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방견문록의 한 페이지. /위키피디아
그곳(지팡구·Zipangu)에서는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금이 난다. 그러나 아무도 그 섬에서 금을 가지고 나오지 못하는데, 그것은 어떤 상인도 어떤 사람도 대륙에서 그곳으로 가지 않기 때문이다.
14세기 초반 출간된 마르코 폴로(1254~1324)의 '동방견문록'은 서양에 동양을 알린 최초의 기록물 중 하나로 평가받는 작품이에요. 제목 '동방견문록(東方見聞錄)'은 일본에서 붙여진 이름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고, 본래 제목은 '세계의 서술(Divisament dou monde)'이에요. 수많은 필사본이 유럽 사회에 퍼지면서 '성서' 다음으로 많이 읽혔다고 전해지죠.
마르코 폴로는 이탈리아 베네치아 출신으로, 상인인 아버지와 삼촌을 따라 1271년 여행을 시작해요. 그 여행은 1295년까지 이어졌는데, 유럽은 물론 서아시아와 중앙아시아, 중국과 인도를 거쳐 무려 25년이나 계속됐어요. 그 가운데 17년은 몽골제국의 황제(칸) 쿠빌라이가 통치하는 원나라에 머물면서 칸의 특사 자격으로 여러 나라를 답사했죠. 그는 당시 기독교만 유일한 종교로 인정했던 유럽과 달리, 원나라는 어떤 종교도 강제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놀랐다고 해요.
카스피해 근처에서 석유가 솟아나는 광경을 목격한 마르코 폴로는 석유에 대해 이렇게 기록했어요. "이 기름은 먹기에는 적합하지 않지만 불이 잘 붙을 뿐 아니라 사람과 낙타의 가려움증과 부스럼을 치료하는 연고로도 쓰인다." 2개월 이상 강행군을 하며 넘은 해발 4500m 정도의 파미르 고원에 대해서는 "높이와 추위 때문에 새 한 마리 날지 못한다. (…) 불을 피워도 잘 타지 않고 평소처럼 열을 내뿜지도 못하며 음식을 요리하기도 힘들다"라고 적었어요.
물의 도시로 불리는 베네치아 출신인 마르코 폴로는 항저우를 방문하고 깜짝 놀랐다고 해요. 베네치아 역시 운하의 도시였지만, 항저우의 운하가 규모 면에서 압도적으로 컸기 때문이죠. 당시 유럽 사람들은 적대적 관계에 있던 이슬람권만 하나의 문명으로 인식하고 있었는데, 중국을 중심으로 주목할 만한 문명이 동양에 있다는 사실에 마르코 폴로는 적잖은 충격을 받아요. 거대한 도시들이 곳곳에 있었고, 가는 곳마다 큰 건축물은 물론 많은 보물도 있었거든요.
이 책을 통해 유럽 사회의 권력자들과 상인들은 동양이라는 새로운 시장과 영토를 개척할 수도 있다는 꿈을 꾸게 됐어요. 한편으로는 마르코 폴로의 다소 과장된 표현 때문에 '허풍과도 같은 이야기'라고 치부하는 사람도 많았다고 해요.
하지만 이어 역사적 기록이 하나둘 발견되면서 이 책에 등장한 표현이 적확하지는 않지만 기록으로 충분한 가치가 있다는 게 밝혀졌어요. '동방견문록'은 동양과 서양의 만남을 주선한 셈이에요.
장동석 출판도시문화재단 사무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