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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잔 차의 숲 속의 사원 (3)
왓 바나나차(WAT Pah Nanachat)
사원 방문기
글 | 김형근 (본지 편집인)
왓바나나차 사원
왓 바나나차 사원 입구
왓바나나차 경내 모습
‘왓 바퐁’ 사원 근처에 스님의 지도를 받기 위해 찾아오는 서양인들을 위한 숲 속의 사원인 ‘왓 바나나차’가 있다. 이 사원은 1975년에 설립되었다. 숭산스님이 계룡산에 건립한 무상사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필자는 2019년 2월 7일 새벽에 왓바나나차를 방문하다
7일 새벽에 6시 조금 못되어 왓바나나차 정문 앞에 도착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있으리라는 내 기대와는 달리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 시간에는 스님들이 사원을 나와 탁발을 가는 시간이고, 수도원 앞에 다시 오려면 시간이 한 참 걸리기 때문이다.
다음은 숲속 수도원의 일상생활이다.
숲속의 사원들의 일과는 새벽 3시에 시작하여 동트기 전까지 독경과 명상을 한다. 동이 틀 무렵, 스님들은 인근 마을로 탁발을 나가는데 대략 2킬로에서 8킬로미터 정도를 맨발로 걷는다. 탁발은 부처님께서도 하셨고, 지난 5월호에 언급했지만 다시 한 번 소개한다.
계를 받는 사람에게 비구라는 이름을 붙여 주셨다. 비구라는 말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탁발하는 자라는 뜻이요, 다른 하나는 현상계와 집착들에 내재한 위험을 보는 자라는 뜻이다. -아잔 찬 스님의 오두막 55 페이지.
사원으로 돌아오면 모은 음식을 한데 모아 각자의 바리때에 똑같이 나누고, 감사의 염송을 올리며 하루에 한 번뿐인 공양을 시작한다. 공양을 마치면 제각기 ‘꾸띠’라고 하는 오두막으로 돌아가서 오전 9시 반부터 오후 3시까지 혼자 명상이나 공부를 하거나 일을 하기도 한다. 혹은 사원 건물이나 울타리 보수, 가사를 깁거나 새 오두막을 짓는 등 수도원 울력에 참여한다. 오후 3시에는 모두 모여서 우물물을 길어다가 저 수조로 나르는 일을 돕고, 중앙 마당을 청소한다. 목욕을 마친 뒤 저녁 6시가 되면 다시 모여서 저녁 예불과 명상을 하고 정기법회를 한다. 그 뒤에는 각자의 오두막으로 돌아가서 잠들기 전까지 조용히 좌선이나 걷기 명상을 하고, 숲 속의 소리를 귀 기울여 듣는다. 대체적으로 율장에 따라서 한다고 한다.
탁발 장면
왓바나나차 사원 입구에서 탁발하는 스님들을 기다리는 신도들
탁발하는 모습
탁발하러 다니는 스님들
탁발 공양하는 필자
신기한 광경을 보았다
새벽 6시 무렵이다 새 소리 만이 정적을 깨뜨릴 뿐 지나는 사람도 차도 없는 곳이었다. 그때 사원에서 나오는 승복을 입은 서양인이 보였다. 맨발이었고 바구니 한 개를 메고, 조용하게 그리고 매우 행복한 표정으로 고요한 걸음으로 저 멀리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탁발을 가는 것이다. 뒤 이어 혼자서 혹은 무리를 지어 스님들이 사원에서 나와 마을 속으로 들어갔다.
탁발을 가는 것이다. 이곳에서는 주변의 5 곳으로 탁발을 간다고 한다.
