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28일
본문 : 막5:36
제목 :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33년의 인생을 사시며 항상 하나님과 함께하셨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늘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셨습니다. 언제나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예수님께서는 3가지의 사역을 신실하게 감당하셨습니다.
먼저 주님께서는 늘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교사의 삶을 충실히 사셨습니다. 호세아 선지자가 '내 백성이 지식이 없어서 망한다(호4:6)'고 말했듯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으면 망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사람의 지혜는 사는 데 조금의 이로움을 줄 수는 있지만 죄로 오염되고 망가진 영적 가치를 회복시킬 수는 없기 때문에 구원에 이르게 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구원의 진리와 생명 되시는 예수님께서 참되고 신령한 지혜와 지식을 전달하시는 참 교사로 오셔서 우리를 하나님의 곁으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가르치는 것은 그저 인간이 사는 데 필요한 지혜나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은 참된 영성의 신앙을 삶으로 살아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가식과 거짓이 없이 복음과 삶이 하나되어 그리스도처럼 생각하고 사랑하며 섬기는 모습의 삶은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독교 교육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또한 주님께서는 아픈 사람들을 고치는 의사의 사명을 감당하셨습니다. 예수님 곁에는 늘 아픈 환우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육적인 질병뿐만 아니라 정신적, 영적 질병에 사로잡힌 괴로움에 인생을 다 소비하는 불쌍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주님은 언제나 의지할 수 있는 큰 나무와 같은 분이셨습니다. 누구나 그분께 와서 그분 밑에서 쉬면서 인생을 되돌아보며 더욱 성숙한 사람이 되기를 원했던 좋은 안식처와 같은 분이셨습니다. 언제든 그분께 갈 수 있었고, 언제나 그분을 따라 그분 곁에 머무를 수 있었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이들은 모두 질병이나 정신적 고통, 개개인의 소원, 해결 받고자 하는 문제들을 들고 주님께 나아와 그분 곁에 서 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언제나 그들을 긍휼히 여기셨습니다. 특별히 죄로 인해 얻은 치명적인 질병이나 사고로 인한 장애를 진심으로 불쌍하게 여기시고 사랑으로 대해주셨습니다. 또한 한평생 고생하며 사는 많은 환자들을 고치셨고 사랑해주셨습니다. 그분의 한량없는 사랑으로 인해 죄인들은 하나님께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질병을 고침 받고 하나님의 선물로 받은 믿음으로 구원 받은 그들은 더 이상 질병의 노예가 아닌 예수를 따르는 무명의 제자들이 되어 예수님을 마음 다해 지지하며 참 구원자로 간증하며 살아가는 신자들이 되었습니다. 주님은 그들의 진정한 친구이자 의사셨습니다. 모든 육신의 병을 고치시며 영성을 회복하시는 참 영적 의원이셨습니다. 아울러 주님께서는 사탄의 권세를 무너뜨리고 악을 도말하는 대제사장의 사명을 감당하셨습니다. 우리에게 늘 사랑과 은혜를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는 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이렇듯 주님께서는 늘 가르치셨고, 병을 고치셨으며, 사탄 마귀의 권세를 철저히 부수고 무너뜨리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기사와 이적을 베푸시고, 악령에 잡힌 사람을 고치시며, 귀신을 쫓아내시면서 참 하나님이 누구신지 우리 모두에게 알려주시길 원하셨고 그것을 삶으로 증명하셨습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을 통해 하나님의 행하심. 즉 아버지의 일하심을 많은 사람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시는 메시아로서의 귀한 사역 가운데 또 한 번의 기적을 행하시는 주님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성경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 속에서도 만나고, 느끼고, 배워야 합니다.
오늘 말씀의 배경을 살펴보면 군대라 하는 귀신들에게 붙잡힌 불행한 자를 고치신 후 배를 타시고 다시 주님을 기다리는 많은 이들에게로 건너가시니 그들이 마치 기다렸다는 듯 예수님께로 모여들었습니다. 그때 한 사내가 헐레벌떡 예수님께 달려와 간청을 드렸습니다. 그의 이름은 야이로입니다. 성경에 이름이 거론된다는 것은 그가 교회를 세우는 데 중요한 일을 감당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는 회당을 관리하는 장이었습니다. 회당이란 예루살렘에서 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유대인들을 위해 여러 지역에 만들어 놓은 예배 장소입니다. 그런 회당을 관리하고 잘 사용할 수 있도록 계획 및 행정 실무를 담당했던 중요하고 권위 있는 유대인이 절박하고 다급하게 무릎 꿇고 예수님께 간청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그에게는 작은 딸이 있었습니다. 아버지인 회당장 야이로는 자신의 딸을 진심으로 사랑했습니다. 딸을 향한 아버지의 지고지순한 사랑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토록 사랑했던 귀한 딸이 병으로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너무나 긴박하고 슬프고 괴로운 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인 야이로는 의사들을 의지하기에는 너무나 시간이 부족함을 알고 본능적으로 주님을 찾아왔습니다. 사람이 벼랑 끝까지 가면 없던 믿음도 생깁니다. 그래서 우리 인생의 절박한 시험들을 무조건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습니다. 야이로는 예수님께 기도하듯 자신의 소원을 말했습니다. "제 어린 딸이 지금 죽어갑니다. 너무 급합니다. 당신께서 저희 집에 오셔서 제 딸에게 손을 얹으시고 기도해주십시오. 질병을 치료해주시고 딸을 살려주셔서 우리 곁에 늘 있게 해주십시오."라고 간절하게 예수님께 부탁드렸습니다.
