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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받지 못하는 죄는 결코 회개하지 않는 죄이다
“내가 어디에 있든지, 내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 그분은 나를 보고 계십니다.” 이 사실을 언제나 잊지 말라. 우리의 행동의 가장 적은 부분도, “내가 네 행위를 아노”(계3:8)라고 말씀하시는 분의 눈에서 숨길 수는 없다. 모든 사람의 마음속까지, 하나님의 살피시는 눈앞에 펼쳐져 있다. 모든 행동, 모든 목적, 모든 말은 마치 온 우주에서, 오직 한 사람만 있는 것처럼 분명히 드러나고, 하나님은 그 사람의 행위를 철저하게 관찰하고 살피신다. 그렇다면 우리가 바로 율법을 주신 분의 눈앞에서, 그분의 율법 중 한 조항이라도 범하거나, 속임이나 주장이나 거짓말로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하도록 가르치겠는가?
우리가 대재판관의 바로 면전에서, 그 선고를 무릅쓸 것인가? 여기에는 가장 악한인간의 주제넘음을 초월(超越:악함의 한계를 뛰어넘게)하는 것처럼 보이는, 철면피(鐵面皮:철판얼굴같이 뻔뻔하고 염치없는 자)가 있다. 심판의 날에 내가 만날 것으로 기대하는 나의 형제여, 나는 그대가 최근의 기만(欺瞞:기망-속이고 또 속여넘김)에 대하여 변명할 말이 없을 것으로 안다.(5T 627.2) 아, 내가 그대 앞에 또한 나의 형제가 된 다른 사람들 앞에, 하나님이 언제나 임재 해 계심을 느낄 필요를, 제시해 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된다면 그대의 도덕적·신앙적 입장이 백성들 앞에서 전혀 달라지게 해 줄, 그런 자제(自制:절제-감정욕망 억제)가 그대의 생애에 나타날 것이다. 우리는 더 높은 표준에 도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각 사람은, 나가고 들어갈 때, 모든 사업거래를 할 때, 어느 때나 어느 곳에서나 하나님과 거룩한 천사들의 감시아래 움직이고 있다는 것과, 각 사람의 행위를 영원히 심판하실 분께서 동행하시고, 그의 모든 행동을 살피시고 그의 모든 동기를 조사하신다는 것을, 의식하고 행동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의식과 그분의 교훈을 어기는 위험 의식이, 그의 전 존재를 지배하게 될 것이다. 사람에게 어떤 변화가 나타나고, 사회에 어떤 변화가 생기고, 얼마나 많은 악이 예방되겠는가! 모든 계층의 사람들에게서, 각 시대를 통하여, “나는 이 큰 죄악을 범하여 하나님께 득죄할 수 없다.”[‘다니엘’의 믿음의 신뢰]는 부르짖음이 있게 될 것이다.(5T 628.1)
누가 문들을 통하여 성으로 들어갈 것인가?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저희가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으려 함이로다.”(계22:14). 그대는 나와 마찬가지로 이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안다. 나는 그대의 영혼과 그대의 아내의 영혼과, 그대의 무구(無垢:더럽혀지지 아니)한 자녀들의 영혼을 사랑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지금 그대에게 편지를 쓰고 있다. 그대의 발이 걸어가고 있는 길을 주의 깊이 생각하라. 나는 말할 것이 더 많이 있지만 지금은 하지 않겠다. 나에게 회답을 해 주기 바란다. 내가 요청한바 꿈에 대한 편지를 내게 보내 달라.(5T 628.2)
죄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 사랑하는 형제에게 /나는 그대의 편지에서, 그대가 불신상태에 빠져서 그대의 상황이, 희망이 있는지 의심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리스도의 사신으로서,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시42:5,11)고 말하는 바이다. 그분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3:16). 그대는 이 귀중한 약속에서 용기를 가질 수 없는가? 사단은 여러 번, 그대가 죄인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그대는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魁首:악의 우두머리)니라”(딤전1:15)고 대답할 수 있다.(5T 629.1)
예수님은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눅5:32)고 말씀하셨다. 다시 그분은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눅15:7)고 말씀하셨다. 그대는 이 귀중한 말씀들을, 믿지 않겠는가? 이 말씀들을 그대의 마음에, 받아들이지 않겠는가?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사55:6,7).