6시 30분경에 사람들이 공양을 하기 위해 모여들었다. 대략 20여명이 되었다. 여기도 한국처럼 미세먼지 때문에 마스크를 한 사람들도 있었다. 대부분 중년 여성들이었지만 젊은 여성들도 있었고 노인들도 있었다. 어린애들과 함께 오는 부인도 있었다. 그리고 서양인도 있었다. 사원 입구에 줄지어 앉아서 스님들의 바구니에 준비해 온 공양물을 넣었다. 대략 7시경에 이 탁발행위는 끝나고 사원으로 들어갔다. 공양을 한 사람들 중에는 집으로 가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스님들 뒤를 따라서 들어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사원은 나무 숲 사이로 큰 건물이 있었는데 들어가는 입구 정면이 법당이고, 오른쪽 건물은 식당이었다. 탁발을 한 음식은 이곳에서 한 데 모아서 다시 분류를 하였다.
법당에는 상단에 스님들이 않았고, 아래 부분에 신자들이 앉았다. 스님들이 먼저 부처님께 삼배를 하고, 그 다음에 신도들이 삼배를 하였다. 스님들은 20여명, 신도들은 50여명이 되었다. 식당에서 일하는 스님들과 신도들이 15명 정도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식사를 준비하였지만 말을 별로 하지 않았다.
법당에서 원로 스님이 태국어로 설법을 하고 난 후 축원을 하였다. 그리고 여기서 어느 신도가 아이들과 함께 앞으로 나와 스님께 무언가를 공양하였다. 그리고는 스님들이 조용하게 먼저 식당으로 가서 차려진 음식을 그릇에 담아서 다시 법당으로 돌아왔다. 여기서 글로만 보았던 아주 흥미로운 장면을 보았다. 스님들이 법당에 들어가기 직전에 수돗물이 나오는 곳으로 가면 거기에 대기하는 신자가 스님의 발을 씻어 주었고 스님은 이동하면 거기에는 스님 발을 타올로 닦아주는 사람이 발을 닦아주었다. 이런 것을 세족식이라고 한다. 하지만 한국을 비롯한 대승불교권에는 이런 장면은 없고, 스리랑카 등 남방불교권에 있는데 그 세족식을 직접 보게 되었다.
아래의 글은 인터넷 검색으로 찾은 ‘진흙속의 연꽃’에 나오는 글이다.
스리랑카의 세족식(洗足式) 비구 존자는 멀리서 부처님을 오시는 것을 보자 자리를 마련하였다. 부처님을 맞이하는 제자의 모습에 대하여 율장대품에서는 “자리를 마련하고 발 씻을 물과 발받침과 발걸레를 준비하여 맞이하고 발우와 옷을 받았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는 무엇을 말할까? 부처님 당시에는 신발을 신지 않았음을 말한다. 맨발로 유행한 것이다. 그래서 발에 흙이 묻을 수밖에 없다. 씻을 수 있는 물이 필요하기 때문에 발 씻을 물을 준비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스리랑카에는 청식(請食) 제도가 있는데 이는 빅쿠들을 집으로 초대하여 공양을 제공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진을 보니 남자불자가 빅쿠의 발을 씻어 주고 있다. 마치 타종교의 세족식을 보는 것 같다. 이에 대하여 글을 올린 이는 세족식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술해 놓았다. 한편 스리랑카에서는 신도 집에 초대받아 가면, 현관 입구에서 그 집의 주인 남자가 직접 발을 씻어준다. 맨발로 수행하는 스님들이 많고, 비록 샌들을 신었지만 먼지투성이기 때문에 건물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물로 발을 씻어주는 것이 그들의 오랜 관습이다. 이것은 그들이 수행자를 맞이하는 예의이자 성스러운 의식이다. 이런 세족의식(洗足儀式)을 받을 때, 과연 자신이 이 분들로부터 이런 대접을 받을만한가를 반성하게 되고, 더욱 더 수행 정진해야겠다고 다짐하게 된다.스리랑카에서는 맨발로 다니는 스님들이 많다고 한다. 집으로 초청하여 공양을 할때 먼지투성이의 발을 씻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초청한 주인이 직접 빅쿠의 발을 씻어 주는 것이다. 이런 세족식은 옛날부터 전해 오는 아름다운 관습이라 한다. 그러나 율장대품에 따르면 이와 다르다. 부처님은 손수 발을 씻었다 율장대품에 따르면 부처님은 손수 발을 씻었다. 이와 관련하여 율장대품에서는 “세존께서는 마련된 자리에 앉았다. 앉아서 두발을 씻었다. (Nisīdi bhagavā paññatte āsane, nisajja kho bhagavā pāde pakkhālesi)”라고 되어 있다. 부처님이 스스로 발을 씻은 것이다. 이는 스리랑카 관습과는 다른 것이다. 부처님은 발을 씻고 나서 축원의 말을 해 준다.
