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장 오늘날의 전개 양상
권영화
과거의 사상가들이나 그들 이론의 영속적이고 명백한 의의를 판단하기란 무척 어렵다. 그러나 고대 희랍이나 18세기와 비교해서 현대의 발전에 어느 정도의 주목과 강조를 부여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일은 시대를 초월한 당당한 입장을 바라는 것으로서 의미 있는 일이다. 이 장에서는 미학에서 최근에 진행되고 있는 그들의 업적들을 주된 사상적 흐름이나 일반적 경향들로 분류할 것이다.
1. 크로체와 형이상학자들
20세기의 미학적 논의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미학자는 베네데토 크로체(Benedetto Croce, 1866~1952)이다. 그는 미적인 것에 근본적으로 새로운 개념을 가져 왔는데, 이 것은 두 가지 장점을 가지고 있다. 첫째, 미적 현상을 헤겔주의자로 인정될 만큼 상당히 관념론적인 관점에서 해석하였다. 둘째, 수많은 문제들을 포용한다고 주장하면서도 참신하고 단순한 예술철학이다. 그의 중심적 공식인 ‘직관=표현’이 심오한 통찰들을 결정한 것이 되었다.
크로체의 미학에 대한 정의는, 철학은 실재인 정신Mind 혹은 Spirit에 관한 탐구이다. 정신은 본질적으로 인식Knowing과 행위doing라는 두 가지 기본적 형태를 취하는 활동이다. 행위는 유용성이나 선으로 향할 수 있으며, 이것들은 ‘실천적 학문’에 의해서 탐구된다. 인식은 ‘직관적 지식’이나 ‘논리적 지식’을 목표로 한다. 논리적 지식의 학, 즉 개념의 학은 논리학이고, 직관적 지식의 학, 즉 심상images의 학은 미학이다. 직관은 의식 내에서 포착된 하나의 특수한 심상으로서, “객관화된” 인상이다. 또한 순수한 직관은 어떠한 개념작용 없이도 일어날 수 있다. 발생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직관이며 “모든 직관이나 재현은 또한 표현이기” 때문에 순수 감각은 의식 내에서 발생할 수 없다. 크로체의 직관에 대한 원칙은 “표현 속에서 스스로를 객관화하지 못하는 것은 직관이 아니며......감각이나 단순한 자연적 사실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 인식 과정에서 직관과 표현을 구별하기란 불가능하다. 하나는 다른 하나와 동시에 나타난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둘이 아니라 하나이기 때문이다.
크로체는 ‘직관=표현’이라는 명제를 특이한 방식으로 다루고 있다. 우리는 직관이기도 하고 표현이기도 한 동일한 심상을 고려해야 한다. 따라서 예술을 직관적 지식과 동일 시 하는 것, 예술은 곧 표현이라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심상을 가지고 있는 한, 모든 사람들은 다 예술가이다. 순수예술이야말로 직관-표현의 가장 고도로 발달된 형태인 것이다.
크로체의 직관이론과 예술론은 후기에 와서 중요한 변화를 겪었다. 첫 번째, 예술의 ‘서정적’성격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그는 직관이 언제나 하나의 정서이거나 감성적이라고 주장한다. “직관에 일관성과 통일성을 부여하는 것은 감정feeling,이다. 직관이란 그러한 것이어서 감정을 드러내며, 또한 감정에 근거해서 감정으로부터 나타날 수 있을 뿐이다“ 이렇게 해서 모든 예술은 정서의 표현이다. 크로체는 ‘서정적’이라는 용어를 빌어 와 이를 모든 예술에 일반화시킨다. 두 번째, 모든 직관과 표현이 개별적이고 개성적이긴 하지만, 그것의 형식으로 인해 보편화된다고 한다. 예술적 직관은 ‘서정적’일 뿐 아니라 ‘우주적cosmic'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초기의 이론들이 더 영향력을 행사하고 지속적으로 발전하였다.