이 약속은 넓고 깊고 완전하지 않는가? 그대는 더욱 많이 구할 수 있는가? 그대는 주님께서 바로 이 곳에서 그대를 위하여 원수를 대항하여, 깃발을 세우도록 허락[허용 순종]하겠는가? 사단은 복스러운 하나님의 약속을, 빼앗아 버리고자 노리고 있다. 그는 모든 희망의 희미한 빛과 모든 빛의 광선을, 심령에서 빼앗아 버리고자 한다. 그러나 그대는 그가 그렇게 하도록, 허용[악한세력에 합세]해서는 안 된다. 믿음을 활용하고,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이 의심들을 대항하여 싸우고, 약속들에 대하여 정통(正統:빗나가지 않도록)해지라.(5T 629.2)
“가령 내가 의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살리라 하였다 하자. 그가 그 의를 스스로 믿고 죄악을 행하면, 그 모든 의로운 행위가 하나도 기억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그 지은 죄악 중 곧 그 중에서 죽으리라. 가령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죽으리라 하였다 하자 그가 돌이켜 자기의 죄에서 떠나서, 법과 의대로 행하여[회개순종] ... 다시는 죄악을 짓지 아니하면, 그가 정녕 살고 죽지 않을지라. 그의 본래 범한 모든 죄가 기억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정녕 살리라. 이는 법과 의를 행하였음이니라.”(겔33:13-16).(5T 629.3)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 일 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여호와께서 천 천의 수양이나 만만의 강수(江水:강물)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를 인하여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6:6-8). 사단이 그대에게 와서 모든 희망을 포기하게 하고자 유혹하거든, 그에게 이 말씀들을 가리켜 주라. ‘다윗’처럼 기도하라.
“여호와여, 내 소시(少時:젊은 시절)의 죄와 허물을 기억하지 마시고,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나를 기억하시되, 주의 선하심을 인하여 하옵소서. 여호와는 선하시고 정직하시니, 그러므로 그 도[진리]로 죄인을 교훈 하시리로다. 온유한자를 공의로 지도하심이여, 온유한 자에게 그 도를 가르치시리로다.”(시25:7-9).(5T 630.1)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너희가 거절하여 배반하면 칼에 삼키 우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사1:18-20).
확실하고 분명하며, 풍부하고 완전한 약속들이 여기에 있다. 그러나 그것들은 모두 조건적이다. 그대가 만일 그 조건을 충족시키면, 주님께 그분의 말씀을 이루어 주시도록 신뢰할 수 있지 않은가? 이 복스러운 약속들을 믿음의 골격으로 삼아, 기억의 창고에 저장하도록 하라. 그것들 중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게 하라.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신 모든 것을 이루실 것이다.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히10:23)다. (5T 630.2) 그대가 해야 할 일은, 그대 앞에 분명히 제시(提示:말과 글로 드러냄)되어 있다.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케 하여, 내 목전[눈앞]에서 너희 악업을 버리며 악행을 그치고, 선행을 배우며 공의를 구하며 학대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사1:16,17). “전당 물을 도로 주며 억탈 물을 돌려보내고, 생명의 율례(律例:법도)를 준행하여 다시는 죄악을 짓지 아니하는, 그가 정녕살고 죽지 않을지라.” 주님께서는 “그래도 네 민족은 말하기를 주의 길이 공평치 않다 하는 도다.”(겔33:15,17)라고 말씀하신다. “이스라엘 족속아 들을지어다. 내 길이 어찌 공평치 아니하냐. 너희 길이 공평치 않은 것이 아니냐.”(겔18:25).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어찌 악인의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서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국문(鞠問:임금이 중죄인을 신문-심문)할지라. 너희는 돌이켜 회개하고 모든 죄에서 떠날지어다. 그리한즉 죄악이 너희를 패망케 아니하리라. 너희는 범한 모든 죄악을 버리고,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할지어다.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어찌하여 죽고자 하느냐.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죽는 자의 죽는 것은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노니, 너희는 스스로 돌이키고 살지니라.”(겔18:23,30-32).(5T 630.3)
여기서 주님께서는 죄인의 구원에 관한, 그분의 뜻을 분명히 나타내셨다. 주님께서 그들을 구원해 주실 것인지에 대한, 의심과 불신을 나타냄으로 많은 사람들이 취하는 태도는, 하나님의 품성에 대한 불신용에 해당된다. 하나님이 가혹하시다고 불평하는 자들은, “실제적으로 주의 길이 공평치 않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너희 길이 공평치 않은 것이 아니냐.’(겔18:25) 너희가 회개하지 않고 너희 죄에서 떠나지 않는 데, 너희의 허물을 내가 용서하겠느냐?”라는 말씀으로, 그 비난을 죄인에게 분명히 되돌려 버리신다. 하나님의 품성은, 내가 그대 앞에 제시한 말씀을 통하여 충분히 옹호(擁護:변호,비호)된다.