그것은 “나는 그대가 잘 지내기를 바란다. 나는 그대가 평안하기를 바란다. 나는 그대가 탁발하며 지내는데 어려움이 없기를 바란다. (kacci, bhikkhu, khamanīyaṃ; kacci yāpanīyaṃ, kacci piṇḍakena na kilamasī)”라는 말이다.
세족하는 모습
식당에서 공양을 준비하는 모습
공양하는 스님들과 신도들
대중스님들과 행자들 회의 모습
주지 스님과 한국인 행자스님과 필자
수행처로 가는 스님
탁발과 아침 공양은 하나의 잘 다듬어진 드라마 같았다. 너무 빠른 속도로 돌아가는 세상같는 너무 다르게 천천히, 그러면서도 아주 평화롭고 편안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항상 쫓기듯 살아가야 하는 것에 익숙한 나의 몸이 이틀간의 숲속의 사원 방문으로 여유를 느끼는 듯 했다. 여기서 수행하는 스님들은 맨발로 다녔고, 행동은 서두르는 법이 없었다. 거대도시에의 상업지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 시골에서 사는 사람들의 행동이 다른 것처럼 세속에 사는 우리들과 여기 스님들의 행동은 그 속도에서부터 달랐다.
여기는 어제 방문한 왓 바퐁사원과 달리 방문객들이 많았고, 활기가 넘쳤다. 나무 곳곳에 수행에 관련한 표말이 걸려 있었다. 한번 방문으로는 그 이유를 파악할 수는 없었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주지스님 처소에서 이 사원에 살고있는 대중스님들과 사미승들, 장기 체류자들이 함께 모여 대중공사를 하였다. 대중스님들 중에 한 스님이 짧은 설법을 한 후에 토론을 하였다.
이러한 일정을 마친 후에 주지스님과 인텨뷰를 하게 되었다.
주지스님은 독일에서 왔다고 한다. 이 주지스님이 한국인 행자를 소개시켜 주었다. 이 스님의 통역으로 인터뷰가 진행되었다.
질문: 이 사원에는 몇 명의 스님들이 살고 있는가? 2018년 이곳에서 출가자는 몇 명인가?
답변: 전체는 24-25명 쯤 된다. 사미가 3명이 있다. 작년에는 사미가 8명, 비구계 1명이 계를 받았다. 또 장기 거주자는 남성 5명, 여성 6명이다. 행자 생활은 6개월, 사미는 1년 정도 기간 수행을 해야 한다. 비구가 되고 나서는 5년 동안 은사나 계사와 함께 지내야 한다. 그 다음에는 마음대로 만행을 할수 있다.
질문: 미국인 출신 스님은 몇 명이고, 출신국가를 대략적으로 알고 싶다.
답변: 미국인 출신은 5~6명이다. 미국을 비롯하여, 호주, 독일, 영국, 오스트리아, 카나다. 스리랑카, 한국 등 출신국가가 다양하다.
질문: 대화는 어떻게 하는가?
답변: 주로 영어로 한다.
주지 스님과 공식적인 인터뷰를 마치고 이 한국인 행자스님과 대화를 이어갔다.
질문: 교육은 어떻게 받습니다. 태국어 공부는 어떻게 하나요?
답변: 태국어 공부는 대부분 독학으로 하게 됩니다. 때로는 부정기적으로 하기도 합니다. 교육은 경전공부 하는 시간은 없고, 도서관에서 책을 읽습니다. 영어로 된 아잔차 스님 설법책을 읽습니다.