예수님께서 그의 기도와 같은 간곡한 부탁을 들으시고 그와 함께 그의 집으로 향하실 때 같이 있던 많은 사람들도 주님의 뒤를 따랐습니다. 그들 중에는 주님의 치유와 전도 사역을 직접 보고 싶었던 사람들도 있었지만, 예수님을 의심하며 그분의 정체성이 진짜인지 확인하고 싶은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많은 사람 가운데 12년 동안 혈루증으로 고통당하는 비천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혈루증이란 여성이 불규칙적으로 하혈하는 병을 가리킵니다. 그녀의 육신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질병의 노예가 되어있었고 영혼마저도 지옥과 같은 삶에 묶여있었습니다. 게다가 혈루증은 율법에서도 부정한 병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그녀는 가족과 친한 지인들에게 버림받았을 뿐만 아니라 세상에서도 소외되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녀를 불결하게 여겨 그녀와 닿는 것을 경계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철저히 고립된 외롭고 고독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인생이 송두리째 변질되어 모든 사람이 나쁜 세균 취급하던 불쌍한 그녀가 예수님께 다가와 절박한 믿음으로 그분의 옷자락을 만졌습니다. 아마 그녀는 예수님의 몸에 직접 손을 대었을 것입니다. 그리스어 성경을 보면 '손을 대다'는 '하포소마이(hapsomai)'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불을 밝히 보이다' 즉, '환하게 불을 태우다'라는 뜻입니다. 결국 그 여인이 주님의 옷자락을 잡은 것은 자신의 의지를 믿음의 불로 밝히고,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신앙의 표현으로 주님께 자신을 드리며 자신의 어려움을 토해낸 행동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곳에는 예수님 말고도 믿음직스러운 남자들이 꽤 많았을 텐데 왜 그녀는 예수님을 선택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믿음에 그녀의 의지를 부합하여 성령께서 그 여인을 예수님께로 인도하셨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주님의 몸에 그녀의 손을 닿게 하셨을 때 그녀는 주 예수님과 연합되는 신비한 경험을 통해 주님으로부터 나온 치유의 능력이 자신에게 들어와서 혈루증을 뿌리 채 마르게 하셨고 이로 인해 병에서 완전히 해방되어 온전해진 자신의 상태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분의 능력이 빠져나가 아픈 그분의 자녀를 낳게 하신 것을 바로 아셨습니다. "누가 내게 손을 대어 새 생명을 얻었느냐?"라고 물으시는 주님 앞에 그 여인은 두려워 떨며 엎드려 모든 사실을 고백했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해방되어 건강하게 될 것이다."라고 약속하시며 그녀에게 구원을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기서 우리는 참 귀한 은혜를 깨닫게 됩니다. 그녀 말고도 예수님을 만지거나 그분과 몸이 닿았던 사람들은 아주 많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기적은 그 여인 한 명에게만 일어났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예수님 곁에 머무르던 '허다한 무리'는 주님께서 진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인정하고 예배하는 믿음으로 주님을 섬기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주님을 자신들의 여정 속에서 만나는 평범한 한 사람으로 취급하고 넘기는 큰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그들은 구원이신 주 예수님을 그냥 흘려보냈지만, 그 여인은 성령님의 인도하심 속에서 구원을 얻는 일생일대의 체험을 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예배드리는 이 자리가 그냥 습관처럼 흘러가는 과정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우리의 믿음에 불을 지펴야 합니다. 주님을 사모하고 사랑하며, 주님으로 인해 충만해야 합니다. 그런 자만이 혈루가 멈추고 예수님의 생명으로 충만해지는 제자의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너무 지체된 것일까요? 회당장의 집에서 딸이 죽었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그토록 살리고 싶었던 사랑하는 딸, 내 생명보다 소중한 딸이 죽었다는 소식에 세상이 끝난 것 같은 슬픔에 잠긴 야이로는 할 말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관점은 달랐습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인간의 관점으로는 소녀는 '죽은 것'이지만,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소녀는 '자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와 같은 실수를 삶 속에서 반복하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회당장의 집에 모인 사람들이 애곡하고 괴로워할 때 주님께서는 아이의 아빠인 야이로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곧 '네가 지금 가져야 하는 것은 바로 두려움 없는 믿음이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부활하게 하심으로써 깊은 잠에서 깬 어린아이는 예수님의 부활과 그분을 따르는 참 제자인 우리의 부활을 상징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은 아이의 손을 잡고 "달리다쿰"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아람어로 '작은 소녀야(달리다) 일어나라(쿰)'라는 뜻입니다.) 그러자 주님의 말씀에 순종한 영이 소녀의 몸으로 다시 들어가서 살아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주님을 비웃거나 믿지 않던 모든 사람들은 놀라고 또 놀랐습니다. 12살에 죽음에서 해방되어 건강하게 사는 귀한 딸, 주님은 우리를 이렇게 바라보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구원받아야 할 귀한 자들을 주님과 같이 사랑하며, 야이로와 혈루증 여인처럼 절박한 마음으로 기다리며 그들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일에 순종함으로써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그분의 뜻을 드러내는 그리스도의 참 제자가 되시기를 간절히 바라고 기도합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