주님께서는 죄인이 회개하고, 그의 죄를 버림으로 품성의 완성을 위하여 애쓰는 그의 노력과, 하나님이 협력하실 수 있게 될 때 그를 받으실 것이다. 그 약속들은 예[yes]이면서, 동시에 아니요[no]가 아니다. 만일 사람이 조건에 따르기만 하면 그 약속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예[yes]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amen:진심으로, 진정으로, 참으로와 기원과 순종의 뜻)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고후1:20)된다. 하나님의 아들을 세상의 죄를 위하여 내주신 전반적인 목적은, 사람을 구원하시되 범죄와 불의를 통해서가 아니고, 죄를 버리고 그의 품성의 옷을 씻고,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희게 함으로 구원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분이 미워하시는 불쾌한 것을, 사람에게서 제거하고자 하신다. 그러나 그 사업에 있어서는, 사람이 하나님과 협력해야 한다. 죄는 버려지고 증오[미움과 제거]되어야 하며, 그리스도의 의는 믿음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과 인간은 협력하게 될 것이다.(5T 631.1) 우리는 의심과 불신이 들어오도록 용납하고, 실망의 태도로써 하나님께 대하여 불평하고, 그분을 세상에 잘못 나타내지 않도록 조심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스스로를 의심하는 사단의 편에 두게 된다.
사단은 이렇게 말한다. “불쌍한 영혼들이여 나는 죄에 눌려, 신음하고 있는 그대들을 동정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동정심이 없다. 그대들은 무엇인가 희망의 광선을 바라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대들을 멸망하도록 버려두고, 그대들의 불행을 보고 만족해한다.” 이것은 무서운 속임과 기만이다. 유혹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말고 이렇게 말하라.
“예수님은 나를 살리기 위하여 돌아가셨다. 그분은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가 멸망당하기를 원치 않으신다. 나에게는 자비로운, 하늘 아버지가 계신다. 비록 내가 그분의 사랑을 남용[방종의 불순종]하고, 자비롭게도 그분께서 내게 주신 축복들을 낭비해 왔을지라도, 나는 일어나 아버지께로 가서 ‘아버지여 내가...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눅15:18,19)라고 말하겠다.”