질문: 수행은 어떻게 하나요?
답변: 각자가 꾸티(오두막)에서 혼자 수행을 합니다. 걷기 명상도 특별지도 같은 것은 별로 없습니다.
아래의 유튜브에 아잔차 스님과 왓 바나나차 사원이 소개된 영상이 있다.
https://youtu.be/4PMJeRQP8HE
아잔 차 스님 사진
아잔 차 스님 부도 탑 안에 있는 아잔 차 스님 사진
아잔 차 스님의 수행지도 방법
여러 자료와 이곳에서 만난 스님들의 의견을 종합해 보면 아잔 차 스님의 지도 방법은 단순하고, 자연스럽다. 대체로 스님은 자리에 앉아서 호흡을 지켜보거나 걸으면서 몸을 알아차리라고 말할 뿐이다. 어느 정도 지나면 이 두 가지 자세를 취하는 동안 마음을 자세히 관찰함으로써 그 본성과 특성을 알아 차리라고 말한다. 처음 수행하는 사람에게는 이 정도 가르침이 전부일 때도 있다. 아잔 차 스님은 수행자들이 내면의 힘과 혼자 힘으로 수행하는 법을 배우기를 원한다.
아잔 차 스님의 지도에 따르면 죄선 수행의 첫 번째 목표는 마음을 고요히 하여 한곳에 모으는 것이다.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호흡에 집중하고,숨이 아무런 장애 없이 들어오고 나가게 하라. 숨이 오가는 감각을 최대한 길게 고요히 따라가라.
마음이 다른 곳으로 벗어났음을 알아차릴 때마다(길들여 질때까지는 수천 번도 넘게 반복될 것이다.) 살며시 돌아와서 다시 호흡에 집중하라.
이 명상은 우리의 가장 직접적인 체험, 곧 늘 변하는 현실인 호흡을 이용하여 마음을 집중하는 방법이다. 수행자는 집중력과 알아차리는 힘을 키우기 위해 이 단순한 훈련을 끈질기게 계속하도록 지도받는다. 호흡에만 집중하는 이 단순한 수행법에 숙달되면, 나중에 가장 높은 수준의 몰입과 삼매에 들어갈 수 있다.
아잔 차 스님은 삼매는 수행의 목표가 아니라고 가르친다.
또 호흡을 알아차리는 훈련을 통해 길러진 집중력과 고요함을 두 번째 단계의 수행에 이롭게 사용하라고 말한다. 마음이 어느 정도 고요해지고 집중되면 몸과 마음의 작용을 관찰하라고 한다. 관찰하거나 조사하라는 말은 우리의 세계가 어떻게 일어나고 있는지를 직접 느끼고 체험하라는 뜻이며, 그것에 대해 생각하라는 뜻이 아니다.
경험과 그 특성을 깊이 들여다 보는 법은 좌선을 할 때에만 배우는 것이 아니다. 걸으면서 지켜보라. 자연스러운 걸음으로 오가며 걷기 명상을 하되, 가능하면 오랫동안 그렇게 해 보라. 주의를 가울이는 법을 배워라. 그러면 이해하지 못할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이것이 수행의 핵심이다.
명상의 결실을 얻으려면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 하루 동안 명상하고 나서 한두 주 혹은 한 달이 지나서야 다시 명상해서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없다. 부처님은 꾸준하고 부지런히 명상하라고 하였다. 명상을 효과적으로 하려면 먼저 산만하지 않은 고요한 장소로 가야 한다. 정원이나 뒤뜰의 나무그늘 아래 혹은 홀로 있을 수 있는 장소 등이 명상에 적절한 환경이다. 스님이라면 오두막(꾸띠)이나 고요한 숲 혹은 동굴 등이 좋다. 특히 산은 명상에 아주 적합한 환경을 제공해 준다.
