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지(死地)’는 한자의 뜻 그대로 죽음의 장소다. 동양 최고의 군사고전인 ‘손자병법’에서 사지는 사방이 적의 포위망에 완전히 갇혀 더 이상의 활로가 보이지 않는 곳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렇게 적에게 포위돼도 살아날 방법은 있다. 영화 ‘위 워 솔저스(We Were Soldiers, 2002)’에서는 이를 잘 보여준다.
대대장 탁월한 지휘·대대원들 뛰어난 전투력 밀림 속 북베트남군 포위망 뚫고 승리 이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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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워 솔저스의 한 장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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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 깁슨 주연의 영화 위 워 솔저스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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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미국은 베트남 전쟁에 본격적으로 지상군을 투입한다. 이에 앞서 미국은 밀림 속에서 숨어 싸우는 북베트남군과 제대로 한번 싸우면서 상대의 능력을 시험해 보고자 했다. 이를 위해 무어 중령(멜 깁슨 분)이 이끄는 정예 7기병연대 1대대가 헬기를 이용한 강습작전을 통해 전투에 투입된다. 대대는 스스로 ‘사지’로 들어가 북베트남군을 유인해 섬멸하는 임무를 받게 된 것이다.
사지에서의 방어는 사방을 방어해야 하는 사주방어의 형태를 취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전쟁사에서 종종 사주방어는 공격해 오는 상대방을 마치 솥단지에 넣고 끓이는 것처럼 상대의 전력을 소모시키려는 적극적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역으로 상대에 포위 섬멸당할 수 있는 위험이 매우 큰 방어형태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예가 1954년 베트남에서 프랑스군이 북베트남군에 전멸을 당했던 디엔비엔푸 전투다.
프랑스군은 북베트남군보다 월등한 전력과 화력을 믿고 스스로 ‘사지’로 들어가 베트남군을 유인 섬멸하려 했다. 뜻밖에 결과는 처참했다. 북베트남군은 생각보다 강했고, 반면에 프랑스군은 기상악화에 따른 보급의 두절 등으로 전멸당하고 만다. 결국 이 전투를 끝으로 프랑스는 베트남에서 철수하게 된다.
무어 중령의 대대는 이를 어떻게 극복했을까? 무엇보다 대대장의 리더십이 돋보였다. 작전에 투입되기 전 무어 중령이 부하들에게 했던 훈시는 이 영화의 백미다. “나는 제일 먼저 (사지에) 발을 디딜 것이며, 가장 나중에 (사지에서) 나올 것이다.” 그렇다. 지휘관과 부하는 한몸이 돼야 한다는 주인공의 리더십은 부대가 사지에서 살아남고 임무를 완성하기 위한 필수요소였던 것이다.
또한 영화 속 전투에서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전장의 상황과 불확실성을 극복하는 대대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물론 이는 대대장의 상황판단과 지휘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대대장 이하 대대원들의 불굴의 의지가 없었으면 불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대대원들은 평소 고된 훈련을 통해 전투기술과 체력을 연마했으며, 무엇보다 서로 믿으며 맡은 바 임무를 끝까지 이행하는 군인정신이 투철한 부대였다.
영화 속 대대가 수행했던 아이드랑 전투는 실제로 베트남전쟁에서 미국과 북베트남의 전쟁수행방식을 결정지었던 중요한 전투이기도 했다. 특히 이 전투를 통해 북베트남은 미국의 막강한 전투력과 화력을 실감했고, 이후 전면전으로 나오는 대신 게릴라전을 선택했다.
그런데 ‘사지’에 들어가 상대방과 힘 대 힘으로 싸우는 미국의 이러한 전투방식은 6·25전쟁에서도 이뤄졌다. 바로 1951년의 지평리 전투가 그것이다. 미국의 1개 연대가 사주방어를 통해 중공군 6개 연대의 공격을 막아냈다. 이곳에서의 승리는 미국에 그전까지 공포의 대상이었던 중공군을 물리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는 계기가 됐다.
군인에게 언제 어떤 상황에서든 적과 싸워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은 필수적이다. 하지만 이러한 자신감은 그냥 나오지 않는다. 아마도 실제 전투에서는 공포와 긴장으로 몸이 움츠러들 테니 말이다. 전투에서 승리를 쟁취할 수 있는 자신감은 평소 강한 훈련과 체력에서 나옴을 다시 한번 명심 또 명심해야겠다.
<심호섭 대위·육군사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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