베르그송은 직관이론에서 이를 ‘일종의 지적 공감’이라고 한다. 따라서 직관은 “무관심적이고 자의식적이며, 대상을 숙고하고 그것을 무한히 확장시킬 수 있는 본능”으로 정의 한다. 직관은 실재의 핵심 속으로 들어가 우리로 하여금 철학적 진리를 발견케 한다. 이러한 인식의 가능성을 ‘증명’해 주는 것이 바로 인간 속에 들어 있는 ‘미적 능력’이다. 그렇다면 추론적인 범주와 분석적인 성향을 갖는 지성으로서는 다가갈 수 없는 실재에게로 우리를 가까이 데리고 가는 것이 예술의 기능이다. 결국 크로체는 자신이 ‘반 형이상학자’라고 했지만 그의 ‘정신철학’은 형이상학이고 일종의 관념론이며, 그의 미학은 이 것의 두드러지고 핵심적이고 고유한 한 부분을 이루고 있다. 또한 베르그송의 미학 역시 정교하게 다듬어진 존재론적이고 인식론적 맥락에 의존하고 있다.
2. 산타야나와 듀우이
미학적 문제들에 대해 관심을 기울인 미국의 자연주의자는 죠지 산타야나(George Santayana, 1863~1952)이다. 그의 전반적인 사상은 ‘본질의 영역’은 존재자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물질의 특성과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정신의 영역’은 부수적인 것이며, 물질적 토대로부터 생겨나며 궁극적으로 그것에 묶여 있다. 그의 목표는 형이상학이 아니다. 그는 일종의 도덕주의자이지만 규율을 제정하는 도덕주의자가 아니라 어떻게 살 것인가를 가르치는 도덕주의자이다. 산타야나에 의하면 예술경험은 쾌이며 긍정적이고 고유한 가치이다. 이 쾌는 다른 감각들과 마찬가지로 정신에 의해 “사물의 성질”으로 변형될 수 있다. 또한 “미는 어떤 사물의 특성으로 간주되는 쾌이다” 즉 “객관화된 쾌”이다. 즉 그는 단순히 정신의 일반적인 경향이나 능력(보편적인 경향)에만 호소하고 있다. 그러나 몇십년 후 그는 “이제 ‘객관화된 쾌’라는 문구를 사용치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에 대한 직관이 일어난다는 단순한 이유만으로 한 용어가 주관적으로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쾌는 색깔처럼 주관적이지도 객관적이지도 않으며 중성적이다.
산타야나는 미의 종류를 세 가지 계층으로 나누는데, ‘재료’의 미(색깔과 음의 쾌), ‘형식’의 미(대칭과 비례에 대한 쾌), 그리고 ‘표현’의 미가 그것이다. 그는 어떤 지각 대상에 의해 연상된 감정들의 “억눌린 여운”이 기억 속에 계속 머뭇거리고 있을 때, 그러나 그러다가 “우리의 현재 반응을 변화시킴으로써 우리의 관심이 집중되어 있는 그 심상을 어렴풋이 채색할 때” 표현이 생겨난다고 한다.
산타야나는 예술의 정당화에서 예술은 그렇게 해가 될 수 없으며 설혹 해를 끼친다고 하더라도 아마 미약하고 일시적일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무해가 예술의 유일한 덕목은 아니다. 왜냐하면 예술이 그 내재적 속성상 즐거운 것인 한, 예술은 삶 자체의 본보기가 되기 때문이다. 완전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고 합리적으로 조절된 쾌의 한 경우로서의 “예술 일반은 합리적 삶의 시연이다” 즉 그것은 이성의 삶의 한 구성요소일 뿐 아니라 모델이다.
