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 최기숙 교수 글 퍼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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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빈칸을 지켜주자, 절대 들여다보지 말고
TMI라는 유행어
최근 유행어 중에 ‘TMI’라는 게 있다. ‘Too Much Information’의 줄임말로, ‘너무 과한 정보’라는 뜻이다. 굳이 알고 싶지 않은 것이나 달갑지 않은 정보에 대한 일종의 경고로, 부정적 의미로 사용된다. 인터넷이 발달한 정보화 사회를 살다 보니, 이런저런 검색을 통해 웬만한 ‘신상털기’*가 가능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각종 SNS를 통해 스스로 노출한 정보도 상당하다. 도대체 개인성의 영역이 보호받지 못한다는 감각이 일상화되는 듯한데, 이러한 문제의 징후에는 개인 스스로 기여(?)한 바가 적지 않으니, 이것이 곤경(dilemma)이다.
‘나 혼자’ 문화의 확산
정보의 과다 노출에 비해, 정작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고 깊이 있는 대화를 할 수 있는 사이는 점점 줄어드는 듯하다. 혼밥(혼자 밥 먹기), 혼술(혼자 술 마시기), 혼영(혼자 영화보기), 혼행(혼자 여행) 등 혼자 하는 일상 시간이 점점 많아지는 최근의 현상은 이른바 싱글족만의 행태가 아니다. 함께 있는 사람과의 피로도를 줄이고 자신에게 집중하려는 의지가 새로운 문화를 형성하고 있다. “혼자는 외롭고, 여럿은 괴롭다”는 농담에는 거부할 수 없는 ‘진실의 뼈’가 드리워진 듯하다.
말하지 않음으로써 친해진다
정보화 시대에는 역설적으로 ‘말하지 않음으로써 친해지는 법’이 있는 것 같다. 너무 많은 정보를 통해 자기를 알리려는 ‘노오력’**이야말로 그 사람의 정체를 의심하고, 신뢰를 상쇄시키는 지름길이 될 때가 있다. 정보를 남발하는 사람일수록 의외로 그 정보에 ‘자기’가 누락된 경우가 많다. 시시콜콜한 소문, 어디서 들은 말, 검증 불가능한 타인의 사생활 등을 과다 방출함으로써, 마치 자기라는 실체의 ‘부재’를 가리는 장치로 사용한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녀/들은 왜 자기를 말하지 않을까. 거기에는 말함으로써 불리해지는 자기 정체에 대한 두려움, 소심함, 외로움, 불안감이 자리해 있는 게 분명하다. 그/녀는 ‘자기 지우개’ 같은 ‘TMI’를 남발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자기 정체를 고백하는 셈이다.
타인에게 어디까지 질문해도 되는 것일까
허물없이 가까운 사이에도 하지 말아야 할 말이란 게 있다. 해서는 안 될 만에 대한 정보는 교과서에도, 자기계발서적에도, 인터넷 녹색창이나 파란창에도 제공되지 않는다. 그것은 그저 사람이 살면서 몸으로 익히고 깨닫는 경험적 감각이다. 어디까지 질문해야 하는지를 정하는 것은 그 사람의 지식과 교양, 예의와 인격성, 성찰력과 감성 능력의 징표다. 상처가 되는 말을 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굳이 말하지 않는 무언가를 캐고 탐하는 참견의 시선도 위험하다(참견과 호기심, 간섭과 배려의 임계점에 유념해야 한다). 누군가와 친밀한 관계를 맺고 신뢰를 쌓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알려고 하는 탐색보다, 그 사람의 여백과 빈칸을 지켜주고, 어둡게 드리워진 그림자를 밟지 않으려는 배려가 필요하다.
“다행히 제 주위 분들이 위로를 많이 보내주시긴 했지만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분들의 위로가 별 도움은 안 됐어요. 그분들은 저희와 같은 상황이 아니잖아요. 힘들어서 어떡하느냐 하는데 그 말이 전혀 공감이 안 됐어요. (중략) 사람들이 습관처럼, 어떤 말이라도 해야 할 거 같아 의무감으로 ‘힘들었지?’라고 말해주는 게 오히려 상처가 될 수 있어요.”***
아이가 화상을 입어 중환자실에 입원했을 때의 경험을 술회한 송순희 씨의 인터뷰 중 일부다(이 책에서는 화상환자라는 말 대신에, 한때 화상환자였지만 지금은 환자가 아니라는 의미에서 ‘화상 경험자’라는 말을 사용했다.). 타인의 상처나 고통에 배려 깊게 다가가는 법에 서툰 것은 단지 ‘어리석은’ 게 아니라 위험한 일이고, 난폭하기조차 하다. 당사자에게 이중의 고통을 부과하기 때문이다. 타인에 대한 호기심은 때로 폭력이며, 타인의 여백을 들여다보는 일은 가택무단침입만큼 위험한 가해일 수 있다.
느슨한 삶, 시간, 감각
느슨하게 살아가는 일상의 삶은 시선의 느긋함, 속도의 강약조절, 관계의 평화유지에 대한 사소한 모색에서 생겨난다. 온갖 풍파를 겪은 사람의 맨 마지막 표정은 고요이며, 파란만장 생애사의 종결은 평안이 맞춤하다. 타인의 빈칸에 호기심으로 응하는 대신 그저 가만히 지켜주기, 여백과 함께 존재하는 평화의 감각을 익혀보려 한다.
겨울이 막 시작되는 알싸한 공기 속에서, 한 해의 수고로움을 날려 보낼 수 있는 빈터를 닦아보자. 설명이 필요 없는, 존재 그 자체로도 가슴이 시원해지는 여백의 풍성함 속에서.
* 신상털기: ‘신상’과 ‘털기’의 합성어로서, 당사자의 신상정보를 인터넷에 무분별하게 공개하는 것을 말한다. (네이버 국어사전 참조)
** 노오력: 노력보다 더 큰 노력을 하라는 말로, 사회가 혼란하니 노력 가지고는 되지도 않는다는 것을 풍자한 신조어 (네이버 국어사전 참조)
*** 송순희(전나영 어머니) 구술, 박희정 기록,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송효정 외, 『나를 보라, 있는 그대로: 화상경험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온다프레스, 2018, 30쪽.
글쓴이 / 최 기 숙
·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교수(한국학 전공)
· 저서
〈Classic Korean Tales with Commentaries〉, Hollym, 2018
〈集體情感的譜系: 東亞的集體情感和文化政治〉(主編), 臺北:學生書局, 2018.
〈한국학과 감성교육〉(공저), 앨피, 2018
〈Bonjour Pansori!〉 (공저), Paris: Imago, 2017
〈물과 아시아 미〉 (공저), 미니멈, 2017
〈감성사회〉 (공저), 글항아리, 2014
〈감정의 인문학〉 (공저), 봄아필, 2013
〈처녀귀신〉, 문학동네, 2010 외 다수