아잔 차 스님의 해외분원
아잔 아마로Ajahn Amaro와 타니싸로 비구Thanissaro Bhikkhu는 동남아시아의 강력한 종교개혁 운동이었던 숲속의 사원 고행자들의 전통을 대표하는 두 명의 유럽계 미국인 승려다. 비록 소속기관이 서로 다르고 또 다소 다른 방식으로 전통수행을 미국 불교 공동체에 맞게 바꾸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두 사람은 구족계를 받았고 테라와다 승가 계율도 지키고 있다. 두 사람은 1990년대에 더 넓은 개종자 불교 공동체에서 대중적 인지도가 상당히 높아지기 시작했다. 아마로는 통찰명상 단체에서 정기적으로 가르치는 몇 안 되는 테라와다 승려인데, 이러한 노력은 어느 정도 그가 미국인들에게 승가의 생활방식을 보여주는데 관심이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
아잔 아마로는 북캘리포니아에 숲 사원을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 이 사원은 샌프란시스코 지역에 기반을 두고 있고, 주로 재가자들로 이루어진 한 개종자 불교 공동체의 중심지이다. 1956년 영국에서 태어난 그는 런던 대학교를 졸업한 후 태국을 여행하면서 마하니카야(태국 최대의 테라와다 승단)의 승려이자 숲 계보의 스승인 ‘아잔 차Ajahn Chah’가 서양인 제자들을 위해 세운 숲 사원인 ‘왓 바나나차 Wat Pah Nanachat’에서 공부와 수행을 시작했다.
아마로는 1979년에 승려의 계를 받고, 이어서 영국으로 돌아와 두 곳의 숲속의 사원 전통 센터인 아잔 차 상수 제자인 수메도가 세운 ‘치트허스트Chithurst 사원’ 및 암라와띠 Amravati 사원과 제휴를 맺었다. 1990년대 초 그는 북캘리포니아로 법문을 하러 다니기 시작했고, 거기서 숲 속의 사원 전통의 승가 수행 공동체를 만드는 데 관심을 가지고 있던 한무리의 후원자와 제자를 모았다.
이 무렵 중국 대승불교 선생이자 캘리포니아 만불성성萬佛聖城의 설립자 선화 선사(宣化, 1918~1995)가 멘도시노 카운티의 미개발지 120에이커를 암라와띠 사원에 기부하여 숲속의 사원 안거 수행처로 사용하도록 했다. 대승과 테라와다의 양쪽 승가 공동체 간의 유대를 강화하는 것이 그 기부의 목적이었다. 이어서 암라와띠는 캘리포니아의 재가단체인 상가 팔라재단(Sanghapala Foundation)에 그 땅의 관리를 맡겨서 숲 속의 사원 안거센터로 개발하도록 하였고, 그것은 마침내 완성되어 아바야기리Abhayagiri 불교사원으로 불리게 되었다. 1990년대 중엽에서 말에 이르기까지 아바야기리는 아잔 차에서 시작되어 영국의 치트허스트와 암라와띠를 통해 북캘리포니아에 도달한 숲속의 사원 수행계보 소속 불교 공동체의 중심지가 되었다. 아마로는 그곳의 주지로 임명되었는데, 1997년부터 그는 이 운동에서 오랜 세월 선생과 지도자로 활동해온 캐나다인 ‘아잔 빠사노Ajahn Pasanno’와 공동으로 주지직책을 맡고 있다. 여러 해 동안 아바야기리는 전통을 고수하면서, 미국 재가자의 지원을 받으며 해마다 장기간의 승가 동안거를 실시해오고 있다.
본지에서 약 2년간 번역 연재한 후에 ‘미국불교’라는 이름의 단행본으로 출판한 책 303페이지에 이런 구절이 있다.