[집 떠난 탕자] 비유(比喩:비슷한 예)는 그 방황 자[죄지은 자]가 어떻게 영접을 받을 것인지 그대에게 말해 준다. “아직도 상거(相距:서로가 떨어져 있는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눅15:20). 이와 같이 성경은 하나님이 회개하고 돌아오는 죄인을, 즐겨 영접해 주신다는 것을 알려 준다.(5T 632.1)
비록 이 비유가 다정다감하고 감동적일지라도,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무한한 자비를 표현하기에는 부족하다. 주님께서는 선지자를 통하여, “내가 무궁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는 고로, 인자(仁慈:어진자비)함으로 너를 인도하였다”(렘31:3)고 주장하신다. 죄인이 아버지의 집을 멀리 떠나 낯선 나라에서, 그의 재산을 낭비하고 있는 동안에도, 아버지의 마음은 그를 그리워하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로 돌아가고자 하는 열망이 심령 속에서 생길 때마다, 그것은 방황 자를 그의 아버지의 사랑의 마음으로 호소하고, 간구(懇求:간절히 구함)하고, 이끌고 있는 그분의 영[성령]의 부드러운 간원(懇願:간절히 원함)에 불과하다.(5T 632.2)
그대 앞에 성경의 풍성한 약속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대는 여전히 의심할 수 있겠는가?그대는 가련한 죄인이 돌아오고자 갈망하고, 그의 죄를 버리고자 희구(希求:바라고 구함)하지만 주님께서 회개로써 그분의 발 앞에, 나오지 못하도록 엄격히 금하고 계신다고 믿을 수 있겠는가? 그런 생각을 버려라. 그런 생각보다,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는 것은 없다. 우리의 하늘 아버지께 대하여 그런 생각을 품는 것보다, 그 자신의 영혼을 해칠 수 있는 것은 없다. 우리의 전반적인 영적생애는, 하나님께 대한 그런 관념 때문에 절망의 상태에 빠질 것이다. 그것들은 하나님을 찾거나 그분을 섬기고자 하는, 모든 노력을 좌절시킨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을 우리에게 선고를 내리고자 기다리고 있는, 재판관으로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분은 죄를 미워하신다. 그러나 죄인들에 대한 사랑 때문에 그분은 그리스도의 인성[인간적 성품]을 통하여, 그분 자신을 주시고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아, 영광의 나라에서 영원한 축복을 받게 하셨다.(5T 633.1) 주님께서는, 사단이 악랄하게도 그릇되게 나타낸, 그분의 품성을 친히 선포하신다.
그분은, “여호와 로라. 여호와 로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 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로라. 인자(仁慈:어진 사랑과 자비)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나”(출34:6,7)라고 말씀하심으로, 그대 자신을 드러내셨다. 그분께서 우리에 대한 그분의 사랑을 나타내기 위하여 택하신 말보다, 더 강하고 더 부드러운 언어를 사용할 수 있었겠는가? 그분은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사49:15)고 주장하신다.(5T 633.2)
구속의 계획에는, “긍휼과 진리가 같이 만나고 의와 화평이 서로 입 맞추었”( 85:10)다. 온전히 지혜로우시고 온전히 능하신 하나님, 가까이 갈 수 없는 빛 가운데 거하시는 분께서는, 사랑이 충만하시고 자비가 넘치신다. 그러므로 의심하며 떨고 있는 자들이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예수님께서 살아 계셔서, 우리를 위하여 중보하시기 때문이다. 그분의 사랑하는 아들을 선물로 주신 데 대하여 그리고, 우리를 위하여 헛되이 돌아가지 않으신 데 대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5T 633.3)
형제여 그대는 이 세상이나 장차 올 세상에서, 용서받지 못하는 죄를 지었는지에 대하여 질문한다. 이것이 그런 경우라는 증거를, 나는 전혀 보지 못하고 있다고 대답하는 바이다.
