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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방울소년의 무상급식 관련 퍼온 글에 대한 답변>
<프리드먼과 선택할 자유에 대해>
1929년 세계경제대공황의 원인을 케인즈는 수요의 부족에서 찾고, 그 타개책으로 정부의 개입과 재정확대정책을 내놓았습니다. 루스벨트의 뉴딜정책은 그 예입니다.
1970년대의 오일쇼크로 인해 정부 재정정책은 한계를 드러내었고, 그 해결책은 시장의 자유와 통화정책을 주장하는 프리드먼에게서 나왔습니다. 레이건의 레이거노믹스가 그 예입니다.
즉 경제공황의 원인분석과 처방에 있어 케인즈 학파는 수요의 부족을 원인으로 보고 유효수요의 확대를 위한 정부의 조세정책과 과 공공지출확대를 통한 고용의 증대를, 프리드먼학파는 통화 공급의 감축을 경제공황의 원인으로 보고 정부재정확대보다 감세나 규제완화나 정부지출축소 등을 통한 통화량의 조절을 통해 인플레이션을 극복하고자 합니다.
1930년대부터는 정부의 개입과 재정정책을 중요시 하는 케인즈의 이론이, 1970년대부터는 시장의 자유와 통화정책을 중요시 하는 프리드먼의 이론이 보다 주류의 정책으로 구현되었습니다.
그러나 1973년 300%를 넘는 칠레의 인플레이션을 잡기위해 피노체트 정권에게 급격한 통화감축과 재정긴축을 자문했으나 대량실업과 부도를 초래한 프리드먼은 1976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식에서 성난 칠레 군중들로부터 봉변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요약하면 케인즈 또는 프리드먼의 경제이론과 그 정책적 구현은 시대와 지역과 사회 상황에 따라 선택조합적으로 적용해야 하는 것이지 선과 악의 개념으로 접근할 성질은 아닙니다. 시장의 자유를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 정부의 개입은 어디까지가 적정한가, 시장은 완전하고 공정한가, 시장의 실패는 없는가, 시장의 낙오자는 어떻게 할 것인가, 공동체의 가치를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 등의 물음에 적절한 답이 나와야 합니다.
<세계와 한국의 무상급식에 대해>
OECD 31개 회원국 중 학교급식 제도를 운영하는 나라는 핀란드와 미국 등 20개국(전체의 65%)이며, 캐나다와 네덜란드 등 11개국은 운영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 중 전면 무상급식은 스웨덴과 핀란드, 미국과 일본과 영국의 공립학교(초중고)는 전면 무상급식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무상급식 비율은 미국 49.5%, 영국 34%, 한국 16.1%입니다.
현재 한국의 경우 초등학교는 전국 229개 시·군·구 가운데 79%에 해당되는 181개 자치구가 무상급식(90개 지역이 전면 무상급식, 91개는 부분 무상급식)을 실시하고 있고, 중학교는 76개 시군구(33.2%), 고등학교는 27개 시군구(11.8%)에서 시행하고 있습니다. 논란이 되고 있는 서울시의 경우는 4학년까지 무상급식이 실시되고 있습니다. 광역시도 중 대구는 전혀 시행되고 있지 않습니다. 부모소득기준 선택적 무상급식을 실시한다 하더라도 서울 유수사립초등학교에 다니는 학생들 외에는 무상급식의 혜택을 받을 것입니다.
요컨대 무상급식 또는 반값등록금 또는 청년실업해소 등의 문제는 학생들을 미래 국가의 생산을 담보할 인재로 보고 그 양육과 교육에 대한 부담을 국가의 공적영역내로 끌어들여 국가가 부담할 것인가, 아니면 여전히 각 개인의 영역으로 보아 적자생존의 시장에 맡겨둘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의 문제입니다.
예산 운운(예산의 확보 또는 우선순위의 문제임) 또는 내가 낸 세금을 왜 잘사는 집 자식의 급식비(나보다 부자들은 보다 많은 세금을 냄) 에 또는 이건희 회장의 손자(이건희 회장의 손자는 1명임, 부자들은 보다 많은 세금을 내니 그 자식에게는 당연히 무상급식 해야 함)에게 왜 무상급식을 등의 논리는 참으로 치졸한 정략적 발상에 놀아나는 것입니다.
<황성준님의 글, 미래한국, 뉴데일리에 대해>
황성준과 미래한국, 그리고 물방울소년님이 인용한 이 글의 출처인 뉴데일리라는 인터넷 매체는 아주 아주 아주 좋고 아름답고 젊잖게 표현하면 보수주의자와 보수매체라 할 수 있습니다. 그의 사회적 배경과 그 글과 그 글이 게재된 매체의 성향도 유심히 살펴야 합니다.
글쓴이는 밀턴 프리드먼의 이론과 캐나다의 경우를 근거로 들며 자신의 단편적인 사적 경험을 논란이 되는 사회적 의제인 무상급식문제를 비판하는 데 아전인수(자기 논에만 물 대기)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위의 <프리드먼과 선택할 자유에 대해>와 <세계와 한국의 무상급식에 대해>에서 사실을 적시했듯이, 자신의 터무니없는 편견을 일반화하려는 시도지요.
인용된 국가인 캐나다는 무상급식이라는 제도적 장치는 없으나, 교육과 의료를 포함한 복지 분야의 천국입니다. 캐나다의 전반적 복지 수준은 애써 눈 감고 극히 일부분인 무상급식문제를 끌고 와 사회복지부분에서는 아주 저급한 수준인 우리 한국의 경우에 대입하려는 견강부회(억지 논리)를 펴고 있습니다. 한국의 복지 수준이 전반적으로 캐나다 수준이라면 초등학교 무상급식 안 해도 되겠지요.
또 단체급식의 경우는 메뉴나 맛 보다는 영양에 그 기준이 우선합니다. 단체급식 실시 후 초중고 학생들의 영양 상태나 체격조건이 성장했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물론 맛과 메뉴의 개발을 위한 노력도 부단히 이루어지고 있고, 재료도 지역 농어업과 연계된 친환경으로 확대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과 사정임에도 글은 친환경영양식단의 메뉴가 “우리의 자녀들의 뇌수에 원시공산사회를 이상향으로 주입시키고 있는 위험한 현실이라거나, 사회적 공동 식탁제로 나가려는 전체주의자들과 이러한 노예로의 길을 거부하는 자유민 간의 절대로 타협할 수 없는 투쟁”으로 뜬금없는 비약을 맘껏 하고 있습니다. 전형적인 색깔론(빨갱이 씌우기)입니다.
요약하면 글을 수용함에 있어서는 글쓴이, 글 내용, 글이 실린 매체의 성향 등을 주의 깊게 보아야 합니다. 사실이 무엇인지, 그 사실 속에 잉태되어 있는 진실이 무엇인지, 또 무엇보다 그 글의 내용이 나에게 어떤 이익을 주고 공동체에는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등을 함께 고민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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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까꿍이님!
왠만하마 개학하고 밥 한끼 하입시다^^*
방학은 행복햇찌요?
엇 정신없이 지내다가 이제 봤네요 ㅡ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