타니싸로 비구는 오하이오 오벌린 대학( Oberlin College)을 졸업한 다음 1970년대 초 태국으로 갔다. 그는 태국의 여러 숲 속의 사원 계보 가운데 한 곳의 스승인 ‘안 푸앙 조티코( AjannnFuangJotiko)’ 아래서 명상수행을 시작하여 1976년 비구계를 받았다. 타니싸로는 ‘아이엠에스(IMS)’에 소속된 베어리 불교학센터(Barre Buddhist Center for BuddhistStudies)에서 가르쳤고, 『얽매임 없는 불과 같은 마음』(The Mind Like Fire Unbound), 그리고 『불교승가 규율』(The Buddhist Monastic Code)을 포함한 여러권의 학술서적을 낸 저자로, 그리고 숲속의 사원 전통에 속한 아시아 스승들의 명상지침서들을 번역한 사람으로 잘 알려지게 되었다.
그는 미국에 숲 속의 사원을 세우는 것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1998년 그는 “불교는 항상 문명과 야생의 경계선에 걸쳐 있다. 붓다 자신도 왕자로서 양육되었지만, 숲에서 태어나 숲에서 깨달음을 얻었고 숲에서 돌아가셨다.”라고 썼다.
Abhayagiri Buddhist Monstery
16201 Tomki Road. Redwood valley, CA 95470
www.abhayagiri.org
Tel:707-485-1630
불교계의 성평등에 대한 갈등과 아잔 브람 스님의 파문
영국 출신의 엘리트인 아잔 브람 스님은 태국에서 출가하여 호주에서 주석하며 전 세계로 활동 무대를 넓힌 스님이다. 이 스님은 미국의 , 2009년 9월 22일 호주의 퍼스(Perth)에서 비구니 네 명에게 구족계를 준 뒤 그분의 소속 교단에서 제명을 당한 적도 있다.
아잔 브람 스님 (맨 오른쪽)
아잔차 스님의 제자로 세계적 영성 지도자인 아잔 브람,
여성 구족계와 그리고 그의 파문
아잔 브람, 아잔 브라함 (생략하지 않은 성명.: Ajahn Brahmavamso Mahathera, 1951년 8월 7일~ )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참선가로서, 영국계 호주인 불교 승려이다. 호주의 보디니야나 수도원의 원장이다. 태국의 테라바다불교 승려이다.
영국 런던의 노동자 계급 집안에서 기독교인으로 태어난 아잔 브라흐마는 기독교 학교를 다니고 성가대에서 활동할 만큼 신실한 신앙을 가진 청년이었다. 그러나 17세 때 학교에서 우연히 불교 서적을 읽던 중 자신이 이미 불교도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장학생으로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이론물리학을 전공했으나 인생에서 폭탄을 만드는 일보다 더욱 가치 있는 일을 하기를 바랐고, 정신적인 삶 또는 영적인 삶에 대한 열망이 그의 안에서 커져 갔다. 결국 그는 대학 졸업 후 1년 동안 고등학교 교사를 한 뒤 자신의 삶에서 몇 년을 떼어내 다른 삶을 살아보기로 결심하고 태국으로 건너가 스스로 삭발하고 수행승이 되었다.
어느 날 친구가 당대의 위대한 스승 아잔 차의 명성을 듣고 그곳에 가서 3일만 지내보자고 그에게 말했다. 그렇게해서 왓바퐁으로 가서 태국에서는 ‘살아 있는 붓다’로 불린 아잔차(Ajahn Chah) 스님 밑에서 9년간 가르침을 받았다.
신참 수행승일 때 그는‘승려의 길’에 관한 영문 안내서 편집을 맡았다. 이 안내서는 나중에 서구의 수많은 불교 입문자들에게 훌륭한 지침이 되었다.
태국에서 수행승으로 배움의 시기를 보낸 뒤 그는 불교를 가르치는 아잔 자가로를 돕기 위해 호주 퍼스에 있는 웨스턴 오스트레일리아 불교협회 초청을 받아 그곳으로 갔다. 처음에는 퍼스 북쪽 교외에 자리한 오래된 집에서 아잔 자가로와 함께 생활했다. 그러다 1983년 말에 퍼스 남쪽 세르핀타인 지역 숲이 우거진 시골에 약 392,545㎡의 땅을 매입했다. 그리고 그곳에 보디냐나 수도원(스승인 아잔 차 보디냐나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을 세웠다. 보디냐나 수도원은 남반구 최초의 불교사원이 되었다. 이곳은 또 오늘날 호주의 가장 큰 소승불교 수도회 본부다.
