 좋지 않은 음식을 늘 가까이 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서서히 물이 들어 몸과 마음이 탁해집니다. 삼겹살 식당에 가면 누린내가 자연히 옷에 스며드는 것처럼 깨닫지 못한 거짓 선지자와 거짓말을 진리로 포장한 글, 좋지 않은 기운이 발산되는 책이나 부정적인 글, 탐욕과 분노와 악행을 일삼는 사람, 술, 담배, 마약, 해로운 가공식품같이 몸과 마음을 오염시키는 것들을 가까이 하면 보약 속에 든 비소처럼 자신을 서서히 해롭게 만들 것입니다. 컵 안에 든 흙탕물을 맑게 정화시키는 방법은 깨끗한 물을 계속 부어서 맑은 물로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옷이 더러우면 맑은 물에 들어가 씻어야 하듯이 우리의 몸과 마음도 청정하게 하려면 맑고 밝은 에너지를 지속적으로 받아서 탁하고 어두운 에너지를 몸 밖으로 배출시켜야 합니다. 그러므로 깨달음을 이루어 큰 지혜와 법력과 자비심을 고루 갖춘 대각자의 고차원 에너지가 발산되는 진실한 가르침이나 경전을 자주 보고, 마음을 고요히 안정시키고 평화롭게 하는 선정과 가급적 유해물질이 없는 순수한 식품을 적당히 먹고, 아울러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나쁜 일을 하지 않는 것이 곧 자신을 정화시키는 길입니다. 따라서 살아생전에 대각자와 正法을 인연하는 것은 우리에게 최고의 행운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만 마음가짐(욕심과 불신여부)과 업력의 크기에 따라 정화효과 또한 다르게 나타나니 단시간에 효과가 크지 않다고 실망하기 보다는 꾸준히 보고 정진하는게 바람직할 것입니다. 성자들이 이르길 사람으로 태어나기 어렵고 사람으로 태어나서도 대각자를 만나기는 더더욱 어렵고, 설령 대각자를 만나도 믿음을 내기가 어렵다고 하였습니다. 자신이 후천적으로 배우고 형성한 지식과 고정관념이 대각자의 가르침과 상충되면 사상이 혼란해져 믿음이 흔들리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자기가 가진 지식이나 관념이 과연 진실한 것인가를 먼저 성찰해보고 관념이 아닌 직관을 통해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지금 시중에는 깨달음을 내세워 돈벌이에 치중하는 수련단체들이 아주 많은데, 수련의 원리에 관한 체계적인 가르침도 없이 이런저런 수련법을 짜깁기해서 가르치는 곳이 많다 보니 수련자들에게 상기증, 빙의, 정신착란, 금전갈취 등의 각종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음에도 이를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무 곳이나 찾아가서 수련하다간 도리어 좋지 못한 결과가 초래될 수 있으며, 특히 스승이 가르친 법리대로 실천하지 않고 자기 맘대로 하다간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많은 게 수련의 세계이니 심신수련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전법륜 책을 꼼꼼히 읽어보시고 수련의 원리와 주의할 점 등을 먼저 정확히 파악하신 후에 수련하시길 바랍니다. 전법륜 보기 => https://www.dafamedia.or.kr/book/HTML/zf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