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지게 삽시다.(사무엘하 3:1)25.07.27.주일설교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의 저자 스티븐 코비는 사람들이 늘 부딪히는 환경에 반응하는 행태를 두 가지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째: 반사적(反射的)으로 사는 삶이 있습니다.
가령 지하철을 탔을 때 어떤 사람이 내 발등을 밟았습니다.
밟히는 순간 소리를 지르고, 눈을 부릅뜨고, 욕을 퍼붓고,
당장 손이 올라갈 것 같이 행동하는 사람입니다.
강아지가 꼬리를 밟혔을 때, 제 주인이건 남이건 상관하지 않고 물려고 달려드는 것과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둘째: 주도적으로 응답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발을 밟힐 때 아프겠지만 '저 사람이 일부러 밟았겠는가?
사람이 너무 많아서 자기도 모르게 밟았겠지,
내가 아프다고 얼굴을 찡그리면 저 사람의 마음이 괴롭겠지, 라고 생각하며 참고 견디려고 합니다.
저쪽에서 "미안 합니다" 하면 "저도 종종 남의 발등을 밟아요." 하고 대답하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주도적으로 응답하며 사는 삶의 형태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알콜 중독자인 아버지 밑에서 자란 형제가 있었습니다. 이들이 자라면서 본 것이라고는 술에 찌든 아버지가 싸움을 하는 것이나 착한 어머니를 구타하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이 형제중 형은 자라서 아버지처럼 알콜 중독자가 되었고 동생은 금주 운동가가 되었습니다.
같은 아버지 밑에서 자란 두 형제의 서로 다른 인생길에 대해 호기심을 가진 어떤 사람이 물었습니다.
먼저 형에게 "당신은 어째서 알콜 중독자가 되었습니까?" 이에 대해 형은 대답합니다.
"그럴 수 밖에 없지 않습니까?
내가 자라며 배운 것이라곤 술 사오는 것이요 본 것이라곤 술 마시는 것 뿐인데 내가 알콜 중독자가 되는 것은 당연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동생의 대답을 보십시오.
"그럴 수 밖에 없지 않습니까?
내가 자라며 보고 배운 것이 아버지가 술마시고 주정하는 것 뿐인데 내가 어떻게 그 지긋지긋한 술을 가까이 하겠습니까?
내가 금주 운동가가 된 것은 당연한 것 아닙니까?"
여러분은 똑같은 환경에서 자란 두 형제의 극명히 다른 대답에서 무엇을 느끼십니까? 두 사람이 다
"그럴 수 밖에 없지 않느냐?" 라고 불가피성을 말합니다.
그러나 한 사람은 운명에 삼켜진 못된 인생을 살아야 했고, 다른 한 사람은 운명을 삼켜버린 능동적이고 창조적인 삶을 개척할 수 있었습니다.
이 두 형제의 서로 다른 모습은 오늘 우리의 모습일 수 있습니다. 환경에 짓눌려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환경을 극복하고 멋진 환경을 만들어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환경이나 운명에 갇혀 사는 사람이 아니라 환경보다 큰 사람, 운명보다 큰 사람으로 살아야 합니다.
다윗은 정말로 복 받은 자입니다.
다윗은 멋지게 산 사람입니다.
다윗은 평범한 시골 출신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그가 얼마나 탁월한 위인이 되었는가 하면,
아브라함보다 더 위대해졌습니다.
성경의 내용을 정리해보면,
아브라함에 관한 내용은 전체가 14장입니다.
그런데 다윗에 관한 내용은 64장의 분량이 됩니다.
그만큼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는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본문 사무엘하 2장을 보면 사울 왕이 죽자 다윗이 헤브론에서 유다 왕으로 등극하고, 사울왕의 군장(군 참모총장)이었던 아브넬이 마하나임에서 사울왕의 아들 이스보셋을 북이스라엘 왕으로 세운 과정이 나옵니다.
다윗 왕가는 이스라엘의 12지파 중 오직 유다지파만을 중심으로 세워졌고, 이스보셋은 나머지 지파들을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사람 수로 말하면 다윗에 비하여 이스보셋이 훨씬 더 많고, 강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절은
“사울의 집과 다윗의 집 사이에 전쟁이 오래매 다윗은 점점 강하여 가고 사울의 집은 점점 약하여 가니라"고 했습니다.
강하여져 가는 다윗의 집
약해져가는 사울의 집
그러면 왜 이렇게 다윗은 점점 강하여 가고,
사울의 집은 점점 약하여 갑니까?
첫째, 시기와 사랑의 차이입니다.
사울의 마음은 시기로 가득 찼고,
다윗의 마음은 사랑으로 가득 찼습니다.
블레셋으로 인하여 나라가 바람 앞에 등불처럼 꺼져 가고 있었습니다. 그 때 17살 밖에 안 된 다윗은 대단한 강한 장수 골리앗과 단독으로 대결하여 싸워 이겼습니다.
나라를 구하였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은 외쳤습니다.
“사울은 천천이고 다윗은 만만이다.” 입이방정...
이 말을 들은 사울은 다윗을 시기하여 죽이려고 작정하였습니다. 자기보다 인기가 좋다는 이유였습니다.
사울은 다윗을 죽이려고 수차례 시도하였습니다.
이러한 시기 때문에 사울이 점점 약해져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달랐습니다.
사울은 군사를 이끌고 다윗을 죽이려고 찾아 다녔습니다.
다윗은 쫓기다가 굴속에 숨었습니다.