처음엔 그 지역에 아무것도 없었다. 절을 짓기 위해 퍼스에서 모금활동을 펼치던 몇몇 승려들만 있을 뿐이었다. 아잔 브람은 건물 하나 없는 그곳에서 직접 벽돌 쌓는 일과 배관 및 미장일을 배워 지금까지 존재하는 수많은 건물을 세웠다.
1994년, 절의 주지로 있던 아잔 자가로가 안식년을 맞아 호주를 떠났다. 그리고 1년 뒤 승복을 벗게 되자 아잔 브람이 그후임을 맡게 되었다. 처음에 그는 주지 직책을 완강히 거부했다. 그러다 결국 받아들였고 그 어느 때보다 열정적으로 일했다. 그의 명성은 점점 널리 퍼져나갔다. 흥미 있는 데다 희망을 주는 설법으로 그는 호주의 다른 지역과 동남아시아로부터 수차례 초청을 받았다. 2002년에는 프놈펜에서 개최된 국제 불교회의에 중요 인사로 참가했다. 그리고 2006년 6월에는 퍼스에서 열린 불교회의를 이끌었다. 그는 바쁜 일정에도 쉬지 않고 일했다. 특히 암 환자들, 수감자들, 병들어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해 열정을 쏟았다. 보디냐나에 있는 승려들은 물론이고 여러 지역에 사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에게서 명상하는 법을 배우고 싶어 했다.
무엇보다도 그를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만든 것은 그 특유의 유머와 통찰력 가득한 법문을 통해서다. 그의 명성은 점점 널리 퍼져나갔다. 흥미 있는 데다 희망을 주는 설법으로 그는 호주의 다른 지역과 동남아시아로부터 수차례 초청을 받았다.
2002년에는 프놈펜에서 개최된 국제 불교회의에 중요 인사로 참가했다. 그리고 2006년 6월에는 퍼스에서 열린 불교회의를 이끌었다. 그는 바쁜 일정에도 쉬지 않고 일했다. 특히 암 환자들, 수감자들, 병들어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해 열정을 쏟았다. 보디냐나에 있는 승려들은 물론이고 여러 지역에 사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에게서 명상하는 법을 배우고 싶어 했다.
현재 아잔 브람은 웨스턴 오스트레일리아 세르핀타인에 위치한 보디냐나 수도원장, 웨스턴 오스트레일리아의 불교협회 지도자, 빅토리아 불교협회 고문, 싱가포르 불교연맹 후원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편, 오스트레일리아 승가협회를 설립하기 위해 모든 불교 종파를 초월한 협력을 구하며 열심히 일하고 있다.
2004년 10월, 아잔 브람은 그가 호주 사회에 보여준 비전과 리더십, 그리고 열정적인 가르침으로 커틴대학교로부터 존 커틴 상을 수상했다. 아잔 브람은 그동안 『술 취한 코끼리 길들이기』 『성난 물소 놓아주기』 등 여러 권의 저서를 집필했다. 수백만의 조회수를 기록한 아잔 브람의 법문 동영상은 인터넷에서 볼 수 있고, 디지털 음원이나 비디오 파일로 무료로 내려 받을 수 있다.
그가 쓰고 강연한 내용을 묶은 책들은 현재까지 모두 24개 국어로 번역되었으며 대부분의 나라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매주 금요일 사찰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라오는 그의 법문 동영상은 전 세계에서 수백만 명이 접속해 들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
그의 영어 책은 미국에서는 주로 Wisdom 출판사에서 출판되고 있고, 이것을 한국에서 번약되어 나오고 있다.
한국에서 출판된 책들:
시끄러운 원숭이 잠재우기, 아무것도 남기지 않기, 우리가 바라는 것, 삶이 줄 수 없는 것, 술 취한 코끼리 길들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