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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는 철도의 르네상스시대라 한다. 기차를 타기위해 이른 새벽 남춘천 역으로 나갔다. 언제나 기차 역에서 플랫포옴으로 걸어나갈 때면 설레임에 사로잡힌다. 번다한 일상의 탈출을 꿈꾸는 번지점프처럼 설레임을 싣고, 삶의 보따리를 싣고 덜컹덜컹 세상이야기를 풀어놓으며 달려가는 기차 여행이 내겐 단 하루였지만, 공허한 가슴을 가득 채워주며 봄을 맞는 계기가 되었다.
국립중앙박물관 관람이 주된 목적이었다. 역사의 숨결이요, 문화의 힘인 한국 박물관이 용산구로 자리를 옮겨 8만여점을 새로 전시하였다는데 그전부터 벼르며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던 욕구가 성사된 날이었다.
마침 봄방학이 십여일이나 되어 모처럼 다녀왔다. 남춘천역이 본 역이 되면서 학창시절에 다니던 신남, 남춘천 철길은 더욱 가까이 내게 다가온 느낌이었다. 살구골, 무네미,진양지를 지나 김유정역에 정차하면 언제나 고향이라는 인연으로 항상 감회를 자아낸다.신남 누님네 댁도 희뿌연 안개속에 진병산과 무언의 대화를 나누고, 팔미리 다리 아래엔 아직도 정족리 가족 친목회를 열던 그 열기가 녹아 있어 추억에 젖곤 했다.
따그닥-. 따그닥 미끄러지며 달리는 경춘가도의 열차-. 이 철길도 옆에서 시위라도 하듯 파헤친 고속전철에 밀려 몇년이면 종말을 고한다고 한다. 아쉽다. 정선처럼 관광자원으로 철로를 이용하면 어떠할까하는 생각도 잠시 해보았다. 그러니까 강촌에서 김유정 역까지-.
열차는 작은 간이역을 서슴지 않고 지난다. 리버투어-.강촌 스키장이 생기면서 골짜기마다 옛집들을 밀치고 이방인들이 세운 팬션들이 난무하다. 백양을 지나 경강역에서 한사람이 타고 가방과 비닐 보따리를 걸머진 남정네들이 서너명 내린다. 간이역-. 숫닭을 기르고 까만 토끼가 물을 먹고 있는 한가로운 역의 모습이다.
늦잠 자고 있는 상가의 불빛들이 하나, 둘 서둘러 옷매무새를 고친다. 언제 봐도 절경인 경춘선! 강이 있고 산이 높고 터널이 길을 내준다. 도계(道界)에 우뚝 선 상징물 반달곰이 경기도를 주시한다. 가평이다. 농원에 모여있는 어린 나무들이 놀라 손을 흔들고, 수녀처럼 검은 천으로 얼굴을 가린 인삼밭이 봄을 맞아 용트림을 하고 있다. 밤나무 단지들-.흰 점박이 두충나무들이 골짜기마다 모여 새 봄을 준비한다. 봄이다. 봄이 여기저기서 들썩인다.
8시 45분-. 아직 태양은 자기 거처를 알리지 않고 하늘은 낮게 흐려 있다. 생명물 두부차가 건널목에서 손짓하고, 청평 유원지답게 간판 MIDAS도 아침을 맞는다.
MIDAS!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손만 대면 물건들이 황금으로 변화시키는 신이리라. 대성리부터 아스팔트가 방금 목욕실에서 나온 누나처럼 촉촉히 젖어 있다. 고속전철로 군데군데 속을 모두 내준 산들이 허허로운 모양이다. 마석을 지난다. 예전에 여기서 화강암을 다듬어 한양으로 옮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 마석, 그러나 지금은 경기고속이 활개를 칠뿐 돌산은 보이지 않는다.
김밥 천 원짜리 몇 줄과 삶은 계란을 준비해 왔다고 아내는 막내 루리 앞에 풀어놓는다. 한 줄에 천원-.불경기와 고물가속에서도 유일하게 위로해 주는 것이 무엇인가? 김밥이다. 간단히 요기를 하는 중에 열차는 금곡을 지나 사릉역에 다다른다. 왜 사릉일까? 늘 이곳을 지나면 역이름에 의문을 갖는데 오늘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성북에서 내려 지하철 1호선으로 서울역에 가서 4호선으로 바꿔 이촌역에서 내렸다. 지상으로 나오면서 박물관이 보인다. 고고관, 역사관, 미술관 1, 기증관(10명), 미술관 2, 아시아관을 초현대식으로 꾸미고, 8만 여점으로 단장을 해 2000원의 입장료로 입장객들을 부르고 있다. 평이 좋다.