사울은 피곤하였던지 다윗이 숨어 있는 지도 모르고
다윗이 숨어 있는 굴속으로 들어가 정신없이 잠에 빠져 들었습니다.
아무도 없는 그 곳에서 다윗이 사울을 죽이기는 쉬웠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사울의 옷자락만 잘랐습니다.
그리고는 옷자락만 자른 것도 마음에 걸려서 아파하였습니다.
이유는 기름부음을 받은 하나님의 종의 옷을 잘랐다는 이유였습니다.(삼상24;4-6)
사울의 시기를 다윗은 사랑으로 받았습니다.
만약 다윗이 사울을 죽였다면 성군은 되지 못 했을 것입니다.
구태타의 주역으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다윗은 자기를 죽이려고 했던 사울을 사랑으로 대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다윗을 확실히 보셨습니다.
그리고 다윗의 집은 강하게,
사울의 집은 점점 약하여지게 하셨습니다.
다윗은 점점 강하여 가고,
사울의 집은 점점 약하여 갑니까?
첫째, 시기와 사랑의 차이입니다.
둘째, 옹졸함과 넓은 마음 차이입니다.
사울의 마음은 옹졸하였고,
다윗의 마음은 포용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사울은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이는 죽이려는 옹졸한 이였습니다.
다윗을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제사장들 85명이 다윗에게 협조하였다고 그들 모두를 죽였습니다(삼상22;18).
사울은 잔인하였습니다.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무조건 죽이는 살인자였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달랐습니다.
다윗이 왕이었을 때, 압살롬이
다윗을 죽이려 하자 다윗은 도망하였습니다.
이 때 시므이가 따라오면서 다윗 왕을 향하여 저주하였습니다. 이 때 아비새 장군이 왕에게 말했습니다.
<이 죽은 개가 어찌 내 주 왕을 저주하리이까 청하건대 내가 건너가서 그의 머리를 베게 하소서.>(9절)
이 때 다윗왕은 화가 치밀었지만 범죄하지 않았습니다.
시므이는 <산비탈을 따라 가면서 저주하고 저를 향하여 돌을 던지며 티끌을 날리더라>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시므이가 저주해도
신경 쓰지 아니하고 한 곳에 이르러 편히 쉬었습니다.
우리는 다윗의 이런 태도를 배워야 합니다.
멋지게 살아야 합니다.
질문입니다. 남자는 어떤 여성을 좀 싫어하고,
어떤 여성상 하고 결국 관계가 깨질 것 같습니까?
잔소리 하는 여자입니다.
본인의 특징을 얘기하는 거지요.
어떤 권사님에게 제가 맞는 말을 기분 나쁘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말을 잘해야 합니다. 했더니
그 여성분이 이렇게 말합니다.
자기는 틀린 말을 안 한다는 것입니다.
성격 자체가 원래 확실하다는 것입니다.
헛소리는 안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하지 않다.
이 말씀을 쉽게 말하면 이 말입니다.
네 말이 맞는데, 맞는 말이지만,
그것이 꼭 유익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시므이처럼 누굴 비방하면 안 됩니다.
격려와 사랑의 말을 해야 합니다.
제가 아는 사모님이 시어머니 자랑을 했습니다.
시어머니께서는 절대 나쁜 말을 하지 않으신대요.
며느리가 기분 상할 말을 하지 않으시고,
불편해할 만한 말도 삼가신다고 합니다.
표독스럽고 날카로운 말은 아예 입에 올리지 않으시고요.
칭찬을 특별히 많이 하시진 않지만,
누굴 헐뜯거나 비난하는 말,
듣기 거북한 말은 절대 하지 않으신다고 해요.
그래서 그분은 그런 시어머니가 참 좋다고,
자랑스럽다고 하시더라고요.
우리는 이렇게 자랑이 될 만한 사람
멋진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칭찬까지 하면 더 멋지겠지요.
우리가 꼭 회복해야 될 것이 바로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빌 2:5에 보시면 "너희는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라."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사울과 다윗의 차이점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사울은 관계에 실패한 사람이라면
반대로 다윗은 관계에 성공한 사람입니다.
사울은 평생 다윗을 미워하면서 살았습니다.
다윗에 대해서 항상 적개심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그런 사울 왕을 조금도 미워하지 않았습니다. 복수하지도 않았습니다.
어떤 악한 말도, 부정적인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관계에 실패한 사울에게서는 모든 사람들이 떠나버렸지만, 관계에 성공한 다윗에게는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다윗은 항상 넓은 마음을 가지고 모두를 용납해주었습니다. 사람들을 함부로 공격하지 않았습니다.
왜 다윗이 이렇게 멋지게 살았습니까?
사무엘하 5장을 보면, 다윗의 믿음의 태도가 나옵니다.
블레셋과의 전쟁이 일어났을 때의 일입니다.
다윗은 블레셋과의 첫 번째 전쟁에서 하나님께 여쭙니다.
“내가 블레셋 사람에게 올라가리이까?”(19절).
이 때 하나님께서 ‘올라가서 마주 싸우라’ 하셨습니다.
그때에 다윗은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그리고 승리하고서 그 곳 이름을 ‘바알 브라심’이라고 했습니다.(20절)
‘바알 브라심’은 ‘승리케 하시는 하나님’이시란 말입니다.
하나님이 승리를 주셨다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다윗이 멋지게 산 이유는
항상 하나님을 인식하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인식하고
십자가의 사랑을 감사하며 멋지게 살아야 합니다.
시기와 질투를 버리고 사랑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옹졸한 마음을 버리고, 넓은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좋은 말을 많이 하며, 행복을 주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좋아하시고 복을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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