무엇이 성령을 거역하는 죄가 되는가? 그것은 고의적으로 성령의 역사를, 사단에게로 돌리는 것이다. 예를 들면, 한 사람이 하나님의 영의 특별한 역사[부르심의 회개]를 목격한다고 생각해 보자. 그는 그 일이 성경과 일치된다는 것과, 성령께서 그것이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그의 마음에 증거 해 주는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후에 그는 유혹을 받아 타락한다. 교만, 자부심, 그 밖의 다른 악한 특성이 그를 지배한다. 그리하여 그 역사의 거룩한 특성에 대한 모든 증거를 거절하고, 그는 그가 이전에 성령의 능력으로 인정했던 것이, 사단의 능력이었다고 주장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영[성령]의 매개를 통해서 인간의 마음에 역사하신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고의적으로 성령을 거역하고 그것이 사단에게서 온 것이라고 주장하면, 하나님과의 교통의 통로를 끊어 버리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즐겨 그들에게 주신 증거를 부인함으로써, 그들은 그들의 마음속에 비취고 있던 빛을 꺼 버린다. 그 결과로 그들은 어둠에 묻히게 된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말씀, 곧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하겠느뇨.”(마6:23)라고 하신 말씀이 입증[증명]된다. 이 죄를 범해 온 사람들이, 한동안은 하나님의 자녀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품성을 나타낼 환경을 만나서, 그들이 어떤 형태의 정신에 속한 사람인지를 보이게 될 때, 그들이 원수의 땅에 있다는 것, 검은 깃발아래 서 있다는 것이 발견될 것이다.(5T 634.1) 나의 형제여, 성령께서는 오늘 그대를 초청하신다. 온 마음을 다하여 예수님께로 오라. 그대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 자복(自服:스스로 고백하고 순종하며 복종)하고, 모든 죄악을 버려라. 그리하면 그대는 그분의 모든 약속을, 그대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나를 앙망(仰望:우러러 바라보게)하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사45:22)는 말씀은 그분의 은혜로운 초청[부르심의 은혜]이다.(5T 634.2)
무서운 하나님의 분노의 책망이, 그분께 불 충성하기로 고집해 온 모든 자들에게 내릴 날이 올 것이다. 이 날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율법을 범한 자들에게, 의로써 말씀하시고 무서운 일을 하시지 않을 수 없는 때가 될 것이다. 그러나 그대는 하나님의 분노 아래 놓일 자들 사이에, 속할 필요가 없다. 지금은 하나님의 구원의 날이다. ‘갈바리’의 십자가에서 비취는 빛은 지금 분명하고 밝은 빛으로, 빛나고 있으며 우리의 죄를 위한 희생제물이 되신, 예수님을 드러내 주고 있다. 내가 그대 앞에 제시해 준 약속들을 읽을 때, 그것들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사랑과 자비임을 기억하라.
무한한 사랑을 가진 위대한 마음은 끝없는 긍휼(矜恤:불쌍히 여기심)로써 죄인을 이끌고[부르시고] 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엡1:7). 두말 할 것 없이, 하나님이 그대를 도우시는 분이심을 믿기만 하라. 그분은 사람 안에 그분의 도덕적 형상을, 회복시키기를 바라신다. 그대가 고백과 회개로써 그분께 가까이 나아가면, 그분은 자비와 용서로써 그대에게로 가까이 오실 것이다. 우리는 모든 것을 주님께 빚지고 있다. 그분은 우리의 구원의 주가 되신다.....
(5T 634.3)
하나님께 대한 불성실을 계속하고 있는 모든 자들에게,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의 선고가 내릴 날이 올 것이다. 그 때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율법을 범한 자들에게 공의로, 말씀하시고 무서운 일을 하실 수밖에 없는 날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대는 하나님의 진노를, 받을 자들 중에 속할 필요가 없다. 지금은 그분께서 구원하시는 날이다. ‘갈바리’의 십자가에서 비쳐 오는 빛은 오늘날 뚜렷하고, 밝은 빛을 비추어 우리의 속죄 제물 되시는, 예수님을 드러내 주고 있다.
내가 그대에게 제시한 약속들을 읽을 때 그것들이, 말할 수 없는 사랑과 동정의 표현임을 기억하라. 무한한 사랑의 마음을 가지신 위대하신 하나님은, 한량없는 긍휼로써 죄인들에게로 향하고 계신다. “우리가 ...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다(엡1:7). 그대는 하나님이 그대를 도와주시는 분이심을, 믿기만 하면 된다. 그분께서는 그분의 도덕적 형상을, 사람 안에 회복시키기를 원하신다.
그대가 죄를 고백하고 회개함으로 그분께로 가까이 가면, 그분께서는 긍휼과 용서를 가지고 그대에게로 가까이 오실 것이다. 우리는 모든 일에 주님의 은혜를 입고 있다. 그분은 우리의 구원의 주가 되신다. 그대가 두렵고 떨림으로 그대 자신의 구원을 이룰 때,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하신다(빌 2:13).(2TT 26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