동관, 서관으로 나뉘어져 총 3 층 규모로 1층은 역사관,2, 3층은 미술관이었다. 첫 눈에 상상을 초월한다. 어마어마하다. 봉덕사 종이 박물관 외벽에 그려져 분위기를 자아냈다. 경주에 있는 박물관이 신라 고분 천마총에서 나온 유물이 주종이라면, 이곳은 경남 황남동 유적이 주로란다. 고려시대 유물이 눈에 띄게 적다. 개성에 가면 많겠지-.
구석기 시대부터 찬찬히 돌아보았다. 뗀석기부터 간석기를 지나 인간은 농사를 지으면서 씨족과 부족을 이루고 산다. 말로만 듣던 빗살무늬 토기를 가까이서 본다 섬세하다. 슴베 찌르개, 독널, 무덤 박물관인 돌널무덤들이 눈길을 끌었다. 최신 건축물에 진열된 국보 유물들-.여기서 달마가 신라말 불교 종파인 중국 선종의 시조라는 것도 알았고, 성덕대왕을 기리는 신종에 써진 글도 훌륭했다.
-성덕대왕의 덕은 산과 물처럼 높고 깊으며, 그 이름은 해와 달처럼 높이 빛났습니다.-.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철기시대를 나누어 전시된 국보급 유물들을 피부로 접하면서 새삼 느꼈다. 어쩜 우리 조상들은 작은 낙관 하나에도 용의 머리, 작은 소반에도 호랑이 다리로 만들어 형상화 하였는가! 모두가 꾸미고 다듬어 미술 공예면에서도 우리 민족의 높은 미적 감각을 엿볼 수 있었다. 너무 아름답고 탐이나 사진을 찍으려 했으나 라이트를 터뜨리지 못하도록 되어 몇 카트 찍지 못해 못내 서운했지만, 감상하는 입장객들을 위해서란다.
중국 미술코너에 도연명의 시가 특히 수필을 쓰는 내 마음을 사로 잡았다. -초가집 짓고 인간세상에 살지만 -시끄러운 수레소리가 없다네 -어찌 그런 소리가 없다고 물으면 -마음이 심원한 경지라면 머무는 곳도 저절로 외지다네
역시 마음이 모든 것을 좌우한다.
주로 동양화나 전해오는 서예는 거의가 종이보다 비단에 그린 것이 특징이다. 임지로 떠나는 철옹부사에게 정조가 직접 써준 발령장은 붉은 비단에 내린 휘호로 매우 힘찬 서체와 위엄이 남아 내 마음을 사로 잡았다.
2층은 불교미술이 주종을 이루었다. 석가모니 상이 높다. 죽은지 3일된 인간을 심판하는 염라대왕의 표정이 전혀 무섭게 그려지지 않고 웃는 얼굴이라고 저마다 한 마디씩 한다. 감로란 단이슬이란다. 부처가 내리는 천상의 음료를 감로하는데, 그런 용기들이 받침대에 빚어져 찬란히 전해온다. 그 밖에 청자, 상감청자들은 귀족적인 기풍을 느낀다. 구름과 학은 중국 청자에도 없는 그림 소재란다. 봉황, 용, 특히 모란이 많았다. 연꽃넝쿨, 물가풍경등이 청자에 그려진 그림들-. 역시 우리나라는 신선사상이나 자연사상의 노장사상이 생활 모든 곳을 지배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조선시대의 이조백자와 분청사기가 또다른 미적 감흥을 불러와 다가서곤 했다.
약 3시간 동안 관람을 마쳤다. 워낙 드넓은 공간이라 어찌나 피곤이 스물거리는지 다른 계획도 마다하고 성북역으로 직행하였다. 그러나 우리 민족의 내로라하는 국보급 문화재들을 한자리에서 내자와 막내랑 함께 관람한다는 것이 무엇보다 자랑스러웠던 하루다. 주마간산격이라 시간이 허락하면 다시한번 찾아와 천천히 음미하며 감상해야겠다.
오후가 되면서 날씨가 다시 청명해져 아침과는 달리 태양의 위치를 알려주고 사위는 봄의 기운으로 발돋움이 한창이었다. 종착역까지 가는 승객으로 춘천을 생각해 본다. 어디로 갈 것인가? 어느 곳이 이방인들을 편히 쉬게 할 것인가! 돌아오는 경춘열차에 많은 인파들을 도시는 어떤 발전으로 이들의 기대를 채울 것인가! 기차 나들이-.비록 남춘천에서 성북까지의 짧은 거리지만, 기차를 타고 나들이를 한 오늘은 언제까지나 우리 식구 가슴에 남아 이날을 영원히 노래하리라.(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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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읽는 이가 대리만족 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살펴 주시어 행복합니다. 세 시간을 돌아보시고도 또 다른 시간에 와서 보리라는 말씀도 귀감이 됩니다.
거진항에서 펼쳐진 명태 축제를 보고 화진포를 돌면서 가을하늘님과 선생님 이야기를 나누었지요. 춘천에 계실것 같아 전화를 못드렸습니다.
일찍 다녀오셨습니다. 저는 다음주에 다녀올까 합니다. 보신것 참고가 될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