죤 듀이(John Dewey, 1859~1952)는 기본적인 결정에 있어서 산타야나와 동일한 노선에 서 있다. 『경험과 자연Experience and Nature』에서 듀이는 이 결정에 대해 “실질적으로 두 가지 대안만이 있다. 즉 예술은 지적취사선택과 정렬을 통해 자연 사건의 자연적 경향들을 연장하는 것이든가, 아니면 예술은 그 명칭이 무엇으로 주어지든 간에 인간의 가슴 내에 전적으로 존재하는 그 어떤 것으로부터 생겨나서 자연에 특별하게 추가되는 것이다”라고 한다. 이 것은 듀이의 ‘경험적 자연주의 또는 자연주의적 경험론’의 입장에서 예술의 조망을 매우 정확하고도 압축적으로 진술하고 있다. 듀이의 기본범주인 ‘경험’이 유기체와 환경간의 상호작용으로 파악되며, 이를 인간의 ‘행함과 겪음doing and undergoing'이라 말한다. 경험은 예리하게 여러가닥들로 나누어지며, 듀이는 이것들을 ’역사들‘이라 부른다. 미적 경험은 다른 유형의 경험과는 달리 “사적이고 심리적인 어떤 것”이 아니다.
듀이는 지적통제라는 목적 때문에 분석적으로 분리되었던 수단과 목적을 경험 속으로 함께 끌어 들인다. 우리는 단지 경험을 가질 뿐 아니라, ‘하나의 경험an experience'을 즉 일반적인 경험의 느슨한 흐름과는 달리 부각되는 하나의 경험적 전체를 가끔 갖는다. 바로 이 개념이 듀이의 미학에 근본이 되고 있는데, 하나의 경험을 만들어내는 경험의 특색들을 지적해 내기 위해 대단히 노력한다. (1)완전성completeness (2)내적 추진력internal impetus (3)연속성continuity (4) 뚜렷한 분절articulation (5)강렬도와 의미의 축적과 증강 (6) 지배적 성질이 있다.
듀이 미학의 표현이론에 대해 알아보자. 표현한다는 것은 단순히 정서를 발산한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두 가지 점에서 평범한 방출과 구별된다. 첫째, 그것은 결과에 대한 의식, 즉 의식적인 의미파악이 수반되어 이루어진다. 둘째, 그것은 매체를 가진다. 그래서 정서가 간접적으로 흘러나오게 된다. “재료가 매체로서 사용되는 표현과 예술이 존재하게 된다” 두 개의 미묘한 개념이 여기에 관련되어 있다. 하나는 매체개념이다. 또 하나는 정서가 맡는 역할에 대한 그의 이론이다. 모든 표현 속에는 정서가 있는바, 그것은 일시적으로 봉쇄되기도 하고 통제되기도 한다. 실상 무엇이 표현되었는가를 우리에게 말해 주는 것은 대상이므로 듀이의 관심은 과정보다는 산물에 있다. 물론 그는 이 둘을 분리시킬 수 없다고 주장하기는 하지만 듀이는 ‘재현representation'이 의미하는 바를 물으면서, 객관적 의미에서의 표현을 분석하기 시작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표현적이라면, 어떤 의미에서 그것은 재현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듀이는 모든 예술 속에 세계에 대한 어떤 지시reference가 들어 있다고 주장한다.
듀이는 예술이 문화의 관점에서 볼 때, 언어와 문화의 장벽마저 가로질러 인간과 인간간의 인간과 인간간의 의사소통을 촉진시킬 수 있는 능력 때문에 인간을 교화하는 중요한 힘 들 중의 하나이다. 개인의 관점에서, 예술의 가치를 그것의 “신선함”에서 자연적 경험 가운데서 ‘이상적인’가능성들에 대한 감각을 일깨워주는 데서 발견한다. “선입견을 제거하고, 눈을 가리는 딱지를 없애버라고, 습관과 관례에서 생긴 장막을 찢어 없애고, 지각능력을 완전하게 해주는” 그 힘 때문에 예술은 최고의 도덕적 가치를 갖는다. 그리고 훨씬 심원한 능력-“우리가 하나의 전체로서 존재한다는 느낌과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 모든 것을 포괄하고 있는 더 큰 전체에 우리가 속해 있다는 느낌을 불러일으키고 강조하는 능력”-때문에 예술은 종교적 특성을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